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학자 안휘준, ‘민화, 한국적 특성 가장 많이 담고 있는 압도적인 그림’

안휘준 한국미술사학
미술사학자 안휘준

미술사가 안휘준. 미술사학을 전공한 이들은 물론이고 어떤 경로로든 미술사를 접한 이들은 거의가 당대의 미술사학자 안휘준의 연구성과에 힘입은 문화적 수혜자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35년에 걸친 긴 교수 생활을 마감하고 2006년 강단에서 은퇴한 후에도 그는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국미술사의 원로에게 듣는 전통 민화와 현대 민화 이야기.

항산 안휘준 국외소재문화재단 이사장은 우리나라 미술사학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우뚝한 봉우리다. 물론 그의 겸허한 말처럼 학문의 진보란 어떤 한 사람의 뛰어난 능력만으로는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대단한 업적도 선학들의 축적된 연구 성과가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진리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항산이 이 나라 미술사학에 남긴 발자취가 유례없이 크고 선명하다는 데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항산은 1967년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 미술사에 관한 한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학부였던 하버드대에서 수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회화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후 그는 국내에 돌아와 대학 강단에 서서 수많은 후학들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학문적 체계나 교수 방법에서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국내 미술사학계에 자신이 체득한 이론과 방법론을 한국적 토양에 맞게 전파하고 이식시킴으로써 한국 미술사학의 학문적 전문화와 교육과정의 체계화에 크게 공헌했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한국미술사학계에 남긴 가장 빛나는 족적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뛰어난 미술사학자로서 열정적인 학문 연구를 통해 한국 미술사학의 내용을 살찌우는데도 큰 기여를 했다. 무려 40여 종의 저서와 1백 40여 편의 학술 논문, 그리고 5백여 편에 이르는 논설 등 좀처럼 믿어지지 않을 만큼 방대한 논저의 양이 그 일차적인 증거다. 더욱이 그의 쉼 없는 학문 활동은 노익장을 과시하며 여전히 현재 진행중이다.
평생을 학자이자 교육자로서 대학 강단에서 보낸 그는 지난 2006년, 홍익대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로 이어진 약 35년간의 긴 교수 생활을 마감하고 정년퇴임을 했다. 그러나 그는 정년 퇴임을 한 이후에도 ‘공부와 연구할 틈이 없다’며 불평 아닌 불평을 할 정도로 바쁘고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미술사, 그 중에서도 회화사의 우뚝한 대가에게 우리 민화의 과제와 미래의 비전에 대해 듣는 귀중한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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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2006년을 끝으로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하셨습니다. 지금은 명예교수로 계시는데, 요즘도 바쁘게 지내시는지요?
A. 퇴임 후에 더 바빠졌어요. 지금 일하고 있는 국외소재문화재 재단이 설립된 지 1년 반 정도가 지났는데 처음이라 그런지 업무가 아주 많아요. 학자의 소임은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인데, 정작 해야 할 일을 못하니까 영 조급하고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Q. 일각에서는 한국 미술사학이 안휘준 선생님을 기점으로 전후로 나뉜다는 말을 할 정도입니다. 선생님이 한국미술사학계에 가장 크게 기여한 점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A. 그런 말이 있는지도 모르지만 턱없는 과찬입니다. 학문이라는 것은 누구 하나에 의해 갑작스레 발전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저 이전에도 평생을 학문 연구에 헌신한 훌륭한 학자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다만 현대 미술사학의 체계적인 이론이나 방법론 등은 접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는 미흡한 점이 있었을 겁니다. 아마도 스승인 삼불 김원용 선생이나 여당 김재원 선생님 같은 분이 제게 유학을 강권했던 것도 ‘장차 그 부족한 부분을 네가 채워봐라’ 하는 분부였을 거라고 믿습니다. 다행히 제가 유학했던 하버드대학의 미술사학과는 도서, 시설, 교수진 등 모든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제가 작게나마 기여한 바가 있다면, 거기서 접하고 배운 체계적인 이론을 우리 미술사에 접목, 미술사학의 학문적 전문화와 체계화에 일정 부분 도움을 준 정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Q. 미국에서 공부하셨으면서도 한국회화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으셨습니다. 미국에서 ‘조선시대 산수화’에 대해 논문을 쓰기가 쉽지 않으셨을 텐데, 처음부터 한국회화사를 전공하실 생각으로 하버드에 가셨는지요?
