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라는 질문은 사안의 본질에 집중케 해주는 마법의 열쇠다.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 그리고 방향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이에 월간민화는 뜻깊은 신년호 특집을 준비하며 민화작가들에게 물었다. “왜 민화를 그리시나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더 나은 작품’, ‘나다운 민화’에 대한 해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민화든, 창작민화든 민화를 그리는 많은 이들이 수작秀作을 열망한다. 이때 나보다 한 발자국이라도 앞선, 누군가의 경험담은 시행착오를 줄이고 방향을 점검해볼 수 있는 좋은 지침이 될 수 있는 법. 스스로와 치열히 대화하고 도전을 거듭하는 민화 작가 8명의 이야기를 실었다. 과거 월간민화가 신년호 특집에서 다룬 설문조사 취합 결과(2017년 1월호)에서 최근 민화를 그리는 이들의 87%가 10여년 미만임을 감안하여 시대적으로나 환경적인 측면에서 공감대의 폭을 조금이라도 더 넓히기 위해 원로 작가 및 경력 30여년에 달하는 중진을 제외하고 경력 8년차부터 20여년차의 작가들의 이야기로 구성했다. 이들의 단 한마디라도, 누군가에게는 큰 공감과 조언이 되길 바라며.

기획 및 정리 월간민화 편집팀

월간민화 독자 341명이 답하다

나에게 민화는?

월간민화가 신년을 맞이해 독자 및 SNS를 통해 단 5일간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현재 민화를 좋아하는 이들은 어떤 연유에서 민화를 좋아하는지, 민화는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등 민화에 대한 생각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성장과 발전을 위한 토대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응답자 341명의 설문 결과를 분석한 내용을 공개한다.

민화계의 과도기 앞에서

민화계 안팎에서 빠른 성장세를 실감할 만큼 민화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아직까지도 불안감이 가시지 않은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 속에서도 민화전시 및 행사는 꾸준히 이어졌으며 주요 민화 공모전에 접수되는 작품 수는 해마다 최고 기록을 경신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사실 이 같은 민화 열풍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미 수 년 전부터 ‘민화붐’은 회자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원로 민화 작가들을 포함한 많은 민화인들이 ‘민화계는 아직까지 과도기를 겪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민화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 규모만큼 질적으로도 성장했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쉽게 긍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넓게는 전통민화와 창작민화에 대한 방향성부터 작품성에 이르기까지 그 해답을 명쾌히 내리기엔 모호했던 것이다. 실제 주변을 둘러보면 전통 부문에서든 창작 부문에서든 민화를 그리는 이들이 “나다운 그림을 그리려면 어떤 부분을 노력해야 하는지”, “지금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어려움을 토로하곤 한다. 이에 월간민화는 신년호를 통해 민화를 그리는 이들의 속이야기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341명의 온라인 설문 내용과 직후 이어지는 민화에세이가 모든 이들의 이야기를 대변할 순 없지만, 더 나은 방향을 ‘함께 생각해보는’ 이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민화를 여가/힐링 활동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해

설문 참여자들의 직업 항목에서는 응답자 341명의 57.9%인 223명이 ‘민화 작가’라고 답하여 비중이 가장 높았다. 사업가, 회사원이 10.1%, 연구자 및 문화기관 종사자가 7.8%, 학생 2.9%라고 답했으며 기타가 21.3%를 차지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번 특집의 핵심 내용인 ‘민화는 귀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닙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취미, 혹은 힐링’이라고 대답한 비율이 39%(213명)로 가장 높았으며 ‘직업’이라 답한 응답자가 22.5%(123명),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마켓’으로 여긴다는 응답자가 20.7%(113명)로 그 뒤를 이었다. 앞서 설문 참여자들의 직업을 살핀 대목에선 민화 작가들이 223명이었는데, 이와 비등한 수가 민화를 ‘취미, 혹은 힐링’으로 대답한 것이다. 오히려 ‘직업’이라 답한 응답자는 ‘취미, 혹은 힐링’이라 답한 응답자의 절반에 불과했으며 나머지 절반이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마켓’이라 답했다. 전반적으로 작가로서의 직업의식보다는 민화에 대해 편안하고 즐거운 여가 및 문화라고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정황상 ‘직업’이라 답한 응답자들 또한 민화를 그리는 과정 자체를 ‘힐링’이라 여길 만큼 소중히 여기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동시에 ‘민화 작가’라 답한 응답자들이 현재 ‘직업 활동’으로 민화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이를 준비하고 있는 단계임을 시사하고 있다. 기타 답변으로는 ‘나의 잠재력 개발’, ‘내 삶의 동반자’, ‘삶에 희망을 주는 활력소’, ‘긍정적인 마인드 제공’, ‘K-아트의 마중물’ 등이 있었다.

