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개론서 《민화의 시대》 펴낸 미술사학자 윤진영





‘민화의 시대’를 만든 우리 민화사의 결정적 순간들

미시적 방식으로 미술사를 연구하는 윤진영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사전편찬부 부장은 사료의 단편들을 꿰맞춰 19세기의 문화적 조류를 조망해낸다. 《민화의 시대》는 민화사의 주요 장면이 집결된, 결정적 팩트(fact)의 보고寶庫다.

글 문지혜 기자 사진 이주용 기자


“우리 민화의 역사는 약 2백년을 넘지 못하지만, 밝혀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습니다. 민화가 지닌 여러 가지 연구 상의 한계가 있지만 민화의 문화사적인 가치를 공유하고, 함께 발전시켜나가고 싶습니다.”
오는 1월 윤진영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사전편찬부 부장이 2014년부터 2년여 동안 월간민화에 연재한 내용을 토대로 민화 개론서 《민화의 시대》를 출간한다. 조선시대 회화사를 전공한 필자는 공급자·수요자·유통 중개인 등 민화를 둘러싼 총제적 환경과 변화 과정에 관한 자료들을 폭넓게 넘나들며 문화적 실상을 낱낱이 파고든다.
“과거엔 사료가 부족하고 화격이 낮다는 등의 이유로 민화에 대한 연구를 등한시했지만 최근에는 다릅니다. 민화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연구 방법도 발전함에 따라 한국미술사의 영역에서 민화가 차지하는 위상 또한 높아졌지요. 이번 책에서는 실증적인 연구를 통해 민화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그간 베일에 쌓여있던 부분들을 조명하고자 했습니다.


도1 <용호도>, 19세기, 지본채색, 117.4×71.5㎝(용), 118.3×71.3㎝(호랑이),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 소장
화원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에서는 민간에서 유행한 <까치호랑이>와 달리 까치가 등장하지 않는다.



도2 <남한산성 군영 내부>, 19세기말. 출처 《사진으로 보는 朝鮮時代》(서문당, 1986), p187
‘용호도’는 궁중화원들과 민간화가들이 많이 그린 그림 중 하나이다. 군관들에 의해 일부 가려지긴 했지만, 그림의 규모가 크고 구도도 긴밀하며 화원화가의 솜씨로 추정된다. 호랑이 그림의 위쪽 나무 가지에 까치 두 마리가 그려진 점이 눈에 띈다. 지휘관의 권위와 군영의 용맹을 상징하는 용호도에 민화의 주제인 까치호랑이가 그려진 것은 의외인데다 화원들이 그린 호랑이 그림에는 보통 까치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채로운 작품이다.


화원들의 그림에 영향을 준 민화부터
도화서를 나와 공방을 개업한 화원에 이르기까지

신분제도가 붕괴되고 신흥부유층이 부상한 19세기에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경향의 그림인 민화가 유행했다. 필자는 민화가 평민·양반 등의 계층을 불문하고 널리 사랑받았던 이 시기를 ‘민화의 시대’라 명명한다. 특히 궁중회화와 민화와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글의 내용을 쫓아 궁중회화의 변천과정을 짚어가다 보면 민화가 왜 이런 모습으로 그려졌는지, 궁중회화와 민화의 영향관계 등에 대해 절로 이해하게 된다. 일례로, 19세기 말 조선을 방문한 미국인 버나도(Bernadou)와 프랑스인 샤를 바라(Charies Varat)가 광통교 인근에서 수집한 <까치호랑이> 이야기를 들 수 있다. 당시 광통교의 그림가게에 나왔던 까치호랑이는 화원이 그린 가나아트 소장의 <청룡백호도> 속의 호랑이와 같은 형식을 모방하여 그린 것이다. 이후 삼성미술관 Leeum 소장 <까치호랑이>로 이어지는 도상의 흐름까지 한눈에 읽을 수 있다.
“조선시대에 호랑이에 물려 죽은 사람이 일 년에 수 백명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공포의 대상인 호랑이를 증오의 상징이 아닌 인간을 이롭게 하는 벽사의 상징물로 돌려놓고, 해학적으로 표현한 점은 당시 사람들의 포용력과 창의성을 엿보게 합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화원들이 그린 호랑이 그림에는 통상 까치가 등장하지 않지만(도1) 남한산성의 군영에 걸린 <용호도>나 전라감영 선화당에 놓였던 <용호도>에서는 까치가 등장한다는 점이다(도2). 윤진영 부장은 이에 대해 ‘까치호랑이’가 워낙 인기를 끌다 보니 당시로는 드물게 화원들이 오히려 민화를 범본으로 삼아 그린 것으로 추정했다.
고위 관료를 지낸 사람이 시전에서 궁중회화를 판매하는 상인으로 변신한 이야기 또한 흥미롭다. 지전(紙廛, 종이 전문 매장으로 19세기 후반에는 각종 그림을 판매했다) 상인 주인섭(朱寅燮, 1839-?)에 관한 이야기는 빛바랜 사진 한 장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됐다. 필자는 고위 무관직까지 역임한 주인섭의 족보와 신문 광고를 퍼즐처럼 맞춰 간 끝에 궁중회화인 <십장생도>가 테일러상회를 통해 미국 오리건대학교박물관으로 건너간 경위와 1900년을 전후하여 궁중회화가 고가高價의 매물로 거래된 시대상까지 소상히 밝혀낸다.
또한 구한말 도화주사를 지낸 서원희(徐元煕, 1862~?)가 프리랜서로 전향한 사례도 빼놓을 수 없다. 의궤류와 신문광고 등의 사료를 바탕으로 30년 화원경력의 서원희가 ‘이교당二巧堂’이라는 공방을 운영하며 그림을 주문받아 판매한 기록을 찾아낸 것(도3, 도4). 19세기말 도화서가 폐지된 이후 화원들의 활동상을 엿볼 수 있음은 물론, 궁중회화라 불리는 그림 가운데 1910년 이후 전직 화원들에 의해 그려진 사례가 상당 수 있었음을 알게 되는 대목이다.
“20세기 전반기에 활동한 전직 화원이 19세기 궁중양식의 그림을 남겼다면, 그 작품을 본 연구자들은 19세기 작으로 오판할 수도 있습니다. 19세기와 20세기 전반기 궁중화풍의 차이를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을 찾는 것이 또 하나의 과제라고 봅니다.”


