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학자 강우방의 화조도 특강② – 민화 속 메타포

민화는 은유의 세계로, 현실의 세계를 온통 은유로 표현하였습니다. 시인들에게는 익숙하겠지만, 민화에서 은유를 떠올리긴 쉽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민화는 시詩에서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메타포의 세계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비록 현실의 사물을 표현한듯하나 감추어진 다른 차원의 상징이 있지요. 지금부터 민화 속 메타포 세계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화조도의 기원을 이야기하려면 조급해서는 안되고, 비록 지금 설명한다해도 무슨 뜻인지 무슨 조형인지 알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오랫동안 화조도를 다양하게 표현한 작품들을 충분히 이해하여야 합니다. <민화는 은유隱喩[메타포]의 세계>라는 것을, 이번 달 연재 소재를 분석하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그러면 화조도에는 어떤 엄청난 은유가 과연 있단 말인가. 즉 꽃은 꽃이 아니고, 꽃은 영화되어 보주를 의미하고, 잎들도 잎이 아니고 영기문을 의미하거나 보주화寶珠化하기도 합니다. 나비도 영화되어 보주를 의미하고, 꽃나무는 보주목을 뜻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어느 책에도 쓰여 있지 않아서 낯설 것입니다. 조형예술의 영화된 세계를 추구하고 있는 필자가 세계의 작품들을 분석하면서 얻은 새로운 개념이고 상징이고 메타포입니다.
필자는 민화를 채색분석하면서 항상 은유로 생각하고 이해하기 때문에 항상 즐겁고 기쁘며 정신적으로 고양되어가는 환희를 느끼므로 피로하지 않았는데, 실제로 심리치료에 민화를 적용했다는 글을 보고 몹시 반가웠습니다. 필자 역시 가정마다 민화 병풍을 둠으로써 공간에 좋은 기운이 돌게 하고 가족들에게 알 수 없는 활력을 주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사랑의 영약처럼 민화는 모든 사람들에게 신선한 경이와 기쁨을 주지만 그 영화된 세계, 즉 민화의 은유의 세계를 공부하면 훨씬 기쁨이 크고 환희심이 드높아질 것 입니다.

은유의 폭이 넓고 깊은 민화

은유는 연상이나 대조, 유사 등을 통해서 효력을 발생시키는 언어의 수사적 비유법입니다. 은유는 직유법과 같이 ‘~처럼’, ‘~듯’ 등의 연결어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그대의 눈은 샛별 같다’라는 표현은 직유지만, ‘그대의 눈은 샛별이다’라는 표현은 은유입니다. 은근한 비유로 직유보다 더 인상적인 표현이 가능한 은유는 하나의 사물을 다른 말로 이해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수사법으로 2개의 사물이나 관념 간의 유비類比로 구성됩니다. 이 유비는 특정한 다른 말의 자리에 은유적 어휘를 사용하여 전달합니다.
그러므로 철학의 일체가 은유이듯 조형예술도 일체가 은유라는 것을 민화 연구를 통하여 스스로 알게 되었으므로, 인류가 창조한 일체의 조형예술은 우리에게 기쁨과 안식을 가져오는 감격적인 조형들입니다. 현실의 꽃을 보고 마음이 치유되듯이 영화된 꽃을 보고는 더욱 차원 높은 강력한 치유가 가능하리라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세계미술 5000년의 전통을 바탕으로, 예술과 지혜를 품고 있는 민화는 특별한 위상이 있습니다. 우리가 불화를 보고 환희심을 느끼는 것과 같지만, 민화는 그 은유의 폭이 더욱 넓고 깊이가 매우 깊습니다. 화조도를 분석해 가노라면 차차 알게 될 것입니다.
필자는 여러 번 언급했던 <영기화생론>으로 풀어나가고 있으므로 새로 정립한 개념들을 파악해야 은유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즉, 영기靈氣, 영기문靈氣文, 화생化生, 용龍, 보주寶珠, 영수靈獸, 영조靈鳥, 태극문太極紋, 영수靈水 등, 영기화생론靈氣化生論을 이해하기 위한 용어와 그 내용들을 파악해야 하는데 필자의 저서 《民畵》(다빈치 출판사, 2018)에 자세히 설명했으므로 정독하기 바랍니다. 여기에서 다시 반복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화조도 8폭 병풍 중 제3폭 그림 분석

10월호에서 다룬 화조도 8폭 병풍 제1, 제2폭에 이어서 제3폭의 그림을 분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병풍을 설명할 때에는 꽃과 새, 꽃과 나비 등으로 설명하며 몇 줄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필자의 분석은 길고도 길어 처음 읽는 분들은 낯설어서 잘 읽히지 않을 것입니다. 5000년 인류의 지혜를 밝히려니 그럴 수밖에! 그러니 지금까지 사람들은 매우 중요한 화조도의 본질을 지나쳐왔던 셈이지요.


