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의 근원 만병滿甁 세 번째 이야기. 한국·중국·일본을 중심으로 살펴보다

도 1-1. 중국 마왕퇴 출토 비단그림, 기원 전 187년, 맨 밑에 만병

지난 호에서는 동양 만병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인도의 만병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는 우리네 문화권에 나타난 만병을 좀 더 쉬이 이해하기 위한 기초단계였다. 이번 호부터는 본격적으로 한국·중국의 만병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여러 작품과 회화 속에 등장한 한·중·일 만병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고, 이들이 상징하는 바를 자세히 알아보자.

2,200년 전, 관 위를 덮은 비단 그림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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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겨울, 중국 중부 장사시長沙市의 동쪽 교외 부근을 지하병실과 수술실을 짓기 위해 호남성 주둔군이 탐사했다. 지하 병동을 지으려고 지하를 파며 들어가는 도중, 한 구멍에서 갑자기 청백색의 가스가 분출되었다. 그들은 한漢나라의 무덤이라고 확신했고, 발굴조사가 끝난 1972년, 세계인들은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경이로운 광경을 온갖 매체를 통해 목격하게 된다. 거기에는 지금으로부터 2,200년 전에 죽어 관 속에 묻혔던 여인의 시신이 전혀 부패하지 않은 채로 있었으며, 팔을 손가락으로 누르자 잠시 움푹해졌던 그녀의 피부는 마치 살아 있는 듯이 천천히 원상태를 회복했다. 그녀의 체내 기관들은 세부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보존되어 있어서 지문도 채취할 수 있었다. 자세히 분석해본 결과, 그녀의 나이는 50세 정도이며, 154.4cm의 키에 비만형이었다. 그녀의 시신은 20겹의 옷으로 싸여졌고, 4겹의 목관에 넣어 다시 큰 곽에 넣어졌다. 모든 것에 당대 최고 장인의 솜씨가 발휘되었다. 따라서 그 당시의 복식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인 셈이지만, 중국이나 일본학자들은 복식의 정체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특히 가장 귀중한 것은 관 위에 덮여 있던 비단 그림이다.(도 1-1) 이 그림에 대해서는 205cm 길이를 상하로 3등분하여 아래로부터 지하 세계와 인간계와 천상계를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생명 생성의 근원적 세계 나타낸 만병

필자는 밑 부분의 신령스러운 물고기와 만병 등으로 보아 지하세계가 아니라, 오히려 주인공을 신선세계로 이끄는, 생명생성의 근원적 세계를 그렸다고 생각한다. 맨 아래에 물을 상징하는 물고기와 만병이 없으면 주인공이 신선세계로 가려는 염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만병이란 우주의 대생명력이 응축된 항아리다. 그림을 실측한 중국인은 가장 중요한 맨 아래의 만병을 깨진 항아리 조각으로 여겨 아예 그리지 않아 사라졌다. 이에 필자는 혼자서 얼마나 크게 웃었는지 모른다. 물론 논문을 쓴 일본학자는 만병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만병을 필자가 그려 넣었다. 중앙에 그려진 크게 표현한 노부인이 바로 이 무덤의 주인공이다. 동양회화사에서 당나라 이전의 기념비적인 대작이 출현한 셈이니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그런데 이 부인은 누구일까? 전한前漢(기원전 206년~기원후 8년)의 장사국 승상인 이창李蒼은 대후侯에 봉해졌는데, 부인과 아들 일가의 무덤 3기까지 함께 있었다. 마왕퇴馬王堆라는 기존의 명칭은 그 지방 사람들이 당나라 다음인 오대五代(10세기 무렵) 초나라의 창건자 마은馬殷(852~930)의 무덤이라 여겨 부른 이름이다. 그런데 발굴해 보니 뜻밖에 전한前漢, 즉 기원전 186년에 죽은 여인의 어마어마한 무덤이 아닌가. 이제 진실이 밝혀졌으니 ‘이창 부인 묘’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이창의 무덤은 언젠가 이미 도굴당했다.

