ë¯¼ì¤‘ì˜ ì‚¬ëž‘ì„ ë°›ì§€ 못한 민화 – 곽분양향ë½ë„ 郭粉陽享樂圖 초본

ì´ë²ˆ 시간ì—는 지난 ì‹œê°„ì— ì´ì–´ 곽분양향ë½ë„郭粉陽享樂圖 ì´ˆë³¸ì„ ì‚´íŽ´ë³´ê³ ìž í•œë‹¤.
ì´ë¥¼ 통해 ë¯¼í™”ì˜ ì£¼ì œê°€ ì¼ë°˜ ë¯¼ì¤‘ë“¤ì— ì˜í•´ 어떻게 ì„ íƒë˜ê³  재ìƒì‚°ë˜ì—ˆëŠ”ì§€ 유추할 수 ìžˆì„ ê²ƒì´ë‹¤.


곽분양향ë½ë„는 언제부터 쓰였나

ìš°ë¦¬ë‚˜ë¼ ê³½ë¶„ì–‘í–¥ë½ë„郭粉陽享樂圖는 ì¤‘êµ­ì˜ ê·¸ë¦¼ì„ ìž¬êµ¬ì„±í•œ 작품ì´ë¼ í•  수 있다. 조선시대 ì´ˆê¸°ì— ì´ë¯¸ ê³½ë¶„ì–‘ì˜ ì¼ì„ 근거로 종묘사ì§ì˜ ì¼ì„ 논하는 ìž¥ë©´ì´ ã€Šì¡°ì„ ì™•ì¡°ì‹¤ë¡æœé®®çŽ‹æœå¯¦éŒ„ã€‹ì— ê¸°ë¡ë˜ì–´ 있으며, ì¡°ì„  í›„ê¸°ì— ì´ë¥´ë©´ ê³½ë¶„ì–‘ì˜ ì´ì•¼ê¸°ë¥¼ 다룬 《곽ìžì˜ì „》ì´ë¼ëŠ” í•œê¸€ì†Œì„¤ì´ ë“±ìž¥í•  ë§Œí¼ ì¡°ì„ ì—서 ê³½ë¶„ì–‘ì˜ ì´ì•¼ê¸°ëŠ” ì¸ê¸° 있는 소재였다. ë”°ë¼ì„œ ì ì–´ë„ 조선시대부터는 왕실ì—서 곽분양향ë½ë„를 ì‚¬ìš©í•˜ì˜€ë˜ ê²ƒìœ¼ë¡œ ë³´ì´ë©°, ì¡°ì„  후기ì—는 왕실ë¿ë§Œ ì•„ë‹ˆë¼ ì‚¬ëŒ€ë¶€ê°€ì—ì„œë„ ê³½ë¶„ì–‘í–¥ë½ë„ê°€ 사용ë˜ì—ˆìŒì„ 알 수 있다.
곽분양향ë½ë„는 서민들ì—게까지는 전파ë˜ì§€ ì•Šì€ ê·¸ë¦¼ 주제였다. ì´ëŠ” 현재 남아있는 곽분양향ë½ë„ ì´ˆë³¸ì˜ í˜•íƒœì—ì„œë„ ë³¼ 수 있듯ì´, 그림 ì£¼ì œì˜ íŠ¹ì„±ìƒ ë§¤ìš° 화려하고 세밀하게 그려져 있어 ì´ë¥¼ 그리는 ì¼ì´ ì¼ë°˜ 화가들ì—게는 ê²°ì½” 쉽지 ì•Šì€ ìž‘ì—…ì´ì—ˆê¸° 때문으로 추정ëœë‹¤.그러나 ì´ë³´ë‹¤ ë” ì¤‘ìš”í•œ ì´ìœ ëŠ” 곽분양처럼 ì‚¬íšŒì  ì§€ìœ„ê°€ 올ë¼ê°ˆ 수 있다는 소ë§ì´ ì¡°ì„  후기 ì¼ë°˜ 민중들ì—게 ì´ë¯¸ 실현 불가능한 꿈으로 ì¸ì‹ë˜ì–´ 외면 받았기 때문ì´ë‹¤. ì´ëŸ° ì´ìœ ë¡œ 곽분양향ë½ë„는 왕실ì—서 신하ì—게 í•˜ì‚¬í–ˆë˜ í•˜ì‚¬í’ˆê³¼, 사대부가ì—서 주문하여 그려진 ê·¸ë¦¼ì˜ í˜•íƒœë¡œë§Œ 그려지게 ë˜ì—ˆë‹¤. ë˜í•œ ê°™ì€ ì´ˆë³¸ì„ ì‚¬ìš©í•˜ì—¬ 그렸기 때문ì—, 현재 남아있는 곽분양향ë½ë„ë“¤ì´ ê¸°ë³¸ì ì¸ 구ë„와 ì¸ë¬¼ 배치는 ê±°ì˜ ë™ì¼í•˜ê³ , 세부 묘사와 위치ì—서만 ì•½ê°„ì˜ ì°¨ì´ë¥¼ ë³´ì´ê³  있는 ê²ƒì„ ë³¼ 수 있다.

