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국민신탁 이사장 김종규, 문화 지키는 힘은 국민으로부터!

문화유산 국민신탁 김종규 이사장
문화유산 국민신탁 이사장 김종규

40여 년 전만 해도 한국의 박물관은 그 수가 매우 미약했으며, 보유하고 있는 유물과 콘텐츠 역시 그 수가 한정적이었다. 열악한 와중에도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한국박물관협회의 전신, 한국민중박물관협회를 창립하고 문화계 종사자로서의 소명의식을 고취시켜나갔다. 삼성출판박물관 김종규 관장은 그 자리를 만든 주요인사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문화예술계의 굵직한 이슈를 만들어 온 그는 현재 문화유산 국민신탁 이사장으로 인생 3막을 봉사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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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후대가 믿고 맡긴 것

문화유산 국민신탁 김종규 이사장‘문화계의 마당발’이라고 불리는 삼성출판박물관 김종규 관장은 최근 박물관은 다소 등한시하고 다른 일에 몰두하고 있다. 바로 ‘문화유산 국민신탁’의 홍보와 회원 유치. 인생 3막의 가장 큰 모토는 봉사와 헌신이라고 말하는 그는 현재 문화유산 국민신탁의 이사장을 연임하고 있다. ‘문화유산 국민신탁(이하 신탁)’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해 자연과 사적 보호와 보전을 위해 기금을 사용하는 단체인 영국의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에서 영감을 받아 2007년에 설립된 단체다.
김종규 회장은 설립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단체의 기틀을 마련하고 유영구 초대이사장의 뒤를 이어 2010년 제2대 이사장으로 취임, 현재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신탁에 관해 묻자, 처음 이사장이 되었을 때 300여 명이 채 못 되었던 회원 수를 꾸준히 끌어올려 현재는 7천여 명에 이르며, 이번 임기 내에 만 명을 채우는 것이 목표라며 운을 떼었다.
“영국 내셔널 트러스트의 역사와 회원에 비하면 이제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국민이 직접 나서서 우리의 문화유산을 지켜야 한다는 좋은 취지에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지금껏 제가 참여를 권한 사람 중에 가입을 주저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죠. 또 이미 가입한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서니까 점차 빠르게 회원 수가 늘고 있어요. 두 기자님도 오늘 저와 만난 기념으로 가입하셔야죠. 허허허.”
그가 이토록 회원 가입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모두 관리하기에는 그 수가 방대하고, 빠른 시대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너무도 잦다. 이에 국가에만 책임을 지울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자발적으로 나서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깨닫고 보전·관리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대부분 문화유산을 후대에 잘 전달해야 한다는 당위에는 동의하지만, 막상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사람은 드물다. 신탁에 가입함으로써 매달 커피 한 잔 정도의 금액으로 국가의 소중한 유산을 지키는 경험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신탁은 ‘이상 옛집’, ‘동래정씨 동래군파 종택’, ‘윤경렬 옛집’을 보전재산으로, ‘보성여관’, ‘울릉도 도동리 일본식 가옥’, ‘부산 수정동 일본식 가옥’, ‘중명전’을 위탁재산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지역 문화유산에 대한 교육과 창의체험학교를 통한 아동·청소년의 문화유산교육을 하고 있으며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하기도 한다.

