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의 근원 만병滿甁 다섯 번째 이야기. 불화의 만병과 민화의 만병병풍

도 1-1. 수덕사 벽화만병

*도 1-1. 수덕사 벽화만병

이번 호에서 다룰 주제는 불화의 만병과 만병병풍滿甁屛風이다. 만병병풍은 만병으로만 꾸민 병풍인데, 다소 생소하게 느낄 수도 있다. 대부분 만병은 꽃병으로 알아 왔으므로 모두 ‘화조도花鳥圖 병풍’으로 불러왔기 때문이다. 사실은 ‘꽃병 병풍’이라 말할 수도 없고, 길게 갖가지 꽃나무와 동물과 날짐승이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화조도’라 부른다. 하지만 이미 여러 회에 걸쳐 연재했듯이 ‘만병’이라 하면 ‘만병에서 솟아나는 영기꽃’을 모두 포함하므로 제목은 만병이라는 용어로 충분하다.

만병에서는 ‘영화된 꽃’이나 ‘생명수’ 혹은 심지어 ‘영화된 나무’가 솟아나기도 하는데, 모두 만물생성의 근원인 우주목을 상징한다. 따라서 갖가지 꽃과 나무는 만병과 함께 엄청난 상징을 띤다. 그저 단순히 꽃병이 만병이 되는 것이 아니다. 만병을 인식하려면 ‘용’을 올바로 인식해야 하며, ‘보주의 집적集積’인 용을 파악해야 보주를 올바로 할 수 있다. 연꽃도 그 실체를 파악해야 비로소 연꽃 씨방에서 보주가 나와서 만병과 한몸이 된다. 그저 몇 강의로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현실의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많은 작품을 체험하고 나면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도 아니다.

조형예술과 전통의 단절

무릇 조형예술이란 것은 현실을 아름답게 만들고 풍요롭게 만들고 정화하고 영화시키는 예술가들의 고도의 정신적 산물이다. 그러나 작품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화됨에 따라 현대의 작가 정신은 거의 상실되어 버린 지 오래다. 따라서 현대미술에 길든 사람들이 깊은 공부를 하지 않는 한, 고대에서 근대(근대의 불화와 금속공예나 도자공예 등은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에 이르는 심원한 조형예술이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전통의 단절은 한국전쟁 이후 미국 문물이 홍수처럼 밀려오고, 젊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미국에 가서 미국의 좋은 점은 배우지 아니하면서 시작됐다. 특히 인문학의 경우 학위를 목적으로 공부해 왔으므로 문제가 적지 않아 그 후유증이 지금도 계속되어 마침내 인문학의 몰락을 초래하고 있다.
이미 자세히 설명해왔듯, 만병은 이미 고대의 우주생성론을 반영하며 성립되었으므로 그 역사는 길고도 길다. 만병이 용을 대신하여 자리 잡았음을 민화가 웅변하고 있으며, 건축과 신상神像과 도자기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화목畵目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필자가 민화에서 만병을 중요시하는 또 다른 이유는 민화에서 만병의 조형적 표현이 가장 만병답게 마음껏 충분히 표현되고 있음을 알았다. 도자기의 조형 역시 만병의 기원을 이루는 기원 전 200년 전 이후 인도의 수많은 만병을 공부해야 눈에 보이고 상징을 파악할 수 있으며, 그 전통은 중국과 한국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와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른다.

