민화작품에 담긴 전각의 의미와 올바른 응용
– 작품의 품격을 완성하는 ‘전각’

민화작품 속 전각의 날인 유무에 따라 미완성 작품으로 인식될 만큼 그 중요성과 필수성은 예전에 비해 훨씬 커졌다. 그러나 많은 민화작가들이 아직도 전각에 대한 보다 면밀한 이해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전각의 유구한 역사와 명료한 실기를 논하기보다 현시대 민화에 있어서의 인장 즉, 전각의 중요성과 올바른 응용방식을 설명해 보고자 한다.


일상생활에서 이름을 새겨 본인임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친숙한 인장과 도장은 서화작품의 분야에서는 작가 자신의 작품임을 나타내는 전각篆刻 또는 낙관落款으로 인식되고 있다. 전각이란 일종의 인장을 제작하는 새김예술로 그 대표적 기법인 새김행위는 사방四方 한 치 즉, 3cm 내외의 유한한 땅덩어리를 한 손에 움켜쥐고 우주의 무한한 공간으로 표출하여 소통해내는 원초적 표현기법이다. 여기서 새김질은 한국미술의 조형적 모태와 동양미술에서 강조하는 필획의 근원적 형질을 잘 간직하고 있다.
새김에서 드러나는 진솔하고 천진한 에너지가 붓이 아닌 쇠칼을 통해 금석에 투영되는 그 찰나의 순간마다, 서화로 다져진 전각가의 예술적 역량을 인면印面에 몽땅 쏟아 부어 문자나 그림을 새기고 찍어내는 작업 행위가 바로 전각예술篆刻藝術의 매력이다. 단호하게 부수어져 떨어져나가는 톱니자국 같은 웅혼한 금석미金石味와 더불어, 쇠칼의 날렵하고 예리한 운도運刀에 의해 균형 잡힌 도미刀味가 서로 혼연일치 되어 붉은 인주로 날인捺印된 형상들은 전각만이 지닐 수 있는 신선한 정취이기도 하다.

민화작품에 담긴 전각의 의미

전각에서 ‘전篆’이란 한자서체 전서篆書, 예서隸書, 해서楷書, 행서行書, 초서草書 중에서 한자 발생 초기의 글씨체인 전서체篆書體를 말한다. 전서篆書는 다양한 한자서체 중에서도 권위와 위엄을 갖추고 있어 왕권을 위시한 권력자들이 향유했던 근엄한 서체이다. 여기에 자연과 사물의 형태를 본뜬 풍부한 상형성이 강조되고, 추상적인 개념을 부호로 표현한 조형미도 가지고 있다.
전서篆書는 필기체로 연면連面하여 속사速寫하지 않는 유일한 한자서체이기도 하지만, 모필하는 사람에 따라서 자형字形의 아름다움을 좁고 길게 늘이거나, 짧고 납작하게 만드는 등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장점으로 인해 현재도 전서 문자를 금석에 새겨서 찍는 전각 조형예술이 발전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전서를 각刻하는 것을 전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다른 한자서체로 얼마든지 각을 할 수 있지만, 예각隸刻, 해각楷刻, 초각草刻으로 분류하지는 않고, 전각篆刻으로 명칭을 통일해 사용한다.
한자전각에서 한자발생 초기서체인 전서 위주로 인문印文을 구성하듯, 한글전각에 있어서도 한글발생 초기 서체인 훈민정음 해례본체解例本體 위주로 인문을 구성하는 점은, 한자와 한글 전각 인문 구성의 공통된 지향점이 근엄함과 신중함이라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낙관落款은 낙성관지落成款識에서 첫 번째와 세 번째 글자를 딴 줄임말이다. 집이나 건물이 완공된 후 이를 축하하는 낙성식落成式을 하듯 오랫동안 공을 들인 작품이 완성되면 작품의 내력과 작가의 성명, 아호雅號를 직접 쓰고, 전각을 날인하여 마무리하는 과정 전체를 낙관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전각이 날인하는 인장이라면, 낙관은 화제畵題와 시기, 작가의 성명과 아호 등을 멋지게 쓰고, 전각을 날인하는 여러 과정을 포함하는 완성의 의미로 보면 되겠다.
낙관은 단관單款과 쌍관雙款으로 구별 짓기도 하는데, 단관은 작가 본인의 이력만을 작품에 밝힌 경우에 해당되고, 쌍관은 작가와 그 작품을 증여 받는 소장자를 함께 밝혀 놓은 것을 구별하여 말하는 것이다.

