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도文字圖 네 번째 이야기 – 장대한 사상 담긴 고차원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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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도文字圖 네 번째 이야기
장대한 사상 담긴 고차원의 세계며

두 해에 걸친 월간 <민화> 연재를 민화 연구자들도 이해하기 어려워 읽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과 만나서 이야기해 보면서 비로소 알았다. 이미 말했듯이 우리가 흔히 민화라고 부르는 작품 가운데에는 대량의 <화원화畵員畵>가 포함되어 있다. 화원화건 민화건, 저 신석기 이래의 삼국시대, 통일 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전통 조형이 축적되어 있다고 여러 번 강조해 왔다. 그러므로 그 각 시대에 따른 방대한 작품을 연구할 마음을 감히 갖지 못하면서 민화에 대하여 논의를 계속하고 있는 한, 항상 무의미한 이야기의 반복만 있을 뿐이다.

<감모여재도>도 대부분의 민화 연구자는 한 그림 자체를 다룰 때 A4용지 몇 줄 쓰지 못한다. 대개 그 작품의 주변 에피소드뿐이다. 그런데 온전히 작품 자체를 분석하여 이름 없는 조형들에 이름을 부여하며 낯선 용어들로 올바른 해석을 하며 각각 월간 <민화>에 10페이지씩이나 쓰고 그것도 매 회마다 같은 주제의 여러 다른 작품에 대해 다르게 쓰고 있으니 모두가 당황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한다. 여러분, <새로운 해석이 아니라 올바른 해석>이다. 그런데 통사적으로 연구하되 종래의 연구 성과를 그대로 따르면 공부는 하나마나가 된다. 과거 학자들이 무엇인지 몰랐던 조형들을 알아야 하니 필자의 올바른 방법론과 올바른 해석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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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기화생론, 세계미술사학 연구사상 유일한 보편적 방법론

그러면 필자가 새로 정립한 <영기화생론靈氣化生論>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동안 몇 차례 간단히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런데 필자의 글을 자세히 꼼꼼히 읽으면 바로 그 속에 필자의 영기화생론이 듬뿍 담겨져 있으므로 굳이 따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은 요구한다. 영기화생론을 아주 간단히 요약해서 몇 마디로 말해 달라고 하지만 그런 설명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중대한 오해가 있다. ‘필자가 모든 그림을 영기화생론 하나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다른 연구자들은 방법론이 있는가. 글을 읽어보지도 않아서 영기화생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 가볍게 그런 말을 한다. 신석기시대 미술 이래의 미술과 사상을 공부한 적이 없으니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상태로 나아가면 점점 오류만이 축적되어갈 뿐이어서 민화의 미래는 어둡다.
영기화생론은 필자 개인이 개인적으로 만든 방법론이 아니다. 동양에서 방법론을 방대한 내용으로 체계화한 학자는 필자뿐이다. 아니 세계에서 도상학圖像學을 뛰어넘어 새로운 조형세계를 개척하며 새롭고 올바른 방법론으로 세계의 미술을 다루는 사람은 필자뿐이다. 우리나라 미술사학자들은 방법론이 아예 없거나 모두 서양의 미술사학들의 방법론을 빌려서 우리 것을 해석하므로 더욱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즉 필자의 방법론은 세계의 미술사학의 연구 역사상 유일한 보편적 방법론이다. 가장 유명한 파노프스키조차 오로지 <도상학>에서 더 나아가 <도상해석학圖像解釋學>을 신선하게 개척했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도상>에 머물고 있다. 도상[아이콘] 이외의 엄청난 이른 바 <무늬>의 상징을 그도 전혀 몰랐다. 도상은 주변의 무엇인지 모르는 온갖 무늬와 관련되어 있으므로 미술사학의 본격적 연구는 지금부터다. 그래서 종래의 <미술사학>이라는 용어 대신에 필자는 <조형예술사학>이라 별도로 부르고 있으며 <사상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엄밀히 말하면 <세계조형사상사학世界造形思想史學>이라 불러야 한다. 사람들은 필자가 너무 어렵게 쓴다고 투정이다. 그러나 필자가 어렵게 쓴 것이 아니고, 조형예술품 자체가 그렇게 고차원적이어서 어려운 것이다!
영기화생론은 필자가 세계, 아니 인류의 조형예술품들을 연구하여 찾아낸 조형 원리이다. 세계는 공간적 개념이며 인류는 시간적 개념이다. 필자는 <일향 한국미술사연구원>을 개원한 지 12년 동안 인류의 조형예술 작품 7,000점 가량 채색분석해 오고 있다. <채색분석법>이란 우리 아무도 몰랐던, 혹은 그릇 알고 있었던 조형언어를 올바로 해독하는 보편적 방법론이다. 필자의 방법론으로 인류의 모든 조형예술품을 풀어내고 있다. 사람들은 필자의 해석을 개인적 의견이라 말한다. 즉 사람에 따라 여러 의견을 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답은 여러 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뿐이다.

