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히 깊고 넓은 심연의 세계, 먹

‘먹색’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색을 지니고 있다. 농담별 색상도 다양할 뿐더러 먹 제조시 함께 섞은 안료의 종류에 따라 푸른 색, 황색 등을 띠기도 한다. 특히 천연원료로 만들어낸 전통먹의 경우 자연스럽고 깊은 발색으로 많은 작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가장 동양적이면서도 한국적인 안료 ‘먹’, 그 한없는 매력 속으로.

기획 문지혜 기자


먹에 대한 기초이론

먹은 신라시대부터 고려를 거쳐 조선에 이르기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수출품이었다. 조선에서는 국가의 중요한 행사를 거행할 때 임금이 신하들에게 먹을 하사했으며, 특정지역 고을의 관아에서는 임금님께 먹을 진상품으로 올려 보냈다. 과거 선조들의 조묵법造墨法은 과학적이었고 품질도 좋아 당장 사람이 먹어도 될 만큼 좋은 약재로도 쓰였다. 현재에는 전통 방식으로 먹을 제작하는 곳도 드물 뿐더러 소비자들은 저가의 제품을 찾다보니 시장에서는 질 낮은 제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먹에 관한 잘못된 상식이 고착화되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번 글을 통해서나마 먹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전달하고자 한다.


먹의 구성성분

① 그을음(탄소)
– 먹은 그을음과 아교로 만들어진다. 그을음의 주성분은 탄소로, 탄소는 고대부터 문자나 그림을 그리기 위한 흑색의 안료로 사용돼 왔다. 이런 탄소에는 특이한 성질이 있다. 탄소의 분자를 이루는 4개의 홀전자들이 불안전하여 쌍으로 있으려 한다는 점이다. 쌍으로 있고자 하는 이러한 힘 때문에 탄소분자는 어디든지 붙으려고 한다. 흡착성이 강한 것이다. 먹물이 옷에 묻으면 지워지지않는 것도 이 흡착성 때문이다.

② 아교
– 아교는 콜라겐이란 단백질을 분해, 정제해서 얻어지는 동물성 단백질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자연환경 등에 의하여 변화된다. 따라서 먹을 만들 때도 아교의 변화가 먹의 성장, 수명 등에 많은 영향을 준다. 아교는 분자량이 수십만 개에서 수만 개인 천연 고분자물질이다. 이것이 자연환경, 온도, 습도 등에 영향으로 저분자가 되면서 오랜 기간 동안 변화한다. 먹이 고먹古墨이 되며 변화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먹이 만들어질 때는 36~40% 또는 50% 정도의 수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후 먹이 건조되면서 수분이 서서히 배출되어 완제품이 되었을 때는 16~18%의 수분이 남는다. 먹이 건조될 때 수분이 증발하면서 먹의 내부에 미세한 공기구멍을 만든다.
이 구멍은 매일의 온도, 습도에 영향을 받아 습기가 많은날에는 구멍으로 습기를 받게 되며 습기가 적은 날에는 수분을 방출하며 구멍도 새로 만들어지고 아교의 분자구조도 변한다. 따라서 제조 직후의 먹색과 1~2년 후의 먹색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먹은 항시 호흡하고 있다. 이는 먹이 자연환경에 순응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먹은 순응능력順應能力이 적기 때문에 보존환경이 뒷받침돼지 않으면 파손되고 만다.

③ 향료
– 대개 먹향에 대한 고정적인 이미지가 있지만 원래 먹에는 향이 없다. 옛날 아교를 제조할 땐 제조 설비가 나빠서 아교 자체의 굽굽한 냄새가 많이 났고 이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먹에 향료를 첨가했다. 현재는 아교 자체의 냄새도 적어졌고 먹에 넣는 향도 다양해졌다. 감송분말, 백단, 정자, 장뇌, 용뇌, 사향 등 다양한 종류의 향을 쓰는데 바나나향과 초콜릿향이 나는 먹도 있다.