신선세계로 가는 염원 담아낸 회화 속 만병

원본 비단 그림은 너무 어두워 알아보기가 어려워 필자는 독자들이 알아보기 쉽게 영기화생론에 입각하여 채색분석을 시도했다.(도 1-2) 그 당시의 우주관과 인생관이 압축된 그림으로 세계회화사에서 단연 으뜸가는 걸작품인 셈. 여기서 주목할 것은 미미하나마 맨 밑의 만병이다. 만병에서는 만물이 화생하지만 ‘어떤 중요한 사건도 신비한 탄생’을 한다. 즉 이창 부인이 신선세계로 가는 과정이 화생하고 있다. 그러므로 만병이 없으면 그런 염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아랫부분을 다시 정리하여 만병을 완전한 항아리로 그려 넣었다.(도 1-3) 중국에 인도만큼 이른 시기의 만병은 많지는 않으나, 이미 바르후트 스투파(기원전 2세기)와 유사한 시기에 만병의 개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중국 사천성 성도시成都市 만불사萬佛寺 출토 6세기의 작품에서는 두 보살이 바로 만병에서 화생하는 광경으로 표현했다.(도 2-1) 항아리에서 가장 긴 영기문이 양쪽으로 뻗쳐 있고 매듭에서 굵은 줄기와 연꽃 줄기가 함께 나와 큰 연꽃을 피우고 두 보살이 화생하는데 연화화생이 아니고 항아리가 더 근원적이므로 만병화생이라 불러야 한다. 큰 양 갈래 사이에서는 연잎들과 작은 연꽃 같은 꽃이 피어오른다.(도 2-2) 그동안 우리는 연꽃만 보았고 기록에서도 ‘연화화생’만 보았으므로 연화화생으로만 설명해왔다. 그러나 이미 인도의 만병에서 신전이나 여신이 화생하는 만병의 위력을 보아온 것처럼, 중국에서도 만병에서 여래가 화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인이나 한국인들은 경전에서 ‘연화화생’만을 접했으므로 ‘만병화생’은 꿈도 꾸지 못한다. 이 조각품에서 만병이 가장 근원적인 존재이므로 ‘보살의 만병화생’이라고 불러야 한다. 중국학자들은 아직도 이 조각품을 보며 ‘만병에서 생기는 연화좌’로 설명을 끝내고 있다.

만병에 대한 인식 변화 필요한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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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과 청나라의 궁궐인 자금성의 벽에는 매우 큰 만병을 도자기로 만들어 고정해 놓은 것이 있다. ‘굉장한 꽃병’이다.(도 3-1) 중국인들은 한나라의 비단 그림에서 만병을 지웠을 만큼 만병에 대한 인식이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없다. 만병이라 하면 만병에서 생겨나오는 갖가지 꽃이나 나무 이름이나 신적神的 존재를 명시할 만큼 인식이 깊지 못하다. 필자는 만병에서 생기는 것의 이름을 반드시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만병의 개념이 점차 공고하게 정립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병에는 띠가 둘러서 양쪽에서 매듭을 맺고 있으며 띠 자락이 아름다운 곡선으로 천의처럼 휘날리고 있다.(도 3-2.) 만병 자체에는 몸 위아래에 연화문 모양 영기꽃잎이 있으며, 다시 대좌와 입에도 같은 영기꽃잎이 있다. 항아리 몸에는 보주, 서각, 산호, 무량보주 등 팔보八寶가 조각되어 있는데 동양의 학계에서는 칠보라고 잘못 부르고 있다.
이 만병에서 세 갈래의 영기문 줄기가 나와 전개하며 곳곳에서 영기꽃이 피고 있다.(도 3-3) 꽃은 모란도 연꽃도 아니다. 씨방도 일반적인 씨방 모양을 좀 더 영화시켜 표현하여 씨방 안에 가득 찬 씨앗을 ‘보주’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모든 꽃잎과 잎의 끝을 둥그렇게 하여 ‘보주화寶珠化’ 시키고 있으니, 만병에서 무량한 보주가 쏟아져 나오는 것 같지 않은가! 매우 단순화시켜서 그려보면 만병에서 무량한 보주가 쏟아져 나오는 광경이다! 이 말은 매우 중요하다.(도 3-4)