글자의 획을 영화시켜 드높인 문자의 세계

그러면 얼마 전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린 <조선 궁중화 민화 걸작-문자도·책거리>展에 출품된 문자도 8폭 병풍[19세기, 종이에 채색, 각 61×36㎝, 개인 소장]을 다루어보고자 한다. 도록의 해설을 잠깐 보기로 하자. “…이 작품은 곡선으로 이루어진 유엽전柳葉篆과 직선으로 된 상대방전上方大篆의 전서를 적절하게 조합하여 구성했고, 문자 내부를 모란, 연꽃, 국화, 매화, 해당화 등 우리가 좋아하는 꽃들로 장식했다. 그러나 이 문자도 병풍은 유교덕목을 담은 유교문자이지 화조도가 아니다. 효·제·충·신 등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교설적 내용의 그림인데, 전혀 생뚱맞게 꽃문양으로 장식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관례를 과감하게 깨는 어느 이름 없는 작가의 용기와 새로움을 창출하는 상상력 덕분에, 우리는 새로운 감동을 받는 예술을 선사받게 된 것이다”
대강 이상의 내용이다. 그래도 길게 서술한 편이다. 내용을 잠깐 살펴보자. 곡선이나 직선으로 된 전서篆書라는 것도 우리가 이런 문자도를 서체書體에 견주어서 글씨로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가 붓글씨로 글씨를 써 보면, 이런 글씨체가 나오지 않는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회화사 연구자 가운데 붓글씨를 쓸 수 있거나 스케치를 할 수 있는 학자가 한 명도 없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회화사는 즉 서화사書畵史인데 그림이나 붓글씨를 써보지 않고 어찌 글씨와 그림을 추체험할 수 있겠으며, 작품의 진위를 가릴 수 있을 것인가. 또 글씨를 썼다고 안목이 높은 것이 아니다. 문자도에 보이는 글자는 물론 서법에 비추어 설명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이 작품 같은 경우는 전서篆書를 알고 쓴 것이 아니다. 획을 무늬화한 것이며 때로는 필자의 이론으로 말하면 획을 영화靈化시킨 것이다. 유엽전柳葉篆과 상대방전上方大篆 같은 서체를 이름 없는 화가가 어찌 알겠는가. 그리고 문자 안에 모란, 연꽃, 국화, 매화, 해당화 등으로 장식했다고 하는데 이 문자도에는 우리가 현실에서 보는 꽃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차차 이런 무늬를 영기문으로 밝힐 것이다. 그림을 확대해 보면 그저
흔히 길이나 꽃집에서 보는 꽃들이 아니고 꽃 넝쿨로 만든 영기문, 즉 생명생성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필자도 막상 그려보면서 줄기를 겨우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꽃과 새가 있다고 무조건 화조화花鳥畵라고 말하면 안 된다. 그 화조화의 문제도 앞으로 본격적으로 다룰 것이다. 또 <어느 이름 없는 작가>가 어떻게 “관례를 과감하게 깨는 용기와 새로움을 창출하는 상상력”을 지닐 수 있겠는가. <이름 없는 작가>란 존재하지 않는다. 화가는 누구나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다만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지 않는 한국의 전통이 있어서 자기 이름을 쓰지 않았을 뿐이다. 이 문자도를 분석해 보면 아마도 화원화의 그림일 가능성이 크다. 화원들은 문인화풍의 그림을 그렸을 때 자신의 고유한 화풍이 있어서인지 이름을 써넣은 경우도 있고, 써넣지 않는 경우도 많다. 나랏일을 할 때는 개인의 이름을 전혀 쓰지 않는다. 그러나 화원은 궁궐에서 나랏일만 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양식으로 그리는 경우도 많은데 이름을 써넣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화원이 되려다가 만 화가나 화원을 그만두고 그림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경우에는 이름을 써넣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화가 이름의 유무로 그림의 성격을 가릴 수 없으며, 작품의 분석을 통하여 그 성격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 미술사가의 사명이다.