민화의 가장 큰 매력은 ‘해학미’와 ‘전통성

‘민화의 주요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해학적이면서도 천진한 미감’이라 답한 응답자가 28.2%(198명)으로 가장 많았다. 근소한 차이로 ‘오랜 역사에서 유래한 전통성’이27.3%(192명)이 그 뒤를 이었다. 우리 민화가 지닌 친숙한 조형성과 고유의 역사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긴 것이다. 이는 민화를 발전·성장시키기 위해서 중점을 둘 지점에 대한 힌트가 되기도 한다.
민화를 ‘예쁘게, 잘’ 그리기 보다는, 옛 민화에서 쉽게 볼 수 있듯 ‘해학적이고 천진하게’ 그렸을 때 바로 그 ‘민화다움’에서, 그림 속에 깃든 우리 고유의 전통미감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길상적 의미’를 매력으로 꼽은 응답자가 24.6%(173명), ‘오방색을 기조로 한 강렬한 색감’이라 답한 응답자가 16.5%(116명)였다. 기타 답변으로는 ‘전통과 현재의 의미를 잇는 징검다리’, ‘행복’, ‘꿈’, ‘판타지’, ‘초보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접근성’ 등이 있었다.

민화사를 비롯한 인문학적 지식에 대한 수요 높아

그렇다면, 민화 작가들이 주시하는 방향은 어디일까? 추후 중점을 두고 있는 계획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의 30.3%(164명)가 ‘개인전 개최’라 답했으며 ‘민화 지도’라 답한 응답자 비율이 26.1%(141명), ‘민화 브랜드/관련 사업 론칭’이라 답한 응답자 비율은 22.4%(121명)로 집계됐다. 이 3가지 응답자의 비율 간 차이는 약 4%포인트로 크게 차이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민화 작가들이 전시, 아카데미, 사업 부문에 고루 관심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월간민화에서 가장 필요한 정보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민화사(미술사)와 관련된 인문학적, 이론적 내용’이라 답한 응답자가 36%(238명)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응답자의 다수가 민화 작가인 만큼 창작 노하우나 테크닉과 같은 실기 요소에 대한 수요가 쏠릴 것이란 예측을 비켜가는 결과였다. 물론 ‘생각한 내용을 작품으로 구현하기 위한 기술, 테크닉적 지식’이라 답한 응답자의 비율이 26.7%(177명), ‘창작노하우’라 답한 응답자의 비율이 18.7%(124명)로 낮은 수치는 아니지만, 앞서 민화의 매력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유추할 수 있듯 민화다운 매력을 살린 작품을 만들기 위해, 혹은 민화와 관련된 사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민화 본연이 지닌 특성’을 파악하고 연구하고자하는 학구열이 그보다 훨씬 높음을 알 수 있다.
신년호 특집을 마련하며 진행한 이번 온라인 설문조사는 월간민화 독자 및 SNS를 통해 단 5일간 진행되었다. 지면을 빌어 설문조사에 협조해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월간민화는 신년에도 독자들의 성장과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을 선보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을 약속드린다.

창작의 스펙트럼 무한히 확장해가는 박하경

박하경, <언제나 행복_GardenII>, 2022, 광목 위에 혼합재료, 45×45㎝

민화로 ‘행복’을 선물할게요

민화를 왜 그려요? 이런 질문에 익숙한 분들이 꽤 많을 줄 안다. 사실 민화를 그리기 전까진 나 또한 민화가 지닌 가치를 잘 알지 못했다. 화실 운영의 힘겨움과 지인의 권유로 시작한 민화는 내게 ‘반전’ 그 자체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민화는 내게 행복의 원천이 되었고, 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선사하고 싶은 소중한 꿈을 안겨주었다.

글 박하경 작가

미술 이론과 실기를 배우며 줄곧 들었던 것은 ‘민화는 타 미술과 다르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명확한 설명을 듣지는 못했다. 그런데 민화를 그리고 공부하다 보니 일반 미술 이론과 실기에서 배웠던 것들을 민화에서도 발견하게 되며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모사하면 할수록 전통 그림의 정교함과 깊이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조상님들의 솜씨에 감탄하며 매 작업을 즐거움으로 임했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았던 시절, 때때로 들었던 불안감들은 그리는 것에 대한 즐거움으로 너끈히 이겨낼 수 있었다. 동양화를 전공한 영향인지 전통민화를 그릴 때 가장 중요시 한 점은 첫째도 선, 둘째도 선이었다. 필력을 갖춘 선, 필력 있는 붓질이 전통민화를 그릴 때 남들과 구분 지을 수 있는 실력이라고 생각했다. 창작민화 작업을 시작할 때에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과 민화 도상을 접목해보고자 했다. 그렇게 일명 ‘수묵 민화’를 선보이게 되었다.
사실 첫선을 보일 때 속으론 걱정도 많았다. 그러나 창작의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한 법. 주변 선생님들께서 호평해주셔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작가로서 힘들었던 순간을 떠올려 본다면 전통민화 작업에서 창작민화 작업으로 넘어갔을 때가 아닐까 싶다. 당시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부족함을 느끼며 혼돈을 경험했다. 자신감도 떨어지고 작업하는 내내 나 자신이 자꾸 움츠러들고 있음을 느꼈고 그럴 때면 여지없이 작품을 망쳐버리곤 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결국엔 나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 나 또한 내면의 힘을 기르고자 노력했다. 주변에 계신 좋은 동료들과 선생님들과 소통하며 용기를 얻기도 했고, 무엇보다 스스로 되뇌며 끊임없이 격려하고 다독였다.
‘너무 잘하려 하지 말고 편안하게 하자. 내 그림을 그리자!’

