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호연 孟浩然 – 파교를 건너 매화를 찾아 나서다

맹호연 孟浩然
파교를 건너 매화를 찾아 나서다

겨울의 추위를 견디며 꽃망울을 맺어 눈이 채 녹기도 전에 가장 먼저 꽃을 피우며 봄소식을 알린다는 매화. 고고한 기품을 지닌 매화의 아름다움을 사랑한 이는 많았지만 특히 손꼽히는 사람으로 당나라 시인 맹호연이 있었다. 맹호연孟浩然(689~740)은 해마다 이른 봄이면 그 해 제일 먼저 핀 매화를 찾기 위해 눈 덮힌 산 속을 찾아다녔다는 유명한 고사를 남기고 있다. 이 고사를 그린 그림을 파교심매도灞橋尋梅圖 혹은 답설심매도踏雪尋梅圖 등으로 부른다.

호방한 은일 시인, 맹호연

맹호연은 당나라 때의 유명한 시인이다. 당나라는 시가詩歌의 장르가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가장 완비되고 융성한 시대였으며 이백·두보와 같은 기라성 같은 시인들이 배출된 시대였다. 맹호연 또한 이들과 이름을 나란히 한 시인으로서 주옥같은 시를 많이 남겼다. 맹호연은 호북성 양양襄陽 출신으로 용모가 말쑥하고 풍채가 시원스러웠다고 하고, 사람들과 사귀면서는 호방하여 사소한 일에 구애받지 않았다고 한다. 일찍부터 세상에 뜻이 없어 녹문산鹿門山에 은거해 살다가 나이 40세에 고향을 떠나 수도 장안으로 가서 진사시험을 쳤지만 합격하지 못하였다. 장안에 머무는 동안 맹호연은 왕유王維와 왕창령王昌齡 같은 시인들을 만나 교유하였다.
이 무렵 몇 가지 일화가 전하는데 맹호연의 호방한 성격을 대변해준다. 한 번은 한회韓會가 그를 황제에게 천거하여 배알하게 하고자 날을 잡았는데, 때마침 친구가 찾아오자 기뻐하며 실컷 술을 마시고 조정에 나아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한 번은 왕유가 금란전金鑾殿(당나라 때의 궁전 이름. 문인 학사들이 어명을 기다리던 곳)에서 어명을 기다리다가 맹호연을 불러 시문을 논하고 있었는데, 현종이 갑자기 행차하여 맹호연을 접견하게 되었다. 황제가 맹호연에게 지은 시를 읊어보라고 명하자 「세모귀남산시歲暮歸南山詩」를 읊었는데 “재주 없으면 명주明主도 버리고, 병이 많으니 친구도 멀어지네(不才明主棄 多病故人疎)”라는 구절이 있었다. 이에 황제가 불쾌해하며 “경이 스스로 짐에게 구하지 않았을 뿐, 짐은 경을 버린 적이 없소.”라고 하며 그를 도성에서 내쳐 고향으로 돌아가게 했다고 한다.(세설신어보)

시적 흥취에 취한 시인


맹호연과 관련된 더욱 유명한 고사는 바로 그의 매화 사랑에 관한 것이다. 매화가 피는 계절이 되면 그 해 가장 먼저 핀 매화를 찾기 위해 나귀를 타고 장안 동쪽을 흐르는 파수灞水에 놓인 다리, 파교灞橋를 건너 매화를 찾아 나선 일화가 그것이다. 맹호연의 주옥같은 시가 선망의 대상이 되다보니 ‘파교의 나귀 등에 탄 맹호연’은 시적 흥취의 대명사가 되었다. 『전당시화全唐詩話』에 실린 당나라 때의 재상 정계鄭綮의 이야기가 있다. 정계는 본디 시를 잘 지었으므로, 사람들이 그에게 “요즘 새로운 시를 짓고 있습니까?”하고 물었는데 그는 대답하기를 “시상詩想은 눈보라 치는 파교의 당나귀 등 위에 있으니, 여기서 어떻게 시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詩思在灞橋風雪中驢子上 此何以得之)?”라고 했다는 것이다.
송나라 때의 문사文士 소식蘇軾이 지은 시에도 맹호연의 시 읊는 흥취를 노래하고 있다. 「증사진하수재贈寫眞何秀才」라는 시에서 소식은 “보지 못했는가, 눈 속에 나귀를 탄 맹호연이 눈썹을 찌푸리고 시를 읊느라 움츠린 어깨가 산처럼 솟은 것을(不見雪中騎驢孟浩然, 皺眉吟詩肩聳山)” 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맹호연은 시흥詩興을 대변하는 시인이 되었다.