전각이 지니는 예술적 가치

우리 사회에서 인장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예를 형법에서도 찾을 수 있다. 형법 제231조, 남의 인장을 도용하거나 위변조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는 중죄라는 항목이다. 이처럼 인장은 본인의 고유성과 의사 결정을 대표하는 신표信表의 상징으로 귀하고 중하게 여겨 사용해 왔다.
서양화에서 작가가 이니셜 등을 화필로 직접 썼던 사인(signature)이 있다면, 동양의 작품은 그려진 시기와 이름을 쓴 관서款書와 함께 찍힌 전각이야말로 진품임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표식이다. 간혹 작가 사후에 전각이 모작에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위작의 진위 여부를 가릴 때도 그림 자체는 감쪽같이 모사해도 작가의 실인實印과 비교하여 전각의 품격으로 진품여부를 확실히 구별할 수 있다. 이는 작품에 날인된 전각에 큰 믿음을 두고 있음을 반증해 주는 좋은 예시다. 치밀한 작업의 성과로 이룩한 작품의 가치와 날인된 전각의 품격은 작품에 임하는 작가의 기량을 나타내는 척도로 삼을 수 있다.
이처럼 전각은 작품의 화면보다 더욱 격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민화의 구도와 색채에 완벽에 가까운 정성을 기울이고도, 거리에서 2~3만 원을 지불하고 기계로 새긴 무표정한 도장 또는 정체불명의 수제 혹은 캘리 도장을 날인한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이는 전각이 지니는 예술적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 무지와 무책임에서 비롯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전각의 구성에 따른 백문과 주문

성명만으로 나누어 두 방의 전각을 구성한다면 양각으로 새긴 주문朱文은 성姓을, 음각으로 새긴 백문白文은 명名으로 갖추면 된다. 반면 성명과 아호를 나누어 각각 두 방의 인장을 구성한다면 성명을 음각으로 새긴 백문으로, 아호는 양각으로 새긴 주문으로 갖추면 된다.
백문인白文印은 비교적 무게가 무거우며 주문인朱文印은 가벼운데, 화면 분위기가 어둡고 진하며 무거운 작품이라면 음각 백문인을 찍어 붉은 인주印朱의 짙은 붉은빛 주색朱色과 먹빛이 서로 자극하듯 강렬한 대비를 이루어 두드러지게 하는 편이 좋고, 밝고 간결하고 아담한 분위기의 작품이라면 주문인을 찍는 것이 잘 어울린다.
시작되는 첫머리에 날인하는 이른바 인수인引首印(7 인수인)은 장식적인 인장인 한장閒章의 성격을 지니는데, 주문과 백문 어느 기법으로도 표현 가능하며, 직사각의 반통半通, 장방長方, 타원, 호로葫蘆, 자연형의 길죽한 형태를 취하고 그 내용은 연호年號, 서재이름, 고사성어, 명언가구名言佳句, 경구警句등으로 구성된다. 인수인, 한장, 유인遊印은 한가롭고 쓸데없이 노는 의미가 아닌 단조로움을 깨우고 안정과 평화스러운 상태를 유지시켜 주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시서화 그리고 각의 조화

