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의 색을 덧입히다

민화의 색을 덧입히다

영천문화원 민화반에서 민화를 배우고 그리고 있다는 박성진 독자가 지난 10월, 전시소식과 그간의 민화에 대한 소회를 보내왔다. 지도교수를 맡고 있는 덕천 한임선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민화와 멋과 색에 빠져들었다는 생생한 전언을 소개한다.

운명적인 우연, 민화에 빠지다

민화의 색을 덧입히다올해 2월 겨울이 지나고 봄이 시작될 무렵, 영천의 한 인쇄소에 들렀다가 탁자위에 놓인 화첩 한 권이 눈이 들어왔다. 덕천 한임선 선생님, 그녀를 만난 건 그렇게 우연에서 시작되었다. 물론 민화에 관한 책에 관심이 간 건 대학시절부터였지만 마흔을 코앞에 두고 민화라는 두 글자가 이렇게 가슴을 쿵하고 내려칠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 같다.

“이 선생님 혹시 어디에 사시는지 아세요?”
“저희 가게 옆에 문화원에서 금요일마다 강의를 해주시는데 그렇게 좋으시답니다.”
“아이쿠, 마침 금요일이네요, 얼른 가볼게요. 감사합니다.”
퉁탕 퉁탕 그렇게 문화원 계단을 올라가보니 인상 좋으시고 후덕한 할머니 선생님 한 분과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뭔가에 집중하고 있었다. 창밖엔 금호강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째 오셨습니까?”
“저기 저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요….”

내 손이 가리킨 건 일월오봉도였다. 그때는 그 그림이 그렇게 쉬워 보였다. 처음부터 건방진 아줌마라는 느낌이셨을 테다. 후후. 아무튼 그 길로 나는 5살배기 어린아이와 함께 2주마다 주일예배가 끝나면 염치불구하고 선생님 자택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재료와 다양하고 방대한 작품에 놀라고 ‘영천에 이런 분이 계시다니!’ 싶어 그냥 서너 달은 계속 놀람의 연속이었다. 첫날부터 나는 아교라는 녀석과 먹, 분채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과 조선필이 주는 신비한 마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호작도를 몇 시간 만에 그려내시는 선생님의 속도에 ‘아…, 우리 그림이 이런 거구나!’하는 감탄에 감탄이 이어졌다. 짧게는 서너 시간, 길게는 여섯 시간씩 앉아서 집중을 해야 했다. 하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15년 가까운 공무원 생활에 대한 회의와 답답함,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학교와 집을 왔다 갔다 하며 보내는 일상에 민화는 삶의 활력이었고, 몸은 고되고 눈도 아팠지만 새로운 시공을 초월한 싱싱한 에너지를 내 삶에 불어넣어 주었다.

인생의 무게처럼 다가온 일월오봉도

호작도가 끝나고 선생님 댁 가는 길, 화산의 화사한 꽃길과 신녕의 장엄하게 펼쳐진 팔공산 자락이 나를 매주 반길 때 즈음, 어려움이 슬슬 느껴지기 시작했다. 호작도, 화조도를 끝내고 나니 예상보다 도구와 재료비가 많이 들었다. 취미로 하기엔 전문적이고 빠져들기엔 용돈이 빠듯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나의 딸 혜원 양이 민화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지만 엄마와 할머니 선생님의 얘기와 그리는 모습, 그리고 민화에 둘러싸인 풍경들이 좋았나 보다. 민화를 시작하고 혜원이는 장난감과 도시에 길든 팍팍함 대신 촉촉한 색감과 붓놀림을 같이 연습하며 색을 익혀갔다. 신기했다. 그냥 곁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교육이 된다는 것이…. 그리고 오랫동안 앉아있다 보니 성격도 느긋해지고 밝아졌다. 무엇보다 워킹맘인 나와 아이 사이에 대화의 고리가 생겼다. 일에 지쳐 육아에 힘듦을 느꼈는데 민화를 그릴 때 옆에 와서 같이 아교랑 분채도 갈고 제멋대로 한지에 낙서도 하고 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엄마와 아이에겐 무언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두 번째 시련이 왔다. 일월오봉도. 그것이 너무너무 그리고 싶었는데 막상 그리다 지치고 또 그리다 지치고를 여러 번 반복했다. 비가 오기라도 하면 화구에, 물감 통에, 아이 간식에 한 보따리 짐을 들고 그림을 배우러 가는데 일월도는 내겐 너무 벅찬 과제였다. 특히 학교일이 많아지면서 다섯 개의 산을 마무리짓는 건 너무너무 힘들었다. 겹겹이 쌓인 계곡들이 마치 내 일상의 무게처럼 다가왔다.
“선생님, 어느 구멍에 어느 색을 집어 넣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칼로 오려낸 뽄이 있으면 퍼뜩 메꾸어 넣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성질 급한 경상도 아지매의 볼멘 하소연에 선생님은 웃으셨다.
“하다하다 보면 다한다.”
마치 참선과 해탈, 또는 명상, 하안거에 들어가는 스님 마냥 나는 아이를 재우고 새벽에도 일어나 조금 조금씩 칠해나갔다. 진채의 묘미는 진정한 인격도야의 과정 같았다. 시간이 흐르고 첫 번째 일월도가 석 달 만에 완성되고 검은 프레임에 둘러싸여 내 품에 온 날! 너무너무 행복했다. 그 진한 쪽빛 군청과 백록, 그리고 금수강산의 금빛, 적송의 아름다움과 해, 달, 그리고 수포처럼 부서지는 파도. 온갖 비보들로 가득 찬 오뉴월의 뉴스를 피해 도망 온 나의 모습은 멋있게 완성된 일월도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세 달간의 땀과 노력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멋있는 조상들의 지혜이자 황실의 품격이었다.