먹의 종류

① 유연먹油煙墨
– 유연은 체종유, 참기름, 콩기름, 면실유, 오동나무기름 등의 식물성 기름을 써서 등접시에 심지를 꽂아 점화해서 그을음을 채집採集한 것이다. 해가 지고 난 뒤의 밤하늘 색깔로 황혼처럼 붉은 빛이 돈다. 서예에서 힘 있는 글자를 쓸 때 잘 어울리는 먹이다. 불을 완전연소(산소공급이 잘된 것)시키면 입자가 곱고 먹색이 흐리지만 불완전 연소(산소 공급이 잘 안돼서 덜타는 것, 대개 촛불의 크기가 길어지면 그을음이 많이 나온다)시키면 입자가 커지고 먹색도 진하다. 송나라때 유연먹이 개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유연먹은 당시 그림의 세계를 바꾸어 놓았다. 번짐이 없는 송연먹에서 번짐이 좋은 유연먹이 나오면서 번짐의 효과가 그림에 나타난 것이다. 사군자, 산수화 등에서 쓰이는 먹의 농담표현濃淡表現과 몰골법沒骨法 등이 그 예다.

② 송연먹松煙墨

소나무 송진이 묻어 있는 관솔 부분.
송진에서 그을음을 얻을 수 있다

– 소나무를 태워 만든 그을음으로 만든 먹이다. 해뜨기 직전의 여명과 같은 밤하늘의 색깔로 푸른빛이 돌아서 주로 산수화에 사용된다. 빛의 반사가 적고 색채를 흡수하는 형型으로 검은 색이 강하다. 탄소 입자는 유연보다 크고 불순물의 영향으로 먹색의 변화도 크다. 오래되면 청먹화靑墨化(시간이 지나면서 먹에서 푸른색이 도는 현상, 고서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 송연먹에서만 나타나는 특징)된다. 한국, 중국, 일본 3개국은 송연의 채집방법이 다르다. 중국의 황산송연, 일본의 기주송연, 한국의 해주송연과 공주송연 등이 유명하다. 붉은 소나무를 최상질로 했고 관솔 400kg 정도를 태워야 그을음 10kg을 얻을 수 있다. 소나무의 송진이 묻은 관솔 부분에서만 그을음을 채취할 수 있다. 3개국의 송연채집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중국식 – 대나무를 이용해서 비닐하우스처럼 뼈대를 만들고 대나무를 쪼개서 뼈대를 서로 연결한 후 장자지를 발라서 완성했다. 불은 밖에서 때고 벽돌로 아궁이에서 대나무집까지 연도煙道를 만들어서 사용했다. 장지에 그을음이 붙으면 털어서 긁어모았다.
2) 일본식 – 약 25평 정도 되는 방에 중앙에 통로를 내고 양쪽으로 한국의 재래식 아궁이처럼 점토로 16~18개의 아궁이를 만들어 소까지를 태워서 그을음을 채집했다.
3) 한국식 – 몽고텐트처럼 가운데 기둥을 세우고 난 후에 서까래를 원추형 모양으로 나무에 걸쳐 놓고 억새풀로 지붕을 덮는다. 불은 밖에서 때고 연기를 유도하는 구들을 막사幕舍까지 연결해 그을음을 받았다. 떨어진 소까지로 만든 것을 낙송송연落松松煙이라 하고 살아있는 소나무에 직접 채취한 것을 생송송연生松松煙이라 하는데 송진이 배어나오게 잘 말려서 태운다.

유연과 송연은 먹의 질도 다르다. 예부터 유연먹이 송연먹보다 비싸서 유연먹이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실제 서예나 그림에서 먹색을 생각해 보면 송연먹의 먹색이 두터운 경향이 있고, 유연먹은 기름을 태워 만들었으므로 불순물이 적다. 탄소 입자도 송연에 비하여 매우 적기 때문에 먹색에 순도가 있다. 순도純度가 좋으므로 먹색의 반사가 좋아 강한 감을 주지만 높은 순도 때문에 먹색의 후미厚味와 연도年度에 따른 먹색의 변화 폭이 적다.

③ 광물성鑛物性 유연먹油煙墨

카본(좌)과 먹(우). 카본의 흑색이 먹색보다 새까맣다.