고려 불화에 나타난 만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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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은 고대 종교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인도에서 불교나 힌두교의 산물로 창조되어 우리나라 불화에 수많은 만병이 나타나며, 건축에도 나타나지만, 모두가 꽃병으로 알고 있으니 불화도 건축도 올바로 해석할 수 없다.
우선 고려불화에 나타난 만병을 살펴보기로 하자. 만병 가운데 가장 오랜 벽화壁畵는 고구려 쌍영총 벽화의 만병으로 알려졌고, 이미 소개한 바 있다. 고려시대의 가장 오랜 만병 그림은 수덕사修德寺 대웅전大雄殿의 만병 벽화 네 점일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후불탱後佛幀이 그려져서 벽화를 대신하여 이른 시기에 벽화가 남아 있고, 후기에도 약간 남아 있다. 하지만 고려시대에는 중국에서처럼 벽화가 많았으나 남은 건축이 드물어서 벽화의 실상을 알 수 없었다. 수덕사 벽화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 고려불화에는 많이 나타나지만, 현존하는 가장 오랜 건축의 벽화이므로 남다른 가치가 있으며 그림 크기도 매우 크고 주어진 벽면에 독립적으로 있어서 마치 여래상을 보는 느낌이다. 수덕사 창건이 고려 1308년이므로 이 만병 역시 그 당시에 그려진 가장 오랜 사찰벽화다. 화폭 벽면 높이가 117cm 길이가 204cm 되는 넓은 벽면에 그린 큰 만병인데 모사도만 남아 있다.(도1-1, 2, 3, 4) 그 화폭 벽면은 대웅전 동서 벽의 평방 위 중앙 부분에 위치해 있으니 가장 중요한 벽면이다. 도 1의 만병을 보면 마치 고려청자 가운데 과형병瓜形甁과 비슷하여 이 만병도 그렇게 부른다.(도 2-1) 과瓜는 오이를 말하는데, 실제로 오이는 이렇게 생기지 않았다. 굳이 찾아본다면 골들이 뚜렷한 오이과에 속한 참외모양에 가깝다. 그런 명칭이 이미 어느 책에서나 볼 수 있으니 모두가 참외를 연상하므로 그런 용어가 만병의 조형적 성격을 더욱 알 수 없게 만든다.