천천히 한발씩 나아가길

창작민화 작업은 나도 여전히 어렵다. 전통민화의 도상을 그대로 가져다 쓰거나 재배치하여 구성하는 작업에서 벗어나 나만의 도상을 만들어 작업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그 고민의 밑바탕에는 ‘행복’이라는 주제가 깔려있다. 나도 행복하고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내 작품을 보고 잠시라도 따스하고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새로이 창작에 도전하는 분들이라면 본인이 잘하는 것을 먼저 찾아보고 좋아하는 것을 찾아 작품에 접목해보길 추천한다.
자신이 보태니컬 아트를 잘한다면 이를 민화에 접목해 독특한 미감을 완성해보고, 캘리그래피를 취미로 배웠다면 이를 활용해 새로운 도상으로 발전시켜보는 등의 시도들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 작품에 너무 많은 것을 표현하기보다 주제에 집중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대상을 단순화하고 다른 측면에서 사물을 관찰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화 전시 외에 다른 분야의 전시회를 다니며 반추상, 추상 등 다양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도움 될 것이다. 무엇보다 다작에만 몰두하지 말고 나의 실력향상에 맞는 단계적인 작품을 찾아 차근차근 작업해나가길 바란다. 천천히 한발, 한발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자신이 원하는 곳에 도달해 있으리라 믿는다.

박하경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졸업
개인전 6회(부스전 포함), 단체전 50여 회
명자와락우리그림 연구회 대표, 온바림 지도
제3회 창작민화장학상 수상(설촌창작민화연구회)
(사)대한민국전통예술전승원 이사
(사)한국미술협회, (사)한국민화협회,
(사)한국전통미술협회, 채연회, 예목회 회원

시대상을 담은 자유로운 작품세계 신미경

신미경,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2017, 순지에 지본채색, 205×140㎝

꿈과 마주하고 자유를 만끽하는 일

민화 작가의 길로 들어선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다. 민화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민화가 대중적이지 않아 작가들이 몇 없는 것은 물론 민화에 대한 인식도, 연구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누군가 물으면 민화에 대해 설명하는 데 긴 시간을 소요해야 했다. 어쩌면 그 과정에서 민화에 대한 나만의 철학을 정립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건 바로 자유, 그리고 꿈이다.

글 신미경 작가

대학원 졸업 후, 전시설계 회사에 근무하며 국립고궁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등 우리나라 국공립 박물관의 전시품 전시에 대한 설계를 했다. 전시 설계를 하며 많은 전시 유물을 공부할 수 있었는데, 특히 전통회화들은 항온항습과 조명 등 까다로운 부분들이 많아 더욱 많은 연구가 필요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민화와 접하게 되었고, 대학교수로 재직하게 되면서 관련 서적들을 수집했다. 이후 개인 사정으로 교직을 그만둔 후 민화 작가로 본격적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처음에는 전통 작업을 하면서도 전시할 때에는 반드시 창작 작품을 내걸었다. 세 번째 창작 작업을 할 때쯤이었나. 그땐 구상하는 데 머리를 너무 쓴 나머지 그야말로 구토가 나올 정도로 힘들었다. 그때 이후로는 ‘민화는 행복한 작업’이라는 점을 항상 기억하고자 했다. 이 가치를 잃지 않는 한 시간에 쫓길 때 이외에는 작업에 있어 힘들다고 느끼진 않는다. 하지만 간혹 민화 작업을 하며 만나게 되는 여러 관계는 종종 내게 힘듦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럴 땐 내 작업에 더욱 집중하고 몰두하는 것이 답이다.

민화는 시대성을 반영하는 그림, 변화하자!

내 작업의 철학은 상상 속 ‘자유’와 ‘꿈’이다. 그것이 민화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자 내가 민화를 그리는 이유다. 민화의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민화는 그 어떠한 이야기도 포용한다. 다만, 그 작업은 모든 이들에게 선한 영향을 주어야 한다는 근원적인 생각이 동반되어야 한다.
작품에는 역사, 취미, 영화 등 상황과 주제에 맞는 서사를 만들어 담아낸다. 지금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가 고민하며 화폭을 채워간다. 민화는 시대성을 반영하는 그림이다. 시대가 변하는 만큼 자신의 작업도 변화하는 노력이 항상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자신만의 작업을 이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 작가”라고 스스로 한정 짓는 분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자신만의 시그니처 작업이 있다는 것은 물론 좋지만 ‘확장성’ 부분에서는 어쩌면 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 때도 있다. 변화하는 데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면 좋겠다. 설령 그것이 진화가 아닌 일시적인 퇴화일지라도 변화해야 다시 도약도 할 수 있는 법이니 말이다.
민화가 붐을 이루며 정말 많은 작가분들이 좋은 그림들을 그리고 있다. 새로운 작가들이 많이 생겨나는 만큼 사라지는 작가들도 많다. 그 가운데에서 중심을 잡고 끈질기게 자신의 작업을 이어나가길 바란다.
다른 이의 시선에 신경 쓰지 말고 나의 작업을 변화시키려는 데 온 마음과 정성을 쏟길 바라는 마음이다.

Tip.
1.작업에 있어 끊임없이 확장하고 변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길.
(사진은 하남 스타필드에 전시된 민화로 완성한 미디어아트.)
2.“우리 모두는 아직, 미생이다.” 윤태호, 《미생》이 힘이 되는 순간이 있을 것!

