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의 근원 만병滿甁 네 번째 이야기. 꽃병 아닌 만병, 꽃에 대해 살펴보다

만병

만병滿甁은 생소한 말이지만 함유하고 있는 상징이 너무도 크다. 지금까지 여러 회를 거쳐 인도, 중국, 한국의 만병을 자세히 설명하며 그 본질을 밝혀보았다. 이 연재에서는 서양의 만병과 동양 만병이 본질적으로 같으므로 다루지 않았지만, 어느 경우든 우리가 지금까지 불러왔던 모든 꽃병은 단지 꽃병이 아니라 만병임을 알아야 한다. 앞으로 책거리 병풍과 만병 병풍을 자세히 분석하며 다루다 보면 꽃병이 아니고 만병임을 더욱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누구나 다 아는 ‘꽃’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자.

인도 고대 작품과 조선민화에 나타난 만병의 본질
도 2. 만병, 보나장신구박물관 소장, 전체

▲도 2. 만병, 전체

만병 시리즈 초반에 보나장신구박물관(관장 김명희)에 소장되어 있는 만병의 항아리를 분석했다. 항아리에 왜 띠 매듭이 있으며 갖가지 영기문을 표현했는지 그 연원을 인도의 기원 전 200년의 바르후트 스투파와 산치 스투파에 표현된 수많은 만병들을 채색분석하며 비교해 보았다. 그러다 보니 항아리부터 시작하여 결국 자연히 동양 여러 나라의 만병 전체를 다루게 되었다. 만병의 성격이 무엇인지는 인도의 고대 작품들이 이미 모두 충분히 보여주고 있으며, 그 전통이 특히 19세기~20세기의 조선민화에 고스란히 전해 내려오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따라서 고대 인도의 만병에서 이미 만병의 본질을 완벽히 표현하였는데, 문명이 발상하여 정착하는 시기에 이미 만병이라는 조형이 이루어져 있음을 알았으므로 우리가 민화를 공부하면서 세계의 고대 조형예술을 깊이 연구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정독한 분들은 아시겠지만, 항아리에서는 주로 연꽃, 봉오리, 연잎, 연꽃의 씨방 등이 많이 꽂혀 있는데 모두가 무량한 보주를 상징하고 있음을 아셨을 것이다. 그리고 연꽃의 씨방 위에서 여신 락슈미가 화생하는 장면을 많이 보았을 것인데 사람들은 락슈미의 연화화생이라고 말하나 실은 근원적으로 ‘락슈미의 만병화생’임을 알 것이다. 그 경우에도 씨방의 씨앗이 보주로 화생하여 보주에서 직접적으로 락슈미 여신이 화생하는 광경임을 아셨을 것이다. 즉 만병은 보주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중대한 진리를 알게 되었지만 만병이 더 근원적이어서 만병화생이라 부르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항아리 안에는 보주들이 무한히 많이 들어있어서 ‘보주들로 가득 찬 만병’임을 알 것이다. 그러므로 만병으로부터 무량한 보주가 쏟아져 나와 만물을 탄생시키는 매우 중요한 상징적 광경을 보여주는 셈인데, 결국 보주 안에 역시 무량한 물이나 영기가 가득 차 있으므로 만병으로부터 무량한 물이 쏟아져 나오거나, 강력하고 무한한 영기를 발산하는 것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단순히 꽃병에 여러 가지 꽃을 꽂아 놓은 것이 아니다.
만병이 중국에서도 이미 기원 전 200년부터 표현되어 왔지만, 모든 시대의 만병을 아직 살펴보지 않았으므로 많은 예를 들지 못했다. 자금성의 만병을 분석해보니 아예 ‘무량한 씨방, 즉 보주’들로 이루어진 놀라운 우주목宇宙木이었다.
우주목은 후에 기둥으로 변하고 기둥은 물을 상징하는 영기문이나 용이 휘감고 올라가는 예가 많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만병에서 나오는 기둥은 물이 솟구치는 것을 상징한다. 한국의 예도 여러 가지 들었는데 놀랍게도 고구려 벽화의 영기문 전개 원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조선시대의 만병에서도 영기꽃들이 솟아나오는데 영기꽃이란 보주꽃을 뜻하므로 역시 만병에서 무량한 보주가 쏟아져 나오거나 무량한 물이 쏟아져 나오거나, 무한한 기운이 발산하여 나오거나 하는 것은 모든 나라가 같은 상징을 띤다.