고려벽화 속 만병 채색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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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사진의 만병을 확대하여 살펴보자.(도 2-1) 원래 색이 있으나 모두 현실에 보는 형태나 채색이어서 현실에서 보이는 그릇이나 꽃들로 알아보기 쉬워서 흔히 부처님 앞에 바치는 공양화供養花라고 부른다. 도록에는 일본인이 부르는 수생화도水生花圖(동측면의 그림)와 야생화도野生花圖(서측면의 그림)라 했는데 그 차이도 모르겠고 명칭도 낯설다. 일본인이 부르면 그대로 따라가는 습성을 버리자. 수덕사 만병은 수반水盤처럼 낮고 넓다. 조형을 자세히 보면, ‘붕긋붕긋한 영기문의 조형의 속성’이 뚜렷하여 터질 듯 양감이 강하다. 그리고 자세히 만병 안을 보면 물이 넘쳐나듯 둥근 모양이다. 그러므로 병이나 항아리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항아리나 사발이나 승반보다도 그 안에 가득 찬 대생명력이며 그것을 가시화한 것이 물이며 물에서 생겨난 갖가지 추상적, 혹은 구상적 영기문이 중요하여 그 영기문에서 만물이 생성한다. 그러므로 이 그림이 그려져 있었던 법당은 만물이 생성하는 우주의 세계임을 웅변한다. 여래 역시 만물의 근원이므로 법당은 그저 예배 공간이 아니라 여래상이나 벽화의 만병 등으로 대우주를 장엄하고 있다. ‘만병은 여래보다 더 근원적’이어서 불화의 여래 앞에 만병이 놓여 있는 경우가 있다.
이제부터 채색분석하면서 파악해보자.(도 2-2) 만병 안에 붕긋하게 넘쳐 나올 듯한 물에서 처음에 긴 풀 같은 것들이 앞으로 뻗어 나와 약간 아래로 기울었다. 그 다음 양쪽으로 제2영기싹(녹색)이 나오고 이어서 같은 제2영기싹 영기문(연두색)이 파동을 이루듯이 연이어 퍼져간다. 이러한 영기문은 현실에 없는 조형이다. 이러한 조형은 양쪽에 노란 연꽃모양에서만 발산하는 영기문이 되어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다. 파동문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양쪽으로 노란 연꽃 모양 영기꽃이 피며 역시 각각 파동문이 발산하고 있는데 그 연두색 파동문을 보면 맨 아래로부터 맨 위로 지그재그로 전개해 나감을 알 수 있다. 그 최초의 맨 아래 양쪽으로 전개하여 나간 두 제2영기싹과 그 파동문 사이로 큰 연잎이 만병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조형 상 연잎은 크게 강조하여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연잎모양에서도 무량한 보주가 쏟아져 나와 인도 만병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음을 이미 살펴보았다. 그 전통이 1300년 동안 이어져 내려와 고려 수덕사 벽화에서 만나게 되고 그 만병을 1000년 만에 지금에야 알아보니 감회가 실로 깊다. 연잎의 윤곽선도 붕긋붕긋하고 위아래로 잎이 둥글게 말려서 입체감을 주고 있는데 이 역시 번엽飜葉의 일종이다. 바로 그 연잎에서 붉은 연꽃모양 영기꽃이 화생하고 원통형 씨방이 있으며 흔히 그 위에 보주가 화생하지만 여기서는 다시 노란 연꽃이 피어나고 그 영기꽃에서 긴 타원형의 부들 모양의 영기문이 강력하게 뻗쳐나가고 있다. 부들은 연꽃과 마찬가지로 개울가나 연못의 습지에서 자라므로 물을 상징한다. 뿌리줄기가 옆으로 뻗으며 키가 2m에 이른다. 최근 서울 삼성동 봉은사에서 연못에 부들과 연꽃이 함께 있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현실의 식물로 보지 말고 상징으로 읽으며 보아야 한다. 이렇게 하여 중심축이 이루어지며 이 축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으로 전개하여 나간다.
그 중심축의 양쪽을 살펴보자. (도 2-3) 맨 양가의 연꽃은 색을 달리하여 좌우 대칭을 살며시 깬다. 맨 아래쪽에 위에서 본 연꽃도 색이 다르다. 맨 양쪽 가장자리의 연꽃 밑으로 마름이 각각 하나씩 있으며 만병 중앙 부분에 두 개의 마름이 있다. 마름 역시 연못이나 소택지에서 자란다. 뿌리는 진흙 속에 박고 줄기가 길게 자라서 물 위에 뜬다. 잎은 뭉쳐난 것처럼 보이며 잎자루에 굵은 부분이 있는데 이는 공기주머니로서 물 위에 뜰 수 있도록 해준다. 잎몸은 마름모꼴 비슷한 삼각형이므로 이 만병에서는 삼각형을 강조하여 세 갈래로 변형시키고 있다.
이제 채색하여야 할 나머지 조형은 만병에서 화생한 만물생성의 근원들로부터 발산하는 길고 가는 풀들만 남았다.(도 2-4) 그 가는 풀들도 끝이 번엽이다. 즉 영화시킨 영기문으로 과감히 빨간 색으로 칠했더니 그 강렬한 영기가 만병 사방으로 끝없이 무한히 뻗쳐 나간다! 이 좌우대칭을 지향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고려 사찰벽화의 최고最古의 만병이며 조형성이 역시 최고最高인 고귀한 작품이다. 원작품은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으며 임천林泉(해방 후 국립박물관에서 실측도와 모사를 담당했던 분) 선생의 모사도만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시대 불화 속 만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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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조선시대 불화를 살펴보기로 한다. 고운 수정사에 봉안된 지장시왕도(1821)를 보면 바로 앞에 만병을 두어 ‘지장보살과 그 권속들이 만병화생하는 장면’을 보여준다.(도 3-1) 역시 공양화로 알고 있다. 만병의 개념도 모르고 화생化生의 개념도 알기 어려우므로 지장보살뿐만 아니라 이 모든 권속들이 만병에서 현신하는 것이라고 도저히 알 수 없었다.(도 3-2) 채색 분석해 보면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다.(도 3-3) 양감이 있는 둥근 항아리의 짧은 다리들은 영기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만병의 넓은 입도 붕긋붕긋한 영기문이다. 항아리 안을 보면 무엇인가 부글부글 끓는 것 같은 모양이 있다. 바로 역동적인 물이다. 그 물에서 무엇이 나오는데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연꽃과 연잎뿐이다. 그 외의 것은 무엇인지 모르고 이름도 없으니 보이지 않는다. 붕긋붕긋한 제1영기싹과 제3영기싹이 나오고 있다. 바로 만물생성의 근원인 영기문들이다. 그 영기문들과 함께 나오는 것이 연잎과 연꽃이다. 연꽃의 입장에서 보면 양쪽으로 연잎이 연꽃을 바라보며 마주 보는 모양이다. 그런데 연꽃을 보면 우리가 현실에서 보는 연꽃이 아니다. 그 조형을 수없이 그려보면 형이상학적으로 변형된 영기꽃이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생명력의 조형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영기문과, 현실의 연꽃과 연잎은 변형시켰든 변형시키지 않았든 영화된 존재로 역시 만물생성의 근원이 되어 그 두 가지에서 무량한 보주가 나오는 것을 소리 없이 웅변하고 있다.

