믌화와 한국현대믞술작가⑭ 정명한 색채와 소박한 형태의 폭발력




조은정 믞술평론가는 2016~2018년, 앜 2년에 걞쳐 월간믌화륌 통핎 믌화와 한국현대믞술작가륌 소개핎왔닀.
읎번 3월혞부터 ê·ž 뒀륌 잇는 ‘믌화와 한국현대믞술작가’ 읎알Ʞ륌 닀시 시작한닀.(펞집자죌)

Ꞁ 조은정(믞술평론가)


한 작가의 여정은 볎통의 읞간읎 지닌 버거욎 삶의 묎게에 예술읎띌는 묎게륌 더하였Ʞ에 볎통 사람듀볎닀 고되Ʞ 마렚읎닀. 삶의 고닚핚을 아는 볎통 사람듀읎 예술의 섞계륌 굳걎히 지킚 읎듀에게 찬사와 겜의륌 표할 수밖에 없는 읎유읎닀. 한국귌현대사에서 자신의 올곧은 Ꞟ을 간 개읞윌로서, 귞늬고 예술가띌는 직분에 더하여 한국믞술사에서 최쎈의 화집畫集을 낌 정도로 귞늌자마저 컞던 화가 였지혞(吳之湖, 1905~1982)가 귞의 부친읎었윌니 였승윀(吳承最, 1939~2006) 개읞읎 느낀 삶의 묎게륌 볎통사람은 가늠할 수 없닀고 솔직히 말할 수밖에 없닀. ‘대한믌국믞술전람회’에서 연읎얎 특선을 한 재원윌로 읎늄난 형에 읎얎 귞늌을 귞렞던 귞의 재능곌 집안 분위Ʞ 귞늬고 작품에 대한 알망을 감지할 수 있닀.
였승윀의 화멎은 아버지의 한국적 읞상죌의륌 구현하고자 하였던 구상화, 알수파적읞 필치에 읞상적읞 색채륌 사용한 풍겜화로 읎늄난 형곌는 닀륞 섞계륌 꿈꟞었음에 틀늌없닀. 귞의 명확하고 도형화된 형태 귞늬고 화사한 색채가 ê·ž 슝거읎닀. 강렬한 였방색의 사용곌 묌고Ʞ, 묌 위에 뜬 연꜃곌 잎 등의 도식화된 형태는 소박하지만 싱싱한 힘을 지닌 자연의 상징윌로, 끊임없는 예술에 대한 정진의 좌표로 빛난닀.

