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학자 강우방의 화조도 특강 ⑧
강릉 보자기의 경이적인 만물생성도 萬物生成圖

강릉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강릉 자수 보자기는 고유의 독창적인 조형을 표현하고 있다.
이 조형은 고차원적 세계를 표현했다는 점에서 민화 화조도와도 상통한다.
채색분석을 통해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한다.


강릉보자기를 아는 사람은 있지만, 모르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모두가 꽃과 새라고 부르지만, 자수로 만든 실용적인 보자기여서 작품이라 여기지 않습니다. 자수는 수공예품이라 민속품으로 치부하고 말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민화라고 부르는 19세기 전반全般~20초에 걸쳐서 출현한 회화는 이미 필자가 밝혔듯이 우리나라 한국 회화사의 금자탑이라 할 수 있지요. 고구려 무덤 벽화에서 아무도 풀지 못했던 기호 같은 조형들을 필자가 처음으로 해독하여 해석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고려불화와 조선불화를 처음으로 완벽히 해독하였으며 그런 다음에 민화가 비로소 보여 해독하고 해석할 수 있을 만큼 민화는 2,000년 전통을 머금고 있기에 아무나 범접할 수 있는 그림이 아닙니다.

화조도는 단지 꽃과 새 그림이 아닌 고차원의 작품

제 연재에서 다루는 화조도 민화는 궁중회화의 이른바 화조도와 주제가 같아 함께 다루고 있지만 표현방법은 전혀 다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서민이 그린 그림에는 상징이 결여되어 있어서 그런 그림과도 구별하여야 합니다. 민화는 화원 출신이나 화승이 일정한 고정된 규범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하게 자신의 표현의지를 마음껏 발휘하지만 민화의 표현원리는 반드시 지키는 그림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요즈음 궁중회화와 함께 다뤄 큰 혼란이 일어나고 있으며, 궁중회화 같은 대작을 모사해야 공모전에서 큰 상을 받고 당장 민화작가라 불립니다. 그러나 1918년 10월부터 지금까지 연재해온 <민화 화조도>는 단지 꽃과 새 그림이 아니라 <만물생성도萬物生成圖>라는 고차원의 그림임을 증명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민화와 비교하는 또 다른 장르가 있으니 바로 <꽃과 새> 자수입니다. 자수로 만든 병풍을 보면 주제는 민화 화조도와 똑같습니다. 다만 그림이 아니어서 함께 다루지 않을 따름입니다. 그러나 <강릉 자수 보자기>는 다릅니다. 강릉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하고 독창적인 조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알 수 없는 수수께끼입니다. 지금까지 화조도만 다루어오다가 강릉 자수보자기를 보니 이미 전에도 알아보았지만 매우 충격적인 조형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강릉 자수 보자기는 해외의 유명화가들, 예를 들면 파울 클레(Paul Klee)의 작품들과 비교해보아도 조형과 구성 면에서 보다 뛰어납니다.

민화는 세기말의 한국회화

회화사 전공자들은 민화를 읽어내지 못합니다. 이들은 주로 조선시대 문인화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문인화는 우리나라 전통과 관계가 그리 깊지 않지요. 조선 문인화는 그 당대의 중국의 문인화와 관련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고구려 벽화, 고려 불화, 조선불화를 전혀 읽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민화를 읽어내어 해석할 수 없습니다. 회화사 전공자들이 쓴 민화에 대한 논문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까. 흔히 작가를 몰라서 회화에서 다를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뛰어난 화원 출신의 그림은 작가 이름을 쓰지 않았다고 다루지 않을 것인가. 그 수많은 위대한 고려와 조선의 도자기는 장인의 이름을 모른다고 다루지 않을 것인가. 훌륭한 금속공예품은 어찌 할 것인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조각품들 가운데 하나인 통일신라시대 석굴암의 조각과 건축은 조각가의 이름도 건축가의 이름도 모른다고 한국 미술사에서 다루지 않을 것인가.
최근 중국에서 펴낸 미국과 유럽에 산재해 있는 고려불화를 집대성해서 책을 냈는데, 책 이름이 <高麗畵(고려화)>입니다. <고려불화>가 아닙니다. 이미 필자도 그런 주장을 해왔으나 그 책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랐지요. 이미 중국은 미술사학이 어떤 학문인지 아는구나 생각했지요. 서양의 시스틴 성당의 천정벽화를 보고 기독교회화라고 부르지 않고,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보고 기독교 조각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필자는 석굴암의 조각과 건축을 불상조각이나 불교사찰이라고 부르지 않고 그저 한국의 조각과 건축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한국 불교조각사>가 아니라 <한국 조각사>입니다. 민화도 마찬가지로 민화가 아니라 <세기말의 한국회화>라 불러야 합니다. 대한제국의 멸망과정을 거쳐 일본 강점기시대를 거치는 암울한 시대에 전 국민이 향유했던 매우 고차원적인 형이상학적인 회화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독창적 표현형식과 고차원의 상징을 보여주고 있는데 몰라서가 아니고 참으로 알고 보니 불가사의한 그림들입니다.