보나장신구박물관 만병 속 영기문 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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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보나장신구박물관의 만병으로 돌아가 만병에서 솟아나오는 조형들을 살펴보기로 하자.(도 1) 2015년 3월호에 전체 그림이 있으나 잊은 분들을 위하여 전체 그림을 작게 다시 싣는다.(도 2) 보나 소장 그림을 다시 보니 인도에서 시작한 만병의 조형과 같은 점을 보면서 마음이 숙연해진다. 우리가 미술 공부를 할 때, 반드시 문명의 발상부터 공부해야 함을 통감한다. 우리가 고전古典을 절대적으로 중요시하는 것은 문학이나 역사나 종교철학에 한정되지 않는다. 조형예술은 문자언어를 넘어서서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함을 지금 우리 눈으로 보고 있지 않는가. 큰 연잎이 있고 사방으로 연꽃잎 모양 영기문이 발산한다. 그 영기문으로부터 양쪽 아래로 잎 모양 영기문이 아래로 향하고 있는 것도 채색분석해 보니 인도의 전통과 직결되고 있음이 분명하다.(도 3-1) 양쪽 아래로 처진 잎 모양 영기문은 차차 알게 되겠지만, 추상적 영기문이 구상적 영기문으로 변하면서 우리는 영기문을 잊어버린 것이다. 잎 모양 영기문이 연잎에서 강력히 발산하는 것이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연잎에서 무량한 보주가 나오는 인도의 도상을 보았으며, 수월관음도에서는 선재동자가 연잎에서 화생하기도 하므로 이 그림에서 연잎이 가장 중요한 자리에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연잎 배후에 위와 양 옆으로 연꽃잎처럼 보이는 영기문이 발산하고 있다. 연잎 배후에 연꽃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평범한 잎처럼 보이는 영기문이 연꽃잎처럼 보이는 영기문으로부터 발산한다. 그 근원지는 가로로 크게 놓인 연잎이다.
보나장신구박물관 만병 단계별 채색분석
중앙의 수직으로 솟아오른 영기문부터 채색분석해보자.(도 3-2) 중앙의 연잎에서 봉오리가 나오고 양쪽 아래로 잎 모양 영기문이 발산하고, 끊어졌다가 큰 노란색의 붕긋붕긋한 영기문 덩어리가 생기고 거기에서 잎 모양 영기문이 사방으로 발산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붕긋붕긋한 봉오리가 솟구치고 양쪽 아래로 잎 모양 영기문이 발산하고 있는데 그것은 봉오리가 솟구치는 모양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 다음 왼쪽부터 한 단위씩 채색분석해보겠다.(도 3-3) 필자는 이 부분을 분석하며 우리가 모란꽃이라고 부르는 것이 모란이 아니고 붕긋붕긋한 영기문의 덩어리인 영기꽃을 옛 사람들이 창조한 것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영기꽃이므로 보주꽃이다. 영기꽃에서는 씨앗이 모두 보주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기꽃의 씨방이 석류모양의 씨방 두 개와 노란색으로 칠한 둥글둥글한 모양으로 이루어진 또 다른 씨방이 두 개 겹쳐 있는데, 이렇게 불합리한 영기꽃과 두 가지 씨방의 결합은 처음 본다. 이렇게 네 개나 되는 씨방을 한껏 품은 영기꽃에 대한 인식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석류라고 알고 있는 것은 석류가 아니다. 그저 일반적인 씨방이지 어느 특정한 나무의 씨방이 아니다. 석류 주머니 같이 생긴 씨방은 다른 꽃의 씨방에서도 많아 발견할 수 있어서 석류라고 하면 씨방의 상징이 심히 약화된다. 그 씨방 안에 ‘씨앗=보주’가 가득히 들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부분을 열어 속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단지 씨앗이 아니고 보주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은 씨앗마다 있는 점, 즉 작은 구멍이다. 보주에는 반드시 작은 구멍이 있어서 구멍을 통하여 만물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민화에 흔히 보이는 모양이다. 그리고 씨방 표면에는 무량보주를 표현하고 있는데 이처럼 표면에 무량보주를 부여하는 것은 마치 용의 몸에 이와 같은 무량보주들을 부여함으로써 용 자체가 보주의 집적임을 나타내듯이, 이 씨방도 그 자체가 무량보주임을 웅변하는 것이다. 즉 붕긋붕긋한 영기꽃에서 무량한 보주가 발산하여 우주에 가득 차게 할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영기꽃과 씨방들로부터 잎 모양 영기문을 사방으로 발산한다.
그 다음, 큰 연잎에서 빨갛게 칠한 줄기가 길게 뻗어나가 붕긋붕긋한 영기꽃을 피우고 있다.(도 3-4) 역시 사방으로 노랗게 칠한 잎 모양 영기문이 발산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씨방이 생략되었다. 이렇게 단계적으로 채색분석한 것을 보여주는 까닭은 이런 과정을 거쳐야 전체적 조형이 어떤 단계로 이루어지며, 무늬의 한 단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분명하게 파악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복숭아와 불수佛手에 보이는 영화된 씨방