–유연먹과 송연먹은 모두 천연원료를 태운 그을음으로 식물성 탄소이지만 지금은 원료를 구하기 힘들어 대부분의 업체에서 광물성 먹을 생산한다. 경유, 중유 등을 태워서 채취한 그을음으로 만든다. 이른바 카본 블랙(CARBON BLACK)은 깜깜한 밤하늘의 색상이다. 지중해 천연가스를 원료로 한다. 카본은 크게 수용성의 안료용과 유용성의 고무용으로 나눌 수 있다. 안료용은 안료, 물감을 제조할 때 쓰이고 고무용은 타이어, 각종 전자제품 전도체와 플라스틱에 쓰인다. 시중에는 수십종의 카본이 나와 있지만 이중에서 먹을 만들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다.


먹물

먹물과 먹은 재료가 다르다. 먹물은 고무풀의 원료인 합성수지를 쓰며 방부제, 소포제, 안정제 등을 쓴다. 먹물을 사용한 붓은 반드시 빨아야 되는데 붓을 빨지 않으면 붓이 딱딱하게 굳어 다음에 사용할 때 불편하기 때문이다. 먹을 사용한 뒤에는 붓을 빨지 않아도 붓이 딱딱하게 굳지 않는다. 붓이 굳어있다 해도 먹물에 담가두면 풀어진다. 붓을 자주 빨게 되면 붓털의 기름기가 빠지므로 붓의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다.


채먹彩墨, 청먹靑墨

채먹에는 그을음이 들어가지 않는 대신 무기안료나 유기안료가 들어가며, 청먹에는 일반적인 먹을 만들 때 사용하는 재료에 쪽안료를 추가한 것이다. 채먹은 봉채와 재료가 거의 같으나 봉채에는 전분과 꿀이 추가돼 채먹보다 눅눅하고 말랑말랑하다.


먹의 제조과정

먹장은 먹을 만들기 전에 어떤 먹을 만들지 생각하고, 재료를 선택한다. 먹색과 점도粘度, 농도濃度 등 먹의 성격에 따라 재료가 달라지고 제조방법도 달라진다. 먹 제조를 요약하면 그을음 10에 아교 6을 배합기준으로 아교액과 그을음을 섞어 향료를 가해서 반죽하고 형틀에 넣어서 모양을 찍고 건조하는 것이다. 제작과정 전반이 먹의 수명, 성장 등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먹은 천연아교를 재료로 쓰기 때문에 10월초에서 4월말까지만 생산한다. 아교는 20°C 이상의 온도에서 부패가 빨라지기 때문이다.

송연먹의 제조과정


1. 가마에서 소나무를 태워 그을음을 채취한다.
2. 아교를 중탕하여 잘 저으며 끓인다.


3. 아교와 그을음을 교반한다.


4. 아교와 그을음을 많이 빻고 찧어 반죽한 뒤 향료를 넣고 다시 반죽한다.
5. 형틀에 반죽을 넣고 뚜껑을 덮는다.


6. 반죽을 넣은 형틀을 누른다.
7. 목형에서 빼낸 먹이 굳고 나면 먹을 손질해서 모양을 낸다.


8. 일정한 온도, 습도에서 재를 바꿔 깔아주며 먹을 건조한다.


9. 어느 정도 건조된 먹은 생선 굴비 엮듯이 짚으로 엮어 자연 건조한다.
10. 먹에 이름이나 문양을 칠한다.

먹의 수명과 올바른 보관 방법

먹은 살아있다. 먹의 생명 싸이클은 사람의 생명 싸이클과 비슷하다. 처음 먹을 찍어내면 어린아이와 똑같이 세심한 관찰과 보호가 필요하다. 먹이 건조가 다 되면 먹 내부에 수분이 16~18% 정도 남아있다. 바짝 마른 먹이 흐리고 습한 날엔 수분을 먹고 화창한 날씨에 수분을 뱉는다. 이 과정에서 먹이 숙성된다. 먹은 완성된 뒤 약 10년간 수분을 먹었다 뱉었다하면서 숙성된다. 완성 후 10년에서 50년까지는 완만한 평행선처럼 서서히 숙성되다 50년이 지나면 쇠퇴한다. 먹의 주 재료인 아교가 더 이상 수분을 붙들 힘이 없어 먹이 갈라지기 때문이다. 아교 내 고분자의 탄소고리 중합체가 수분을 먹었다 뱉었다 하면서 긴 연결사슬고리가 끊어져서 저분자의 짧은 사슬고리로 변하는 것이다. 즉 친수성親水性이 좋아지면서 침투성浸透性도 좋아지고 갈림이 좋아지는 것이다. 따라서 최악의 먹 보관 방법은 플라스틱 그릇 속이나 비닐 봉지에 먹을 넣어 두는 것인데 그 이유는 먹이 숨을 쉬지 못하기 때문이다. 먹은 종이케이스, 나무케이스에 넣어서 서늘한 곳에 보관하는 것이 가장 좋다.