만병병풍

이제부터 <만병병풍>을 살펴보기로 한다. 불화의 만병을 먼저 다룬 것은 불화의 만병과 민화의 만병은 깊은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월간 <민화>에 원고를 연재하면서 민화라는 것은 우리가 흔히 보는 허접스러운 그림들도 모두 민화라고 부르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문인화文人畵라고 해서 문인 아무나 그린 허접한 그림을 우리는 다루지 않지 않는가. 민화 가운데는 솜씨는 서투르거나 도식적이라 할지라도 뛰어난 예술품이라 불리는 그림들을 선택해야 한다. 지금껏 다루어 온 ‘보나 장신구 박물관 소장 만병’ 그림들은 모두 화원이나 화원이 되려다 선택 받지 못한 화가거나 화승이나 화승 출신들이 그린 것이라 생각한다. 작가 이름이 없다고 모두 민화라 부르면 안 된다. 필자는 이른 바 <민화양식>을 처음부터 언급하여 왔다. 앞으로 민화양식의 개념을 정립해 나가야 하지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우주생성론이라는 사상을 담고 있는 만병, 더구나 도자기를 연구하려면 반드시 만병을 깊이 연구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은 필자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특히 인도의 만병 연구는 도자기 연구의 필수 과정이다. 인도의 만병은 물론 중국과 한국의 만병을 연구해야지만 도자기가 모두 만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만병 표면에 그린 조형도 단지 무늬가 아니라 모두 영기문임을 더욱 확실히 알게 되었다. 도자기가 모두 만병의 성격을 지녔다고 깨달은 것은 『수월관음의 탄생』을 쓰면서였다. 그러나 단지 그 회화에서 보인 그릇들을 보며 주장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는데, 만병을 공부하면서 확신을 갖게 되었다. 도자기 전공자는 불화를 모르니 만병을 알 리 없다. 그리고 불화도 그저 회화라 부르기로 한다. 서양에서는 기독교 미술을 주제로 그리면서도 그저 회화라고 부르지 기독교미술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리고 화조도의 연원은 문명의 발상기로 올라간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문명의 발상기 때 조형화된 우주목을 중심으로 양쪽에 영조나 영수가 배치된 도상들이 동서양에 많은데, 역사적 전개를 보면, 필자는 금속공예나 도자공예의 영기문을 수없이 채색분석하면서 느꼈던 것이나, 이번 만병을 공부하면서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즉 화조도의 기원을 만병에서 찾은 것이다. ‘만병’과 ‘우주목-영조-영수’는 서로 통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기원 문제는 매우 중대한 큰 주제이므로 따로 다루기로 한다.

