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정보가 담겨있는 두루마리 초본Ⅰ

이번 시간에 소개할 초본은 두루마리 초본으로, 처음 공개되는 형태의 초본이다.
이 초본을 살펴봄으로써 초본의 연대를 추정해 볼 수 있는 근거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본다.

– 글 이다정(가회민화박물관 객원연구원)


초본의 구조를 살펴보자

이 초본은 두루마리 형태의 초본(도1)으로, 9장의 종이를 연결해서 만든 긴 종이 위에 그림이 그려졌다. 초본 속 그림들은 모두 먹으로 그려졌으며, 새는 주로 구륵법으로, 바위와 물, 나무 등은 대부분 몰골법으로 그려져 있다. 또한 새의 습성이나 새와 관련된 도상들을 간단하게 곁들여 표현했다. 그림의 양 끝에는 서로 다른 형태의 인장이 1개씩 찍혀있다.
두루마리 초본에 그려진 새는 총 27종 36마리다.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참새뿐 아니라 제비와 학, 지금은 주변에서 보기 어려운 흰날개해오라기 등 실로 다양한 종류의 새가 그려져 있다. 이 초본에 등장하는 새 중에 몇 마리만 살펴보고자 한다.

도1 두루마리 초본,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초본에 등장하는 새

먼저 소개할 새는 2종류이다(도1-1). 왼쪽에 그려진 새를 살펴보면 새의 위에는 ‘鵁鶄(교청)’이라고 적혀있다. 이 새는 흰날개해오라기로 중국에서는 붉은털해오라기라고 불린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나그네새이지만 중국에서는 송나라 시인의 시에도 등장할 정도로 흔한 새이다. 이 초본은 먹으로만 색을 입혔기 때문에 실제 색과는 차이가 있지만, 머리와 등이 어두운 색을 띠는 특징을 잘 잡아서 그린 것으로 보인다(도2).
오른쪽에 마주 보고 있는 새 두 마리 위에는 ‘鳬(부)’, ‘野鴨(야압)’이라고 적혀있는데, 이 한자어는 청둥오리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청둥오리는 야압野鴨, 물오리, 야부野鳧 등의 이름으로도 불린다. 새의 배 아래에는 물결을 그려놓아 이 새가 물에서 사는 물새임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런데 검은 머리를 한 새를 살펴보면 머리깃이 삐죽하게 나와 있는데, 이는 실제 청둥오리의 머리와는 다른 모양이다(도3). 따라서 그림 속 오리는 청둥오리가 아니라 과거에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오리 중 한 종류라고 보아야 한다.

(왼쪽) 도2 흰날개해오라기 / (오른쪽) 도3 청둥오리



이 초본에서 주목할 것은 표기 방식이다. 새의 이름을 살펴보면, ‘鵁鶄’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고 있고, ‘野鴨’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고 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좌횡서左橫書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우횡서右橫書가 모두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원래 우횡서를 사용해왔으나 광복 이후 좌횡서를 쓰는 비율이 매우 증가했으며, 이 초본도 이러한 경향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鳬(野鴨)’처럼 괄호가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괄호의 사용은 개화기에 서양의 문장부호가 들어오면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 초본은 적어도 괄호를 사용하기 시작한 개화기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다음 시간에는 이 초본의 물리적인 형태에 대해 심도 있게 살펴봄으로써 민화 초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소개할 것이다. 우리가 눈여겨보기만 한다면 초본이라도 완성된 그림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이러한 정보들은 민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다정 | 가회민화박물관 객원연구원

백석대학교 기독교박물관 학예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성백제박물관
학예연구원, 가회민화박물관 객원연구원이다. 월간<민화> 창간호부터
민화 초본에 대한 칼럼을 기고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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