신미경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학사, 석사, 박사 수료)
2017 김삿갓 문화제 전국 민화 공모전 대상
2022 Blooming and 回福 [한국미술재단 아트버스 카프 공모작가 개인전]
2021 민화랑 놀자 !! [하남문화재단&하남스타필드 초대 개인전]
2020 Magic on dream [이정아 갤러리 초대 개인전]
2020 Blooming and 休 [갤러리 엘르 초대 개인전]

민화로 동시대의 이야기 담아내는 뉴요커 안성민

안성민, , 2022, 커팅 비닐, 벽 설치 작업, 201×945㎝

내 작품의 주체는 민화가 아니다

작품 속 모든 이야기는 ‘나’로부터 시작된다. 보고, 듣고, 아파하고, 고민하는 삶의 모든 과정이 작품에 녹아있다. 이러한 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택한 문화적 아이콘이 바로 민화다.

글 안성민 작가

서울을 떠나 뉴욕에 정착한지가 20년이 넘었다.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융합되어 있는 뉴욕에서 생존경쟁을 벌이며 얻은 것 중 가장 큰 것이 있다면 ‘생소한 것들을 하나씩 포용하면서 나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법’이었다. 그러한 과정은 마치 그림일기처럼 고스란히 작품의 컨택스트가 되었다. 그림 저변에 깔린 융합과 공존, 다시 점 등의 본질적인 메세지는 내가 400개의 언어를 말하는 뉴요커들과 더불어 사는 방법이다. 때문에 나의 그림에는 서로 상반되는 요소들이 상충되지 않고 상호 보완하면서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작품의 주체는 항상 ‘나’이다. 모든 이야기는 ‘나’로부터 시작된다. 지금 살면서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아파하고,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 숨 쉬듯이 작업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내 작업은 정체되지 않고 늘 변화한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다른 관심을 갖고 있으며, 다른 문제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민화는 이러한 내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차용해오는 상징적이고 문화적인 아이콘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디저트 부케 시리즈에는 아이와 함께 즐기던 달달한 시간이 반영되어 있고, 총 시리즈는 가정폭력과 인권, 미국의 총기현실 등을 바라보는 시각이, 최근의 문자도 <날아오르다:RISE UP> 설치작업에는 나 자신과 아이에게 절실하게 해주고 싶은 말이 담겨있다.

작업할 때 가장 집중한 것은 ‘이야기’

대학과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미국에서 두 번째 대학원을 다니면서 현대미술을 공부하였다. 그 이후 십여 년간은 개념적이고 미니멀적인 설치작업과 종이 드로잉 작업을 했는데, 민화를 모티브로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나의 배경은 종종 드러난다.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1주년 기념전 <정원전>에 출품했던 모란부케 족자설치 작업인 <상처, 기억 그리고 승화>, 2019년 스탄 갤러리에서의 그림설치 작업, Voyage와 시트지를 이용한 문자도 대형 설치작업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파리 한국문화원에서 개최한 책거리 전시와 충무아트홀의 보따리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은 책가도를 미니멀적으로 해석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는 책장안의 책들이 무료할 만큼 반복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것이 내가 책가도에서 발견하고 과장시킨 아름다움의 한 부분이다.
민화계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개성을 이룬다는 것은 모든 예술가에게 본질적인 숙제이다. 나는 특별히 내 개성을 찾고자 의식적으로 노력한 기억이 없다. 어쩌면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뉴욕에서 한국화 작업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미 충분히 달랐으니까. 오히려 집중한 부분은 ‘이야기’이다. 작품을 통해 어떤 대화를 하고 싶은지, 어떤 메세지를 전하고, 어떤 화두를 제시하고 싶은지, 이러한 ‘나의 이야기’를 시각 언어를 이용해서 표현한 것이 미술 작품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소재를 찾지 않았고, 하고 싶은 말을 그림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우리 모두는 같은 민화를 바라보지만, 세상에 ‘나’는 오로지 하나이다. 민화는 내가 한없이 사랑하는 장르이지만, 그림의 주체는 아니다.

안성민
서울대학교 동양화과 및 동 대학원 졸업
Maryland Institute College of Art 대학원 졸업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전 <정원전>, <생의 찬미> 참여
뉴욕 한국 문화원 개인전 등 25회
Pollock Krasner Foundation Grant 2회 수상,
CUE Foundation 작가상 등 다수의 상 수상
Queens College, Maryland Institute College of Art 출강
작품소장: 국립 현대 미술관, Princeton 대학교 미술관,
Space C 코리아나 화장박물관 Hudson River Museum 외 다수

메시지부터 작품성까지 고루 갖춘 윤경주

윤경주, <바람이 되어(백사여의)>, 2021, 순지 위에 금분, 수간채색, 190×128㎝

이 시대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응원

민화는 복된 기운인 수복강녕壽福康寧, 백사여의百事如意를 담은 그림이다.
내가 민화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그 안에 담긴 소망과 염원 때문이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붓을 들기에 충분했다.

