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학자 강우방의 화조도 특강 ① – 민화의 세계는 영화된 세계

이번 호부터 일향 한국미술사연구원 강우방 원장의 민화 특강을 연재한다. 국내 대표 원로 미술사학자로 손꼽히는 그는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장르와 국적을 불문하고 미술사를 연구하며 심오한 조형세계를 탐구해왔다. 강우방 원장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민화에 표현된 조형은 선 하나라고 아무렇게나 그린 것이 없다. 현실 속 사물이 아닌, 영화靈化된 사물을 표현하기 위해 그 나름의 철저한 선과 모양의 전개 원리가 있기 때문. 강우방 원장의 해석을 통해 민화의 놀라운 조형 세계를 탐험해보자.(편집자주)


꽃과 새, 꽃과 나비, 꽃과 벌, 꽃과 꽃등에 등 꽃에는 새와 갖가지 곤충들이 항상 날라든다. 사람들은 이러한 광경이 너무 익숙해 어른이 되어도 꽃에는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길을 가다가 허리를 굽혀 꽃을 촬영하고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들은 내가 무슨 꽃을 찍는 데는 관심이 없고, 사진을 찍는 내 모습만 신기한 듯 바라보고 지나간다. 갖가지 색으로 아름다운 꽃을 보기는 보지만 아무 생각 없이 집에서 기른다. 몇 년 동안 정성 기울였더니 난이 피면 감격해 할뿐이다. 봄의 촉촉한 땅에서 싹이 움트고 잎이 자라서 꽃봉오리 맺고 꽃이 지면 열매가 맺혀지며 그 안에 씨앗이 들어 있다. 사람들은 그 오랜 과정을 모르니 열매의 소중함을 모른다.
필자가 지난 3년 동안 집과 연구원을 오가며 꽃이 피는 과정을 밀착 관찰하며 많은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내 주면 꽃을 처음으로 가까이 본다고 감격해 한다. 돌이켜보면 필자 역시 평생 꽃을 온전히 보지 못하고 무심히 살았던 것 같다.
꽃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민화에 등장하는 꽃은 현실에서 보는 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

민화의 세계엔 현실 속 사물 없어

현실의 꽃과 나비, 꿀벌, 새 등을 살펴보자. 꽃과 나비는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도1) 나비는 꽃에 사뿐히 앉고, 꽃은 나비에게 안식처를 제공한다. 꽃은 나비에게 꿀을 제공하여 생존을 책임지며 나비는 그 대가로 꽃의 생명을 대대로 물려주는 숭고한 일을 해낸다. 꽃은 자식을 생산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만든 식물의 생식기이다. 꽃이 피고 꽃가루가 성숙하면 알세포와 만나 수정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꽃가루는 이동이 불가능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 꽃가루를 운반해 줄 대상으로 선택한 것은 이동이 자유로운 곤충이다. 곤충을 꽃가루 운반자로 선택한 꽃을 ‘충매화蟲媒花’라고 한다. 충매화는 꿀벌을 유인할 꿀을 만든다.
꽃은 고유의 짙은 향을 발산하여 곤충을 끌어들인다. 꽃의 향기는 꽃이 필 때 발산하므로 그때가 제일 강하다. 낮에 피는 꽃은 벌, 호박벌, 꽃등에, 나비 등의 주행성晝行性 곤충을 유인한다. 이 글의 주제가 꽃과 새인 만큼 새도 살펴보자. 온갖 새들은 열매나 씨앗을 먹고는 씨앗들이 새들의 분비물로 매우 멀리까지 퍼져 간다. 화조도에서는 주로 새를 대개 쌍으로 표현하는데 고대 문화의 발상부터 그처럼 쌍으로 나타냈다. 그 길고 긴 전통은 향후 차차 밝힐 예정이다. 다만 유의할 부분은, 민화에서 그려진 꽃과 새나 꽃과 나비 등은 현실에서 보는 것을 그린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가정교육,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등, 오랫동안 배운 지식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어서 서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민화 같은 고차원의 생명생성 사상을 다양하게 표현한 조형예술은 그간 우리가 쌓은 지식으로는 풀려지지 않는다. 지식이나 상식이 민화 속 진짜 이야기를 보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민화의 세계는 현실세계가 아니고, 영화靈化된 세계이기에 민화에 그려진 꽃과 나비, 꽃과 새 등도 영화된 것이다.