만병 채색분석

제3폭은 지난번에 분석한 그림들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을 것이지만 등장하는 나무나 영조靈鳥가 다릅니다. 우선 만병을 살펴볼까요? 만병이라고 부를 때는 화병 혹은 항아리 같은 것만 가리키지 않고 거기에서 화생하는 보주목도 포함됩니다. 모두가 화병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엄청난 메타포를 알지 못해서입니다. 만병과 화병은 다른 개념이라기보다 전혀 다른 차원의 개념입니다. 만병의 기원은 보주라고 이미 충분히 설명했습니다. 만병 표면에는 영기문이 그려져 있습니다. 채색분석해 보면 분명하게 보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1 불룩한 부분에는 중앙에 보주를 두고 보주에서 영수靈水를 상징하는 연이은 제1영기싹이 나오고 있고, 위 부분의 홀쭉한 부분에는 연이은 보주가 그려져 있습니다. 지금까지 만병 표면의 영기문이 왜 그려져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 글을 쓰면서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만병에서 흔히 모란이라고 불리는 모란 나무가 화생하여 나오는데 놀랍게도 줄기가 붕긋붕긋하게 올라갑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붕긋붕긋하게’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고구려 벽화에서 알아낸 것이지만, 붕긋붕긋한 부분은 원래 제1영기싹이 돋아나 단순화시켜 둥근 모양으로 되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제1영기싹이 보주로 변하였다는 것은 이 글을 쓰면서 처음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줄기를 타원체 보주들이 연이어 뻗어나가는 것이라는 큰 깨달음 또한 이루었습니다. 그러므로 더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둥근 보주들이 연이어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2 그리고 꽃을 영기문으로 환원시켜 보았습니다. 중앙에 타원체 보주가 있고 꽃잎모양은 없고, 바로 제1영기싹들이 발산하는 광경이었습니다. 이런 조형은 처음 봅니다. 그러니까 이런 모양과 비슷한 것을 모두 모란이라고 인식하면 안 됩니다. 바로 이 보주에서 발산하는 영기문에서 잎이 생겨납니다. 그러나 이 역시 잎이 아니고 영기문이라고 설명해왔지만 이 그림에서 더욱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3 잎맥을 지우고 그 조형을 영기문으로 환원시키면 완벽한 영기문, 즉 연이은 제1영기싹과 제3영기싹으로 환원됩니다. 그런데 타원체 보주는 원래 제1영기싹이므로 연이은 제1영기싹으로 환원시켰습니다. 이런 시도는 처음이어서 마음이 두근거립니다. 따라서 둥근 보주가 연이은 것이라고 설명하기 위하여 그린 것도 제1영기싹이라고 다시 그려보니 나무줄기와 분명히 같습니다.
이렇게 원래 그림은 구상적이었던 조형을 영기문으로 환원시켜보니, 단지 영기문(우리가 당초문이라 불러왔던 것)은 덩굴같이 생긴 것만을 연이은 제1, 제2, 제3영기싹 영기문으로 환원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체의 구상적 조형들도 모두 영기문으로 환원시킬 수 있음을 확신하는 매우 큰 깨달음을 이루었습니다. 만병에서 갖가지 모양의 영기문이 나오는 광경을 뚜렷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만병 안에 가득 찬 영화된 물인 영수靈水, 혹은 정화된 정수淨水가 무서운 기세로 솟아오르는 광경입니다!

4 이상의 과정을 더욱 단순화시켜서 그려보았습니다. 연이은 제1영기싹 영기문과 보주 하나만이 생겨나고, 보주인 만병에서 영기문이 나오므로 만병에서 생겨난 보주에서도 역시 무한하게 영기문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5 나비도 역시 나비가 아니고 몇 개의 보주로 이루어져 있고 그 하나에서 세 가닥 제1영기싹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나비에는 2개의 더듬이가 있을 뿐이며 3개인 더듬이는 없으므로 이미 나비가 아님을 암시하였습니다.

6 이것은 연이은 제3영기싹 영기문으로도 그릴 수 있습니다. 주변의 많은 설명을 지우고 나니 처음 보았던 민화로 표현한 그림은 간 곳이 없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민화를 읽는 것이 어렵고, 그 어려운 과정을 필자가 오랜 세월 추구한 결과로 정답을 얻었으므로 그 환희심은 말할 것 없이 큰 것입니다.