일본 회화 속 등장한 만병에 대한 해석

프랑스 기메박물관 소장 청나라 오채계복병五彩係甁에서 중국의 도자기 가운데 실제로 띠를 매어 매듭을 지은 것을 책을 통해 처음 보았다. 그런데 중국인은 도자기 병을 보자기로 싼 것이라 본 모양인지 ‘보자기 복’자를 썼다. 그러고 보니 중국 것은 보자기에 싼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도 4)
일본에도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8세기의 교왕호국사敎王護國寺 양계만다라 그림 네 귀에 만병이 그려져 있지만 일본 학자들도 화병花甁이라 부르니 만다라를 올바로 해석할 수 있을까?(도 5-1) 채색을 분석해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도 5-2) 맨 아래에는 연꽃 모양이 있고 씨방의 윗부분이 평평하다. 그곳에서 만병이 화생하는데, 만병의 대와 중간, 입 부분에 보주 띠가 있다. 만병의 동체에는 밑부분에 꽃잎이 있어서 다시 한 번 여기에서 만병 동체가 화생한다. 중간 부분에 띠가 둘러 있고 양쪽에서 매듭을 짓고 장식 띠가 내려오는데 줄줄이 보주가 내려오고 있다. 그 만병으로부터 제3영기싹 잎이 이중으로 나오고 양쪽으로 영기꽃 줄기가 뻗어나가고 붕긋붕긋한 영기꽃에서 다시 세 갈래씩 보주가 피어난다.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조형들이다. 그리고 마침내 칼끝 같은 것이 화생한다. 바로 독고저獨杵다. 양쪽으로 나오는 것은 번개 표현이다. 일본 학자들은 이 세 갈래를 보고 삼고저三杵라 하나, 중앙의 영기문이 주主이고 다른 굽은 것들은 용의 입에서 나오는 영기문인데, 밀교의 중요한 지물인 금강저金剛杵를 크게 잘못 인식하고 있다. 금강저란 마魔를 다스리는, 깨달음을 얻어 마魔를 다스린다는 의미와 통한다. 즉 독고저의 만병화생이다.

만병과 고대 우주생성론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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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우리나라에도 만병이 있을까? 있다. 고구려 쌍영총의 현실의 사방 벽 맨 윗부분에 만병들이 그려져 있지만, 벽화 연구자들은 꽃병이라 부른다.(도 6-1) 그런데 땅에서 만병이 솟구쳐 나오는데 만병 안으로부터 제1영기싹, 제2영기싹, 제3영기싹 등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즉 만물생성의 근원이 되는 영기문들이 좌우로 폭넓게 뻗어가고 있다.(도 6-2) 만병은 둥근데 입 부분은 붕긋붕긋하여 신령스러운 기운을 뿜어내고, 중앙부에서도 무엇인가 솟아나오고 있다. 그 좌우로 영기싹, 영기문이 역동적으로 뻗어나간다. 채색분석한 것을 보면 분명히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땅에서 무엇인가 솟구치는 가운데 만병도 함께 솟구치고 만병으로부터 무엇인가 솟구치는 것은 세계에서 처음 본다.
그런데 동양은 물론 서양 고전에서도 ‘태초에 혼돈混沌이 있었으며’ 그 후에 혼돈으로 만물이 생성하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혼混에는 여러 뜻이 있는데 그 가운데 눈길을 끄는 설명이 있다. ‘混은 혼과 같은 글자로 뜻을 나타내는 삼수변( =水, , 물) 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곤昆과 같은데 (‘치솟아 흐르다→혼’으로 이루어짐) 본래는 지중地中으로부터 물이 소용돌이치며 솟아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쌍영총의 만병이 땅에서 솟아오르는 형상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그리고 만병이 중요한 것이긴 해도 바로 샘물이 땅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뜻하지 않는가. 돈沌에도 여러 뜻이 있지만, ‘만물萬物 생성生成의 근거根據가 아직 나누어지지 않은 모양’, ‘기운 덩어리’, ‘빙빙 도는 모양, 즉 순환’ 그리고 ‘물결치는 모양’ 등 영기문의 속성과 관련되는 뜻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고대의 우주생성론에서 항상 처음 등장하는 ‘태초에 혼돈이 있었다’는 것과 만병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다.

