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학자 강우방의 화조도 특강④ 장엄한 생명생성의 세계

기해년 황금돼지띠에 선물로 이 그림을 드립니다.
이 그림은 매화나무로 표현된 거대한 보주목을 중심으로 만물생성의 장엄한 풍경을 펼쳐냅니다.
단순히 현실 속 새와 꽃으로 들여다보면 절대 읽을 수 없는 은유의 세계 속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화조도’가 아니라 ‘보주목의 만물생성’이란 주제를 보이는 이 작품은 동원 이홍근(1900~1980)씨가 아들 이회림에게 1962년 동양화학 신축을 축하하며 선물했던 그림입니다.(도1-1) 참으로 새 회사의 창립에 걸맞는 그림입니다. 물론 사람들은 이 그림의 실체를 알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그림을 몰라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모든 학자들은 여기에 등장하는 나무와 꽃들과 여러 가지 새들을 현실에서 보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므로 논문으로 쓸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꽃과 그림>이라 부르고 몇 자 쓰면 끝나고 맙니다.
필자는 이 그림이 얼마나 위대한 위상을 지니고 있는지 분석하며 해석하렵니다. 병풍은 4폭이지만 내용은 하나이므로 1폭 그림이나 마찬가지여서 폭으로 치면 그림 크기는 가로 208cm이고 세로 176cm인 거대한 화폭입니다. 즉 한 화면으로 그린 것이고 또 그렇게 인식해야 합니다. 이 그림을 분석하기 위한 기초작업은 이틀이나 걸렸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중앙의 거대한 고목 매화는 우주목宇宙木, 더 나아가 보주목寶珠木임을 이미 알고 있다고 전제하고 설명할 것입니다. 처음에는 흔히 생명수 혹은 성수라고 불러오던 것을 필자가 우주목이라 부르다가 보주목으로 인식하니 많은 문제가 풀렸습니다. 이미 언급했다시피 화조도에는 반드시 한 쌍의 새가 나무, 즉 보주목 가지에 앉아 있습니다. 보주목은 필자가 붙인 이름입니다. 필자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씨앗이 보주가 되고 잎도 보주가 된다는 것을 인식하여 일체의 조형예술을 풀어내고 있어서 최초의 보편적인 미술사학 이론으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이미 저서 《民畵》(다빈치 출판사 펴냄)에서 많은 문제를 다루었으므로 한 해 쉬고 다시 계속하고 있는 연재에서는 같은 내용을 반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독자들은 그 저서를 정독하되 재독 삼독해야 할 만큼 민화는 한국미술 2000년, 더 나아가 세계미술 5000년의 전통을 머금고 있으므로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뤄진 연구 성과로는 오류만 축적될 뿐, 새롭게 밝히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오만하다고 여길지 모르나 필자가 누구도 몰랐던 조형들을 밝혔으므로, 그 과정을 누구든지 직접 배워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책에서 답을 구하려 하지 말고, 작품들에서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그림은 궁중화입니다. 궁중 화조화와 민화 화조화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민화계는 그 구분을 하지 못하여 두 가지가 뒤죽박죽입니다. 필자가 그 구별이 가능한 것은 이미 젊은 시절에 서예와 사군자, 유화와 데생을 매우 열심히 하여 화가가 되고자 했으며, 지금은 999점의 세계 미술품을 채색분석해 왔으므로, 궁중 회화와 민화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매화 고목 분석

그림 전체를 구석구석 살펴야 합니다. 전체를 하나의 화폭으로 보면, 중앙에 매화 고목이 우뚝 서고 가지가 사방으로 뻗쳐있습니다. 즉 매화는 봉오리를 맺거나 활짝 피거나 모두 보주를 상징합니다.(도1-2, 도1-3) 화조도는 은유隱喩와 환유換喩로 가득 찬 영화된 세계입니다. 민화는 무엇인지 모를 형태와 표현방법으로 자신의 영화된 세계를 숨기고 있는 고차원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저서에서 이미 매화가 보주목임을 자세하게 분명히 밝혔습니다. 고궁박물관에 가면 왕의 배면에는 일월오병봉日月五峰屛이 놓이기도 하지만, 8폭 병풍의 자수매화刺繡梅花가 있기도 합니다. 금년 초에 고궁박물관에서 자수 매화 8폭 병풍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고, 창덕궁 신선원전新璿源殿에서 모든 왕의 신위 맨 뒷부분에는 모란 모양의 4폭 병풍 영기꽃이 있지만, 오직 태조 이성계의 옆부분에만 4폭 병풍 매화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 까닭은 두 가지가 같은 상징을 띠는 즉, 만물생성의 근원이며, 왕의 존재도 만물생성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장식 병풍이 아닙니다. 선원璿源이란 ‘만물생성의 근원이란 보주’를 의미합니다. 모든 한문학자들에게 선원이 무슨 말인지 물어보세요. 보주를 모르니 아무도 정답을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매화나무가 보주목이고 세간의 전륜성왕轉輪聖王인 왕의 배후에 매화나무를 그리거나 자수로 된 병풍을 둡니다.


