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의 세계화’ 향해 질주하는 미술사학자 정병모
– “모두가 깜짝 놀랄 만큼 성장한 오늘의 민화를 보라”

우리 민화의 학문적 연구와 올바른 위상의 확립을 위해 애쓰고 있는 학자들 중에서도 경주대학교 문화재학과 정병모 교수는 단연 돋보이는 인물이다. 그는 학문을 통한 연구활동 뿐만 아니라 민화의 대중화와 현대 민화화단의 위상 제고, 더 나아가 ‘민화의 세계화’를 위해 늘 분주한 학자이다.
요즘 그를 지배하는 화두는 단연 민화의 세계화이다. 오랜만에 그를 초대해 민화의 세계화를 향한 비전과 계획을 듣는다.


모두 알다시피 정병모 경주대 문화재학과 교수는 민화계를 대표하는 미술사학자이자 스타급 이론가이다. 그의 활동 영역은 진작부터 학문연구의 테두리를 넘어 민화의 세계화를 위한 의미 있는 전시기획으로까지 향했다. 그러다 보니 요즘에는 민화 전시기획자로도 손꼽힐 정도가 되었다.
2016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조선 궁중화민화 걸작 문자도文字圖·책거리冊巨里>전과 그 뒤를 이어 미국 스토니브룩 뉴욕 주립대 찰스왕 B센터, 캔자스대학교 스펜서 미술관, 클리블랜드에서 개최한 해외 책거리 순회전, 그리고 지난해 7월 현대화랑에서 열린 <민화, 현대를 만나다: 조선시대 꽃그림> 등 굵직한 민화 전시 등이 모두 그가 기획하거나 기획을 도맡다시피 한 전시회다 이들 전시회는 민화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에도 신선한 충격을 준 의미있는 전시회였다.
학자인 그가 이렇듯 전시기획자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게 된 동기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무엇보다 이 모두가 그가 진작부터 품어온 ‘민화의 세계화’라는 비전을 실현하는 한 걸음, 한 걸음이기 때문이다. 민화의 세계화를 향한 그의 발걸음은 여전히 쉼이 없다.
그런 그가 최근 월간<민화>와 함께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현대의 작가들에 의해 창조되는 현대 민화의 성과를 정리, 점검하고 앞으로의 비전을 설계한다는 취지로 마련된 ‘민화 Today’ 시리즈가 그것이다. 제목 그대로 ‘오늘의 민화’가 어디까지 왔는지, 현대 민화의 현 주소를 한 눈에 확인하는 전시회이다.
이 특별한 전시 시리즈는 정병모 교수가 기획을 맡고 월간 <민화>가 주최를 맡아 행사 전반을 주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7월 3일부터 동덕아트갤러리에서 열리는 <책거리Today>는 민화투데이 시리즈의 첫 번째 순서로 25명의 현대 작가들이 참여 작가의 개성이 살아 숨쉬는 다양한 책거리 그림의 현 주소를 보여준다.
7월 3일 전시를 앞두고 행사 준비에 한창인 지난 6월 하순, 정병모 교수를 만나 근황과 함께 민화의 세계화를 향한 그의 노력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교수님을 지면에 모시는 것은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예, 지금은 아시다시피 월간<민화>가 주회하는 <책거리 Today>의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런 스타일의 전시회를 구상한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는데, 마침 월간 <민화>가 적극적으로 행사를 주관하겠다고 나서고, 동덕아트갤러리가 후원해 주셔서 극적으로 전시회가 성사되었습니다. 전시장 사정으로 좀 급하게 추진하는 바람에 준비기간이 짧은 것이 걱정되긴 합니다만, 그래도 비교적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 기획전을 구상하신 배경과 첫 주제를
책거리로 택한 이유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지요.