민화의 꽃은 영화된 꽃

불교의 법당, 신화의 그리스 신전, 기독교의 고딕 성당이나 이슬람교의 모스크 등, 세계의 모든 건축을 조사하면서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이 바로 꽃이었다. 그러나 그 꽃들은 현실의 꽃이 아니라 영화靈化된 꽃으로 사람들은 이를 볼 줄 모른다.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현실의 꽃과 종교 건축이나 종교 회화 등에 표현된 꽃을 구별할 수 있는 학자는 동서양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므로 대중 역시 동서양의 건축은 물론, 그림에 그려진 꽃을 이해할 리 없다. 일체의 열매나 씨앗은 ‘보주로 승화昇華됨’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씨앗이 승화 혹은 영화되어 보주가 된다’는 것은 지식으로 전달할 수 없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항상 끝없는 공부를 거치는 방법을 통해 그 내용을 인식해야 한다. 열쇠는 ‘보주’에 들어 있다. ‘보주’라는 높고 험악한 관문을 넘지 못하면 이제 다루려는 <화조도>를 이해하기 어렵다. 평생의 상식적 차원의 세계에서 다른 고차원의 세계를 안다는 것은 말 그대로 변혁이므로, 그 과정에서의 진통을 겪지 않으면 세계의 조형예술품을 만나지 못한다.

갤러리현대에서 전시한 작품 2점 분석

그러면 이제 작품들을 만나보자. 2018년 7월과 8월에 걸쳐 갤러리현대에서 <조선시대 꽃그림 민화, 현대를 만나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훌륭한 작품들을 모아서 전시했다. 그 도록에는 많은 학자들이 논문을 썼는데 모두가 문헌에서 찾은 현실에서 보는 꽃에 대한 이야기일 뿐, 화조화의 표현 양식과 상징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그러면 이를 파악하기 위해 작품 속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큰 도록 12번 작품은 8폭 병풍으로 종이에 채색한 것이다. 그림은 각각 세로 62cm, 가로 32cm다. 제1폭과 제2폭만 분석해 보기로 한다. 제1폭(도2)은 왼쪽 구석에 만병 세 개를 겹쳐 놓고 만병에서 나온 보주목 두 줄기로 가득 채우고, 오른쪽 공간에 영조靈鳥 둘이 겹쳐 있다. 새는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영화된 새다. 나무도 현실에서 볼 수 없는 보주목寶珠木이다. 만병에서 거대한 보주목이 나오는 그림은 매우 난해하지만, 채색분석해가면 그 실체가 점차 드러날 것이다.
제1폭은 왼쪽 구석에 세 개의 만병滿甁(아직 만병을 이해하지 못한 분은 필자의 저서 《民畵》 (다빈치 출판사)를 참고)이 놓여 있고, 그 하나의 만병에서 거대한 영기꽃 나무가 보주목이 되며 화생하면서 화면을 가득 채운다. 오른쪽 공간에는 영조靈鳥가 한 쌍 앉아 있다. 이 화폭의 세부로 들어가 채색분석 해보자. 필자가 개발한 채색분석법은 영화된 세계인 그림을 읽는 법이니 만큼 채색분석을 해보지 않으면 작품을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 우선 만병을 채색분석해 보자.


만병 채색분석

1 만병표면에는 영기문이 그려져 있으며, 뒤의 만병에도 연이은 제1영기싹이 그려져 있으며, 그 옆에 제3영기싹 영기문이 따로 그려져 있다.
2 대우주에 가득 찬 만병이라 그 기운을 형상화한 영기문을 만병 표면에 그린 것이다. 그 만병에서 꽃나무가 화생한다.


보주목 한 줄기 채색분석

만병에서 화생한 보주목 두 줄기 가운데 한 줄기만 그려서 채색분석 해보았다.
1 보주목의 줄기 끝은 보주로 끝난다. 중간에 꽃이 있는데 그 중심 꽃은 마치 국화모양이지만 국화가 아니고 무량보주이다.
2 줄기에 잎이 세 세 갈래로 나있는데 그것도 잎이 아니고 영기문을 구상화한 것이어서 제3영기싹으로 환원될 수 있다. 중심 무량보주에서 세 번 연이은 제1영기싹을 면으로 바꾸어 무량보주에서 사방으로 발산한다. 여기에 나비가 다가오고 있다.
3 이 조형 전체를 추상적인 영기문으로 환원시켜 보았다.