바위 부분 분석

가장 밑부분에는 작은 바위들을 깔았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작고 긴 바위들이 공중에 떠 있습니다. 의미를 모르면 못 그린 그림입니다. 바위는 만물생성의 근원입니다. 땅도 만물생성의 근원이어서 땅은 대모지신大母地神을 상징합니다. 대모지신은 인류가 가장 먼저 신격화神格化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맨 밑 부분에는 땅과 바위가 서로 밀착하지 않고 들뜬 채 놓여서 땅에서 거대한 매화 보주목이 화생하고, 동시에 여러 가지 나지막한 영기꽃 보주목이 화생합니다. 바위에서 연꽃모양 보주목이 화생하고, 대나무는 줄기가 없고 잎만 표현하여 지나칠 뻔했습니다. 바위들 사방으로 대나무 모양 영기문이 발산하는 형국입니다. (도2-1, 도2-2) 이런 바탕에서 거대한 매화 우주목이 화생하여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눈에 주목을 끄는 거대한 매화나무만이 보주목이 아니므로 수많은 꽃나무들을 함께 보주목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이 거대한 매화 보주목 가지마다 영조가 항상 한 쌍씩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낮은 보주목들에는 영조들이 앉을 수 없어서 부근에 앉아 있습니다. 영조들은 대개 한 쌍씩이지만 그 많은 새를 한 쌍씩으로만 그리면 단조로우니 간혹 세 영조로 혹은 하나의 영조로 그려서 단조로운 반복에 변화를 주어 어색한 점이 없습니다. 그 수많은 영조들은 모두 모양이 다르고 신비스럽습니다. 그런데 민화 연구자들은 그 새들을 현실에서 보는 새들의 이름을 붙이려 하므로 이 장엄한 광경을 보지 못합니다. 수많은 영기꽃 역시 대개 한 쌍씩 피고 있습니다. 이 역시 세 영기꽃이나 하나의 영기꽃을 함께 그려서 단조로움을 피하고 있습니다.


영기꽃 분석

그러면 바닥에 낮게 있는 영기꽃 보주목을 다루어 보겠습니다. 맨 밑 부분 중앙에 큰 영조 한 쌍에 어울리게 큰 영기꽃이 한 쌍이 활짝 피어 있습니다.(도3-1) 꽃잎들이 봉긋봉긋하게 그려서 영기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심에 작은 씨앗들을 잔뜩 그려 넣었습니다. 비록 두드러지지 않지만 이 작은 씨앗들이 보주들로 승화하기 때문에 중요한 것입니다. 오른쪽에 바위들에 붙어서 연꽃과 연잎이 피어 있는데 그 밑 부분에 물이 없지 않은가. 이 역시 현실에서 보는 연꽃이 아닙니다. 연꽃모양 영기꽃입니다.(도3-2) 왼쪽 위에 빨간 꽃이 한 쌍 피어 있고 같은 모양이지만 흰꽃이 함께 어울려 있는데 꽃잎들을 번엽飜葉시켜서 영화시켰고, 가운데 씨앗들이 가득 채웠습니다. 그 하나를 크게 확대하여 보면 분명해집니다.(도3-3-1, 3-3-2) 중앙 가운데 매화 보주목 오른쪽에 한 쌍의 영기꽃이 있습니다.(도3-4) 역시 현실에서는 보이지 않는 모양입니다. 잎은 입체적으로 만든, 보기 드문 모양이며 역시 중심에 보일 듯 말 듯 작은 씨앗들이 모여 있습니다.

