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성된 밑그림, 완성된 채색 영모도 초본Ⅰ

이번 시간에 소개할 초본은 새와 동물을 소재로 그린 영모도 초본이다. 영모翎毛는 새 깃과 짐승 털이라는 뜻으로, 날짐승과 길짐승을 가리킨다. 이 글을 보는 시간이 채색된 초본에 담긴 초본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토끼와 새가 있는 영모도 초본

이번 시간에 소개할 초본은 일본민예관에 소장된 영모도翎毛圖 초본(도1)이다. 이 초본에는 토끼 두 마리와 새 다섯 마리가 그려져 있는데, 초본 맨 아래에 있는 새 한 마리를 제외한 모든 동물의 모습이 여러 각도에서 본 부분으로만 그려져 있다. 또한 도상을 일정한 구도로 배치한 것이 아니라 층층이 쌓아 나열했다. 이러한 특징으로 보아 이 그림은 완성된 그림이 아니라 도상을 연습한 초본임을 알 수 있다.
이 초본은 도상의 세부 구도를 잡기 위한 목적으로 그려 채색 연습을 한 것으로 보인다. 초본 속 한 올 한 올 촘촘하게 그려진 토끼의 털과 새의 깃털, 화려한 색채는 마치 완성된 작품을 보는 것 같다. 과거에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한 다른 초본들 중에도 화면 일부에 채색이 남아있는 초본이 있지만, 이렇게 화려하고 꼼꼼하게 채색된 것은 없다.

화려한 채색, 과연 초본이 맞을까?

영모도 초본을 보고 있으면 ‘세밀하게 채색된 그림을 초본으로 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그래서 경기도박물관에 소장된 이돈상 유지초본(도2)의 유물을 소개하여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이 초본은 초상화 초본으로, 유지油紙에 먹선을 그린 후 배채법背彩法으로 관복과 관모는 물론, 얼굴색까지 꼼꼼하게 채색하였다.
초상화는 우선 종이에 윤곽선을 그린 후 유지에 본을 뜨고, 유지초본을 바탕으로 비단에 본을 뜨고 채색을 하여 완성한다. 일반적으로 유지초본에는 채색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 한지와 달리, 유지에 채색하면 뒷면에 칠한 색이 앞면에 은은하게 비쳐 보이기 때문이다. 유지초본에 채색해서 실제로 비단에 채색했을 때 어떻게 나타날지를 예상하고, 오차를 줄여 비단의 낭비를 막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일반 한지에 채색한 초상화 초본은 찾아보기 어렵다.
배채법으로 그리지 않는 민화는 굳이 작품을 그리기 전에 채색을 연습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초상화 제작방식을 살펴보면, 민화를 그릴 때도 완성작의 모습을 가늠해보기 위해 초본 위에 채색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도1은 밑그림 자체가 완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초본이 분명하지만, 이 초본을 통해 채색이 세밀하게 잘 되었다는 이유만으로는 초본의 여부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작품을 위한 재료인 동시에 하나의 미완성 그림인 초본 자체의 예술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한편, 이번에 소개한 영모도 초본처럼 우리나라 유물 중에는 현재 해외에 있는 유물들이 상당하다. 유물들이 반출된 경로도 다양한데, 다음 시간에는 이 영모도 초본이 언제 어떻게 일본으로 반출되었는지 단서를 찾아보도록 하겠다.


글 이다정(가회민화박물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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