먹 갈기가 곧 수신

먹은 처음에 조그만 환丸의 형태로 죽간竹簡(종이가 발명되기 전에 글자를 기록하던 대나무 조각) 등에 쓰이다가 종이가 개발되며 대량의 먹이 필요해지자 환의 형태로는 보관하기가 쉽지 않아 장방향長方形의 형태로 발전했으며 이와 함께 벼루도 발전했다. 벼루가 생기면서 연적硯滴도 생겼다. 이들을 활용했던 방식과 그 속에 깃든 철학을 살펴보면 매우 흥미롭다.
먼저, 연적을 보면 모양도 특이하고 구멍도 특이하다. 벼루에 물을 넣기 위함이면 오늘날 같이 주전자 모양의 용량도 크고 주둥이도 큰 것이 좋은데 왜 그렇게 작게 2개의 구멍을 만들었을까. 벼루에 연적의 물방울을 빗방울처럼 똑똑 떨어뜨리기 위함이라고 한다. 즉, 빗방울이 대지大地를 적시듯 천기天氣를 받아서 먹을 갈기 위함이다. “똘똘똘…” 연적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는 마치 시냇물 흐르는 소리 같다. 2개의 작은 구멍이 만든 자연의 소리다.
옛날 벼루는 오늘날과 같이 크고 높지 않았다. 벼루는 대지大地요 내가 경작하는 땅이다. 높은 턱에 급한 경사가 있는 땅이 아니라 누구나 들락거릴 수 있을 만큼 턱이 얕고 경사도 거의 없는, 농사짓기 편한 그런 땅이었다. 그러면서 한쪽에 농사짓는 그 물을 저장하기 위한 웅덩이[墨池]도 만들었다. 먹은 농군農軍이다. 호들갑스럽게 다니거나 흐느적대는 한량閑良이 아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누런 황소에 쟁기를 걸고 왔다 갔다 길게 밭을 가는 농군이다. 요령피우지 않고 과도하게 힘쓰지 않고 소가 가는 데로 간다. 먹을 갈 때는 과다한 힘을 줘서 갈지 말고 부드럽게 직선으로 왔다 갔다 하며 갈아야 한다. 연지硯池에 먹물을 저장하고 다시 천수天水를 받아서 먹을 갈고…. 예전에는 이렇게 먹을 갈았다.
요즘은 완전히 변해버려서 연적도 주전자 같은 대용량을 쓰고 벼루는 급경사에 턱은 높고, 빗물을 받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물을 퍼서 먹을 갈며 먹을 갈 땐 힘을 빼고 직선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화풀이 하듯이 빡빡 힘을 줘서 먹을 간다. 먹을 힘줘 갈면 벼루와의 마찰열로 먹물이 쉽게 상한다. 입자도 거칠게 깎여서 먹색이 곱지 않고 먹을 갈고 나면 붓 잡을 힘도 없어진다.
먹 하나를 갈아도 다양한 색이 나온다. 물의 양과 갈림의 정도에 따라 농먹濃墨에서 담먹淡墨까지, 번짐 또한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시중 먹물墨液을 사다가 쓴다. 갈기가 귀찮다는 생각으로 먹물을 사서 쓰다 보니 먹색이 똑같다. 먹을 가는 과정 자체는 심신의 안정과 수신修身이다. 과학적으로 살펴보아도 먹을 갈 때 나오는 음이온과 먹향은 심신을 안정시켜 준다. 그 수신의 바탕 위에 나만의 개성을, 나만의 먹빛도 만들 수 있다.