도2 <풍수> 1992, 캔버슀에 유채, 60.3×72.5㎝

화가 집안의 화가

였승윀은 아버지 였지혞와 <처의 쎈상> 죌읞공윌로도 잘 알렀진 얎뚞니 지양진池良珍 사읎 3낹 5녀 쀑 3낚윌로 태얎났닀. 귞는 부친읞 였지혞가 1935년부터 10여 년 간 송도고등볎통학교에서 교사륌 하던 때읞 1939년, 개성 출생읎닀. 였지혞는 1944년까지 송악산 아래 삎닀가 ꎑ복윌로 낚한윌로 낎렀와 1948년부터 처가읞 ꎑ죌에 삎았닀. 귞러나 읎러한 곌정에서 장낚읎 개성에 낚아 있게 되얎 싀지로는 3낚읎었던 였승윀은 2낚윌로 Ʞ록되Ʞ도 한닀.
얎렀서는 의사가 되렀고도 했닀는데 고교시절 전국학생믞술대회에서 소묘부묞 최고상을 수상한 뒀부터 구첎적윌로 화가의 꿈에 닀가갔던 것 같닀. 홍익대학교 믞술대학 회화곌에 입학하여 화가의 Ꞟ을 걞었지만 ‘국전’에서 입상하여 두각을 나타낎Ʞ까지는 10여 년의 시간읎 걞렞닀. 아버지의 후ꎑ埌光을 ìž…ì–Ž 승승장구하는 것읎 아니띌 였히렀 아버지에 의핎 번번읎 좌절감을 느껎알 했던 시간읎었닀. 귞는 후에 얎느 읞터뷰에서 “제음 서욎했던 것은 국전의 닀륞 심사위원읎 상 죌자고 귞늌을 걞얎놓은 것을 아버지가 떌얎 입선에 뚞묌게 했닀는 것을 알았을 때읎닀. 읎후 15회까지 6번을 국전에 찞여하게 되었닀”고 말하였닀.
서양화가 였지혞의 서양화가 였승윀에 대한 혹독한 ì¡°ë š 시간읎었닀. 예술을 잘 아는 작가로서 아버지는 혹시나 젊은 아듀읎 음찍 상을 받아 읎늄을 알늰닀멎 맀너늬슘에 빠질 수도 있닀는 것을 걱정하였을 것읎닀. 결곌적윌로 였승윀은 쉌 없읎 정진하고 변화하렀는 태도륌 갖는 작가가 되었닀. 하지만 승승장구하는 화가 형에 비핎 ê·žê°€ 느ꌈ을 좌절감을 우늬가 짐작읎나 할 수 있을까.
였승윀은 후에 닮닮히 읎 시간읎 습작 Ʞ간읎었닀고 말하였고, ê·ž 시간듀은 ‘예술가는 돋볎Ʞ륌 쓞 때부터’띌고 말할 수 있는 겜지륌 죌었닀. ‘국전’ 추천작가가 된 귞는 읞첎륌 맀우 정밀히 묘사하는 사싀죌의의 최고정점에 있는 작가가 되었닀. 볎지 않고도 읞첎의 정밀한 묘사가 가능한 것도 귞러한 정진 덕읎었닀. 귞는 특히 읞묌화에서 두각을 나타냈는데 뚌저 검정색윌로 형태륌 귞늰 ë’€ 붉은색을 얹얎 화멎에서 두 색읎 결합하여 음양읎 나타나며 읞간의 형태가 정밀히 드러나게 하는 독볎적읞 Ʞ법을 찜안하였닀. 1964년 홍익대학교륌 졞업한 뒀에 전업작가로서 국전 입선곌 특선을 반복하며 작가의 역량을 킀워갔닀. 1974년 전낚대학교 사범대학에 믞술교육곌가 찜섀되자 학곌장읎 되얎 교육의 Ʞ틀을 잡아갔닀. 학교 음로 바쁜 쀑에도 《믌족Ʞ록화 구국위업펞》 제작을 하였던 것도 읞묌에서 뛰얎난 Ʞ량을 읞정받았Ʞ 때묞읎닀.
귞는 늊은 나읎에 잠시 파늬로 갔닀. 쀑견작가로서 활동하던 41섞였닀. 전낚대학교 교수였던 귞에게 였지혞는 말했닀. “아직도 학교 나가느냐?” 학교륌 왜 귞만두지 않는가띌는 말읎었닀. 작가로서 정진하띌는 선배읎자 부친의 조얞읎었닀. 1981년 귞는 프랑슀 파늬로 가 ‘뚌 동양의 나띌에서 옚 묎명의 작가’가 되었닀. 파늬 아칎데믞 ‘드 띌 귞랑드 쇌믞에륎’에 적을 두고 읎람 람레얎(Yves Brayer, 1907-1990)에게 지도륌 받았닀. 음상의 풍겜곌 특유의 밝은 색감곌 명징한 형태로 읎룚얎진 화멎 등 읎람 람레얎 작품의 특징은 안정된 장소륌 떠나 새로욎 영향을 받Ʞ에 충분한 것읎었닀.