최근 들어 우리 민화화단은 외형도 급속도로 커졌지만, 그 지형에도 일정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초창기에는 팝아트계에서 민화를 소재로 삼은 작가들이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면 최근에는 미술을 전공한 작가들이 민화계에 대거 유입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작가들이 민화에 잘 적응해 실력이 무르익어가면서 작품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매우 높아졌습니다.
‘민화 Today’는 이같이 양적은 물론 질적으로도 크게 성장한 현대 민화의 현주소를 정확히 알려 민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데 그 일차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아직도 현대 민화를 모사나 짜깁기라고 수준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건 정말로 현대 민화가 어디까지 왔는지 현재의 수준을 모르고 하는 소리거든요.
이런 목적으로 앞으로 전시는 민화의 화목별로 차례로 진행해 나갈 예정인데 책거리를 시작으로 예컨대 모란도, 화조화, 문자도, 십장생, 인물화 등으로 계속 이어질 예정입니다.
첫 전시 주제로 책거리를 택한 이유는 미술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위해서입니다. 조자용 선생은 까치호랑이의 뛰어난 예술성을 조명해 88올림픽의 마스코트인 호돌이가 탄생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듯 저는 책거리를 세계무대에 선보이고자 합니다. 2016년 예술의전당에서 개최한 <조선 궁중화민화 걸작 문자도文字圖·책거리冊巨里>전과 뒤이어 같은 내용으로 진행한 미국 순회전에서 확인한 뜨거운 반응을 보며 저는 책거리의 가능성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외국 박물관에서도 책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해요. 딜러를 통해 들은 소식에 의하면 올해 초 호주 국립박물관인 내셔널 갤러리 오브 빅토리아에서 책거리를 구입했다고 합니다. 국내외적으로 책거리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이죠.

이 전시회 말고도 더 크고 중요한 스케줄이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물론이지요. 내년에만 해외 전시가 4건이 예정돼있어 이미 관련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순차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우선 3월 경 미국 클리블랜드 미술관에서 개최되는 자수전을 도와주고 있고, 7월부터 10월까지 독일 마이센 국립도자원에서 우리나라 분청사기전이 개최되는데, 이 전시와 동시에 개최되는 책거리전의 큐레이팅을 제가 맡았습니다. 또 8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일본민예관과 아사히신문사가 주관하는 2020도쿄올림픽 개최기념 민화전이 일본에서 열릴 예정이고, 8월 말에는 남미 칠레에서도 민화전시가 예정돼 있습니다. 최근 들어 외국에서 민화전시 의뢰가 많이 들어옵니다. 세계적으로 민화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음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의 전시 경험으로 보았을 때
흥행을 좌우하는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전시는 특정 테마나 이슈가 있어야 합니다. 개인전을 하더라도 나름대로 모티브를 정하는 것이 좋죠. 단순히 ‘누구누구 개인전’이란 이름으로 온갖 작품을 전시하면 약력 한 줄밖에 남지 않아요. 전시를 기획할 때 혼자서만 생각하지 말고, 이론가와 함께 아이디어를 모아 주제를 잡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작업을 해야 전시의 질이 높아지고 흥행할 수 있어요.
또한 중요한 것이 홍보인데 대부분 홍보력이 약합니다. 최소한 SNS를 하든지 홍보 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죠. 아무리 좋은 전시라도 사람들이 알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 아닌가요. 전시장도 방문객의 접근성이 좋은 곳을 알아봐야겠죠.
작가들이 이러한 노력을 지속해야 화랑이 민화계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민화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민화작가와 연계된 화랑이 없다는 거예요. 민화작가와 컬렉터를 연결하는 유통 시스템이 없다는 겁니다. 화랑의 주인들이 작품을 구매할 컬렉터를 부르기 때문에 화랑과 친분을 쌓아두면 도움이 됩니다. 전시할 때 행사만 치를 것이 아니라 화랑대표와 좋은 관계를 맺어두라는 거죠. 이러한 맥락에서 민화아트페어도 주최측이 화랑의 참여를 유도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민화아트페어가 우리만의 잔치로 끝나선 안 되니까요. 우리 민화계가 얼핏 보면 서울 중심부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것 같지만, 항상 같은 전시관에서 비슷한 전시를 열며 제한된 행보를 보이는 게 아쉽습니다.