곽분양향ë½ë„ì—서 나온 그림, <ë°±ë™ìžë„>

곽분양향ë½ë„ì— í™”ë ¤í•˜ê²Œ í‘œí˜„ëœ ê³½ë¶„ì–‘ì˜ ìž…ì‹ ì¶œì„¸ê°€ ì¼ë°˜ 민중들ì—게 외면 받는 와중ì—ë„, ê³½ë¶„ì–‘ì˜ ë‹¤ìžë‹¤ì†å¤šå­å¤šå­«í•œ ì‚¶ë§Œí¼ì€ ë¯¼ì¤‘ë“¤ì˜ ë§ˆìŒì„ 움ì§ì˜€ë‹¤. 곽분양향ë½ë„ì—서 ë¶„ë¦¬ëœ ë°±ë™ìžë„百童å­åœ–는 ì´ëŸ¬í•œ ë¯¼ì¤‘ë“¤ì˜ ì—¼ì›ì„ ë°˜ì˜í•˜ì—¬ 탄ìƒí•˜ì˜€ë‹¤. ë°±ë™ìžë„ ë˜í•œ 곽분양향ë½ë„처럼 ì›ëž˜ëŠ” 왕실ì—서 종묘사ì§ì˜ 번ì˜ì„ 기ì›í•˜ê¸° 위해 사용ë˜ì—ˆë˜ 그림ì´ë‹¤. ë°±ë™ìžë„를 주제로 한 ê·¸ë¦¼ì€ ë³‘í’으로 하사ë˜ì—ˆì„ ë¿ ì•„ë‹ˆë¼ ë¶€ì±„ì˜ í˜•íƒœë¡œë„ ë§Žì´ í•˜ì‚¬ë˜ì—ˆëŠ”ë°, ì´ ë•Œ ë°±ë™ìžë„ë¼ëŠ” 주제가 민간으로 í¼ì ¸ë‚˜ê°”ìŒì„ 추정할 수 있다. ë°±ë™ìžë„ì˜ ì¸ê¸°ëŠ” í•˜ëŠ˜ì„ ì°Œë¥¼ ë“¯ì´ ë†’ì•„ì ¸ 왕실ì—ì„œë„ ê³½ë¶„ì–‘í–¥ë½ë„보다 ë§Žì´ ì‚¬ìš©ë˜ì—ˆì„ ë¿ ì•„ë‹ˆë¼, ì „ë¼ë„ ë•… ëì´ë¼ í•  수 있는 전남 ê°•ì§„ì—ì„œë„ ë°±ë™ìžë„ê°€ 그려져 사용ë˜ì—ˆë‹¤ëŠ” 기ë¡ì´ ë‚¨ì•„ìžˆì„ ì •ë„다.
곽분양향ë½ë„는 ì¼ë°˜ 민중들ì—게 ë„리 사랑받지 못했다. 그러나 곽분양향ë½ë„ì—서 파ìƒë˜ì–´ 나온 ë°±ë™ìžë„는 우리 민중들 ì „ì²´ì˜ ë§ˆìŒì„ 움ì§ì—¬ 사랑받았다. 그러나 ë°±ë™ìžë„는 현재를 살아가는 ì‚¬ëžŒë“¤ì˜ ë§ˆìŒì„ 움ì§ì´ì§€ëŠ” 못한다. 모든 ì¼ì´ ì´ì™€ 같아서, ì–´ë–¤ ì¼ì´ 성공하기 위해서는 ê·¸ ì¼ì„ ë°”ë¼ë³´ëŠ” ì‚¬ëžŒë“¤ì˜ ë§ˆìŒì„ 움ì§ì¼ 수 있어야 가능하다는 ê²ƒì„ ê³½ë¶„ì–‘í–¥ë½ë„ê°€ 보여주고 있는 것ì´ë‹¤.


글 ì´ë‹¤ì •(가회민화박물관 학예사)

ì €ìžì—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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