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호놀룰루 미술관 소장 민화 컬렉션 ② 책거리 3점

도1 <책거리 8폭 병풍>, 지본채색, 각 71.2×39.0㎝, 호놀룰루미술관 소장



지난 7월호에 이어 미국 하와이에 소재한 호놀룰루 미술관(Honolulu Museum of Art) 소장 한국 회화 컬렉션을 소개한다. 이달에는 특히 책거리 소장품 3점을 집중적으로 살피도록 하겠다.
글 김수진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호놀룰루미술관이 소장한 책거리 3점은 제작 시기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로 보이는데, 모두 책가冊架가 없는 형식에 해당한다. 두 점은 책상을 중심으로 책갑冊匣과 여러 기물을 그렸으며(도1, 도8), 다른 한 점은 책상 없이 물건을 나열한 독립 형식에 해당한다(도7). 책상 형식 중 한 점은 현재 8폭 병풍 상태로 장황이 되어 있으며(도1) 다른 두 점은 장황 없이 낱장의 종이로 전하고 있다(도7, 8).

(왼쪽부터) 도1-1 도1의 부분 / 도1-2 도1의 8폭

소장품 가운데 가장 완성도 높은 단병

세 작품 가운데 완성도가 가장 높은 작품은 <책거리 8폭 병풍>(도1)이다. 이 작품은 높이가 낮은 단병短屛에 각 폭마다 책상을 중심에 두고 다양한 기물을 배치하여 구성했다. 1999년 아트 딜러인 리아 스나이더(Lea Ruth Sneider, 1925-2020)로부터 구입한 이 유물은 금속 장식이 달린 현대의 병풍틀을 써서 아마도 리아 스나이더가 입수한 후 장황을 새로 꾸민 것이라 생각된다. 1폭에는 오른쪽 상단에 꽃이 꽂힌 화병이 놓여 있고 왼쪽 상단에는 토끼 모양 장식이 달린 인장印章이 놓여 있다. 그 아래로는 책갑冊匣이 쌓여 있으며 마블링 패턴이 두드러지는 책상 아래로는 검정 옻칠을 한 상자가 있다. 상자 옆에는 검은색 배경에 금색 안료로 난초가 그려져 있다. 책상 옆에는 빨간색 화병이 놓여 있는데 이 화병 몸체에도 나무와 새가 금색으로 그려져 있다. 2폭 왼쪽 상단에는 육각六角 입구가 인상적인 화병에 꽃가지가 꽂혀 있고, 오른쪽에는 사자 장식이 달린 인장印章이 놓여 있다. 그 아래로는 책 옆면에 인쇄된 흔적이 보이는 책이 쌓여 있으며 마블링문양의 책상과 필통이 있다. 바닥에는 꽃문양 패턴이 있는 비단 한 조각과 붓, 먹이 놓인 벼루가 있다. 화면 가장 오른쪽에는 옥玉 장식이 달린 촛대가 놓여 있다. 3폭 상단 오른쪽에는 산수화가 그려진 사각 화병이 있고 왼쪽에는 책갑이 쌓여 있으며 그 아래로 책상이 보인다. 4폭 상단 오른쪽에는 파초가 꽂힌 화분이 있으며 왼쪽으로 화려한 비단 장정이 돋보이는 책갑 세 개가 쌓여 있다. 가장 하단에는 양쪽으로 열 수 있는 문갑文匣이 있는데 박쥐 장식 손잡이가 인상적이며, 그 문갑 위로 인쇄본 책이 놓여 있다. 5폭의 뒤편에는 책갑이 쌓여 있고 그 위로 불수감佛手柑 한 그릇이 놓여 있다. 화면 왼편에는 탐스러운 흰 꽃이 꽂혀 있는 화분이 있는데, 그 뒤로 책상이 놓여 있으며 그 옆으로 탐스러운 동백이 꽂힌 ‘수壽’ 자가 쓰인 꽃병, 대필大筆 및 비단 두루마리가 꽂힌 필통이 놓여 있다. 6폭에는 하단 가운데에 책상이 있으며 그 아래로는 쌍륙雙六 도구가 보인다(도2). 책상 위 가운데에는 만개한 흰색 연꽃 화병이 있는데 이 화병은 화려한 붉은 빛 보자기로 몸체가 둘러 있다. 그 좌우로는 가지가 놓인 그릇, 화려한 장정의 책갑, 향로 등의 기물이 놓여 있다. 7폭에는 서랍이 달린 책상 위에 기암괴석 모양의 주전자가 놓여 있으며 알이 탐스러운 석류, 4칸짜리 이동식 서랍장, 단면을 잘라내 씨가 보이는 수박, 산호가 꽂힌 투명한 화병이 보인다. 마지막 8폭에서는 기이한 형태의 다리가 인상적인 책상 위로 주전자, 비단 두루마리 네 필, 공작 깃털 두 개가 꽂힌 화병, 네 자루의 붓이 꽂힌 필통, 세 개의 책갑 위에 포도가 있으며, 책상 옆에는 붉은색과 노란색 국화가 꽂힌 화병이 있다. 화병의 몸체에는 보자기가 둘러있으며 책상 아래로 쌍륙 놀이 도구가 놓여 있다(도2).