영기꽃 채색분석

이제 더 나아가서 모란이라고 부르는 영기꽃을 자세히 설명해 보겠습니다. 이미 분석한 보주에서 제1영기싹 영기문이 발산하는 조형으로 환원시킨 것을 사방으로 더 확산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시도는 고구려벽화의 무덤 천정의 연꽃모양의 영기꽃의 확산에서 배운 것입니다.

1 이제 꽃잎 같은 것을 제1영기싹으로 환원시킬 수 있다면, 역시 무한히 제1영기싹이 확산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제1영기싹들은 모두가 연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어서 두 개의 제1영기싹을 택하여 전개시켰더니 과연 연이어져 있었습니다.

2 그러므로 제1영기싹 영기문이 연이어 확산합니다.

3 그 확산은 무한하게 전개됩니다. 그러므로 보라! 모란꽃이라 부르는 꽃이 아니라 꽃이 맺는 씨앗이 보주로 승화하여 그로부터 무한히 영기가 발산하는 대우주의 기운의 순환을 구상적으로 꽃처럼 표현한 것이 아닌가! 그것을 현실의 비슷한 꽃으로 설명하여버리니 민화의 실체를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입니다. 필자는 수많은 조형들을 분석하여 밝힌 것이므로 이렇게 깊은 은유를 밝혀내면서도 스스로 놀랍니다.


제3폭 오른쪽 윗부분 채색분석


그 다음 제3폭 위 오른쪽 부분1을 채색분석해 봅니다. 영기꽃 중심에는 제3영기싹 영기문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역시 만물생성의 근원으로 보주와 같은 상징을 띤 매우 중요한 조형입니다.

1 보주에서와 같이 제1영기싹이 무한히 확산하고 제1영기싹이 동그랗게 연이어져 전개하여 줄기를 이룹니다.

2 그러나 양쪽 잎을 먼저 채색분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양쪽 잎 갈래사이에서 만물이 생성하는 제3영기싹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사이에서 영기문 줄기가 나와 만물생성의 근원인 보주가 화생하고 있습니다.

3 그런데 앞서와 마찬가지로 잎도 제1영기싹으로 이루어진 영기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 부분의 채색분석을 마칩니다.


제기의 채색분석

그러면 이렇게 동글동글한 줄기는 물론 제1영기싹이 연이어가므로 영수靈水를 의미하는데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제기祭器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나무줄기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연이은 보주는 용의 몸, 즉 용이 아닌가. 그러면 그 왕실 제기를 분석해 화조도에서 왜 연이은 제1영기싹, 즉 연이은 보주가 나타났는지 확인해 보기로 합니다.
양 손잡이 부분은 용의 모양이지만 매우 이상해 보입니다. 한쪽 손잡이를 채색분석해 보기로 합니다. 이런 용을 읽지 못하는 까닭은 보주의 모양이나 상징을 아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1 얼굴 앞면에 수많은 작은 보주들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물론 눈은 보주입니다. 매우 뛰어난 감각으로 용의 얼굴을 각지게 조각적으로 만들어서 감탄스럽습니다.

2 그 얼굴에 이은 몸이 위로 향하여 수직으로 오르는데 각진 보주가 연이어가다가 끝의 보주는 둥글게 처리했습니다. 그러니까 용의 몸이 연이는 각진 보주로 되어 있지만, 사람들은 상투적으로 설명하는 ‘상상의 동물’이란 한마디로 설명하고 그렇게 보아왔으므로 이런 표현의 용이 보일리 만무합니다.

3 그리고 용의 입에서 일체가 생성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계실 것입니다. 입에서 긴 영기문이 나오고 있습니다.

4 용의 입에서 영기문으로 된 손잡이가 나오며 제기라는 만병이 화생합니다. 말 그대로 제기의 영기화생입니다. 제기의 표면에는 제1영기싹을 직선으로 만들어 표면을 장식하고 있으니 참으로 오묘한 영기화생의 광경이라 하겠습니다.