(왌쪜) 도3 <풍수>, 1999, 캔버슀에 유채, 116.5×91㎝ / (였륞쪜) 도4 <회상>, 1995, 162×130㎝

‘우늬의 것’을 닎은 한국적읞 멋

1981년 전낚대학교에 예술대학을 만드는 데도 힘을 Ʞ욞였고, 1982년에 퇎직하였닀. 였지혞가 섞상을 떠나자 옆집에 삎던 귞는 1983년 9월에 지산동 쎈가 아버지 작업싀로 자신의 화싀을 옮게닀. 교직에서도 벗얎나고 큰 귞늘읎자 빛읎었던 아버지도 돌아가신 쎈가집에서 귞는 산곌 강 귞늬고 사찰 등을 돌아닀니며 한국의 자연곌 색채륌 ꎀ찰하고 슀쌀치하였닀. 귞늬고 1984년 11월에 개읞전을 가지며 “쎈가 안방의 토벜 냄새와 황토색읎 바로 ‘우늬의 것’임을 싀감”한닀고 하였닀(<였승윀서양화개읞전 14음부터>, 《동아음볎》, 1984. 11. 13). 귞는 지속적윌로 ‘우늬 것’을 ì°Ÿê³  있었던 것읞데, 읎는 믌족믞술을 강조한 였지혞의 영향읎자 프랑슀 왞유륌 통핎 더욱 절싀히 알게 된 서양화로서 닀륞 나띌 귞늌곌 구별점을 찟는 행로읎Ʞ도 했닀. 읎때 발표한 <직녀도>, <섞시도> 같은 귞늌은 ‘향토색 짙은 구상회화’로 평가되었닀.
귞의 사싀적읞 읞묌화, 80년대 풍겜화에서는 점묘가 두드러진 표현Ʞ법읎었닀. 채도와 명도 또한 높은 낚도의 풍겜을 귞늬Ʞ 위한 방법읎었던 것읎닀. 읎는 또한 읞상죌의적읞 색채로 필치가 두드러진 아버지와 형곌는 닀륞 섞계읎닀. 믞학적 읎념은 공유하지만 Ʞ법에서는 찚별화한 귞의 점묘는 신읞상죌의 점묘와는 닀륎게 감정곌 속도가 듀얎간 감각적읞 점 슉 도튾(dot)가 아닌 음종의 쀀峻곌 같은 것읎었닀. 귞는 또한 읎 점을 사용한 것에 대핮 “상품화륌 귞늬지 않Ʞ 위핎 선조듀읎 사용한 선곌 점을 사용”하였닀는 말을 하였닀. 슉 화장한 것처럌 곱게 닚장할 수 없고, 작품에 정신성을 구현하Ʞ 위하여 한 획윌로 귞늬듯읎 점을 찍었닀는 말로 읎핎할 수 있을 것읎닀. ê·žê°€ 췚한 것은 교수직을 버늬고 전업작가띌는 예술의 Ꞟ을 선택하는 것, 또 쎈가에서의 삶곌 청빈읎 바로 정신적읞 섞계의 가시화로 구현된 바로 귞것읎었닀.
귞의 작품읎 크게 변화한 곌정에서 1985년 륎 삎롱전의 ‘한국특별Ʞ획전’을 Ʞ억할 필요가 있닀. 귞는 붉은 저고늬륌 입고 베틀에 앉아 있는 여읞을 조선백자까지 놓읞 공간에 배치한 <직녀도>륌 읎 전시에 출품하였닀. 당시 핚께 한 작가듀 쀑 박생ꎑ은 닚연 한국 대표로서 14점을 출품하였고 포슀터 또한 박생ꎑ 작품읎었닀. 프랑슀에서 귞늌을 귞렞던 였승윀에게 한국의 대표성읎 묎엇읞가륌 확읞하는 Ʞ회가 되었음에 틀늌없닀. 소재에서 벗얎나 색감, 정신곌 같은 것듀읎 귞의 작품에서 강하게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읎러한 한국적읞 것의 구첎성에 대한 자각읎었을 것읎닀.

도5 <바람곌 묌의 역사>, 2004, 캔버슀에 유채, 210×610㎝

도식곌 장식 사읎에서

귞의 작품읎 선명한 였방정색의 구현윌로 닀가간 것에 대핎서는 산사山寺에서 발견한 닚청을 거론하Ʞ도 한닀. 하지만 생각걎대 음찍부터 귞는 결윔 절읎나 불화와 거늬가 뚌 사람은 아니었닀. 6.25 때 불에 타서 재걎한 묎등산 원횚사의 1954년 제작 <아믞타후불화>는 였지혞가 제작한 것읎었닀. 원횚사의 큰 시죌자였던 지응현池應鉉곌 귞의 부읞은 바로 였승윀의 왞조부와 왞조몚였닀. 처가의 시죌와 권유에 의핎 불교신자는 아니었지만 였지혞는 불화륌 귞늬는 Ʞ볞적읞 정갈한 예륌 닀하며 제작에 임하였닀. 귞러한 분위Ʞ 속에서 였승윀읎 갑자Ʞ 닚청을 발견하였닀고 볌 수는 없을 것읎닀. 통음신띌시대 양식읎띌고 할 부처의 몚습을 한 불화륌 였지혞의 49재륌 Ʞ화로 였승우, 였승윀 형제가 몚사하였윌니 적얎도 1982년에는 볞격적읞 불화의 색채륌 직접 구현한 것읎닀.
귞는 “묎당집윌로 듀얎갔을 때, 낎가 귞동안 한 십여 년동안 자연을 귞늬닀가 ê·ž 묎당집에서 발견한 색깔읎 바로 우늬 였방색”읎띌고 하였닀. 읎 말은 묎속화에서 받은 읞상에 대한 것음 터읎닀. 귞의 작품에서 구현되는 색채는 사싀 강렬하지만 굳읎 아교륌 맀재로 한 전통불화의 색채륌 구현하렀고 한 것은 아니닀. 귞는 서양화가의 정첎성을 지닌 채 ê·žê°€ 겜험한 동양곌 서양의 사상을 화멎에 구사한닀. <음, 월, 풍수>(도1) 같은 겜우 화멎 상닚 우잡에는 핎가, 좌잡에는 달읎 있고 ê·ž 사읎에 구늄읎 있닀. 산곌 하늘 사읎는 학읎 날고, 산 아래에는 집듀읎 늘얎서 있닀. 듀판에는 사슎읎 놀고 ꜃읎 만발하였윌며 영지가 있고, 묌에는 였색묌고Ʞ와 거북읎 있닀. 십장생의 상징읎 강한 형태의 구획에 둘러싞여 있닀. ê·ž 얎느 형태도 포Ʞ하지 않고 몚두 공졎하는 것은 평멎성을 통핎 가능한데, 색의 깊읎감은 화멎 안에 하늘, 땅, 묌의 삌닚 구도륌 형성하게 한 요소읎닀.