국화 모양의 꽃이 한 쌍 있지만 물론 국화는 아닙니다.(도3-5) 오른쪽 아래에 분홍색 영기꽃이 활짝 피었으며 역시 중심에 씨앗들이 가득 모여 있습니다.(도3-6) 우리가 모란이라고 부르는 꽃들에도 중심에 이렇게 작은 씨앗들을 두었으므로 이런 맥락에서도 모란이 모란이 아님을 알 수 있지 않은가!
이러한 크고 작은 보주목에서, 그러나 물론 중앙의 거대한 보주목인 매화 고목이 단연 이 그림의 대표적 보주목이지만 그래도 보주가 크고 작건 같은 값을 지니듯, 보주목도 크고 작건 같은 가치를 지닙니다. 하다못해 맨 아래의 풀도 보주목이지만 따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영조 분석

그러면 이제 영조들을 다루어 보기로 합니다. 대개 한 쌍인데 흔히 암수라 부르며 금슬 좋은 부부애를 언급합니다. 그러나 영조에 무슨 현실의 새처럼 암수가 있으랴. 영화된 세계의 영조이기 때문에 암수라고 부르지 않고, 음陰과 양陽이라 부르려 합니다. 음기陰氣와 양기陽氣가 조화를 이루어 만물이 생성되기 때문입니다.
보주목 밑 부분 양쪽에 매우 크고 화려한 영조가 화생하고 있습니다.(도4-1) 양기를 상징하는 영조는 머리에 영기문 모티브가 많고 꼬리가 매우 길고 화려합니다.(도4-1-1) 이에 비해 음기를 상징하는 영조는 그리 크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습니다.(도4-1-2) 중앙에 보주목을 두고 양쪽에 이런 영조를 두는 것은 이 그림에서 주인공이라고 할 만하며 고대의 조형원리를 따르고 있으므로 매우 중요합니다. 이 화조도에서 그런 원리를 가장 충실히 지킨 조형은 바로 이 영조이므로 매우 비중 크게 그려 넣었으니, 19~20세기의 장인은 세계 전통미술 5000년의 긴 역사를 이어오고 있음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오른쪽에 물새 같은 영조가 한 쌍 있는데 역시 영기문이 보이고 옆에 더불어 연꽃 모양 영기꽃과 영기잎이 있고, 또 밑에 타원체 잎 같은 것들이 떠있는 듯하여 물을 넌지시 상징하긴 합니다.(4-2) 그림 솜씨가 매우 힘찹니다. 매화 보주목 왼쪽에 영조 한 쌍이 경쾌하게 날고 있습니다. 옆의 보주목에 앉아 있다가 문득 박차고 날아오르는 듯합니다. 머리에서 등으로 흐르는 털만이 하나는 푸르고 다른 하나는 붉습니다. 현실에서는 이런 한 쌍의 새는 없습니다.(도4-3)
세 영조가 다투듯이 함께 엉겨서 힘찬 날갯짓을 하며 함께 납니다. 그림 솜씨가 엄청납니다. 두 영조가 함께 나는데 한 영조가 합세하는 느낌이 듭니다.(도4-4) 도대체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 영조의 뻗치는 방향이 다르게 표현하여 이 화면에 일약 엄청난 역동성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붓질이 두 번 간 곳이 없이 한 번의 획으로 두 날개를 활짝 펴고 꼬리도 두 갈래로 활짝 뻗고 있음을 표현해 버립니다. 반대쪽 보주목 왼쪽에 같은 영조가 날고 있습니다.(도4-5) 같은 솜씨입니다. 현실에 없는 새를 그린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중앙부 오른쪽에 매우 화려한 영조 한 쌍이 있는데 두 영조는 같은 모양입니다. 이것을 그린 화가는 날개를 그릴 때 영기문으로 능숙하게 그립니다.(도4-6) 한 영조는 꼬리 부분이 매화 고목에 가려졌는데 공간 포치가 매우 뛰어납니다. 고목에는 많은 옹이를 큼직하게 강조하여 그 구멍으로부터 보주가 무량하게 나온다면 무리한 생각일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언급했다시피 옹이에 나무의 기운이 응결하여 있다고 하니 그저 현실의 옹이가 아니고 무량한 보주가 나오는 통로여서 이 매화나무가 보주목이란 것을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왼쪽 가에는 하나의 영조가 가지 끝에 앉아 하늘을 향하여 노래하는 듯합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영조는 각각 독특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참으로 날쌔게 그렸습니다.(도4-7) 항상 한 쌍씩 그리면 화면이 단조로우니까 가끔 하나의 영조를 그려 넣어서 매우 균형 있는 화면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응하여 정반대 쪽 가에는 작지만 화려한 영조 하나가 날쌔게 날아듭니다. 마치 위의 홀로 가지에 앉아 바라보는 영조를 향하여 돌진하는 듯 대응합니다.(도4-8) 매우 용의주도한 계산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영조가 맞은편 홀로 앉은 영조를 정조준하며 돌연 힘차게 날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화면 중앙 조금 위에 영조 한 쌍이 가지에 앉아 있습니다. 이마에 검고 굵은 솜털 같은 것이 있는 새입니다.(도4-9) 다시 왼쪽 끝의 가지에 검은 영조가 한 쌍 앉아 있습니다.(도4-10) 배와 어깨의 흰 부분과 잘 어울립니다. 다시 오른쪽 끝의 가지에 매우 큰 영조 한 쌍이 앉아 있습니다. 꼬리가 꽤 길어도 너무 깁니다. 전체가 흰색이어서 신비롭습니다. 물론 현실에 없는 영화된 새이니까요. 참으로 시원한 힘찬 선으로 꼬리를 표현하여 놀랍습니다.(도4-11) 그런 비중 있는 영조가 위쪽에 있으므로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룹니다. 화가의 용의주도한 포치가 엿보입니다.