만병 병풍 채색 분석
도 4. 만병, 개인 소장

▲도 4. 만병, 개인 소장

그러면 가장 알기 쉬운 <만병평풍> 한 점(한 폭)을 살펴보기로 한다.(도 4) 모두 6폭이나 8폭이었을 터인데 필자가 본 것은 모두 네 폭뿐이다. 처음 이 민화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아, 이것이 만병이구나!’ 만병과의 첫 해후였다. 이 개인 소장 병풍은 흔히 ‘화훼초충도花卉草蟲圖 병풍’이라 불렸다. 모란이 많으므로 ‘모란도牧丹圖 병풍’이라고도 한다. 회화 전공자들은 이 이상한 그림을 보고 혼란에 빠질지도 모른다. 왜 모두 모란이 자라고 있는가? 그릇들에는 정교한 무늬들이 많은데 무엇을 뜻하는가? 이런 만병병풍은 어디에 쓰인 병풍일까? 의문이 꼬리를 문다. 우리는 이미 만병에 대한 고찰을 상세히 한 바 있다. 종전처럼 ‘꽃 항아리’나 ‘화훼초충도’라 부르면 그리 특별히 할 말이 없다. 그런데 갖가지 그릇들을 만병이라고 인식하게 되었으니, 꽃가지들은 꽂은 것이 아니라 ‘만병에서 솟아나는 영기꽃’이라야 한다.
그러면 그 작품을 채색분석하며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만병부터 살펴보자.(도 5-1) 실제 그림을 보면 만병의 크기가 작고 세월의 때가 묻어서 세부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진 찍어서 컴퓨터에서 확대하여 보면 세부를 그릴 수 있고 채색분석도 할 수 있다. 이 그림에는 두 개의 만병이 겹쳐 있다. 그런데 만병 앞에는 큰 둥근 원의 일부가 중첩하여 있는데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다만 그 세 개의 둥근 원에는 갖가지 영기문이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가장 앞 쪽의 것에는 노랗게 칠한 잎들은 영기꽃이며, 따라서 제1, 제2 영기싹이 발산하고 있다. 그 다음 둥근 부분에는 역시 보주 다섯 개가 붙어 있는 작은 무량보주가 있고, 중심에 작은 빨간 보주가 있고 푸른색의 긴 잎 같은 것은 보주에서 발산하는 영기문이다. 맨 뒤의 둥근 원에는 파초 모양이 있으나 이미 파초가 아닌 영화된 파초로서 현실의 파초와는 차원이 다르므로 잎 양쪽에서 노란색의 영기문이 발산하며 끝은 번엽飜葉을 이루어 영기문임을 증명하고 있다. 번엽이란 잎이나 꽃잎이나 끝을 뒤집어 입체적으로 삼는 것으로 영화시키는 한 방법이다.
앞의 큰 만병의 표면에는 양쪽에 무엇이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직선들이 교차하고 있는데, 분청사기에 흔히 보는 무늬이지만 이런 직선 무늬도 영기문이다. 그렇게 때문에 그 양쪽에서 연두색의 잎 같은 것들이 촘촘히 나오고 있으며 이 역시 도자기나 불화에 흔히 보이는 영기문이다. 그 위아래에서는 빨갛게 칠한 작은 잎 모양 영기문이 발산하고 있어서 영기문 전개의 원리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중앙에는 가운데 빨간 작은 보주가 있고, 꽃잎 같은 모양이 확산하여 영기꽃을 이루며 그 영기꽃의 사방으로 역시 작은 잎 모양의 녹색 영기문이 발산하고 있다. 그 항아리 모양의 목은 꽤 넓은데 입이 항아리보다 더 넓게 벌려져 있다. 아랫부분에는 보주가 서너 개씩 모여 있고 사방으로 푸른색의 영기가 발산하고 있으며, 입 맨 위 부분에는 작은 빨간 보주들이 네 다섯 개씩 모여 있어서 역시 무량보주를 상징하고 있다. 실제로 이런 영기문을 그려 넣은 도자기는 없다. 민화에서만 가능한 자유분방한 만병의 조형이다. 그 만병 안에 우주의 대생명력이 가득 차 있으며 가시적으로는 물을 가득 채워 넣는데 그 만물생성의 근원을 다시 가시적으로 조형화한 것이 영기문이다. 영기문이란 말은 보주와 제1, 제2, 제3 영기싹으로 이루어진 갖가지 영기문 일체를 포함한다. 바로 이 만병에서 영기꽃이 화생한다. 다시 말하면 씨앗을 머금은 꽃이 화생하면서 영기꽃이 되어 무량한 보주를 발산한다고 하는 것은, 이미 인도와 중국의 만병을 설명하면서 증명했다. 옆의 작은 만병은 여러 번 뾰족하게 각진 조형으로 현실에서 만들지 않는 도자기다. 그 표면에는 작고 둥근 보주들이 두서너 개씩 모여 있는 무량보주가 있고, 빨간색으로 칠한 타원형 잎 같은 모양에서 다시 잎 같은 연두색 영기문이 발산하는 모양이다. 이러한 도자기 역시 현실에는 없는 조형이다.