지금까지 민화에 대한 책은 많으나 아예 작품 해설이 전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있어도 대개 내용이 빈약하다. 그러므로 필자의 연재는 매달 민화 한 작품에 대한 ‘최초의 논문’이라고 할 만 하다. 작품 하나를 삼국시대 이래의 작품들을 증거로 이렇게 자세히 분석하여 쓴 것은 처음이다. 그리고 여러 번 지적했듯이 민화에는 현실에서 보는 사물은 하나도 없다. 모두 영화된 존재들이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호랑이’도 현실에서 보는 호랑이가 아니라 삼국시대의 사신도四神圖 가운데 백호白虎에 해당하는 영적靈的인 존재이지 호랑이가 아니다.
지금 다루고 있는 문자도는 흔하지 않는 독특한 형식이다. 그러나 이미 언급한 것처럼, 글자의 획에 영기문을 부여하여 영화시켜 문자의 세계를 조형언어의 고차원으로 드높이고 있다. 이 여덟 글자는 만물의 근원이다. 효는 단지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부모에 대한 효도이지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유가에서 말하듯이 효는 도道의 근본이다. 단지 덕목이 아니고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를 올바로 실천하면 천지의 대기운이 순조롭게 운행한다. 즉 동양 우주관과 관련되어 있어 인간의 행동과 우주의 운행이 일치하게 되는 굉대한 사상을 지니고 있다. 오늘날처럼, 자연을 멀리 하고 자동차와 지하철, 그리고 아파트 같은 비좁은 공간에 익숙한 현대인에게는 장대한 사상이 낯설다. 그런데 문자도에는 장대한 사상이 담겨 있을뿐더러 조형적으로 영화시켜 현실과 다른 차원의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
여덟 글자가 만물의 근원이므로 우리가 흔히 설명하는 옛 이야기들은 중국의 것이니 반드시 그런 옛 이야기와 관련된 덕목만으로 한정시킬 수 없다. 즉 우리나라에서 예부터 이루어진, 예를 들면 우리 역사에 길이 남긴 효행을 문자도에 그려 넣으면 얼마나 좋은가. 반드시 중국의 옛 이야기를 그대로 모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런데 이 문자도는 글자의 획도 놀랍거니와, 그 획 안에는 종래의 옛 이야기의 주제를 완전히 없애고 과감히 <만물생성의 근원인 영기문>으로 가득 채웠으니 놀랄 뿐이다. 얼마나 창의적이고 아름다운가. 필자는 이런 그림은 서울시건 국가건 <지정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래의 설명으로는 지정 이유가 되지 못한다. 이런 고귀한 상징성과 독창성을 띤 아름다운 화원의 그림을 올바로 밝힐 수 있다면 지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해야 한다.
우선 孝자를 보자. 예의염치禮義廉恥와 제悌는 알아보겠는데 효충신孝忠信 세 글자는 아무리 보아도 모르겠다. 도록에 실린 효제충신孝悌忠信 네 자만 차례대로 다룬다. 효孝자의 획에는 모두 꽃 넝쿨이 들어있는데, 현실에서 보는 꽃 넝쿨이 아니다. 바로 영기문이다. 영기문인 까닭을 살펴보자. 그리고 문자文字도 문자가 아니다. 크게 변형되어 무엇인지 모를 획들을 지우고 그 획 안에 있는 영기문만을 채색분석해 보았다. 놀라운 세계가 펼쳐진다. 해석은 이미 채색분석한 곳에 써놓았으므로 이 글에서는 반복하여 쓰지 않는다. 번호대로 읽으면서 채색분석한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기 바란다.

도 1-1

도 1-2

도 2-1

도 2-2

도 3-1

도 3-2

도 4-1

도 4-2

글 강우방(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원장)

 

저자에 관하여

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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