글 윤경주 작가

2005년 민화에 입문하면서 문화센터에서 배우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선생님 없이 혼자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미술관과 박물관, 도서관을 찾아다니며 서적들을 통해 민화 속 도상과 이야기를 분석하고 체화하며 부족한 지식을 채워갔다. 홀로 작업하다 보니 막막할 때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직접 부딪혀가며 알아가야 했기에 시간 소모가 많았다. 그렇게 스스로 격려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채찍질하며 작업해야 하다 보니 남들보다 방향을 찾는 데도 오래 걸렸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는 단체전과 소품 개인전에 열심히 참여하면서도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가 대부분이었다. 나의 역량을 의심하고 방향성을 고민하며 방황하다 건강까지 악화되어 붓을 내려놓을까 고민도 했다.
그러나 점점 쌓여가는 ‘내 새끼’ 같은 그림들을 두고 붓을 내려놓기 쉽지 않았다. 치료를 받는 약 7개월 동안 전시 관람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보냈다. 근사하게 그려진 전통 군호도와 창작작품을 보며 다시금 창작에 대한 마음을 다잡게 되었고, 열린 시야로 더 넓은 작품 세계로 나가자 결심하게 되었다. 그렇게 참가한 2015 아트코리아 아트페어에서 좋은 동료 작가들과 관람객들의 진심 어린 격려와 응원을 듣게 되었고,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민화아트페어에 참여하면서 응원을 아낌없이 표현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자신감을 얻어 작업을 쭉 이어갈 수 있었다. 그야말로 지름길이 아닌 멀리 돌아오는 길을 택했던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모든 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때로 불안함이 불쑥 찾아올 때면 작업에 더욱 집중하려 했다. 홀로 작업하기에 언제든 나태해질 수 있음을 항상 경계하면서 성실히 작업에 임했다. 방향성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나만의 색을 담은 창작민화를 그리는 작가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불안함을 동력 삼아 꾸준히 작업을 이어왔기 때문이라 자부한다.

민화로 응원 전하는 ‘메신저’

전통민화 작업에서 창작민화 작업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여러 고민이 있었다. 깊은 고민 중에 민화 속 다양한 물상들이 새로운 작업의 주제로 보였고 특히 책거리와 문자도에 시선을 두게 되었다. 글자를 직접 레터링하고 사물을 겹치거나 문양을 그래픽적인 패턴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나만의 개성을 담았고 메시지 또한 드러낼 수 있었다. 나만의 스토리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이라면 화목별로 차근차근 깊이 공부해보고 그 안의 사물들을 오늘날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나는 화폭에 바람과 소원을 담는다. 저마다의 바람을 잃고, 혹은 잊고 현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들만의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격려한다. 간절한 염원과 소망이 널리 부는 바람을 타고 그림을 보는 모든 이들에게 가닿길 바라는 마음이다. 꽃잎일지, 나뭇잎일지 모를 그림 속 문양이 끝없이 날아오르는 모습은 세상 사람들이 부단히 노력하는 자세이자 꿈을 찾아가는 여정이며 그 목표를 이루어내는 과정 그 자체이다. 간절한 바람과멎 지 않는 바람, 두 가지의 의미가 우리의 가족은 물론이고 주변 모든 이들에게 격려로 가닿길 바라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힘찬 응원으로 전해지길 바란다.
때론 힘들고 답답할지라도 이 시간마저 소중한 ‘창작의 과정’이라 생각해보면 어떨까? 그 끝엔 찬란히 빛나는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테다.
무엇보다 남들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만의 그림을 믿고 쭉 그려나갈 수 있는 건강한 작가가 될 수 있기를 열렬히 응원한다.

윤경주
2022 IAAS 인천아시아아트쇼 부스 개인전,
AFID 아트페어 대구, PLAS 조형아트서울(Coex)
창작민화 중견작가 10人 초대전(겸재정선미술관)
한국 미술의 중심 초대전(갤러리 보아)
2021 바람이 되어 – 백사여의 윤경주 개인전(갤러리 이즈)
프랑스 파리 한국 문화원&스페인마드리드 한국 문화원
프랑스 낭트 한국의 봄 책거리전
2020 경기도박물관 특별전 경기별곡: 민화, 경기를 노래하다(경기도박물관)
2015 2016 서울 Art Korea & Korea Art New Wave 부스 개인전(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전통민화의 새로운 저력 선보이는 이선구

이선구, <태평성시도> 8폭 중 2폭, 2008, 종이에 분채, 석채, 봉채, 168×70㎝

민화는 내 영혼의 오아시스

민화는 내 존재감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주었고, 까맣게 잊고 있던 꿈을 일깨워주었다.
때론 힘들 때도 있지만, 그리는 과정 자체가 기쁨이요 행복이기에 나는 오늘도 민화를 그린다.