먹공방 취묵향 운영
서울대규장각 조선왕조실록 복제본 작업
전국 사찰 목판본 인쇄작업
대한민국 전통먹 숙련기술전수자
경기도명장




먹과 먹물만을 활용해 먹 책가도를 그려보도록 한다. 작가들마다 먹을 다루는 방식은 다양하겠지만, 홍경희 작가의 경우 먹의 번짐도를 조절하기 위해 밑바탕 작업에 유의하며 안료별 속성에 따라 바림 순서와 방식을 달리한다.
시연 홍경희 작가 사진 이주용 기자


본 그리기 및 바탕 칠하기


1. 그리고자하는 선의 굵기와 농담을 정한 뒤 먹을 갈아 원하는 농담을 만든다. 책갑, 기물 등의 외곽은 진하게, 꽃잎이나 문양 등은 연하게 표현하며 본을 그린다. 먹으로만 작품을 완성할 경우 다채로운 색상으로 수정할 수 있는 여느 작품과 달리 수정이 어렵기 때문에 사전에 선 연습을 충분히 하도록 한다.


2. 먹을 바림할 때 광택이 나거나 번지지 않도록 채색필로 밑색을 얇게 칠한다. 채색층이 두꺼우면 먹이 스며들어 강약조절을 표현하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얇게 채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호분을 칠하는 면적에도 물을 많이 섞어 흰색을 연하게 칠했다. 붓이 닿은 면적의 채색부분을 끌어 당긴다는 느낌으로 칠하면 얼룩 없이 칠할 수 있다.

1차 바림 작업


3. 식물인 포도, 꽃은 청먹으로 연하게 바림한다. 먹물에 물을 탄 뒤 서로
충분히 섞이도록 붓으로 먹물을 여러 번 저은 뒤 물기를 뺀 다음 나뭇잎을
칠한다.


4. ③에 물을 더 섞어 아주 연하게 만든 뒤 꽃을 바림한다.
바림할 면적을 정한 뒤 물칠을 먼저 하고 먹을 바림하면 경계선이
두드러지지 않게 바림할 수 있다.


5. 다먹 역시 진한 먹과 연한 먹 두 단계의 농도로 나누어 칠한다.
진한 색상은 주전자 손잡이, 연한 색상은 책갑 옆면을 칠하는 등
부위별로 농도를 달리한다.


6. 먹물로 주전자 뚜껑, 책갑의 띠 등을 칠한다.
먹물이 잘 퍼지기 때문에 가운데 부분을 먼저 칠하여 번짐을 최소화한다.

2차 바림작업 및 가필작업


7. 먹물로 포도알을 진하게 바림한 다음 해당 면적이 마르고 나면
그 위에 청먹으로 연하게 칠한다. 먹이 마르고 나면 이전에 바림했던
부분에 자연스레 음영이 더해져 깊이감을 연출할 수 있다.


8. ④보다 조금 더 진한 농도로 포인트를 줄 부분만 몇 군데 짧게 바림한다.
마찬가지로 나뭇잎을 2차 바림할 부분도 1차 바림했던 색상보다 진한
농도의 먹으로 바림한다.


9. 취향에 따라 진금 등으로 장식한 뒤 먹을 진하게 갈아 외곽선을
가필하여 마무리한다. 작품을 완성한 뒤 검정색 인주를 찍으면
그림을 한층 멋스럽게 마무리할 수 있다.


홍경희
새아궁중민화연구소 대표,
춘천박물관 ‘금강산과 관동팔경’ 실감형 콘텐츠 구축사업 자문위원,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사)우리문화예술진흥회 이사
다양한 색상의 먹

먹그림을 그리기 전 종이에 색상을 충분히 테스트해보고
원하는 먹의 색상, 농도를 결정한다.
두 가지 색상으로 나뉜 경우 윗줄은 먹을 한 번만 바림한 것,
밑줄은 먹을 두 번 바림한 것이다.


