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계 위해 고언 아끼지 않는 중진작가 백당(白堂) 금광복

백당(白堂) 금광복
백당(白堂) 금광복

전국 200여 명의 민화 작가를 초대한 대규모 전시 <2015 한국 민화의 오늘전>이 진행 중이던 지난 1월, 전시 운영위원으로 중추 역할을 한 전업작가회 회장 금광복 작가를 만났다. 큰 전시를 무사히 열었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작가로서의 정체성과 민화의 오늘에 대해서 이야기할 땐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했다. 금광복 작가가 오늘날 민화작가들에게 던지는 정문일침頂門一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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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의 시대를 체감하며 경계해야 할 것들

바야흐로 민화의 시대다. 올해 초만 해도 대갈문화축제를 시작으로 <한국 민화의 오늘과 내일전>, <창작민화대작전> 등 민화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대규모 행사, 전시가 잇달아 열렸다. 민화가 변방으로 취급받던 시대는 더 이상 아니라고 금광복 작가는 힘주어 얘기한다.
“지자체나 백화점 문화센터, 각 대학교 평생교육원에 민화 강좌가 넘쳐나고, 전문민화박물관도 속속 생겨났잖아요. 게다가 민화만 전문으로 다루는 잡지가 창간했다는 것도 민화가 흐름을 탔다는 증거가 됩니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민화가 단기간에 신속한 성장을 거듭해온 것이 여러 부작용을 불러일으켰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어쨌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인기가 있을 때 문제점도 비로소 부각이 되는 법이다. 그는 그 비결로 접근성을 꼽는다.
“누구나 접하기 쉽고, 실력 향상이 쉽게 되니까 민화가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전파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죠. 하지만 문제점도 있습니다. 이러한 확산이 전반적인 수준 저하로 이어진다는 거죠.”
대부분 민화를 배우는 사람들은 처음 붓을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럴 듯하게 그림을 완성해낸다. 몇 년이 지나면 성취감에 사로잡혀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실력을 지닌 채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는 것이 금광복 작가의 지적. 이 같은 점은 민화인구의 양적 확산에 기여를 했지만, 동시에 질적 하락을 불러온 요인이 되기도 했다.

민화 작가 3만 명 시대, 정체성 확립이 당면과제

백당(白堂) 금광복 作금광복 작가는 민화를 통해 미술에 입문한 경우는 아니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했고, 미술에 소질 있다는 소리도 자주 들었다. 초·중·고등학교 재학 중에는 미술부장을 도맡았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의 친형이 동양화 작가였다. 각별히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저 그림이 좋아서 그 친구네 집으로 자주 놀러갔다. 그때부터 동양화를 배우기 시작했고, 입대 전에는 서양화를 배웠다. 군대 가서도 붓을 놓지 않았고, 제대 후에도 서양화를 계속하다가 박수학 선생을 알게 되면서 민화를 접하게 됐다. 그는 자신이 처음부터 민화로 미술에 입문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좀 더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다고 말한다. 현재 민화에 대한 평가가 박한 것은 억울하지만, 어쩌면 민화인들이 자초한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 이제는 현실을 직시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그에게 ‘이 시대 민화작가가 지녀야 할 자세’라는 화두 하나를 던졌다.