글 이선구 작가

나를 찾고 싶었다. 결혼 후 직장과 가정에 얽매인 나머지 스스로의 존재감조차 잃어가던 어느 날, 신문 귀퉁이에 자그맣게 실린 민화수업 기사를 접했다. 그길로 수업이 열리는 을지서적으로 달려가 윤인수 선생님으로부터 민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때가 40대 초. 민화를 그리면 그릴수록 그림 속 이야기와 아름다움에 매료되었고, 그림쟁이가 되어가는 시간이 행복했다.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리고픈 바람이 컸기에 나다운 삶에 대한 갈증 속에서 만난 민화는 그야말로 오아시스였다. 일하랴, 가족들 뒷바라지하랴 시간을 쪼개어 민화를 그리는 것은 녹록치 않았지만 오랜 시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느꼈던 결핍감은 되려 열정의 불쏘시개로 탈바꿈됐다. 민화를 그리는 시간은 행복했지만, 민화를 본그림이라며 폄하하는 시선에 새로운 오기가 생겼다. <태평성시도>에 도전한 것도 그 이유에서다. 사전에 아무런 지식도 없었기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펴낸 풍속화 책을 보고, 열심히 박물관을 오가며 공부했다. 스케치에 들어가면서 박물관 학예사님께 도움을 청했더니 흔쾌히 성시도 논문 자료를 보내주셨다. 재표구하며 없어진 부분도 그려 넣고, 어릴 적 기억 속에 남아있던 풍속도를 떠올리며 초본을 그리고, 또 그렸다. 어깨가 나갈 정도로 실패를 수없이 거듭했지만, 도전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그림 곳곳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보다보면 어느새 나 또한 그림 속 소재가 된 것만 같았다. 낮에는 일하고, 늦은 밤까지 고단한 줄 모르고 작업하던 그 시간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행복이었다. 정말 최선을 다했다. 그 작품으로 2008년 제1회 (사)한국민화협회 전국민화공모전 대상에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기쁘던지! 이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민화를 그리는 이유는 민화를 진심으로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힘들 때도 있지만 민화와 함께 하는 순간만큼은 행복하기에 꾸준히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 성시도를 연구 중이라고 하시는 모 교수님이 공방을 들르셨기에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그 분을 만나고 나니 태평성시도에 다시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미처 챙기지 못한 부분도 1~2군데 있고. 언젠가 원본보다 뛰어난 재현작을 그리는 것이 나의 꿈이다.

민화로 세대 간 가교역할 하고파

돌이켜보면, 아주 어릴 적에 민화를 처음 만났다. 해마다 늦가을이 되면 아버님은 집을 도배하시며 예쁜 그림들을 벽장문에 붙이시곤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화조도였던 것 같다. 그즈음 동네 다른 집의 벽장 등에도 민화가 붙어있었다. 그때는 그 그림들이 민화라는 것을 몰랐다. 아마 요즘 젊은 사람들은 체험하지 못한 풍경일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자양분 삼아 현 세대와 전 세대를 민화로 잇는 것이 우리 세대의 민화작가들이 할 일이 아닐까. 옛 그림을 재조명하고 문화적 전통을 되살려 후세가 오래도록 즐길 수 있는 그림을 전달해주고 싶다. 요즘 민화가 대세라 한다. 각박한 시대지만, 사람들이 그림 한 점 속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여유를 가지면 좋겠다. 집집에 복 이야기가 담뿍 깃든 민화가 한 점씩 걸리는 날을 소망한다. 앞으로도 나이를 생각하지 않고 꿈을 향해 마음껏 달려볼 생각이다.

이선구
(사)한국미술협회 이사 및 운영위원 역임
서원대 평생교육원 민화반 지도교수 역임
(사)한국미술협회 대한민국미술대전
대한민국민화대전 외 다수 공모전 심사위원 역임
(사)한국민화협회 회원 및 초대작가
공방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내수입리길 15번길 17-2

전통에서 창작으로, 작품세계 꾸준히 쇄신해온 정학진

정학진, <반가사유상과 어흥이> (좌), <촛대와 은주자> (우), 2022, 비단에 진채, 150×60㎝

민화로 인생을 배우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인내하고, 노력하는 동안 무릇 삶도 이러해야함을 배웠다. 그림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삶을 위해서는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

글 정학진 작가

여기까지 올 줄은 정말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림 그리는 순간이 좋아서 하루하루 그렸을 뿐인데 많은 분들께서 작품을 칭찬해주고, 나를 알아봐주신다. 지금의 사랑만으로도 과분하기에 더 인정받고픈 욕심도 없다. 일하랴, 작업하랴 한창 바쁠 때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모두 멈추고 소품만 슬슬 그려볼까 했는데, 그게 안 된다. 작업을 멈출 수가 없다.
민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화접도 부채를 선물 받으면서부터다. 부채 속 그림이 너무 고와 나도 그려 보고 싶은 마음에 수소문하여 2008년부터 홍익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송규태 선생님을 만나 9년 간 사사했다. 전통민화를 그리는 것도 즐거웠지만 경력 7년차에 접어들 때 즈음 나만의 작품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침 모란괴석도 병풍을 그리며 투박한 조형미와 단단함을 가진 괴석에 매료된 터라 2017년 첫 개인전을 개최할 때 괴석을 테마로 한 작품들을 선보였는데, 반응이 좋았다. 괴석을 모티프로 창작한 <심원의 정원>으로는 2019년 갤러리한옥 불화·민화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괴석만으로는 창작 범위가 한정적인 것 같아 고민하던 중 정해진 진채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창작 특강을 듣게 되었다. 수업을 진행하시던 김정현 선생님께선 ‘창작 작업하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안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하셨다. 그러고 보니 평소 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저 나날이 바쁘게 지낼 뿐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건 무엇인가. 주변을 둘러보니 여행 중에 틈틈이 수집해온 작은 인형, 로얄 코펜하겐 도자기 세트, 소반 및 고가구 등이 보였다. 키가 커서인지, 내 이미지와 반대되는 동글동글하면서도 작고 귀여운 물건들을 볼 때면 절로 마음이 끌렸다. 내 취향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아, 기물들이 내 취향, 내 모습이구나. 기물로 자화상을 그려보자.’ 새로운 작업 포인트를 잡게 된 것이다. 2020년 세 번째 개인전을 개최할 당시는 무작정 날짜를 잡아놓고 전시를 여는 판국이었다. 취향과 추억이 담긴 애장품들을 책거리처럼 쌓아올려 기물 시리즈를 그리기 시작했고, 빠듯한 일정 속에서 그야말로 초인적인 힘을 내어 3번째 개인전을 치르고 나자 몸과 마음이 탈진되는 듯 했다. 쉬면 편할 줄 알았는데, 편한 건 잠깐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이미 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 이제는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오래도록 나아가자’ 마음먹으니 한결 편안해졌다.