현대 민화에서도 전각은 화제와 서명 이후 반드시 따라온다. 화제는 그림을 완성 후 작가가 그림의 의취意趣를 설명하거나 그림에 빗대어 작자의 느낀 점을 기록하고 나서 서명하는 것이다. 화제를 짧거나 길게 그림에 올리는 순간 이미 시詩, 서書, 화畵 삼절三絶의 경지를 넘나들어야 하며, 작지만 강렬한 전각을 날인하는 순간 시, 서, 화, 각 사절四絶의 경계로 들어가게 된다. 이는 단순히 회화적 그림만 감상 요소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시, 서, 화, 각을 두루 흠상하는 높은 안목의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인문학과 예술의 오랜 학습과 반복으로 터득되는 깊은 경지다. 이처럼 민화와 전각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자아내는 멋은 구성에 있어 강렬한 효과를 연출할 뿐만 아니라 정신이 환하게 빛나도록 하여, 작품 전체가 감상자들로 하여금 더욱 아름답고 풍부한 감동을 불러오게 만든다.
간단한 서명만 쓰고 날인하는 단관短款은 흩어지기 쉽고, 장문의 화제와 더불어 날인하는 장관長款은 한곳에 몰리기 쉬우므로 주도면밀하게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 단관은 성글지만 흩어지지 않게 하고, 장관은 밀집하거나 분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비었다고 아무렇게나 놓아서는 안 되고, 복잡해도 비어 있는 곳이 없도록 안배해서 전체적 균형미를 손상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낙관은 공백의 크기와 그림의 주제에 근거하여 결정해야 하는데, 적당한 위치에 잘 쓰고, 잘 찍으면 필묵이 자아낼 수 없는 효과까지 다하게 된다. 또한 화면의 완성도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조력자이며, 구도나 장법章法을 보충해 주어 전체 화면을 균형 잡히고 안정감 있게 만들어 준다. 따라서 화제의 서체, 낙관의 위치, 전각의 크기 이 모든 요소들이 전체 화면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이는 화제와 더불어 전각 날인의 위치가 미리 설계된 구도에 맞게 배치하는 것이지, 없어도 그만인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민화를 배우는 학생과 초학자들도 결코 낙관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낙관의 위치와 날인의 순서

전각의 대소는 화폭과 화제의 글씨 크기에 비례해 맞추어야 한다. 다만 화제의 글씨 크기보다 큰 인장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일반적으로 전각의 정사각형 크기는 한 푼(3mm) 단위로 규격화 하는데, 두 푼은 6mm이며, 1.8cm 크기라면 여섯 푼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사방 3cm 크기는 한치라고 하며 3.3cm는 한 치 한 푼이다.
낙관은 보통 왼쪽 하단에 위치시킨다. 낙관에서 전각 날인의 기본 원칙은 상호 균등을 고려한 대각호응對角呼應이다. 즉, 왼쪽 하단 부위에 두 방의 인장이 찍혀 있다면, 오른쪽 상단에 한방의 인장을 넣어 통일감을 주어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하나의 화면에 여러 종류의 인장이 찍힐 때 크기 및 형태가 천편일률적이어서는 안 되며, 특히 유인遊印은 성명인姓名印보다 커야하고, 두세 방 이상의 전각을 찍을 경우에는 주문, 백문이 서로 섞여 있어야 한다.
날인의 순서에도 일정한 법도가 있다. 반드시 음각된 백문인의 성명인을 먼저 찍은 뒤 양각된 주문인의 아호인雅號印을 그 아래 찍는 것이 상례이며, 이때 전각 크기의 1.5배 정도의 간격을 두고 찍으면 무난하다. 물론 주문인과 백문인의 순서를 법률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겸양의 뜻으로 성명인을 먼저 찍고, 나중에 아호인이나 당호인堂號印을 찍는 것이 관례다. 또한 서명 아래와 왼쪽에 전각을 날인할 수 있는데, 서명한 글씨의 위치에서 너무 떨어져 찍어서는 안 되며, 서명 왼쪽에 찍을 때는 서명한 마지막 글자의 끝 획과 나란히 위치해 있어도 곤란하다.