A. 제가 하버드에 갔을 때 록펠러 3세 재단 장학금(JDR3 Fund)을 받았습니다. 당시 재단 디렉터인 포터 맥크레이와 김재원 선생이 한 약속이 있었다고 해요. “안휘준은 반드시 한국에 돌아와 대학 강단에서 미술사학의 방법론과 체계를 정립하는 데 기여하게 해야 한다”는 거였지요. 그러니 한국미술사를 전공한 것은 필연이었어요. 그런 점에서 저는 제 뜻보다는 한국미술사의 장래를 내다본 스승님들에 의해 ‘만들어진 미술사가’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Q. 한국에 돌아와서 갓 대학 강단에 서신 1970년대 중반만 해도 미술사 교육의 여건은 상당히 열악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땠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A. 그때는 학부에는 아예 미술사학과가 없었고, 홍익대학교 대학원에 미학미술사학과가 있었어요. 그러니 교육여건은 말할 바가 못 되었죠. 환등기가 한 대 있기는 했는데, 스크린이 없어 칠판에 백지를 붙이고 수업을 진행했지요. 회화의 양식 등을 비교하며 설명하려면 두 장의 사진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데, 환등기가 한 대 뿐이라 그게 안됐어요. 게다가 교수가 적어 정확히 내 전공이 아닌 과목까지 강의를 맡아야 했지요. 그러나 그런 여건 속에서도 강의는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15주 커리큘럼이라면 17주 분을 강의했습니다. 체계적인 방법론에 따라 논리적인 접근을 하도록 독하게 훈련시켰습니다. 나중에 많은 제자들이 외국에서 유학을 했는데, 거기 가서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수업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어요.
Q. 이제 본론인 민화에 대한 견해를 여쭙겠습니다. 적절한 표현인지 모르지만, 민화는 한동안 미술사학계로부터는 다소 폄하되어온 감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미술사학자의 입장에서 민화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A. ‘폄하’라는 말은 아마도 큰 오해일 겁니다. 문인화가 우리 그림이라면 민화 또한 우리의 그림입니다. 다 각자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데, 특별히 한 쪽을 폄하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학문의 대상’으로 볼 때는 몇 가지 적절치 않은 부분이 있어 쉽게 회화사의 영역으로 포함시키기 어려운 점은 있습니다. 예컨대 대부분의 민화는 작가가 분명치 않고, 밝혀졌더라도 기준작을 선정하기 어렵습니다. 또 절대 연대와 양식의 변화 등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미술사 연구의 기초적인 요소거든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민화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민화는 이른바 주류 회화를 압도하는 힘과 매력이 있는 미술품이라고 생각합니다.
Q.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민화의 압도적인 힘, 혹은 민화가 한국미술사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A. 앞서 말했듯, 학문의 대상으로서는 좀 불리한 조건을 갖고 있지만 적어도 한국적 특성과 독특한 색채 감각에서는 일반 회화보다 훨씬 큰 호소력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일반회화가 아카데믹한 연구자의 우회적 화법(話法)이라면 민화는 직설적인 화법이에요. 한국적 특성을 더 진하게 갖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한국인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한국미술사에서 민화가 지니는 의미라고 봐요.
Q. 그렇다면 연구 대상으로서의 민화가 아닌 작가에 의해 그려진 ‘현대의 민화’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A. 그림은 학문의 대상이기 이전에 생활 속에서 즐기고 향유하는 예술입니다. 우리나라는 그림을 걸어놓는데 아주 인색해요. 벽 전체가 빈 공간인 고대광실에 그림 하나 걸려있지 않은 집이 아주 많습니다. 저는 이러한 풍토를 개선하는 데 현대의 민화가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봐요. 그리는 인구가 많은 만큼 그림도 많고 또 친근합니다. 값도 비싸지 않고, 심지어는 친구나 이웃에게 기증할 수도 있지요. 그림을 즐기는 풍토, 그런 환경을 만들어가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민화라고 봅니다.
Q. 그렇다면 현대 민화는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까요?
A. 민화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옛 작품을 정확히 모사하는 임모(臨摹)가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완벽하게 습득했다면 임모를 벗어나 창작을 지향해도 좋다고 봅니다. 그건 작가의 권리이지요. 유물이 된 옛 민화와 현대의 민화는 이름만 같을 뿐, 작가의 신분부터가 다릅니다. 옛 민화는 떠돌이 환쟁이가 그렸다면 현대의 민화작가들은 대체로 중산층 이상이고 배움도 깊습니다. 그러므로 민화작가들은 민화의 기법을 토대로 ‘한국미술사’에 포함될 수 있는 ‘작품’을 지향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참고로 한국미술사에 포함될 수 있는 그림이 되려면 몇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합니다. 우선 예술로서 창의성과 고유성이 발견되어야 하고 한국의 미술인만큼 한국이라는 시공간과 문화적 요소가 반영돼야 합니다. 또 작품을 통해 작가가 살았던 시대의 상황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등입니다. 민화도 얼마든지 한국미술사에 편입되는 그림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Q. 마지막으로 민화 연구 분야의 발전을 위해 당부하시고 싶은 고견이 있다면?
A. 요즘 민화를 다루는 학술지를 가끔 보는데, 아주 기분이 좋아요. 미술사, 특히 회화사를 전공한, 좋은 학자들이 민화의 연구에 관심을 많이 기울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주 고무적인 일입니다. 이런 학자들이 많이 늘어나면 민화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이 모색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학문적 연구 분야에서도 민화의 앞날은 밝다고 봅니다.

 

인터뷰 : 유정서 편집국장
정리 : 한명륜 기자
사진 : 박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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