다양한 색상의 채먹으로 바탕을 거듭 바림해 완성한 모란 작품


– 구은진, <담채모란(담자/담홍/담녹/담황), 40×40㎝×4


먹으로 창작한 작품들

많은 작가들이 먹에 주목,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더해 독창적 그림을 완성했다.
이들이 말하는 먹의 매력과 작품 이야기.


손지영 작가 – 꿈을 형상화하기 위해 택한 먹

작품에 광택이 없는 검은색을 표현하기 위해 국내에서 제작한 청먹 먹물을 사용했다. 청먹 먹물은 회색빛을 띠는데 여기에 곱고 안정감 있는 먹색을 사용하기 위해 유연먹을 벼루에 간 뒤 섞어 사용했다. 먹이 마른 뒤 그 위에 덧바르는 과정을 5번 정도 반복하니 원하는 흑색을 만들 수 있었다. 바탕은 꿈속을 형상화한 것으로 내 손이 가는대로 자유롭게 칠한 것이다. 그 안에는 내가 이루고자하는 염원, 기원을 담았다. 먹 바탕으로 인해 본을 뜰 수는 없어 큰 형태 정도만 잡은 뒤 호분을 사용해 세밀한 선으로 도상을 묘사했다.

<백학의 꿈>, 2019, 장지에 먹, 호분, 60×120㎝




양재천 작가 – 청먹이 지닌 그윽한 색, 몽환적 풍경에 제격

우연히 청먹을 접하게 돼 테스트해보니 그윽한 깊이감이 느껴졌고 몽유도원도를 그릴 때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청먹 특유의 색상이 고혹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의 몽유도원도와 맞아떨어졌기 때문. 작품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대자색은 오리나무열매를 숙성시킨 염료에서 나온 색상이다. 그림의 각 부분마다 염료와 먹의 농담을 달리해가며 색을 겹겹이 올렸고, 그 덕분에 여러 색상을 얻을 수 있었다. 복사꽃은 석채와 연백으로 그려 포인트를 주었다. 평소 다른 작품에서도 다먹, 송연먹 등 여러 먹을 자유롭게 활용하고자 한다.

<賱江-夢遊桃源圖>, 2018, 순지에 청먹, 석채, 천연염료, 157×356㎝




이수연 작가 – 천연재료인 먹, 삼원색과 섞으면 맑은 색 낼 수 있어

먹과 분채 두 가지로 검정색을 표현했다. 분채는 벨벳처럼 까만색을 띠며, 먹은 분채처럼 새까맣진 않지만 단단한 무게감을 지닌다. 일례로 바둑판 모양의 탁자무늬, 탁자다리가 분채, 그 옆 회색 판이 먹색이다. 작품 속 색상처럼 채도를 낮출 땐 먹을 섞어 색을 만든다. 나무 그을음으로 만든 먹은 천연재료이기 때문에 튜브물감과는 달리 맑은 색을 만들어낸다. 바탕지의 경우 원래 표백되지 않은 미색인데 아교포수할 때 먹을 넣었다. 먹은 농묵부터 담묵까지 명도만 11단계에 이르기 때문에 활용범위가 무궁무진하다. 개인적으로 매우 선호하는 안료이다.

<책거리와 색의 조우 1, 2>, 2019, 순지에 먹, 분채, 봉채, 각 110×70㎝


조여영 작가 – 모든 색을 압도하기도, 빛내주기도 하는 양면적 매력의 먹

천연재료와 장인의 노력으로 빚어낸 먹은 순수하면서도 깊은 색감을 지녔다. 색에 대한 피로감이 들 때쯤 펜화로 그려진 일러스트에 영감을 얻어 먹으로 작업하기 시작했다. 먹은 한지에 스며들기 때문에 바탕이 한지냐 캔버스냐에 따라 발색의 차이가 크다. 이 작품에서는 캔버스에 젯소 작업 후 먹을 올려 한층 강한 블랙을 연출했다. 세필로 여러 번 칠해 농담을 표현했으며 봉채 색상 한 가지만 곁들여 포인트를 주었다. 먹색은 모든 색을 덮기도 하지만 모든 색을 빛나게도 한다. 이처럼 양면적인 매력이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황진이와 문화 소녀>, 2020, 캔버스에 먹, 혼합재료, 100×180㎝×2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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