끝없는 물음표, 자부심에서 답을 얻다

그때부터 조선의 그림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왜 우리는 서양화를 배운 세대였는가? 왜 미술책엔 일월오봉도가 보이지 않았는가? 왜 지폐에, 언제부터 지폐에 일월도가 있는가? 왜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는 우리 그림을 가져갔는가? 왜 좋은 우리 그림은 박물관에만 있는가? 등등 밤낮없이 찾아보았다. 특히 일월도의 해와 달을 신라 경순왕 왕관에서 보았을 때, 그리고 일월도의 오방색이 주는 치유력, 그리고 도교, 불교, 유교 등등의 다양한 철학과 선조들의 사상이 녹아있는 일월도의 위대함은 찾아도 찾아도 끝이 없이 무궁무진했다. 내가 완성한 뒤로 아이들과 채색도 해보고, 외국인에게 선물도 해주고 했더니 반응이 의외로 좋았다. 덕분에 그간 감사를 표할 분들에게 민화로 인사를 드리니 다들 좋아하셨다.
그러다 선생님께서 ‘가을 한약 축제 때 전시회를 하는데…’라고 하셔서 대뜸 뜬금없이 공재 윤두서 선생님의 <유하백마>를 민화풍으로 그려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역시나 나의 건방은 여기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문인화를 민화로? 하지만 영천의 상징이 말인 만큼 말 그림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쾌히 내 의견을 수용해주신 선생님 덕에 나는 뽄을 그리고 채색하며 예닐곱 장을 실패하고서야 ‘쉽지 않구나’를 느꼈다. 아교와 분채가 만들어내는 색채 이면에 민화만이 가진 간결하고 아름다운 심플, 소박. 그러면서 반짝반짝 예뻐야 했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겨우 하나 완성해서 표구도 못한 채 액자에 걸었다. 미숙한 그림에 내가 괜한 짓을 했구나 싶었다. 하지만 금빛이 반짝거리는 아침의 고요한 풍경과 버드나무, 그리고 백마는 나에게 또 다른 모사도 가능함을 시사했다.
축제의 시작. 회원들 모두 좋은 작품들로 민화의 불모지, 영천을 민화의 색으로 채워나갔다. 전시의 준비과정에도 많은 수고가 필요했다. 트럭으로 일일이 나르고 못을 치고 음식을 준비하고 모든 일련의 과정 속에서 선생님과 회원들의 수고가 영글어 있었다. 관람하는 시민들의 표정도 기간 내내 밝고 신기해하는 듯했다. 전시 중간중간 코레일 영천 역사와 주변 카페에 팸플릿을 돌리며 기차역과 카페가 우리 그림 민화로 도배될 날이 곧 오기를 소망해 보았다.
이제 8개월째. 어제부터 책거리 소품들에 빠져들고 있다. 격동의 구한말. 그 시절 새로운 외세의 문물이 들어오며 우리 것을 잃어가던 그 시절. 민족의 고통과 불운한 숙명을 견뎌내야 했던 조상들의 품에 민화가 있었고, 지금 다시 우리가 거기에 빠져들고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민화가 그 답을 가르쳐 주는 듯한, 가을 밤바람이 부드러운 밤이다. 곧 또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밝으면 민화는 살포시 해를 드러내리라.

 

글 : 박성진
사진 : 주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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