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그렸을까? 평생도平生圖 초본Ⅱ

도1 〈모당평생도〉 응방식 부분, 견본채색, 75.1×39.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번 시간에는 평생도의 분류를 살펴보고 그 기준이 되는 <모당평생도慕堂平生圖>와 <담와평생도淡窩平生圖>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현재 남아있는 평생도 작품과의 비교를 통해 <평생도 초본>이 어떤 분류에 해당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글 이다정 (가회민화박물관 객원연구원)


<모당평생도慕堂平生圖>와 <담와평생도淡窩平生圖>

<모당평생도慕堂平生圖>는 김홍도의 화풍을 따라 그려진 19세기의 작품으로 모당慕堂 홍이상(洪履祥, 1549~1615)의 평생을 담은 그림이고, <담와평생도淡窩平生圖>는 담와淡窩 홍계희(洪啓禧, 1703~1771)를 주인공으로 한 그림이다.
<모당평생도>는 돌잔치, 혼례식, 응방식應榜式(도1), 한림겸수찬翰林兼修撰, 송도유수도임식松都留守到任式, 병조판서시兵曹判書時, 좌의정시左議政時, 회혼식回婚式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구성 내용과 도상은 현재 남아있는 대부분의 평생도의 바탕이 될 만큼 널리 퍼졌다. <담와평생도>는 삼일유가三日遊街(도2), 수찬행렬修撰行列, 평안감사부임平安監司赴任, 좌의정행차左議政行次, 치사(致仕, 관리가 70세가 되면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나던 제도), 회혼례回婚禮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문헌에서 보이는 홍이상과 홍계희 두 사람의 일생과 <모당평생도>와 <담와평생도> 속 내용을 비교해 보면 서로 부합하지 않는다. 홍이상은 회혼례를 치를 만큼 오래 살지 못했고, 병조판서와 좌의정에 오른 적도 없다. 마찬가지로 홍계희는 평안감사나 삼정승의 지위에 오른 적이 없고 회혼례를 치르지 못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평생도>의 제작 목적이 단순히 특정 인물의 일생을 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가문 전체의 업적과 부귀영화를 보여주고 여러 자손들에게 선대의 복록이 전해지길 기원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도2 〈담와평생도〉 삼일유가 부분, 견본채색, 77×38㎝,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평생도의 분류

‘평생도平生圖’는 18세기에 나타나기 시작한 화제畫題로, 사대부가 겪게 되는 평생의례平生儀禮와 관직 생활 중 경사스러운 사건들을 그린 그림이다. 평생도의 형식에 영향을 준 작품들을 기준으로 분류해 보면, <모당평생도> 계열과 <담와평생도> 계열, 마지막으로 특별한 양식에 따르지 않고 그린 평생도 계열로 나눌 수 있다(도3).
<모당평생도> 계열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김홍도의 화풍을 따라 그려진 평생도로, <모당평생도> 병풍의 구성 내용과 도상은 현재 남아있는 대부분의 평생도의 바탕이 될 만큼 널리 퍼졌다. <담와평생도> 계열은 19세기 초·중엽 김홍도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은 화가들이 그린 평생도로, 평안감사 부임 장면이 반드시 포함된다. 이는 ‘평안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는 속담과 같이 ‘평안감사 부임’이 단순한 지방관 부임 이상의 의미를 지닌 점에서, 당시 ‘평안감사’로 대표되는 물질적 풍요에 대한 동경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한마디 보태자면, 평안감사라는 직책은 평양平壤과 안주安州가 있는 평안도 전체를 관리하는 직책으로, 평양에 있는 평안감영에서 근무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특별한 양식에 의거하지 않고 그린 평생도가 있는데, 이는 다시 실존 인물의 생애를 상대적으로 충실하게 구성한 작품과, 환갑 등 축하할 일이 생겼을 때 선물하기 위한 용도로 제작되었던 작품으로 구분할 수 있다. 실존 인물의 생애를 그린 평생도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채용신 평생도>와 국립해양박물관 소장 <충무공이순신 평생도>가 대표적인 작품으로, 이러한 작품들은 <모당평생도>, <담와평생도>와 마찬가지로 당시 사람들이 소망하는 삶을 표현하고 성공한 인물의 삶을 본받으려는 마음을 담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경사스러운 날에 선물하기 위해 그려진 작품들은 괴석, 사슴, 학, 석류 등 길상의 의미를 담은 도상들을 추가하여 축하와 기원의 마음을 담았다.


도3 〈평생도〉 부분, 지본채색, 개인 소장



도4 〈평생도 초본〉 부분, 지본수묵, 35×20㎝,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어떤 그림이 <평생도 초본>의 범본일까

이제 위에서 살펴본 다양한 평생도 중에서 <평생도 초본>의 범본을 찾아보자. 범본을 찾는 방법은 <모당평생도>, <담와평생도> 속 장면들 중에서 지난 시간에 소개한 <평생도 초본> 속 응방식應榜式 장면과 관련된 장면을 비교하는 방법이다(도4). 우선 <담와평생도> 속 ‘삼일유가’ 장면을 살펴보면, 큰 기와집 마당 한가운데 앵삼鶯衫을 입고 어사화를 쓴 주인공이 대청마루에는 녹색 옷을 입은 노인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주인공의 양 옆에는 광대와 악사들이 늘어서 있고, 그림 하단에 그려진 대문으로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다. 그리고 <모당평생도>를 살펴보면 화면 오른쪽 상단에 ‘應榜式’이라는 화제畫題가 있고, 화면 상단에는 홍패紅牌를 들고 다리를 건너는 세 명의 인물이 있고, 화면 중앙에는 북을 비롯해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들이 있으며, 화면 하단 왼쪽에는 3명의 광대가 부채를 들고 춤을 추고 있다. 화면 하단 중앙에는 앵삼을 입고 어사화를 쓰고 말을 탄 그림 속 주인공이 그려져 있다.
이제 <모당평생도>, <담와평생도>, <평생도 초본>을 비교해 보면 <평생도 초본>은 <모당평생도>를 범본으로 그려진 초본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모당평생도>와 <평생도 초본>을 비교해 보면, 구도는 흡사하지만 그림의 크기와 화면 크기의 비율이 차이가 상당히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모당평생도> 이후에 그려진, <모당평생도> 계열의 작품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시간에는 평생도의 분류와 그 기준이 되는 <모당평생도>와 <담와평생도>를 살펴보고, 작품의 비교를 통해 <평생도 초본>이 <모당평생도>를 범본으로 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다음 시간에는 <모당평생도> 계열 평생도의 변화과정을 살펴봄으로써, <평생도 초본>과 같은 모습의 평생도가 나타나게 된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다정 | 가회민화박물관 객원연구원


백석대학교 기독교박물관 학예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성백제박물관 학예연구원, 가회민화박물관 객원연구원이다.
월간민화 창간호부터 민화 초본에 대한 칼럼을 기고해오고 있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