강릉 자수 보자기 채색분석

강릉 자수 보자기가 하나 있습니다. 무엇이든 쌀 수 있는 보자기이지만, 아무 물건이나 싸는 보자기가 아닌 듯싶습니다. 아마도 딸이 시집갈 때 혼수품을 쌌던 보자기가 아닌가 합니다. 그렇듯 어머니의 정성이 한 땀 한 땀 서려 있는 고귀한 작품입니다. 그러나 여러 색으로 수놓아 아름답지만 복잡하여 눈으로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참으로 치밀하게 색실을 골라서 꼼꼼히 수놓은 특별한 보자기입니다. 요즘 문득 보자기가 만병임을 알아차리고 크게 놀란 적이 있지만 그 설명은 훗날 하기로 합니다. 채색분석해 보아야 이 자수보자기의 조형이 어떤 원리에 따라 전개되어 가는지 파악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교하게 백묘를 떠야 합니다. 그 백묘를 올리니 여러 분들도 채색분석해 보세요.

① 우선 시작점을 찾아야 합니다. 중심에 작은 원이 보입니다.
바로 보주입니다! 그 보주로부터 사방팔방으로 영기문이 뻗쳐 나갑니다.
② 먼저 한 줄만 채색분석해보기로 합니다. 중심의 보주로부터 면面으로 된 제2영기싹이 연이어 생겨납니다.
③ 그런데 사방으로 뻗쳐나갈수록 공간이 넓어지므로 제2영기싹도 면面도 넓이지고 크기도 커지므로
치밀하게 계산하면서 영기문을 수놓아야 합니다.
마침내 그 영기문 끝에서 하나의 작은 영조靈鳥가 영기화생靈氣化生합니다.
이처럼 영기화생의 광경을 분명히 보여주는 조형이 있을까요.
그래서 민화가 어렵기도 하지만 영기화생을 위대한 조형으로 정확히 표현하고 있어서 항상 감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둥근 모양은 무엇인지 아직 밝히지 못하고 있다. 씨방 같이 보입니다만. 잘 모르겠습니다.
④ 중심의 보주로부터 뻗쳐 나오는 영기문 두 줄을 더 채색분석해보면 더욱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영기문의 전개와 똑같습니다. 끝부분에서 앞에서처럼 세 갈래로 갈라지는데,
왼쪽으로부터 큰 조형으로 수놓은 무량보주가 솟아나와 이 영기문이 보주목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영기문 끝에서는 영조가 영기화생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영기문도 왼쪽부터 영조가, 그 다음에는 크기가 작은 두 영조가 마주보면서 영기화생하고 있습니다.

⑤ 그러면 전체를 채색분석해 보겠습니다.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보주에서 사방팔방으로 뻗쳐나가는 영기문은 모두 8개입니다.
그런데 사방으로 큰 무량보주를 표현하여 전체에 질서를 갖추게 합니다.
8갈래의 영기문은 다시 작은 3갈래로 갈라지는데 그 갈라지는 곳마다 영조와
무엇인지 모를 나비 같은 모양, 그리고 둥근 씨방 같은 모양이 영기화생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조형으로 단지 꽃과 새가 아닙니다.
보주로부터 발산하는 강력한 영기문에서 만물이 화생하는 만물생성도萬物生成圖입니다.
⑥ 채색분석한 것을 반전시키면 분위기나 느낌이 다르고 환상적입니다.
바로 만다라로 변신합니다.
⑦ 그러면 면으로 된 영기문으로 선線으로 바꾸어 보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우선 부분을 그렇게 바꾸어 보겠습니다.
그러면 영기문의 전개원리를 좀 더 쉽게 파악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니 여러분도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⑧ 전체를 선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니까 중심의 보주에서 8개의 보주목이 화생한 광경을 이렇게 표현했고
끝의 가지마다 다른 모양의 영조들이 깃들고 있고, 나비 모양들도 날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바라보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지만, 필자의 이론으로 바라보면
보주에서 나온 영목靈木은 보주목이 되어 만물이 화생하는 만물생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⑨ 그렇게 채색분석한 것을 반전시키면 더욱 파악이 쉽고 훨씬 환상적입니다.

강릉 보자기는 평범한 보자기가 아닙니다. 보주 안에 가득 찼던 수놓은 일체가 보주 밖으로 뻗쳐 나와 만물이 생성하는 장관을 이루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자수그림은 분명히 민화 작가가 밑그림을 그려줬음에 틀림없습니다. 필자는 세계미술을 섭렵해 온지 오래 되었으나 이런 고차원의 조형과 상징을 표현한 작품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경이적인 조형은 아무나 생각해 내거나 그리지 못합니다. 강릉지방의 이름 감춘 민화 작가가 밑그림을 그려주었다고 확신합니다.


글·그림 강우방(일향 한국미술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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