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의 근원 만병滿甁 여섯 번째 이야기. 만병병풍 8폭

만병병풍 8폭
만병병풍 8폭

이번 호에서 다룰 주제는 만병병풍 8폭이다. 만병병풍 8폭은 지난해 ‘서울 옥션’에서 전시되었던 작품이다. 작품 이름은 ‘궁중모란도’라고 쓰여 있었다. 화폭들이 꽤 커서 각각 80㎝는 넘는 것으로 기억된다. 언뜻 보면 화조도 같지만, 만병을 알고 나면 ‘만병병풍’이지 ‘화조도병풍’이 아니다. 더구나 ‘모란도’도 아니다. 만병에서 만물이 화생하므로 만병이 주체主體다. 이렇듯 화생의 개념을 모르면 어떤 장르도 깊이 연구할 수 없다.

만병이 주체인 만병병풍 8폭

만병병풍 8폭은 만병에서 만물이 화생하므로 만병이 주체主體다. 만병에서는 갖가지 형태의 만병이 화생할 수 있기 때문에 중첩된 형태로 나타났다. 같은 모양의 그릇이 아니고 큰 사발에 작은 병과 작은 항아리가 화생하거나 큰 사발에서 큰 항아리 하나가 화생한다. 실제 도자기 사각 병에서 병이 화생하거나, 큰 병에서 작은 병이 화생하는 모양으로 도자기를 만든 예가 많은데 전공자들은 모두 호리병이라 잘못 말한다. 화생의 개념을 모르면 어떤 장르도 깊이 연구할 수 없다. 도자기가 겹겹이 중첩된 것을 민화 이외에 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민화에 중첩된 도자기의 조형에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나. 어느 누가 설명한 것을 읽은 적이 있는가. ‘화생’의 의미를 모르면 도자기의 본질에 다가가기도 어렵고 도자기에서 도자기가 연이어 나오는 형태의 도자기를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만병의 표면에는 무량한 물을 상징하는 무량보주를 정교하게 그려 넣거나, 또 물을 상징하는 육각수문을 그려 넣는다. 육각형 무늬를 이제는 귀갑문龜甲文이라 부르면 안 된다. 즉 만병의 표면을 갖가지 영기문으로 가득 채운 것은 모든 그릇이 현실에서 쓰이는 그릇이 아닌 비현실적인 세계, 즉 영화된 세계의 존재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병 안에는 가시적인 물이 가득 차 있으므로 만병 표면에는 반드시 물을 상징하는 영기문들을 치밀하게 그려 넣었던 것이다. 무량보주를 사엽화문四葉花文이라 부르거나, 모르니까 그저 지나치거나, 육각수문六角水文을 귀갑문이라 부르거나, 영기문을 구름무늬라 부르거나 했을 때는 여러 영기문이 보이지 않아 만병을 영원히 파악할 수 없다. 어떤 그릇 입에는 실제로는 불가능한 영기문을 넓게 두어서(도 1-1, 1-2, 1-7) 영기꽃들이 마음껏 솟아오르게 했다. 만병 표면에 ‘壽’ ‘福’ ‘富’ ‘貴’ 등 문자를 그려 넣어 만병에서 화생함을 암시하는데 모두가 현세적 욕망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매우 형이상학적 의미로서 도교신앙의 궁극적 목표를 나타내고 있다.
만병의 형태는 궁중의 제기祭器를 닮은 것이 많고, 화사한 색조와 격조 있는 그림으로 보아 정도正道를 밟아서 그린 화원의 그림이라 생각한다. 다만 낙관이 없으면 무조건 민화라고 부르는 것은 경계할 일이다. 그러나 궁중에서 사용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어, 아마도 화원이 못 되었거나 화원에서 은퇴한 화가가 중인계급을 위하여 그렸음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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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병풍 속에 나타난 만병