직지사 대웅전에 그려진 만병의 의미

다음에는 직지사 대웅전 만병을 보기로 하자.(도 7-1) 어느 사찰에나 외벽 공포부의 포벽마다 만병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여래를 그려 넣는 경우가 많다. 직지사 대웅전에는 포벽마다 만병이 그려져 있는데, 만병에 영기문을 베풀고 만병에서는 갖가지 꽃 넝쿨 모양 영기문이 전개되고 있다. 맨 밑의 붕긋붕긋한 조형은 모란이 아니고 영기문임이 분명하다. 영기 줄기가 전개하면서 제1영기싹이 돋아나오고 위에서 본 영기꽃이나 옆에서 본 영기꽃 등이 여기저기에 피어 있는데 모두 보주꽃이다. 영기꽃 중심에 둥근 원이 있는 것은 무량한 씨앗(보주를 머금은 씨방)인데 작은 그림이므로 자세히 표현할 수 없을 뿐이지 모두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잎은 모두 제1영기싹을 변형시킨 것이다.(도 7-2) 직지사의 또 다른 만병을 살펴보자.(도 8-1) 앞에 비하여 정연한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다. 제1영기싹을 변형시킨 조형, 연잎, 제3영기싹, 연꽃 등이 좌우로 뻗어 나가고 있다. 그 갈래 사이로 큰 연잎이 있는데 이 역시 만물생성의 근원이다. 연잎에서 무량한 보주가 나오는 도상은 이미 앞 회에서 본 적이 있다. 연잎에서 연꽃이 화생하고, 그 연잎과 연꽃잎에서 세 가닥 제3영기싹이 생기고 그 사이사이에서 연잎과 연봉과 연꽃이 생겨나며 마지막으로 중심에서 씨방이 크게 보이게끔 한 연꽃이 피어 있으니, 이 만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맨 위의 씨방이다. 씨방의 씨앗들이 보주가 되어 무량하게 솟아오르는 광경이다. 뿐만 아니라 만병에서 나오는 갖가지 영기문에서 모두 무량한 보주가 솟구쳐 나오는 것이다. 채색분석하면 더욱 명료하다.(도 8-2) 여수 흥국사의 천장에는 만병이 엄청나다. 여러 가지 모양의 영기꽃이 만병에서 솟아나오고 있다.(도 9)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비 관장식 속 만병

좀 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아마도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비 관장식에 보이는 만병이 가장 오래되었을 것이다. 물론 학계에서는 중심에 있는 것을 꽃병이라 부르며 의미도 모른다. 채색분석한 것을 자세히 보기 바란다.(도 10-1) 잎 같은 모양을 모두가 팔메트(종려나무 잎)라 부른다. 백제의 왕비 관장식과 서양의 종려나무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의문조차 가지지 않는다. 게다가 반 팔메트란 말도 쓴다. 팔메트를 왜 반으로 잘라 무늬로 쓰는가. 자세히 분석해 보면 제3영기싹임을 알 수 있다. 제2영기싹 갈래에서는 잎 같은 것이 하나, 혹은 둘, 심지어 무령왕릉에서처럼 일곱 개도 나온다. 만물이 탄생하니 무엇인들 나오지 못하랴! 절반 같이 보이는 것도 제3영기싹이요, 온전한 좌우대칭인 팔메트도 같은 제3영기싹이다. 그래서 왕비 관장식을 단순화시키니 만병으로부터 사방으로 발산하는 제3영기싹들이 아닌가!(도 10-2)
지금까지 인도-중국-한국의 만병을 충분히 보았고, 만병이 상징하는 바도 알았다. 다음 호에서는 박물관의 만병으로 돌아가 만병에 꽂아 놓은 것이 아니라 솟아 나오는 조형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글 : 강우방(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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