작은 사각의 인흔이 빚어내는 안정감

민화작품의 화면 구도를 면밀히 살펴보면, 비어서 성긴 곳과 빽빽하여 가득 찬 곳이 있기 마련이다. 비어있는 공간이 공허하다고 생각되면 전각을 찍어 충실하게 할 수 있는 반면 가득 찬 공간에 전각을 찍으면 오히려 긴장감을 더는 역할도 한다.
더불어 심혈을 기울여 탄생한 작품의 완성도가 전각으로 인해 훼손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부주의로 인해 거꾸로 날인하거나 옅게 찍혀 불완전해 보여서도 안 되며, 전체 화면이 더욱 빛을 발하며 다채롭게 보이도록 찍어 화룡점정이 되게 해야 한다. 전각을 적재적소에 제대로 올리지 못한다면 마치 사족과 같아서 작품의 예술적 가치에 흠집을 내게 된다. 평소에 꾸준한 연마로 다져진 높은 서예 필력을 소유한 민화 작가라면 장문의 화제 글씨도 어려움 없이 쓰겠지만 그 반대라면 성명 또는 아호만 서사해도 충분하다.
간결한 소품小品 민화작품일 경우 혹은 먹색과 채색의 조화가 아름답고, 화면 전체적 구도가 꽉 짜여있다면 굳이 서명조차 쓸 필요 없이 한두 방의 전각만으로 마무리 지을 수도 있다. 여기에 화제를 달 경우 오히려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또한 전각만으로 마무리 할 때는 인장을 너무 화면 바깥 변에 붙여 찍지 않도록 해야 한다. 표구를 할 때 테두리에 인장이 가려지거나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화면 크기의 편폭과 대소, 서사한 서체의 자형과 크기는 물론 낙관을 한 뒤 남은 여백의 상황까지도 참작하여 전각의 크기와 위치를 선택하여 날인된 것을 잘 찍은 전각 즉, 명장名章이라 할 수 있다. 작은 사각의 진중한 인흔印痕들은 비록 화면 구성에서 차지하는 면적은 지극히 적지만, 수묵채색 위주의 민화 화면 속에서 살짝 기름 띈 선홍색으로 가볍게 돌출되어 리듬감과 함께 온화한 안정감을 가져온다.

인주 하나도 허투루 사용하지 말아야

날인시 사용하는 인주印硃 혹은 인니印泥는 은행 및 관공서에 비치되어 있는 인주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서화용 인주는 동일한 붉은색 계통이라도 주사朱砂, 주표朱磦, 대홍大紅, 심홍深紅 등으로 그 제조방식에 따라 색상 차이가 있으므로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빨간 인주를 인면에 묻혀 사용하기 전에는, 반드시 가라앉은 주사 때문에 골간骨竿 또는 죽간竹竿을 이용해 아래위로 저어 주어야 하는데, 이때 주의할 점은 한쪽 방향으로만 잘 저어 섞어 주어야 한다. 이는 인주에 포함된 연약한 인진쑥의 가느다란 섬유소가 끊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또한 인주는 금속 용기에 보관하거나 금속 막대기로 저으면 화학반응이 일어나므로 유리 및 도자기에 넣어 보관해야 한다.
좋은 인주는 날인을 해도 선명한 인문 주위로 기름이 번지지 않지만, 혹여 기름이 지면에 흡수되어 테두리처럼 번진다면, 당황하지 말고 베이비 파우더를 뿌려서 유분을 흡착시킨 뒤 붓으로 털어내어 기름기를 제거하면 된다. 날인 후에는 최소 반나절은 지나야 마르므로, 인주를 찍은 직후 바로 접거나 다른 작품을 그 위에 얹어 놓아서도 안 된다.
중국 당나라의 충신이자 서예가였던 안진경顔眞卿(709~785)의 쟁좌위문고爭坐位文稿에는 “行百里者半九十里 言 晩節末路之難也”라는 명문이 적혀있다. “백리를 가는 사람은 구십 리를 반으로 잡으니, 마지막 길이 어렵다”는 뜻이다. 세상사 모든 일을 할 때 유종의 미를 거두기란 참으로 어려운 법이다. 작품에 있어서도 마지막 낙관처리를 잘못하여, 찬란히 빛나는 성과를 그르치는 실수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글, 사진 김태완 (상해필묵 대표)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