(왼쪽) 도3 《매일신보》, 1918년 12월 7일자 (3면)의 광고
본인이 현판(懸板), 목주련(木柱聯), 서첩(書帖), 화보(畫譜), 각종 조각과 진채 화병(眞彩畵屛), 수초(繡草), 잡화(雜畵) 등을 제조 판매하며, 주문에 따라 응하오니, 경향(京鄕)의 많은 군자(君子)들은 속속 청구하시기 바랍니다.
경성부 하세가와초(長谷川町) 96번지 이교당(二巧堂) 화사(畫師) 서원희(徐元熙)·조각사(彫刻師) 김춘배(金春培) <매일신보> 1918년 12월 17일
(오른쪽) 도4 <고금서화관>, 일제강점기 촬영, 소공동 하세가와초[長谷川町] 96번지
《승정원일기》에 기록된 서원희의 활동 기록은 49세인 1910년에 멈췄다. 이후 그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서화가이자 사진가인 김규진이 설립한 고금서화관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30년 넘게 쌓아온 화원의 경륜을 바탕으로 ‘이교당二巧堂’이라는 상호를 내걸고 공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도5 <계견사호>, 1888년경, 종이에 채색, 32×30㎝, 국립기메동양박물관 소장
출처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 소장 한국문화재》(국립문화재연구소, 1999), p164


작은 성과들이 모이면 큰 담론도 바꿀 수 있을 것

흑백사진 한 장, 신문 속 작은 광고 하나…필자는 이처럼 작디작은 단서를 토대로 문화사의 조류를 조망해낸다. “선학들이 이미 밝혀 놓은 거시적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연구를 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큰 담론을 자유롭게 이야기하지만, 그것을 뒷받침하는 사례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증빙자료가 없는 보고서와 같지요. 조그마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작은 연구의 성과들이 차곡차곡 축적되다 보면, 새로운 사실을 재발견하거나 기존의 가설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연구 자료가 많아서 누구든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매력이 없을 겁니다. 감춰져 있는 걸 찾아내고, 몰랐던 세계로 접근해 들어가는 과정이 미술사 연구의 묘미일 테니까요. 민화를 연구하면 할수록 신비로운 세계를 체험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보람도 크고요.”
책의 내용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사료로는 외국인들이 수집해 간 민화를 꼽았다. 가사집 《한양가漢陽歌》에 기록된 그림의 실체를 약 40년 뒤 외국인들의 수집해 간 민화에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이 소장 중인 <계견사호>(도5)가 대표적인 사례로 19세기 말 프랑스의 인류학자 샤를 바라가 한국을 방문하여 수집한 그림이다. 미국인 버나도와 이탈리아 영사를 지낸 로제티(Carlo Rossetti)의 수집품에서도 당시에 그려진 계견사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윤진영 부장은 한국민화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동덕여자대학교 대학원 민화학과에서 ‘민화 조형론’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또한 미술사가 이전에 동양화를 전공한 미술학도 출신이기도 하여 “책을 준비하다보니 절로 붓이 들고 싶어질 때가 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연구자의 냉철한 시선으로, 때로는 작가의 열정적인 가슴으로 저술한 그의 책을 통해 ‘21세기 민화의 시대’에 대한 뿌리를 이해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민화의 시대>

35,000원
월간민화 02-765-3812



미술사학자 윤진영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미술사학 전공으로 석·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서울시 문화재전문위원, 한국민화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학 중앙연구원 한국학사전편찬부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동덕여자대학교 특수대학원 민화학과 겸임교원, 한국미술사학회 총무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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