(왼쪽부터) 도2 쌍륙,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 도3 신윤복, <쌍륙삼매>, 지본채색, 28.2×35.6㎝, 간송미술관 소장

밑그림인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초본과 관련된 다른 작례들

이렇게 복잡한 기물이 가득 담긴 책거리는 보통 초본草本이 되는 도안이 있기 마련이다. 실제 가회민화박물관에는 호놀룰루미술관 본의 밑그림이 되는 초본 4폭이 남아 있어 주목된다(도4). 먼저 가회민화박물관 초본 한 폭을 호놀룰루미술관 <책거리 8폭 병풍> 1폭과 비교해보면 둘 사이의 화면 구성과 기물의 배치가 완전히 일치함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책상 아래 함에 있는 서랍이 열린 정도, 책상 위 작은 그릇 도상의 유무, 책상 옆 빨간색 화병의 유무에서 차이를 보일 뿐이다(도1-1). 그런데 호놀룰루 본보다 가회민화박물관 초본에 더 충실한 다른 작례가 발견되어 이 또한 주목을 요한다. 1994년에 국립중앙박물관에 입수된 <책거리 8폭 병풍>(도5)과 2000년에 경기도박물관에서 구입한 <책거리 8폭 병풍>(도6)이다. 먼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책거리 8폭 병풍> 중 1폭을 가회민화박물관 초본과 비교해보면 모든 도상이 일치함을 알 수 있다. 다만 참외의 모양이 조금 바뀐 점과 국립중앙박물관 본은 가회민화박물관 초본과 달리 책상 아래 함의 뚜껑이 조금 열린 것으로 묘사된 점이 다를 뿐이다(도5-1). 아울러 가회민화박물관 초본에서 ‘현玄’이라 표기하여 검은색을 칠할 것을 지시한 부분에 초록색을 사용하는 등 색감 선정에서는 차이를 보여 주목된다. 경기도박물관 소장본은 호눌룰루미술관 소장본이나 국립중앙박물관보다 가회민화박물관 초본과 더 유사하다. 책상 하단의 함에 있는 서랍을 조금 열리게 표현한 것만이 초본과 다른 점이다(도6-1). 이렇게 책거리 유물 가운데에는 초본도 함께 전해지면서, 같은 초본을 활용해서 만든 작품 여러 점이 전하는 경우가 있다. 다만 이 경우에는 이 작품 전체를 한 명의 작가가 만든 것인지, 초본을 공유하는 하나의 공방工房에서 제작한 것인지, 아니면 하나의 초본이 여기저기 흘러 다니며 시대와 작가에 따라 달리 제작된 것인지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도4 <책거리 4폭 초본>, 지본수묵, 각 70.0×37.0㎝,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도5 <책거리 8폭 병풍>, 지본채색, 각 61.0×38.0㎝,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도6 <책거리 8폭 병풍>, 지본채색, 각 67.5×36.5㎝, 경기도박물관 소장



(왼쪽부터) 도5-1 도5의 부분 / 도6-1 도6의 부분

20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책거리 2점

또 다른 호눌룰루미술관 소장 책거리로는 <책거리 6폭>(유물번호 9541)이 있다(도7). 현재 낱장으로 전하는 이 작품은 쌓아 올린 서책을 크게 2단으로 배치한 것이 특징적이며, 그 사이사이에 수박·참외·복숭아와 같은 과일, 붓·벼루·필통 같은 문방구, 산호와 꽃을 꽂은 도자기 같은 기물을 그려 넣었다. 이 작품은 특히 공간의 깊이감은 무시된 채로 여러 물건이 독립적으로 나열된 것이 특징인데, 이러한 유형은 책거리로 이름 높은 화원화가 이형록(李亨祿, 1808-1883년 이후)이 정립한 도안에 기초하고 있다. 다만 이형록 계열 작품에 비해 이 유물은 채색이 투박하고 도안 묘사에서 정교함이 떨어진다. 뿐만 아니라 합성화학 물감을 사용한 것으로 보여 20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마지막 유물인 <책거리 8폭>(유물번호 9542) 또한 현재 8폭이 모두 낱장으로 전하고 있다(도8). 이 작품의 주요 도상으로는 1폭에 참외, 수박, 빙렬氷裂 자기가 보이며 2폭에는 공작 깃털과 연화蓮花, 3폭에는 하얀색 안료로 그린 유리병과 일본어 초서가 적힌 서책, 4폭에는 오얏 분재와 석류, 5폭에는 기린麒麟 모양의 장식품, 6폭에는 잉어 모양 도자기와 반닫이, 7폭에는 ‘천진天眞’이라 적힌 먹과 벼루가 보이며, 8폭에는 해시계로 추정되는 기구, 부채와 향로 등이 보인다. 이 작품도 탁한 채색에 질이 좋지 않은 종이와 안료의 상태로 보건데 20세기 제작품이 확실해 보인다. 다만 명암법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며 흰색 안료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호놀룰루 미술관 소장 책거리 3점은 모두 궁중 계열의 고가품高價品이거나 보기 드문 수작秀作은 아니지만 여러 형식을 두루 갖춘 민화 계열 컬렉션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도7 <책거리 6폭>, 지본채색, 각 99.6×38.0㎝, 호놀룰루미술관 소장



도8 <책거리 8폭> 부분, 지본채색, 크기 미상, 호놀룰루미술관 소장


김수진 |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충남대, 서울시립대, 성균관대, 덕성여대, SADI 등에서 강의했다.
하버드 옌칭 연구소와 보스턴 미술관에서 연구했으며
현재는 한국민화학회 총무이사로 재직 중이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