민화는 둘도 없는 친구이자 스승

민화를 만나기 이전까지 어딘가에 전력을 다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정말이지 대학입시를 준비할 때만 해도 민화를 그릴 때만큼 열심히 공부하진 않았다. 크나큰 병풍을 그리며 기초를 배우고, 인내하고, 마감 시간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더 나은 작품을 그리기 위해 연구를 거듭하는 동안 철이 든 것 같다. 그림과 마찬가지로 내 삶을 더욱 아름답게 꾸려가기 위해서는 계획하고, 노력하며, 책임지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민화는 나의 둘도 없는 친구이자 스승인 셈이다. 물론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경지이지만, 누군가의 ‘가슴을 울리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진심을 담아 혼을 싣는다면 선 하나로도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잘 그린 그림보다 좋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작가로서의 보람이자 작품을 보는 분들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정학진
2022 갤러리 그림손 기획전 <전통의 재해석>
2022 진채연구소 세화전
2020 개인전 <기물여행>
2019 갤러리 한옥 불화·민화 공모전 대상 수상기념 초대전
2018 핑크갤러리 초대전
2017 개인전 <괴석, 그리고 꽃>

싱가포르에서 한국 민화 활짝 피워내는 함민숙

함민숙, <영모책가도> 6폭 중 2폭, 2020, 한지에 수간분채, 먹, 봉채, 금분, 각 90×46㎝

나만의 속도로 꾸준하고 성실하게

8여 년 전, 싱가포르에서 민화를 시작했다. 인근 국가에서 매주 비행기를 타고 오시는 선생님께 전통민화를 배웠다. 별안간 선생님 건강에 문제가 생겨 약 1년간 홀로 작업하게 되면서 답답한 시기를 보내야 했다. 하지만 돌아와 생각 보면 그 시간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뜨거운 열정을 불태우게 해준 것 같다.

글 함민숙 작가

나에겐 늘 배움에 대한 절실함이 있었다. 민화에 대한 열정 하나로 무작정 싱가포르에서 한국으로 날아가 민화를 배우고 돌아오던 날들도 있었다. 홀로 작업하던 1여 년의 시간동안 혼자 깨지고 부딪히며 그야말로 ‘흑역사’ 꾸러미를 한 움큼 만든 듯하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내 열정의 온도와 같은 온도를 지닌 사람들이 내 곁에 있었다. 그들과 뜻을 모아 혼자 외로이 걸어가던 길을 함께 걸어가게 되었다. 민화를 배울 당시 함께 수업을 들었던 8인의 작가가 2016년, 서로를 격려하고 민화를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는 일을 해보자는 취지로 싱가포르민화협회(이하 SAMA)를 창립했다.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며 격년으로 정기전을 개최했다. 전시를 준비하며 작가들은 저마다 작품을 발전시킬 수 있었고, 지쳐 포기하고 싶을 때면 스스로 다잡고 다시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팬데믹으로 집합, 인원 제한이 있었던 시기는 누구에게나 그랬듯 SAMA에게도 참 힘든 시기였다. 대면 수업에도 차질이 생기고, 전시를 위한 단체 작품 준비에도 큰 어려움이 있어 불안함이 많았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에서도 민화에 대한 열정은 꺾이지 않았다. SAMA는 민화 이론뿐 아니라 실기까지 온라인을 통한 비대면 수업을 진행하기 시작했고,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수업에 대해 적극적으로 피드백하며 소통했다. 앞으로도 이러한 방식을 적절히 활용해보려 한다.

일만 시간의 법칙을 기억하길

자신만의 개성을 담은 민화를 그리고 싶은 것은 작가 모두의 열망이 아닐까 싶다. 나 또한 이를 위해 여러 노력을 해왔다. 전통민화만큼 창작민화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게 참 쉽지 않았다. 작품세계를 견고히 하기 위해 다양한 민화 서적을 보는 것은 물론이고 민화 이론 강의를 들으며 창작민화에 대한 나만의 신념을 정립할 수 있었다. 나의 개성을 담은 민화, 나만의 창작민화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민화가 무엇인지 깊이 이해해야 한다. 민화를 정의하는 여러 요소 중 나는 어떤 점을 부각할 것인지를 생각해보고, 내가 생각하는 민화의 개념을 확실히 정립하는 것이 작품을 구상할 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민화의 이론 및 실기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끝으로 다양하고 많은 작품을 성실하고 꾸준히 그려야만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재현작품에 대해 ‘따라 그린 그림’이라며 깎아내리는 이들도 있다.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를 생각해보자. 바이엘부터 체르니를 거쳐 모차르트, 쇼팽, 바하 등 클래식 작곡가의 곡을 연주하게 된다. 어느 피아니스트가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연주한 것을 보고 우린 ‘라흐마니노프를 따라했다’고 하지 않는다.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연주했다’고 표현한다. 어느 피아니스트냐에 따라 연주의 스타일은 달라질 것이다. 민화도 마찬가지다.
작가들은 재현할 때 원화와 비교하며 저마다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고민하고 작업에 임한다. 작가들이 같은 원화를 두고 그려도 모두 다른 미감의 작품이 탄생하는 이유다.
‘일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게 있듯 저마다 속도는 다르지만 일만 시간만큼의 억겁의 시간을 노력으로 보낸다면 그 끝에 눈에 띄게 발전하고 성장한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저마다의 속도로 민화가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멈추지 말고 꾸준히 이어나가시길 응원한다.