쓴 소리 ① 자신이 그리는 그림에 대해 공부하라
민화작가가 많습니다. 3만 명이라고도 하고, 5만 명이라고도 하잖아요. 몇 년 그리고 나면 어떤 검증을 거치거나 누가 인정하지 않아도 민화작가라고 명함을 파고 활동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민화가 뭐냐고 물어보았을 때, 거기에 제대로 설명을 못하고 손만 허우적거립니다. 자신도 잘 모르니까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본인을 작가라고 칭하면서 자부심을 가지고 왕성히 활동하는 민화 인구가 늘어나는 것은 어쨌든 환영할 만한 일이죠. 하지만 자신이 그리는 그림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본을 이용해서 그리다가 한 달 만에 선생한테 어떤 작품이냐고 묻기도 해요. 민화가 무엇이냐는 질문, 지금 그리는 그림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에 대한 물음에 명쾌히 대답을 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민화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이런 문제는 어쩌면 학문의 뿌리라고 볼 수 있는 학부 과정의 부재와도 연관이 있다고 볼 수도 있죠. 그래도 구조적 문제점과 별개로 작가들의 마음가짐을 고쳐야합니다. 제가 미술사조에 대해 꾸준히 공부하고, 민화에 대한 연구를 멈추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쓴 소리 ② 본 그림 오명 벗으려면 데생 실력을 키워라
민화를 낮추어보는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은 바로 민화가 본에 의존한 그림이라는 점입니다. 심지어 민화를 소개하는 책에서도 민화가 본 그림이라고 쓰여 있잖아요. 하지만 저는 ‘전적으로 본에 의존한다’는 말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직접 데생하는 작가들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에요. 실제로 본인이 실력이 있다면, 또 진정 민화 작가라고 생각한다면 데생을 할 줄 알아야하는데, 대부분 못합니다. 예를 들면 까치 호랑이를 그릴 때, 내가 호랑이가 좋으면 한 마리 더 그리고 싶잖아요. 그런데 못 그립니다. 데생이 안 되니까요. 본에 있는 호랑이의 자세나 표정을 바꿀 줄 모르는 것도 모두 데생이 부족하기 때문이죠. 습작 과정에서는 어느 정도 본을 이용해서 감을 익히더라도 시간이 지난다면 서투르더라도 직접 그리는 게 중요한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그려온 세월이 10년이냐, 20년이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쓴 소리 ③ 글도 쓸 줄 아는 작가로 거듭나라
이제 그림만 잘 그리면 좋은 작가가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예술도 기능 이전에 학문이거든요. 기능적으로만 발전하는 것은 한계가 있죠. 특히 민화는 설명이 필요한 그림이지 서양화 같은 감상의 그림이 아니에요. 민화가 18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유행했던 그림이라 하더라도 옛날 그림이에요. 그 시대에 필요했던 그림이죠. 그러면 지금 와서는 냉정히 말해서 용도 폐기해야하는 그림입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다시 유행을 할까요? 그 이유를 말할 때 현대미술에 대한 이론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전통미술을 하더라도 우리가 이 순간 호흡하고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이 시대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이 순간도 100년 후 사람들에게는 전통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한 의미를 읽고 표현하지 못하면 절름발이나 다름없어요. 이 시대에 그림을 그리는 민화 작가가 글도 써야한다는 말은 그런 의미입니다. 학자 입장에서는 물론 다를 수도 있습니다. 평론가인 제 친구는 제가 책만 내면 못마땅해 하지만 제가 쓰는 글은 학술서가 아닙니다. 잡지처럼 재미로 볼 수 있는 책이죠. 그림 그리는 입장에서 책을 내는 겁니다. 현장감은 제가 더 잘 담고 있지 않겠습니까?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많은 민화 작가들이 글과 친해지기를 바랍니다.

민화 유행의 기폭제가 되기를 약속하며

살펴보니 그의 이력 중에는 유난히 저술 활동이 많다. 《자유로운 끼가 넘치는 우리 예술》, 《한지문양1, 2》, 《색지공예》, 《지킴이》, 《조선화원의 꿈》, 《전통의 창 민화》 모두 그가 쓰거나 그린 책이다. 민화 자체에 대한 책뿐만 아니라 문양이나 색지공예에 대한 책을 썼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앞으로도 재미있는 우리 민속에 대한 책을 내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단다.
전업작가회 회장으로서의 포부도 당차다. 처음에는 30년 이상 작품 활동을 해온 사람들로만 구성했지만, 전시규모나 행사를 위해서 추천을 받아 인원을 늘렸다. 전업작가회가 앞으로 민화계를 이끌어갈 것이라는 포부도 제법 확신에 차 있다.
자신이 그리는 그림이 무엇인지에 대해 공부하라. 데생 실력을 키워 본에 대한 의존성을 줄여라. 글 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가 당부한 원칙들은 민화작가로서 한 걸음 성장하기 위한 조건인 동시에 민화가 지금의 확산 속도를 잃지 않으면서도 대외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방법임이 틀림없다. 지금까지 고생해온 민화가 이제는 대접받을 때가 됐다고 말하는 그가 앞으로도 추진력을 잃지 않기를 기대한다.

 

글 : 박인혁 기자
사진 : 박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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