민화붐은 한국에만 있는 현상인가요?

국내에서 20만명 가까운 인원이 민화를 그립니다. 비율로 따져보면 200명 중에 한 명이 민화를 그린다는 건데 이는 세계적으로 주목할 만한 현상입니다. 조선시대 규방문화에서 알 수 있는 우리나라 여성들의 탁월한 예술적 감각이 오늘날 민화로 꽃피고 있는 것이지요. 여기에는 가정을 위해 전업주부를 택한 고학력 여성들의 높은 성취욕구가 취미와 연결된 사회적 배경과 연관된 것 같습니다.
이와 비슷한 현상이 중국에서도 감지되는데 최근 공필화 붐이 일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아시아에서 그림 그리기 열풍이 일어나는 것은 미술의 대중화라는 측면에서 주목해야 할 현상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이러한 현상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해보려 합니다. 윌리엄 모리스, 존 러스킨, 야나기 무네요시 등 많은 이론가들이 왕이나 귀족 소수만 미술을 누릴 것이 아니라 누구나 즐기는 그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오랫동안 주장해왔는데, 민화붐의 경우 이론가가 아닌 일반인에 의해 미술의 대중화가 실현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릅니다.
국가차원에서도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저는 국립 민화박물관보다 국립 민화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민화 관련 디자인, 패션, 문화상품을 만들 수 있는 종합적인 연구 기관이 필요하다는 거죠. 독일에 위치한 마이센 도자원에 방문했을 때 이거다 싶어 무릎을 쳤습니다. 그곳에는 도자기와 관련된 아울렛, 연구원, 실습장 등 도자기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있었죠. 우리도 옛민화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현대적으로 민화를 그리고 만들고 판매하며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요즘 민화계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민화의 현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민화든 다른 어떠한 미술이든 살아남으려면 현대인의 취향에 맞아야 해요. 민화가 조선시대 그림이라고 해서 거기에 머물러버리면 요즘 사람들이 구매할 수 없다는 거죠. 그리기만 하고 팔지 못하면 민화의 인기도 사그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동시대인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감성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다양한 아트페어나 전시를 보며 공부할 필요가 있어요. 일례로 민화를 그릴 때 오래된 느낌이 나도록 바탕색을 어둡게 칠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작품을 사려면 차라리 옛민화를 사지 새로 그린 민화를 사겠습니까? 모사든 창작이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작가들에게 조언해드릴 내용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그건 정답이 없습니다. 다양한 방안이 있겠으나 이론가가 한쪽 방향을 이야기하면 의도치 않게 쏠림 현상이 생겨 폐해를 일으킬 수도 있으므로 충고하기도 조심스럽습니다. 참고할만한 이야기로는 콜렉터의 세대교체가 이뤄졌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예전에 수묵화를 좋아하던 사람들은 정년퇴임하거나 돌아가셨는데 그분들이 요즘 내놓은 그림 값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대신 쾌활하고 밝은 서양화가 최근의 젊은 컬렉터 취향과 딱 맞아떨어집니다. 저서인 《한국의 채색화》를 기획한 이유도 이러한 변화를 나름대로 눈치챘기 때문입니다. 경매가를 보면 채색화인 궁중화는 십억 원대를 넘는데 수묵화는 대개 수백만 원대에 거래됩니다. 사람들의 선호도가 달라진 결과이죠.
작가들은 현대미술을 이끌 수 있는 한국적인 것을 찾아야 합니다. 김수자씨는 보따리를 세계미술로 만들어냈습니다. 이처럼 세계적인 예술로 승화할 수 있는 소재가 우리 문화 속에 있어요. 한국적이면서도 현대 사람들이 좋아하는 채색화, 바로 궁중화와 민화에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중국, 일본 것을 찾으면 100전 100패입니다. 작가든, 수집가든, 이론가든 훌륭한 문화유산을 갈고 닦고 기름칠해서 세계시장에 내놓아야 합니다.


글 문지혜 기자 사진 이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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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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