제1폭은 표면에 무량보주를 그려 넣은 넓은 그릇에 항아리와 병이 들어간 상태이다. 무량보주를 그려 넣은 항아리에서 둥글고 노란 열매의 나무가 화생하고 있어 현실에서 보는 나무나 꽃은 아니다.(도 1-1) 노란 열매는 둥글고 하얀 점을 무수히 찍어 ‘무량한 씨앗=보주’가 가득 차 있음을 나타낸다. 그런데 중간에 두 개의 모란 모양의 영기꽃이 나무와 관련 없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옆의 흰 병에는 간단한 초화문이 그려져 있고 입은 특이한 영기문으로 넓게 열려 있다. 거기에는 꽃잎이 붕긋붕긋한 작은 꽃이 피어나며 항아리의 큰 나무의 아랫부분과 중간 위까지 뻗쳐 있어서 두 나무가 잘 어우러져 있다. 거듭 말하거니와 만병에서 화생하는 나무나 꽃은 현실에 없는 것이며 설혹 비슷하다고 해도 현실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지금까지 만병을 다루어 오면서 파악한 분이 계시겠지만, 만병에서 화생하는 나무와 꽃에서는 모두 ‘씨앗=보주’가 화생하여 결국 보주가 우주 공간에 가득 차 있는 것을 상징한다.
제2폭은 삼각대가 있는 항아리로 궁중 제사 때 쓰는 제기祭器다.(도 1-2) 역시 표면을 무량보주로 표현해서 만병임을 암시한다. 입에서 넓게 퍼지는 영기문으로 꽃과 열매가 화생하는 것을 나타낸다. 그런데 굵은 나뭇가지는 하나인데 붕긋붕긋한 영기꽃과 복숭아가 함께 피거나 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모두 모란이라고 알고 있는 꽃이 모란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왔다. 만병에서는 현실의 모란이 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만병에서는 복숭아가 열매 맺을 수 없다, 그러면 흰 복숭아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흰 복숭아들을 자세히 보면 붉은 반점 같은 것들이 있는데 반점이 아니고 무량보주이다. 이렇게 큰 원이 중앙에 있고 주변에 작은 보주가 둘려지고 있는 것은 백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즉 복숭아 형태는 허상이고 안에 가득 찬 보주들이 실상인 셈이다. 복숭아의 문제는 큰 주제이므로 다음 기회에 다루려고 한다. 즉 만병에서 무량한 보주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제3폭은 낮은 영기문으로 이루어진 탁자 위에 무량보주를 그려 넣은 대발大鉢이 놓여 있고, 그 안에 다시 높은 세 다리가 있는 육각수문을 그려 넣은 항아리, 즉 제기祭器가 놓여 있으며 입은 대단히 넓다.(도 1-3) 다리 부분에는 수복강녕壽福康寧 등 글자를 진사로 도장을 찍은 듯하다. 그릇에서 그릇이 화생하는,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이때에는 그릇이 만병이 된다. 만병에서 또 다른 만병이 화생한다. 만병에서 모란 같은 꽃이 피어 있으나 모란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충분히 증명했다. 분홍색 영기꽃과 빨간 영기꽃이 섞여 있으며 맨 위에는 자유분방한 형태의 영기꽃이 피어 있는데, 이 모든 영기꽃으로부터 구상적 잎이라는 영기문이 각각 사방으로 발산하고 있다.

옛 선인들의 고차원적인 상징 세계

제4폭은 만병 대발 안에 병과 항아리라는 만병을 화생시키고, 각각 다른 영기꽃을 피운다.(도 1-4) 병에서는 잎들이 뾰족한 영기꽃들이, 항아리 만병에서는 제3폭과 같은 영기꽃이 핀다. 다른 점은 검은 나비가 둘이 날고 있다는 것이다. 이 나비는 무엇이며 왜 꽃 주변에 날고 있는가? 만병에서 만병들이 화생하고, 만병에서 영기꽃이 화생하고, 영기꽃에서 만물이 화생하는 것을 상징한다. 앞으로 수많은 만병을 분석해 보면 차차 알게 될 것이다.
제5폭은 무량보주를 전면에 그려 넣고 귀복수貴富壽를 원 안에 써넣은 큰 항아리에서 영기꽃이 화려하게 피어나고 있으며 이 역시 검은 두 마리 나비가 주변을 날고 있다.(도 1-5) 제6폭은 영기문으로 구성된 낮은 탁자 위, 무량보주가 그려진 대발大鉢을 채운 큰 항아리에 영기꽃, 영기문이 그려져 있다(도 1-6). 이 만병 역시 영기꽃이 두 가지로 피어나고 나비 한 마리가 날고 있다. 현실의 나비가 아니고 영화된 나비다. 제7폭 역시 만병에서 만병이 화생하는데 입에서 강력한 짧은 영기문이 발산하고 있다.(도 1-7) 8폭 병풍의 영기꽃은 대개 비슷한 모습이다. 제8폭도 대동소이하다.(도 1-8)
8폭 병풍은 특히 만병을 매우 정교하게 그렸으며 채색도 담채淡彩여서 기품이 있으며 아름답다. 사람들이 만병의 의미를 몰랐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으며, 화사한 모란꽃과 나비를 보고 현실의 광경을 떠올렸던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그림에 이렇게까지 의미심장한 내용을 담고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옛사람들은 고차원의 상징 세계 속에서 살았는데, 지금의 우리사회가 자본주의화, 산업화, 공업화 등 갑작스러운 물질지상주의의 변화 속에서 잊어버린 것뿐이다.