절뚝이는 나귀 타고 매화를 찾아 나서다

선문대 박물관 소장 고사도 병풍 중의 <설중방매도>(도 1)는 나귀 등에 올라앉아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맹호연을 그렸다. 시흥이 올라 시를 읊조리는 시인의 뒤에는 동자가 따르고 있다. 이 그림에서 맹호연은 다리를 건너고 있고, 주위의 산과 강은 온통 눈이 쌓여 백색이다. 맹호연 앞에 놓인 매화나무의 분홍빛 꽃이 화면에 화사하고 고매한 정취를 더해주고 있다. 화면 상단에 제시가 적혔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積雪灞橋上 눈 쌓인 파교 다리 위에
千樹萬樹瓊花開 천 그루 만 그루 매화꽃이 피었네
學士吟鞭詩興發 학사가 읊조리며 채찍질 할 때 시상이 떠올라
飄然蹇驢背 절뚝거리는 나귀 등에 표연히 앉았네.

동아대박물관 소장의 <견려탐매도>(도 2)는 선문대박물관 소장의 <설중방매도>와 거의 유사한 구성이다. 나귀 등에 앉아 책을 보며 시상을 떠올리고 있는 점이 같다. 나귀가 고개를 뻣뻣이 세우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걸어가는 모습은 경쾌하고 명랑한 인상을 준다. 이 그림에서는 눈 덮인 산의 묘사에 능각을 이룬 독특한 윤곽선을 사용하여 화면에 다채로움을 더해주었다. 자그마한 매화나무가 맹호연의 앞뒤에 몇 그루 눈에 띈다. 그림 제목은 “건려완매蹇驢玩梅”, 즉 ‘절뚝이는 나귀를 타고 매화를 감상하다’의 뜻이다.
개인소장의 <설중방매도>(도 3)는 인물과 산수 배경이 비교적 정교하게 묘사되었고 채색도 세련되었다. 눈 덮힌 산 속은 온통 흰색인데 솔잎과 침엽수만이 푸르름을 드러내고 있다. 동자가 맹호연을 위해 우산을 받쳐 들고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가회민화박물관의 <견려완매도>(도 4) 또한 나귀를 탄 맹호연과 그에게 우산을 받쳐주고 있는 동자가 그려졌다. 이 그림에서 산수배경은 인물에 비해 비례가 비현실적으로 작은 편인데 곳곳에 매화가 붉은 꽃망울을 드러내고 있다.
맹호연이 파교를 건너 매화를 감상하고자 길을 나선 고사는 고사인물도의 주제 가운데 가장 널리 다루어진 것이었다. 나귀를 타고 가는 선비가 모두 맹호연을 그린 것은 아니었지만 맹호연을 떠올리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보는 작품은 거의 수묵화에 가깝다. 채색은 나뭇잎과 인물에 극히 부분적으로만 사용되었다. 이 그림은 국립민속박물관 소장의 <파교상매도>
(도 5)인데, 파교를 건너는 맹호연이 향한 길에 매화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제발에 “파교를 매화 감상하고자 나귀 타고 지나네, 작은 다리에서 홀로 파리한 매화를 읊조리네(灞橋嘗梅騎驢過 小橋獨歎梅花瘦)”라고 하였다.

선비의 멋과 풍류가 된 탐매

맹호연의 아취 넘치는 매화 사랑은 매화가 군자의 꽃으로 자리 잡는데 일조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은일의 시인 맹호연이 첫 매화를 찾기 위해 눈 내린 산 속을 찾아 헤맨 탐매의 행위는 그의 아름다운 시와 함께 문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2월 매화 피는 계절에 맹호연의 고사를 되새기며 그 의미를 되새겨본다.

글 유미나(원광대학교 교수)

저자에 관하여

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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