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세계로 안내하는 소설·희곡 삽화판화

예로부터 삽화가 들어 있는 희곡, 소설책들은 흥미로운 줄거리와 더불어
연극무대를 보는 듯한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해 독자들에게 유독 인기가 높았다.
조선에서는 삼국지 등이 일부 번각되기도 했지만 명 시대 유명 희곡 및 소설책들은 주로 수입되어 읽혀졌다.
이번 시간에는 한국, 중국, 일본의 소설·희곡 삽화판화를 살펴보도록 한다.

– 글·자료 한선학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관장)


중국에서 원 시대를 거쳐 명 시대에 유행한 희곡, 소설의 삽화판화는 조선시대에 수입되었던 흔적들이 남아 있으며, 고판화박물관도 명 시대 유명한 희곡, 소설을 발굴하여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와 같이 삽화가 들어가 있는 희곡, 소설이 탄생된 배경에는 송 시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번화가에서의 예능활동을 빼놓을 수 없다. 남송의 수도 임안(항주)을 비롯한 대도시에서는 ‘와시瓦市’라는 번화가가 있었고, 그곳에 세워진 몇 개의 가설극장에서는 잡기, 설화, 인형극, 그림자놀이(연극)등 연예 행사가 벌어졌다. 그 중 설화는 소설이나 역사 이야기에 곡조를 붙인 것을 악기 연주에 맞춰 낭송하듯 들려주는 것으로 사찰에서 불교경전의 내용을 그림으로 묘사하여 들려줌으로써 보충 설명한 속강俗講의 형태에서 발전되었다. 특히 소설은 남송시대에 급속히 발달하여 중국 당대唐代 중기(7∼9세기)에 발생한 소설의 명칭인 전기傳奇를 계승한 연애, 육조시대의 지괴志怪를 계승한 괴담·무술·요술·선인仙人등의 테마로 분류되어, 낭송하듯 부르는 이야깃거리의 주류가 되었다. 인형극이나 그림자놀이(연극)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낭창하는 이야기꾼에게는 대본臺本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대본은 서적으로 출판되었으며, 본문에 삽화판화를 곁들이는 경우도 있었다. 삽화를 곁들인 희곡이나, 소설은 명 시대에 들어오면서 크게 발달하는 고전의 대중화에 따라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조선에서 삼국지가 번각되기도 하지만, 삽화가 들어 있는 명 시대 유명한 희곡이나, 소설책들은 주로 수입되어 읽혀졌다.

1. 명 시대 소설 삽화 남송지전南宋志傳

중국 명대 금릉(남경)에서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몇 개의 대형 서점이 출판 경쟁을 하고 있었으며, 그 중 대표적인 곳이 부춘당富春堂과 세덕당世德堂이다. 이들 서점에서 출판된 책 가운데 삽화가 있는 소설·희곡 책은 유독 인기가 높았다. 그 이유는 삽화에 등장하는 대형의 유형화된 인물상과 간소한 배경 묘사가 곁들여져 마치 연극무대를 보는듯한 현장감을 독자가 느끼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유행한 소설이나 희곡은 조선에도 수입되어 읽혀졌으며, 고판화박물관에는 세덕당에서 발행한 《남송지전南宋志傳》(도1)이 남아 있어, 삽화판화를 연구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남송지전》은 남송南宋 시대의 이야기 50회와 삽화를 곁들여 만든 책으로, 이 소설이 국내에 전래된 시기는 허균의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를 통해 늦어도 17세기 중반 무렵임을 알 수 있으며, 홍만종의 《순오지旬五志》, 《중국소설회모본中國小說繪模本》 등에도 관련 기록이 남아 있다. 이후 이 소설은 여러 서목書目에서도 제명이 확인된다. 이로 미루어 이 소설은 국내에서도 상층사대부 독자층 사이에 적잖은 인기를 얻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2. 전상 소설 삽화 《남북양송연의南北兩宋演義》

원 시대부터 중국의 판화 산지 중 하나인 건안建安에서는 전 페이지에 걸쳐 삽화가 들어 있으며, 상도하문식(위에는 그림, 아래는 글을 표현)으로 표현한 전상全相 시리즈가 명 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특히 건안에서 발행된 원 시대 본인 《전상평화오종》은 판화와 문학이 밀접한 관계를 가진 중국 판화사상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건안의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은 전상 시리즈는 세계적으로 희귀본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판화박물관에도 전상시리즈 중 하나인 명 시대에 제작된 《남북양송연의》 1권(도2)이 소장되어 있다.