다른 줄기의 상반부 채색분석

같은 폭의 다른 줄기의 상반부 채색분석 해보았다.
1 역시 중심부에 무량보주가 있으며 다시 확산한다. 이 큰 영기꽃에서도 무량보주에서 연이는 제1영기싹이 사방으로 발산한다.
2 거기에서 잎 모양이 3개 연이어 위로 전개하는데 이 역시 연이은 제1영기싹으로 환원될 수 있다. 반대편에서 같은 조형이 일어난다.
3 그 줄기 끝에 역시 보주로 끝난다. 바로 그 보주목에서 한 쌍의 영조가 화생한다.
4 이 보주목 줄기를 추상적으로 환원시켜 보았다.
5 이를 더 단순화시켜 보았다. 이것을 바로 이전 그림과 비교해 보면 같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제2폭 하반부 채색분석

1 다음으로는 제2폭(도3)을 분석해 보자. 모두에게는 매화가 피어나는 보름달이 밝은 밤의 풍경이다. 하반부를 먼저 분석하자. 하반부에 만물생성의 근원들이 가득 하다. 조형이 전혀 다른 두 암석이 위아래로 겹쳐 있다. 아래 것은 기암괴석이요, 위에 것도 큰 암석인데 표면에 직선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태극무늬로 가득 표현했다. (노란색으로 채색한 부분)

2 고대 문명의 발상 때부터 오늘날까지 널리 유행되어 온 이 평범한 무늬가 무엇을 나타내는지는 떡살무늬에서 크게 깨친 것은 재작년 어느 날이었다. 아, 그 평범한 무늬가 순환하고 있지 않은가. 그 암석이 만물의 근원이 되는 까닭은 암반에서 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태극을 그리 많이 부여했으니 한껏 영화시킨 암석이다. 위 암석에서는 매우 작은 중층 건물이 화생하고 있다. 아마도 법당이리라. 그런데 넓은 면으로 된 조형들이 두 암석으로부터 발산하는 영기문이 아닌가. 이런 조형을 보고 무엇인지 누가 알아보겠는가!

3 그 옆에 영기문이 하나 떠 있는 것 같다. 3개의 보주를 영기문으로 다시 조형화한 것이다. 맨 위 영기문에서 연이어 또 하나의 영기문이 생기고 있다. 그리고 맨 아래 영기문에서 다시 사방으로 제1영기싹 영기문이 발산하고 있다.

이렇게 하반부에 강력한 영기문을 밀집시켜 놓고는 매화모양 보주목이 뻗어나가고 있다. 그 굵은 보주목에서 철사 같은 가는 줄기가 두 개 수직으로 뻗어 올라가고 있다. 그 한 가지만 채색분석 해보기로 한다.


제2폭 좌상 부분 채색분석

1 매화라 여기겠지만 이미 저서에서 여러 번 설명했듯이, 매화는 곧 보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조형을 띠고 있어서 보주목을 표현할 때 매화 고목을 흔히 빌려온다. 활짝 핀 매화는 국화모양처럼 곧 무량보주로 변할 수 있다. 그리고 마치 모란 모양처럼 붕긋붕긋 사방으로 확산한다. 그리고 두 나비가 날아들고 있다. 위의 나비 역시 나비가 아니고 보주의 집적이다.

2 나비의 날개에 크고 작은 수많은 보주를 부여하고 있어서 현실에서 보는 나비가 아니다. 더듬이를 3개의 제1영기싹으로 인식하여, 보주로부터 발산하고 있지 않은가. 더듬이가 3개인 나비는 현실에 없다. 아래 나비는 검은 나비로 역시 수많은 보주를 부여하여 영화시키고 있다. 더듬이가 역시 3개다. 그러면 이런 화조도는 도대체 그 기원이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가?

<다음호에 계속>


글·그림 강우방(일향 한국미술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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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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