맨 위 조금 오른쪽에 작고 검은 영조가 한 쌍 앉아 있습니다.(도4-12) 작다고 얕잡아보면 안 됩니다. 크고 화려한 영조나 작고 화려하지 않아도 값은 같습니다. 왜냐하면 영기꽃과 마찬가지로 영조도 보주와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관계라기보다는 용이나 해태나 기린처럼, 일체 영수靈獸의 몸은 보주의 집적集積이고, 입에서 무량한 보주들이 나오듯, 봉황이나 선학仙鶴처럼, 영조 역시 보주의 집적이고 입에서 무량한 보주가 나옵니다. 그런 진리를 깨쳤으므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맨 위 조금 왼쪽에 하나의 영조가 역동적인 자세를 취하며 앉아 있습니다.(도4-13) 역시 꼬리가 매우 길고 보주 표현이 있습니다. 영조의 조형에 영기문이 많은 것은 일일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연재나 저서를 통해 수없이 설명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으로 모든 조형에 대한 설명은 끝났습니다.


우주의 생성원리를 담다

결론적으로 이 그림은 매화라는 거대한 ‘우주목=보주목’을 중심으로 작은 보주목들과 함께 만물생성의 장엄한 드라마를 열어 보입니다. 이 모든 것은 ‘보주’라는 ‘우주의 순환’, ‘태극’ 등의 개념을 필자 나름으로 정립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해석이었습니다. 그런 조형적 우주관 없이는 그림이 모두 이상합니다. 못 그린 그림입니다. 바닥의 바위들도 이상하고 모든 꽃들도 현실에 없는 꽃이어서 잘못 그렸고, 영조들도 모두 이상하여 잘못 그렸다고 생각하는 회화사 전공자들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도대체 이렇게 큰 매화나무를 화면 전체에 그려 넣고 이처럼 갖가지 새들이 앉아 있거나 나는 광경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런 현실적 광경을 본 적이 없으므로 모두 ‘이상한 그림’으로 여깁니다. 말하자면 이 그림에서는 현실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고 일체가 은유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현대인은 모두가 부자, 출세, 외제차, 좋은 아파트 등을 추구하는 지극히 현실적 관념 속에서 상상력의 결핍, 철학의 부재, 메마른 감수성 등으로 이런 그림이 보이지 않는 것이고, 모든 조형을 현실에서 본 비슷한 조형들로 이끌어 설명하므로 오류만 쌓이는 것입니다. 오늘 아모레퍼시픽에서 연 전시 <조선시대의 병풍전>에서 십장생을 바라보며 장대한 우주의 생성에 대한 드라마를 체험했습니다. 마지막으로 5000년 전의 아시리아의 매우 작은 조형(도5)을 보여드리며 끝을 맺습니다.
아시리아의 이런 단순한 조형이 여러 단계를 거쳐 이 4폭 병풍의 그림으로 표현되었다면 믿을 사람이 없겠지요. 그러나 세계미술 5000년 동안의 수많은 그림들을 보면 수긍이 갈 것입니다.


글 강우방(일향 한국미술사연구원 원장)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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