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과 변용, 민화 초본집과 《개자원화전》

지난 시간에 민화 초본집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번 시간에는 민화 초본집과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을 비교해 《개자원화전》이
민화 초본집에 미친 영향에 대해 조사해보고자 한다.

글 이다정(가회민화박물관 객원연구원)


《개자원화전》의 탄생과 전파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은 그림을 그리는 기본적인 방법에 대해 설명한 화보畵譜이다. 《개자원화보芥子園畵譜》라고도 한다. 내용이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지금까지 나온 중국 화보 중 가장 많은 수가 팔렸다. 1679년 1집 《산수수석보山水水石譜》가 발간된 이후 여러 차례 증보를 거듭했으며, 1898년 화가 소훈巢勳이 발간한 소훈임본巢勳臨本이 가장 널리 보급됐다.
《개자원화전》을 비롯해 중국에서 유행한 화보는 1집이 발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과 일본에도 전파됐다. 조선 후기의 개인 문집을 살펴보면 《개자원화전》을 소장한 기록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중인 출신 서화가 유최진(柳最鎭, 1793-1869)의 《초산잡저樵山雜著》에는 그것을 방작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조선 후기에는 사대부 문인들뿐 아니라 중인 계층에도 《개자원화전》이 널리 퍼졌음을 알 수 있다.

(왼쪽) 도2 《개자원화전》 부분 / (오른쪽) 도3 민화 초본집 부분,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민화 초본집과 《개자원화전》의 도상 비교

조선 후기 다양한 계층에서 활용된 《개자원화전》과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민화 초본집에 그려진 도안들을 살펴보면, 매우 유사한 부분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도1, 도2). 이를 통해 민화 초본을 만든 인물이 《개자원화전》 속 도상들을 옮겨 그렸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민화 초본집의 도상과 《개자원화전》에 실린 그림이 똑같은 형태로 그려지지 않은 부분도 확인된다(도3~도5).
또한 이 초본집에서는 《개자원화전》처럼 문장이 쓰인 것이 발견되지 않았다. 즉, 민화 초본을 《개자원화전》의 그림을 옮겨 그린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도4, 도5 《개자원화전》 부분



그런데 이 문제는 《개자원화전》과 다른 화보를 비교하여 해결할 수 있다. 《개자원화전》 이전에 제작된 화보들을 살펴보면, 《매화희신보梅花喜神譜》처럼 도상의 전체를 수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개자원화전》처럼 도상을 여러 부분으로 분리해서 수록한 사례가 매우 드물다. 이 점을 통해 적어도 민화 초본집이 《개자원화전》의 영향을 받은 화보를 보고 그린 것이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따라서 민화 초본집의 모본母本이 되는 화보를 찾기 위해서는 《개자원화전》의 영향을 받은 화보를 찾아야 한다.
민화 초본집에 그려진 도상과 《개자원화전》의 도상을 비교한 결과 둘 사이의 개연성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앞으로 《개자원화전》 이후의 화보를 비교 연구해야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보다 면밀한 비교 연구 결과는 추후에 공개하도록 하겠다.


이다정 | 가회민화박물관 객원연구원

백석대학교 기독교박물관 학예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성백제박물관
학예연구원, 가회민화박물관 객원연구원이다.
월간<민화> 창간호부터 민화 초본에 대한 칼럼을 기고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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