함민숙
싱가포르 민화협회(SAMA) 회장(2021-2022)
(사)한국민화협회 추천작가
2021 제10회 (사)한국전통민화협회 전국공모전 장려상 수상
2021 제24회 김삿갓문화제 전국민화 공모전 특선 수상
2020 제13회 대한민국민화공모대전 장려상 수상
2019 제12회 대한민국민화공모대전 장려상 수상

‘전통의 고급화’ 선도하는 홍경희

홍경희, <호피장막책거리도>, 2014, 순지에 도토리 염색, 분채, 진금, 가금, 경면주사, 11 4×87㎝

나는 오늘도 자란다

민화를 만난 그 순간이야말로 인생의 전환점이 아닐까. 즐겁게 그리다보니 여기에 이르렀다.
아직도 그리지 못한 그림이 많아 설레고, 가르치는 동안 오히려 배우게 돼 감사할 따름이다.

글 홍경희 작가

‘수입포장지는 만 원인데, 왜 한국전통포장지는 500원인 걸까?’ 2003년 전문대학 강사로서 패키지디자인에 대한 강의를 준비하는 동안 의문이 들었다. 문득 한국적이고 전통적인 문화상품을 고급화시켜보고 싶다는 열망이 들었다. 그러려면 상품의 핵심이 되는 콘텐츠 즉, ‘우리 그림’이 필요했다. 당시에 민화가 무엇인지도 정확히 몰랐지만 무작정 이화여대 색채디자인연구소 전통채색화인증 과정에 등록하고 정성옥 선생님을 사사하며 민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림의 상징성이나 역사적인 배경을 생각하지도 못한 나머지 본그림에 대한 딜레마에 빠져 힘든 적도 있었다. 하지만 본이야말로 민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며 원화를 놓고 자세히 연구하면서 초본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민화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우치고 나니 작업이 즐거워졌다. 그렇게 실력을 차근히 쌓아가던 중, 이화여대와 현대백화점 MOU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현대백화점 본점 문화센터 궁중민화인증과정에서 강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2011년에는 문화센터 회원들과 처음으로 회원전을 열게 되었는데, 그때 전시에 참여하신 7분의 의견을 모아 전시명을 ‘민화원(민畵원)’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이듬해 ‘새아민화’라는 이름으로 개인작업실을 열었으며 2014년 수강생들의 의견을 반영해 작업실 명칭을 ‘새아궁중 민화연구소’로 바꾸었다. 첫 회원전을 연 게 엊그제 같은데 문화센터 수강생들과 연구소 회원들과 함께 여는 회원전도 올해로 벌써 9번째에 접어들었다. 감사하게도 민화를 그리며 만난 많은 분들이 살뜰히 챙겨주시고 함께 고민해주시며 도와주신다. 복이 가득한 민화를 그리다보니 복을 받은 게 아닐까?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제자들에게 좋은 것을 하나라도 더 가르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적어도 하루는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옛 그림을 연구하거나 안료 및 염색 기법 등을 탐구하며 실험을 거듭한다

발전하는 민화계 모습 보며 자부심 느껴

회원들과 민화원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평소 관심이 많던 민화상품 쪽과 관련해서도 여러 시도를 하게 되었다. 의상학과 교수, 전문 디자이너 등 각 분야에서 전문가로 활동하는 회원들의 남다른 감각에 힘입어 민화 업사이클링 가방, 한지매트, 민화 복주머니 등 차별화된 민화 상품을 제작했다. 이렇게 제작된 상품들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2021 공예트렌드 페어>, 월간민화와 (사)한국민화협회가 주최한 <2022 대한민국민화아트페어> 등 굵직한 페어에서 완판되다시피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모두 제자들이 한마음으로 도와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2022년에는 여러 행사 및 전시를 치르느라 유난히 바빴던 것 같다. 특히 가장 기뻤던 일 중 하나는 한국공예문화디자인진흥원에서 진행한 <전통가온 리더 과정> 수강 대상자에 선정된 것이다. 전통문화 분야의 여러 전문가를 대상으로 재교육을 실시하는 프로그램인데, 민화 작가가 해당 프로그램에 선정된 것이 뜻깊다고 생각한다. 우리 공예나 회화에 빈번히 등장하는 민화가 더 이상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서 하나의 장르로 번듯하게 인정받은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최근 주변을 둘러보면 민화가 다양한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는 듯해 민화를 그리는 사람으로서 크나큰 자부심을 갖는다. 민화와 함께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자란다.

홍경희
새아궁중민화연구소 대표
민화원 대표
(사)한국민화협회 서울북부지부장
(사)우리문화예술진흥회 이사
한국공예문화디자인진흥원 전통가온 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