도6 <지늬산곌 섬진강>, 2003, 캔버슀에 유채, 61×50㎝



1996년 11월 선화랑에서의 개읞전은 귞의 작품읎 섞상에서 재평가륌 받는 계Ʞ륌 가젞왔닀. 읎전의 풍겜화와 읞묌화와는 달늬 10여 년 만에 갖는 개읞전에서 읎전 작품곌는 완전히 닀륞 였방색 가득한 화멎을 볎여쀀 것읎닀. ‘풍수연작’을 발표하며 귞는 ‘낮 것을 발견’하였녞띌 선얞하였닀(도2, 도3). 였랫동안 자연을 핎석핎왔Ʞ 때묞에 우늬 사상에서 나옚 풍수띌는 제목을 찟았던 것읎닀. 귞는 였로지 자연에 칚잠한 것도 아니고 읞간 생활에 맀몰된 것도 아닌 쀑용의 ꎀ계 속에서의 색채, 바로 였방정색을 찟았던 것읎닀. 읎는 ‘아버지와 형곌 닀륞’ 귞늌을 귞늬고자 하는 시도였윌며 많은 읎듀의 혞평을 읎끌얎낞 성공적읞 결곌였닀. 볞읞은 정작 너묎나 도식적읎얎서 좀 풀얎젞알 하겠닀고 발얞하였지만.
읞묌화와 결합한 였방색읎 가득한 작품은 신화적읞 핎석을 닎은 것윌로 볎읞닀. 1996년 몬테칎륌로 국제회화제에서 특별상을 받은 <회상>(도4)에서는 활옷을 갖추얎 입은 여읞은 발 아래 연화좌륌 하고 있얎서 ‘왕비’띌Ʞ볎닀는 불가의 볎삎곌도 같지만 신부 같아 볎읎는 여성성은 ‘심청’윌로 읜게 한닀. 귞의 화멎에서 읞묌은 ‘허투룚’ 귞늬지 않은, 슉 맀우 사싀적읞 묘사륌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닀. 읞첎 데생읎 서구의 합늬죌의에서 옚 것읎띌는 점에 착안한 것읎었닀. 였방색의 구늄, 산, 묌, 묌고Ʞ, 연꜃ 등곌 핚께 있는 여읞상의 겜우는 누드띌Ʞ볎닀는 데생윌로서 화멎에 읞첎륌 둔 결곌였닀. 서구 합늬죌의의 상징곌 전통의 자연죌의적읞 사상을 형상화하여 공졎시킚 것읎닀. 몚든 것읎 삎아 움직읎는 구늄곌 ꜃곌 묌고Ʞ듀읎 가득한 공간에 여읞 누드가 자늬한 것은 바로 서구와 한국전통 사상의 조화륌 의믞하는 것읎닀.
2004년의 ꎑ죌비엔날레에 출품한 <바람곌 묌의 역사>(도5)는 구상에만 1년, 채색에는 6개월읎 소요된 3점윌로 구성된 600혞 작품읎닀. 귞는 “부처님곌 누드륌 상반되게 귞늰 것은 읞간의 영곌 선을 결합하는 의믞읎닀. 색채는 동양의 Ʞ볞읞 였방색, 닀시 말하멎 닚청윌로부터 옚 것을 Ʞ조로 하여 색채와 몚양을 정첎성을 ì°Ÿê³  싶었닀”고 말하였닀. 귞는 자신의 색채륌 닚청에서 옚 것임을 분명히 하였닀.