만병 병풍의 채색분석

병풍 가운데 다섯 번째 병풍만 그려서 채색분석해 보기로 한다. 아주 잘생긴 항아리 전면에는 직선으로 된 무량보주가 그려져 있는데, 자세히 보니 무량보주 가운뎃점으로 나타낸 보주 주변에는 매우 작은 무량보주가 그려져 있다.(도 2-1) 말하자면 용이 보주의 집적인 것처럼, 만병도 보주의 집적으로 표현하려 한 것 같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긴 육각수 무늬를 4개 합쳐서 조형을 만든 것 같기도 하여 절묘하다. 그리고 큰 보주 안에 富貴壽라는 형이상학적 의미를 띤 글자가 화생하고 있다.
바로 이 만병에서 영기꽃이 피고 영기꽃에서 만물이 화생한다(도 2-2). 그려보면 모란이 아니다. 잎도 영기문을 추상적으로 나타내지 않고, 구상적으로 나타냈으므로 사람들은 현실에서 보는 꽃과 잎으로 보기 쉽다. 영기꽃에서 집중적으로 잎 모양 영기문이 발산하며, 잎에서 다시 잎이 생기고 그 잎에서 다시 잎이 생기는 것은 초록과 연두와 노랑으로 구별하여 채색했는데, 그것은 영기문의 전개원리로 이루어진 것으로 실제의 잎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니 잎이 아니고 영기문이라는 증좌이다. 게다가 어떻게 꽃에서 잎들이 생겨나는가!
또 하나의 만병 병풍 한 폭을 분석해 보려고 한다.(도 3-1) 이중의 대 위에 만병이 놓여있다. 만병 가운데에는 큰 보주가 있는데 안에 부정형인 여러 형태들이 무질서하게 가득 차있다. 즉 우주의 대생명력을 압축하여 나타낸 보주다! 그 보주로부터 영기문이 발산하며 나머지 공간 안에는 갖가지 색의 작은 점으로 보주를 가득 채웠다. 놀라운 것은 그 만병으로부터 양쪽으로 강력한 제3영기싹이 거대하게 발산하는 조형을 나타냈다는 점이다. 필자가 발견한 만물생성의 근원인 제3영기싹을 어떻게 옛 장인들은 정확히 인식하여 이처럼 대담하게 표현했단 말인가! 만병도 보주도 제3영기싹 등 만물생성의 근원인데 이렇게 만병을 중심으로 집중시켜서 마침내 영화된 연꽃과 연잎을 화생시킨다.(도 3-2) 그러면 왜 그렇게 고차원의 조형들을 집중시켜 영화된 꽃을 화생시키는가!(도 3-3) 이미 설명했지만, 연잎에서도 무량한 보주가 생긴다. 그리고 새 한 마리가 날고 있다. 새 하나로 만물을 상징한다. 이 그림에서 기가 막힌 조형은 연잎을 크게 변형시켜서 만든 각진 놀라운 조형이다. 즉 현실의 연잎이 아니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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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에서 회생하는 책거리

용에서 만병으로 이행하여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민화 한 점, 흔히 말하기를 책거리라고 하는 그림을 살펴보자.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책거리와 만병>이라 불러야 한다. 그 까닭을 설명하겠다.(도 4-1) 어쩌면 만병 그림이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밑부분에 만병이 셋이나 있으며 나머지는 만병에서 화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용의 입에서 화생하는 영화된 꽃나무를 보자.(도 4-2) 용에서 영기꽃이 화생하는 것을 그리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용의 형태를 짧고 굵게 과감히 변형시킬 수밖에 없다. 입을 크게 벌리니까 코의 위치와 모습이 익살스럽다. 몸이 붉은색인 영기문은 용을 화생시키는 가장 중요한 영기문으로 고구려 벽화에서부터 보아온 영기문이다. 그리고 얼굴에는 두 곳에 용이 보주의 집적임을 암시하는 무량보주를 표시했다. 용의 머리 뒤에는 영기문이 발산하는 보주가 있다. 몸에는 제1영기싹을 표현하여 역시 만물생성의 근원임을 강조했다. 그런데 용의 앞과 밑 부분의 포도나무는 무엇일까. 포도나무가 아니다. 무량한 보주다. 용의 본질인 보주를 포도나무의 형태를 빌려서 표현한 것이다. 그렇게 용의 몸에 온갖 보주들을 부여하여 생명생성의 근원의 성격을 강화해 놓고, 마침내 만물을 화생시키는 영기꽃을 다시 화생시킨다. 탁자에도 무량보주를 표현했다.
그런데 용의 바로 옆 뒤쪽에 타원체의 항아리가 있으며 마치 보주처럼 구멍만 냈다. 만병이다! 그리고 용에서처럼 ‘포도=보주나무’를 중첩시켰다. 즉 만병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고 있으나 생략했을 뿐이다. 이 용과 만병을 겹치게 하여 배치하고 ‘포도=보주나무’를 함께 표현한 것은, 용과 만병이 같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여준다. 자, 용의 입에서 영기꽃 나무를 화생하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므로 그 역할을 만병에게 넘겨준다는 메시지가 들리지 않는가. 용이 만병이라니 놀라울 뿐이다. 용에서 보주로 다시 보주에서 만병으로 이행하여, 이제부터 만병에서 무엇이든지 화생하는 그림이 수없이 그려진다. 책거리와 함께 우리가 알고 있던 화병은 화병이 아니고 만병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 왜 책거리에는 같은 비중을 갖는 만병이 있는 것일까. 그런데 자세히 보니 바위같이 돌기가 있고 우람한 만병이 용과 함께 어울리면서 붓, 두루마리, 만병의 가지, 서책 등 책거리가 바로 그로테스크한 큰 만병에서 화생하지 않는가!(도 4-3) 만병에서 여래나 락슈미 같은 신적神的 존재가 화생하거늘, 진리를 적은 성스러운 서책도 물론 화생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이 그림은 만병병풍이라는 한 마디로 모든 문제가 풀린다.

 

글 : 강우방(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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