돈·시간·관계를 디자인할 줄 알아야

그는 인생을 세 시기로 나누고, 때마다 할 수 있는 일이 다르다고 본다. 청년기에 배우고 익혀 장년기에 자신의 커리어를 탄탄하게 쌓아온 문화인의 마지막 소명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문화재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가까이 접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며, 이에 헌신하겠다는 그다.
평소 거짓말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는 김 관장은 자신의 이런 철학을 고수하기 위해서 몸을 바삐 움직이는 것에 익숙하다. 새로운 박물관의 개관식이나 전시의 개막식, 출판·문화계의 신년교례회 등 각종 행사에서 그가 축사하는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지친 기색 없이 지방까지 순례하는 모습에서 강한 추진력과 에너지가 느껴진다. 우선은 주위의 초청을 모르는 체할 줄 모르는 천성 때문이겠지만, 정작 본인은 ‘재미있어서’ 라고 말한다.
“재밌잖아요. 사람들도 만나고, 이야기하고. 그 김에 서로 웃고 또 웃게 하는 거. 재밌지 않아요? 얼굴 찌푸리고 있으면 뭐해. 웃고 긍정적으로 사는 게 좋지. 평소에는 이 방에서 사람들과 차를 마시는 걸 즐기는데 그것도 낙이고, 책장에 도자기들을 이리저리 배치하면서 나만의 책가도를 꾸며보는 재미에 빠져 지내요.”
이야기 내내 그가 방대한 인맥을 유지하는 비법으로 줄곧 강조한 것은 배려였다. 그는 상대의 입장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도와주는 법을 궁리하거나, 사람들과 자주 안부를 묻는 등 소소한 노하우를 실천한다.
“사람들과 인연도 소중히 생각하고, 시간도 소중히 생각해야죠. 나에게 유리하게만 이용하려는 속셈이 있으면 안 되고, 누이 좋고 매부 좋도록 하는 게 중요해요. 돈이나 시간, 그 어떤 것이든 내가 가진 것을 상대와 적절히 나누면 좋은 관계로 돌아오더라고.”
다방면으로 뛰어다니며 맺은 무수한 인연 중에서도 그가 각별히 기억하는 몇몇 사람들이 있다.
“박경리 선생님이 나를 두고 하셨다는 말을 전해들은 적이 있어요.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형님과 내가 우는 모습을 보며 ‘꼭 어린 아이 같다’고 하셨다는 거야. 그런 일은 처음 당해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으니, 제대로 보신 거지. 선생님은 토지가 한창 판을 거듭하며 인쇄가 될 때 인지에 찍는 도장을 ‘김 사장님이 알아서 파서 쓰세요’ 하셨을 정도로 신뢰가 두터웠어.”
본디 출판을 업으로 삼아 평생을 종사했으니 문인들과 각별하다는 것은 달리 말할 필요도 없지만, 조자용 선생이나 가회민화박물관 윤열수 관장 등 민화계 인사들과 관련된 인연도 남다르게 다가온다고.
“내가 출판박물관을 한다고 조 박사가 인쇄나 판화에 관한 판목 등을 많이 주기도 했어요. 또, 에밀레박물관에서 학예사로 있던 윤열수 관장이 우리 박물관으로 옮겨와 설립 초기부터 큰 몫을 해줬죠. 아마 지금도 우리 박물관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지도 몰라요. 출판계의 위기가 당연시되는 요즘, <민화>라는 전문지를 창간해 잘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보니 참 기쁩니다.”

유수流水 같은 세월이 인생의 스승

지금도 하루를 알차게 사는 그이지만, 가끔 지나간 시절이 떠오르면 언제 세월이 이토록 빠르게 지나갔나 싶기도 하다고.
“참, 세월이 빨리도 흐른 것 같아.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 박물관 6층에 집무실이 있었는데, 다니기 어려워 얼마 전에 1층으로 옮겼어요. 그 과정에 쌓아둔 것들을 많이 정리하고 나눠줬는데, 홀가분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받는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도 보기 좋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나누라, 나눠줘라 그랬어요. 살면서 인생을 통해 그런 즐거움도 배우고…. 사는 게 그런 것 같아.”
그는 1960년대에 대학을 졸업하고 삼성출판사 부산지사장을 거쳐 1990년 한국 최초의 출판전문박물관인 삼성출판박물관을 설립했다. 박물관을 통해 다소 소홀하게 다뤄졌던 출판·인쇄물의 역사와 문화의 중요성을 깨우치는 전시를 선보여 왔다. 출판인으로 문화계에 들어선 것이 계기가 되어 박물관 관장을 맡고, 문화계의 수많은 직책을 맡아온 그다. 한국박물관협회 3·4대 회장과 명예회장, 민학회 회장, 한국메세나협회 이사와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단 이사장, 한국서지학회 고문 등을 지냈고, 맡은 직함이 20개 남짓할 때도 있었다. 지금도 한국차문화협회 고문과 문화유산 국민신탁 이사장 등을 맡아 문화계 전반에 걸쳐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원로 중 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정작 그가 나누고자 하는 것에는 유·무형의 경계가 없다. 아끼던 자료뿐 아니라,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이라는 직함도 내려놓기로 한 것이다.
“나 아니어도 할 사람이 있고, 또 나도 그거 아니면 안 되는 사람이 아니니까 더 붙잡고 있을 필요도 없다”는 그의 말에서 연륜이 만들어낸 지혜로운 자부심이 보인다.
문화계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큰 어른으로서 한평생 지켜온 신념을 가치 있게 만드는 혜안이 있어 그의 인생 3막이 더욱 주목된다.

 

글 : 윤나래 기자
사진 : 박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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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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