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도文字圖 세 번째 이야기 – 영원한 생명생성의 세계

문자도文字圖 세 번째 이야기
영원한 생명생성의 세계

최근까지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조선 궁중화 민화 걸작 -문자도·책거리>展이 열렸다. 박물관 입구에서 마주쳤던 현수막의 문자도 밑에는 다음과 같은 프랑스 사람의 말이 적혀 있었다. “단지 예술적인 관점으로만 보아도 그 병풍은 조선예술의 근본에 관해 무척 중요한 정보로서 가치가 가득했다.” ㅡ1898년 프랑스 인류학자 ‘샤를르 바라’ 그 병풍이 어떤 것을 가리키는지 모르지만, 프랑스 학자가 말하면 무조건 따르고 국내 학자가 말하면 인용하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 현실이다.

아쉽게도 아직도 사대주의가 팽배하여 있어 모든 해결을 외국 학자들에게 의지하려 한다. 국내 어느 공모전에서는 대상 받은 사람을 프랑스로 유학 보낸다고도 한다. 민화의 본질을 알면 이런 시대착오적인 일들은 하지 않는다. 그 프랑스 학자가 한국의 조형예술의 본질에 대하여 무엇을 알겠는가. 현재 우리나라 민화 연구자들도 삼국시대 미술과 고려 그리고 조선시대 조각과 불교회화를 공부하지 않아 민화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프랑스 학자나 같은 상태에 있다.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민화 연구자들은 자인해야 할 때가 왔다.

한국전통문화의 총합체로서의 민화, 제대로 알아야

지금 민화계는 심각하다. 이른 바 <민화작가들의 수적 팽창(數的 膨脹)>과 <민화 연구자의 부재>로 갈 길을 못가고 있다. 신기루와 같은 허망한 현상이다. 양 쪽을 비판하는 사람은 필자 한 사람뿐이다. 필자의 나이는 금년 76세다. 평생 한국미술사학뿐만 아니라 세계의 아니 인류의 모든 조형예술의 지평을 새로이 열어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전 세계의 조형예술의 모든 장르, 건축-조각-회화-도자기-금속기-목기-민속품-복식 등을 새로이 연구하여, 그리스-프랑스-독일-일본-대만-파키스탄 등 여러 나라에서 필자의 새로운 학설로 새로운 해석을 하여 발표하여 오고 있으며, 매일 새로운 진실을 찾아내고 있다. 그러는 동안 민화를 비로소 해독하게 되었고 꾸준한 연구 끝에 내린 결론은 민화가 한국미술 전통을 모두 담은 한국전통문화의 총합체總合體라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 궁중화 민화 걸작 -문자도·책거리>展 기간 중 민화특강 시간에 <한국전통문화의 총합체로서의 민화>란 주제로 강연을 했다. 젊은 세대 연구자들은 물론 우리나라 대표적 민화연구자들, 그리고 모사든 창작이든 민화를 그리는 사람들을 단호하게 힐책했다. 물론 어느 청중도 그 주제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모를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미술 7,000년을 모두 공부한 사람이 없을뿐더러, 더구나 새로 밝혀낸 필자의 새로운 그러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보편적 이론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청중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러나 그뿐이다.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방향 없는 혼란뿐이다. 이른 바 민화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 가식적인 말은 더 이상 하
기 싫다. 미래는 매우 어둡다. 그러나 어두운 미래를 밝게 하기 위하여 나는 계속 노력할 것이다. 고귀한 전통미술을 더 이상 폄하하거나 잘못 무책임하게 말하는 사람은 없어야 할 것이다.

기발하고 완벽한 조형 돋보이는 8폭 문자도

어느 날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펴낸 도록 <반갑다! 우리 민화>를 살펴보다가 일본 천리대天理大 부속 천리참고관天理參考館 소장 문자도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윽하고 억제된 색조와 기발한 조형이며 그 완벽한 조형은 흠잡을 데가 없다. 이런 그림은 도화서에 소속된 뛰어난 화원畵員이 그렸음에 틀림없다.
정조대왕이 책거리를 가리키며 신하들에게 “이것은 책이 아니며 그림일 뿐이다.”라고 말했다던데 그 말은 듣고 정조대왕에 크게 실망했다. 정조대왕의 눈에는 궁중에서 쓰인 책거리의 조형과 상징이 보였을 리 만무하다. 도화서의 화원들은 규제 때문에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滿甁[器皿이 아님]과 서책만이 가득 찬 책가도가 그려졌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 작품을 보고 걸작이라고 말한다. 그 까닭은 책들이라고 하는 것만은 눈에 확실히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많은 책들이 모두 경전일 리 없으므로 그 책거리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전혀 없다. 그러므로 문자도도 저것은 문자가 아니라 그림일 뿐이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뿐”이란 말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책보다 문자언어보다 그림으로 그린 책 그림이나 문자를 회화적으로 그린 것을 폄하한 것은 틀림없다. 필자는 강연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조대왕이 화원에게 책거리를 그리라 했으나 마음에 안 들어 귀양을 보냈다고 했는데 아마도 화원들이 그린 이상한, 실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무엇인지 몰라 보이지 않은 이른 바 ‘영기문’을 많이 그러서 귀양 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라고. 물론 청중들은 내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천리대 소장 8폭 병풍 문자도는 지본채색으로 크기는 각 폭이 각각 72.6×37.0㎝다. 꽤 큰 병풍이어서 실제로 보면 압도적인 작품일 것이다. 8폭 가운데 孝悌忠信 네 문자도만 채색분석하여 싣는다. 채색분석하며 그 주변에 쓴 글들을 순서대로 읽으면 다시 필자가 해설할 필요가 없을 것이어서 간단히 결론만 쓰려 한다.
문자도는 여러 분이 알고 있고, 또 이른바 민화 연구자들이 항상 거론하는 효제충신에 얽힌 고사 이야기는 이 그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없다. 그러면 문자도는 유교의 실천 덕목으로 그린 것이 아니란 말인가. 필자는 이 그림을 채색분석하면서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았다. 이 문자도를 드높게 승화시킨 화원은 도대체 누구였을까? 이 위대한 그림을 그린 화원에게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불화에서처럼 문자도를 빌려 나타내려 한 것은 <영원한 생명생성의 세계>였다. 실용적인 병풍이 아니라 그 당시의 위대한 철학을 우의적寓意的으로 표현한, 가장 드높은 정신적 차원을 표현한, 儒佛仙 모든 종교미술을 종합한 새로운 조형의 종교미술이다.
독자 여러분, 작품 사진과 채색분석한 것을 번호로 매겨 쓴 설명을 차례대로 읽어가면서 꼼꼼히 읽어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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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우방(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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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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