3. 대표적인 소설 삽화

위魏·촉蜀·오吳 삼국의 흥망을 그린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시내암施耐庵의 영웅 무용담인 《수호전水滸傳》, 손오공의 기상천외한 대활약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오승은吳承恩의 《서유기西遊記》는 명 시대부터 청 시대를 거쳐 현재까지 소설 삽화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으며, 삼국지는 조선시대 번각되어 출판(도3)되기도 하였다. 조선에도 명 시대에 제작된 판본이 수입되어 읽혀졌으며, 조선후기에까지 이어져 청 시대에 출판된 중국 판본들도 수입되어 현존하고 있다. 고판화박물관에도 청 후기에 발간된 다양한 판본(도4~6)이 남아 있다. 삽화가 들어 있는 소설들은 그 인기가 일제강점기까지 이어져 영풍서관에서 연활자본으로 《셔한연의》가 만들어지는 등, 필사본과 더불어 많은 호응을 얻었으며, 딱지본으로 이어져 내려갔다. 《셔한연의》에는 목판화 삽화가 들어가 있는데 이당 김은호가 삽화본 밑그림 작가로 참여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고판화박물관이 소장한 《셔한연의》에 사용된 세 장의 목판화 판목(도7)은 일제 강점기까지 이어온 목판화 소설 삽화의 밑그림 작가와 판각 솜씨를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4. 일본의 명 시대 소설 삽화

일본에서는 명시대의 유명한 소설삽화가 유명한 우키요에 작가들에 의해 번각되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였다. 고판화박물관의 일본 삼국지 관련 유물로는 일본 우키요에의 세계적인 작가인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제자로 삽화본의 일가를 이룬 가츠시카 다이토가 그린 삼국지로 이를 찍었던 판목(도8)이 다수 소장되어 있어, 일본 삽화판화의 수준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고판화박물관은 유명 우키요에 작가인 구니요시의 작품인 《수호지》(도9)와 가츠시카 다이토의 《서유기》(도10)도 소장하고 있다. 이를 통해 동아시아 판본들을 비교해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일본에서는 우키요에의 발달된 채색판화 기법이 삽화에도 흔하게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 희곡삽화의 대표작 《서상기西廂記》

남녀간의 자유분방한 밀회를 그린 《서상기西廂記》는 원나라에 만들어진 희곡으로, 왕실보王實甫가 만들었다. 중국 당나라에 원진元稹이 지은 연애소설인 《앵앵전鶯鶯傳》을 번안해서 만든 작품으로 과거 시험의 합격을 목표로 한 백면서생인 장생張生과 작고한 재상의 딸인 최앵앵崔鶯鶯이 겪는 우여곡절의 로맨스를 그린 것이다. 장생과 최앵앵 사이를 가로막으려는 노부인(최앵앵의 모친)과 노부인과 대립하면서 둘의 사이를 지지하는 시녀 홍낭紅娘 등 등장인물의 심리와 긴밀한 구성 등 탄탄한 작품성을 자랑하며 중국의 희곡 중에서도 대표적인 희곡으로 인정받고 있다. 명 시대에 60여종의 많은 판본이 만들어졌으며, 조선에도 전해져 그 작품이 현재 고판화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고판화박물관 소장본은 삽화 테두리를 붉은 색으로 찍고 그림을 먹으로 찍은 주묵朱墨 투인본套印本(도11)으로, 세계적으로 중국 상해도서관과 고판화박물관 소장품 단 두 점만 존재하는 귀중본이다.

6. 꿈을 소재로 한 희곡 삽화 《모란정牡丹亭》

고판화박물관에는 중국 명 시대 유명한 극작가인 탕현조(湯顯祖.1550.9.24-1616.7.29)의 삽화가 들어 있는 희곡 작품 4건이 소장되어 있다. 꿈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탕현조의 호인 옥명을 넣어 ‘옥명당사몽玉茗堂四夢’이라고 불리는 작품들로 《모란정牧丹亭》, 《남가기南柯記》, 《자채기紫釵記》, 《한단기邯鄲記》등이다. 아름다운 목판화 삽화가 들어 있는 20권의 책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옛날 고판목을 활용하여 1980년대에 남경 광릉고적서사에서 인출하여 발행하였다. 꿈을 소재로 한 네 책 중에서도 특히 《모란정牧丹亭》(도12)은 불후의 명작으로 알려져 있다. 《모란정》의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두여랑杜麗娘이라는 여인이 봉건 예교禮敎의 속박을 참지 못하고 시녀인 춘향春香과 함께 정원에서 노닐며 근심을 풀곤 했다. 하루는 꿈속에서 서생 유몽매柳夢梅와 사랑을 나누었다가 꿈에서 깨어난 뒤 그를 그리워하다 번민으로 죽게 된다. 3년 뒤 유몽매가 여랑의 초상화를 얻게 되어 그녀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으며 마침내 여랑의 유령이 몽매와 만나 환생하여 부부로 결합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봉건 예교가 청춘남녀에게 미친 해악을 폭로하고, 자유롭고 행복한 애정을 추구하며 개성의 해방을 요구하는 정신을 열정적으로 찬미했다. 가사가 아름다우며, 인물 묘사가 섬세하면서도 생동적이다. 당시 일찍부터 각지에서 연출되었으며, 명대 희곡작가들이 여러 가지로 개편했다.


한선학 |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관장

동국대학교 불교미술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박물관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고판화학회와 세계고판화연구보존협의회장, 한국박물관교육학회장이다.


저자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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