봉황의 채색분석


그러면 봉황의 암석화생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밑그림을 그리는데 그림을 보면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확대하여 확인하여 보면 잘 보이지 않던 부분이 흐리게나마 보여서 밑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1 봉황의 벼슬을 채색하여 보면 벼슬이 빨간색이어서 작은 보주들을 부여할 때 흰색으로 나타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보주에는 특정의 색이 있을 수 없습니다. 눈은 타원체로 표현했으며 눈동자 역시 작은 둥근 보주입니다. 봉황은 이처럼 영기문으로 되어 있으니 참으로 봉황도 용과 마찬가지로 영기문의 집적이요, 보주의 집적입니다. 봉황에는 실은 암수가 있을리 만무하지만 현실의 것처럼 하나는 화려하게 표현하여 대비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2 목덜미에는 붕긋붕긋한 선을 3, 4중으로 넣어 역시 동적인 영기문으로 표현하고, 목 가운데 줄기에는 연이은 제1영기싹으로 채웠습니다. 바로 영수靈水입니다! 용과 마찬가지로 봉황도 영수靈水로 만물생성의 근원입니다. 따라서 용과 봉황은 같아서 용은 동물 모양으로, 봉황은 새 모양으로 나타낸 것뿐입니다. 앞의 봉황이 먼저여서 방향을 바꾸어 그것부터 채색분석해 보기로 했습니다.

3 얼굴은 둘 다 큰 차이가 없습니다. 부리가 제1영기싹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날개에는 용의 비늘과 마찬가지로 보주를 상징하는 비늘로 되어 있습니다. 합리적으로 보이는 부분을 모두 채색 분석했습니다. 그런데 봉황이 마치 암석을 품은 광경입니다. 이미 앞에서 임석에 직선으로 된 사태극을 부여하여 영화시켰습니다. 바로이 영화된 암석에서 봉황이 화생하는 것입니다.

4 그러고 나니 하나의 짧은 날개가 남았습니다. 처음엔 이해가 안 되었는데 한 봉황이 두 날개를 폈는데 바야흐로 활짝 펴려는 모습으로 보였으며 솜씨가 매우 좋습니다. 봉황의 두 몸과 긴 날개가 맞지 않아 처음엔 당황했습니다. 두 긴 날개씩인데, 하나만은 빨간 보주들을 부여하여 영화시켰습니다. 그런데 그 긴 꼬리는 제2영기싹을 면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민화는 원리를 철저히 지키는 그림이지만, 때때로 이와 같이 대담한 변형과 생략을 과감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 봉황이 매우 밀착하여 한 몸을 이룬 듯합니다. 아무리 보아도 이상합니다. 아, 교미하는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현실의 새들이 교미하는 것이 아니지요. 영조靈鳥에 어찌 남녀가 있겠습니까. 음과 양과 만나 만물이 생성하는 철학적 해석으로 설명해야합니다. 이제 제3폭의 채색분석이 끝났습니다.


영기문으로 된 용의 그림

만병에서 여러 가지 조형의 영기문이 쏟아져 나오는 형상인데 결국 영화된 물이 솟구치는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만병에서 용이 솟아나오는 광경이기도 합니다. 이에 이르러 용의 본질을 알아볼까요? 이런 영기문으로 된 용의 그림이 있습니다.

이것을 채색분석을 단계적으로 해보고 더 확장시켜 봅니다. 그렇게 확산시켜 보면 놀랍게도 화조도의 만병이나 영암靈巖에서 솟구쳐 나오는 영화된 물인 영수靈水의 영기문 전개 방법과 똑같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만병과 용은 같은 것입니다. 만병에서 물이 무한히 나오듯이, 용의 입에서 보주가 무한히, 즉 물이 무한히 나옵니다. 그러므로 보주와 만병과 용의 상관관계를 우리는 분명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심오한 의미가 화조도에 숨겨져 있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 글의 초두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이 글을 쓰는 동안 민화의 세계는 고차원인 은유隱喩의 세계임을 깨달았습니다. 문학에서는 은유가 매우 중요합니다. 철학도 은유여서 이해하기 쉽지 않지요. 특히 詩야말로 은유의 세계입니다. 달이라든가 꽃을 은유법으로 시를 쓰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것이지요. 그러나 문자언어에서의 은유는 조형언어에서도 비슷하다고 생각은 했으나, 예를 들면 “꽃은 보주다”라고 하는 은유는 문자언어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은유입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은유로는 조형언어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민화의 세계는 일체가 은유의 세계라는 깨달음은 충격적인 것으로 다가왔습니다. 즉 “연꽃은 연꽃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보다는, “연꽃은 무량한 보주의 확산”이라는 조형언어에서만 쓸 수 있는 은유임을 알았습니다. 은유란 말을 만나면서 민화 연구는 뜻밖에 새로운 국면으로 돌입하였습니다. 문자언어를 바탕으로 평생 생각해오며 읽고 써왔던 우리에게는, 필자가 알아낸 조형언어를 바탕으로 생각하며 읽고 쓰고 있으니 그 모든 것이 매우 낯설고 이해하기 쉽지 않을 터이지만 한번 익히면 새로운 세계가 열려서 환희심을 느낄 것입니다.


글·그림 강우방(일향 한국미술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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