추상적 영기문과 구상적 영기문의 화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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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 두 개의 만병에서 무엇이 화생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현실적인 도자기 항아리에서 꽃이 피거나 하면 싹이 튼다고 하거나 자란다고 하지만, 만병의 경우는 ‘꽃이 화생化生한다’고 말해야 한다. 즉 영기꽃의 초자연적 신비한 탄생을 말한다. 그러므로 꽃병과 만병은 의미가 하늘과 땅 차이다. 이 만병에서는 추상적 영기문이 나오고 있으므로 필자가 처음 보았을 때 기뻐한 것이다.(도 5-2) 즉 이 만병에서는 추상적 영기문과 구상적 영기문이 함께 나오고 있다. 즉 제1영기싹을 입체적으로 표현하여 역동성을 띤다. 이미 앞에서 다룬 불화들에서 추상적 영기문과 구상적 영기문이 함께 나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 다음 구상적 영기꽃이 화생한다.(도 5-3) 그런데 그 영기꽃은 모란꽃잎을 닮았으므로 모두가 모란꽃이라 부른다. 그러나 민화의 모란꽃을 그려서 채색분석해보면 모란이 아니고 영기꽃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불화에서 표현한 구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즉 우리 모두가 구름이라고 알고 있는 구름은 불화에 한 점도 없으며, 모두가 제1영기싹에서 출발한 영기문임을 알 수 있다. 즉 여래나 보살이 영기화생하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주변에 영기문을 배치한 것이다.(도 6-1, 도 6-2) 불화에 웬 구름이 그리 많은가? 천상의 광경인가? 여래가 무슨 구름을 타고 다니는가? 모든 불화는 여래나 보살 등이 현실에 현신하는 장면이다! 천상의 세계가 아니고 현실의 세계다. 모든 것을 영기화생시켜서 초현실적이고 초자연적인 현상을 현실에서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함인데 모두가 구름으로 알고 있으므로 저 멀리 천상의 세계로 설정해 버린다.
이제 만병에서 화생하는 영기꽃이 모란이 아님이 보일 것이다.(도 5-4) 연두색으로 채색한 잎들은 나무에서 피어난 것이고, 초록색 잎은 연두색 잎 같은 구상적 영기꽃에서 발산하는 영기문이다. 거기에서 또 다시 발산하는 영기문 잎은 노랗게 채색하여 단계적으로 전개하여 감을 뚜렷이 보이도록 채색분석했다. 영기문은 연이어 전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잎을 번엽으로 영화시킨다. 그런 집단적 최초의 추상적 영기문에서 영기꽃이 붕긋붕긋 화생하는데 바로 그 영기꽃에서 연두색 잎 모양의 구상적 영기문들이 사방으로 발산한다. 큰 만병에서 화생하는 영기꽃 가운데 가장 왼쪽 것은 매우 흥미롭다. 붉은 영기문에서 영기꽃이 생기는데 세 잎 모양 영기문이 세 번 연이어 나오는 조형이 있고 마침내 그 끝에서 영기꽃 봉오리가 생겨나는데 이것은 보주를 상징한다. 둥근 보주를 밀착하여 감싸고 있는 봉오리인데 봉오리가 아니고 보주다. 그런 조형은 오른쪽 맨 위에 두 개 더 있는데 차차 알게 될 것이다.

그 옆의 작은 만병에서는 어떤 영기꽃이 화생할까? 자세히 보면 무량보주를 꽃처럼 표현한 것이다. 그러니 비록 작은 영기꽃이 화생하고 있지만 영기꽃이 보주꽃이란 진리를 웅변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만병과 만병에서 화생한 영기꽃들을 결합하여 보면 채색분석의 과정은 끝난다. 다음 회부터는 만병병풍을 본격적으로 다루어 보려한다.

 

글 : 강우방(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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