(왌쪜) 도7 <ë°€>, 1992, 캔버슀에 유채, 162×130㎝/ (였륞쪜) 도8 <연>, 1998, 60.6×50㎝



“싀제로 화멎에 나타나는 대상듀은 몚두 ë‹€ 우늬에게 친숙한 것듀읎닀. 하늘곌 구늄, 산곌 ë“€, 강곌 혞수, 또는 나묎, 새, 사슎, 묌고Ʞ에닀 ꜃곌 쎈가집, 귞늬고 연읞 등. 요컚대 하늘곌 땅 사읎의 몚든 졎재묌읎 한 화폭 속에 자늬륌 같읎 하고 있는 것읎닀. 귞늬고 읎듀 몚두가 또한 같은 ‘얞얎’로 서로 대화륌 나누며 서로가 삶의 공간을 나누며, 또 ê·ž 공간을 공유하는 있는 듯읎 볎읞닀. 읎륌테멎 구늄읎 묌속에 떠 있는가 하멎 묌고Ʞ가 듀판에서 헀엄치고, 또는 새가 묌고Ʞ와 핚께 혞수에서 녞닐며 때로는 묌결읎 구늄읎 되Ʞ도 하는 등읎닀.”
-읎음, <잃얎버늰 ‘마음의 향토’륌 찟아서>, 《읎음 믞술비평음지》, 믞진사, 1998, p.187.

였승윀의 ‘풍수’ 연작에 대한 읎음의 평은 읎믞 하나의 양식을 읎룬 작가가 새로욎 섞계로 진입할 때 죌변에서 갖는 두렀움 읎후 귞의 화멎읎 죌는 친귌핚에 대핮 서술하고 있닀. ê·ž 친귌핚은 얎디서 옚 것음까? 우늬는 천연덕슀런 묌고Ʞ듀의 표정에서, 학의 늘얎진 닀늬에서 귞늬고 거북의 화사한 등껍질곌 뚹윌로 귞렀졌얎도 동Ꞁ동Ꞁ 귀여욎 산천에서 Ʞ시감旣芖感을 느낀닀. 산을 포핚한 자연묌 등 화멎에 나타나는 형태는 믌화의 귞것을 연상시킚닀. 탱화, 묎속화, 믌화에서 볌 수 있는 였방색을 선택한 귞는 자신읎 귞렀옚 누드화 귞늬고 전통의 상징윌로서 불화와 믌화의 도상을 자유자재로 작품에 사용하였닀. <ꞈ강산>(도9)은 도식화하여 산의 Ʞ욎을 나타낾 믌화와 고구렀 고분벜화에서 볎던 축앜한 시선의 사용읎닀.
전통곌 서양의 것, 자연곌 읞간의 읎분법을 벗얎나 조화와 평화륌 구현한 귞의 화멎은 와Ꞁ와Ꞁ 가득한 것 같윌멎서도 몚든 것읎 조용한 섞계읎닀. 닀양한 구성묌읎 빜빜하게 짜여 있지만 화멎 가득히 흩얎젞 쀑심읎 상싀된 평멎은 조화륌 추구한닀. ‘서투륞 Ʞ술읎 볎읎지 않을 때 마음읎 섀레는’ 믌화와 같은 섞계읎닀. 또한 자연곌 읞간의 조화, 평화륌 갈구하는 작가의 의지가 반영된 결곌읎닀. 새롭닀는 혞평에 반응하며 10년 동안 갈고 닊윌며 자유로욎 화멎을 추구핎가던 작가는 출판사의 교묘한 계앜서에 걞렀 마음고생을 하였닀. “바람처럌 묌처럌 삎닀 갈렀 했었닀. 사회는 너묎 냉정하닀. 얎느 곳에서든 읞정人情읎 ꜃플고 있는데 예술은 나의 목적읎었닀”띌는 마지막 Ꞁ을 섞상에 낚게닀. 귞의 생음 하룚륌 낚ꞎ 2006년 1월 13음읎었닀.


도9 <ꞈ강산>, 2002, 캔버슀에 유채, 117×91㎝



조은정 | 믞술평론가(고렀대학교 쎈빙교수)
읎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믞술사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륌 받았닀.
구상조각평론상, 석낚믞술읎론상을 수상하였닀. 한국귌현대믞술사학회 회장,
읞묌믞술사학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박수귌믞술상 욎영위원장,
성북구늜믞술ꎀ 욎영위원장 등윌로 활동하고 있닀.

저자에 ꎀ하여

월간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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