씨방이 왼쪽과 전혀 다르다.(도 3-5) 두 개는 복숭아 모양 같고 다른 두 개는 불수佛手 모양 같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이 두 가지, 복숭아와 불수佛手라는 열매를 의심하여 왔다. 복숭아는 분명히 현실에서 보는 것들과 같아서 복숭아가 분명하지만, 영화된 것으로 현실에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으로 보아왔다. 과연 다른 그림이나 도자기에서 보듯이 복숭아 표면에 각각 두 개의 무량보주를 부여하여 그 열매 자체가 무량보주임을 암시한다.
불수도 마찬가지로 표면에 수많은 보주를 작은 점들, 즉 씨앗들을 부여하여 열매 자체가 무량보주임을 암시한다. 여기에서도 붕긋붕긋한 영기꽃에서 무량한 보주가 발산한다는 것을 이처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역시 초록색 잎 모양 영기문이 사방으로 발산하고 있지 않은가! 만물생성의 영기꽃은 이렇게 한 영기꽃에 두 가지 다른 모양의 씨방=무량보주를 두어도 이상하지 않지만, 만일 현실에서 보는 모란이라면 어떻게 석류와 이름 모를 열매들을 각각 두 개씩 씨방으로 삼는단 말인가. 그리고 복숭아 2개와 불수 2개를 함께 씨방으로 지닌단 말인가. 너무도 불합리한 조형이지만 초월적인 세계에서는 영화된 씨방, 즉 무량보주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더 많은 보주를 발산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오른쪽 윗부분은 왼쪽과 같다.(도 3-6) 이제 전체적으로 다시 보자. 만병에서 솟아오르는 영기문, 그것은 한마디로 꽃이긴 하지만 꽃이 아닌 영화된 붕긋붕긋한 영기꽃에서 무량한 보주가 발산하여 우주에 가득 차게 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민화의 만병에는 현실에서 보는 것은 하나도 없다. 현실에서 보는 것과 비슷하거나 똑같아도 영화된 것이어서 현실에서 보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필자가 수천 점의 그림들을 채색분석하면서 내린 결론이다. 이 만병 민화에서 중심은 단연 연잎이다. 그것도 위아래를 구부리게 하여 입체감을 주어 영화시키는 하나의 방법인 번엽飜葉을 보여주며 화면 전체에 안정감을 준다. 이 모든 영기꽃들을 항아리에 꽂아둔 것이 아니라, 항아리에서 힘차게 솟아오른 것이다. 만병 안의 보이지 않는 대 생명력이 솟아나와 이처럼 구상화하여 보주의 영기화생의 광경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민화는 물론 궁중회화에서 보는 꽃병은 일체가 만병이다. 가장 오랜 만병을 창조한 인도의 예들에서 본 것처럼 수천 년 동안 만병의 기본 구조와 구성은 변함이 없음을 보고 놀랐으며, 예부터 만병으로부터 무량한 보주가 나온다는 불변의 진리에 더욱 놀랐다. 민화는 만만하지 않다. 고대의 조형부터 공부하지 않으면 민화의 신비는 결코 풀리지 않는다. 고대의 차원 높은 그림을 공부하지 않으면 민화를 폄하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민화에는 그 이전의 전통이 고스란히 숨겨져 있다. 서양의 민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민화에서는 문명이 발생했을 때부터의 전통이 숨겨져 내려오면서 서민들의 어수룩한 표현양식 속에 금강석처럼 진리가 빛나고 있다.
채색분석한 만병과 영기꽃으로 보나장신구박물관 소장 만병 민화 한 점의 해석을 마친다. 필자가 해석을 자세히 할 수 있다는 것. 그림은 이름 없는 화가가 그려서 민화의 범주 안에 넣고 있지만, 아마도 화원이나 그림공부를 제대로 한 화가가 과거의 그림 역사와 상징을 충분히 알고 모사에 그치지 않고 창작한 그림이다. 독립된 화목의 범주 안에 넣을 만하다. 두 점이 있는데 똑같다. 그러므로 같은 만병 그림을 여섯 폭이나 여덟 폭으로 병풍을 만들었으리라 생각한다.

보나장신구박물관 소장 모란도 분석
도 4-1. 모란도, 한정엽 작

▲도 4-1. 모란도, 한정엽 작

보나장신구박물관에는 또 한 점의 만병 그림이 있다. 한 화폭에 같은 만병 두 개를 그렸다.(도 4-1) 먼저 만병부터 살펴보자.(도 4-2) 낮은 탁자 위에 만병을 두었는데 탁자는 다리가 제1영기싹 모양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구조가 심히 변형되어 설명할 수 없지만 조형이 매우 흥미롭다. 그 위에 홀쭉한 항아리가 놓였는데 항아리 대에 연꽃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대가 끝나고 둥근 항아리 몸이 시작하는 밑 부분에 긴 제3영기싹을 횡으로 놓고 그 위에서 연꽃이 화생하고 있다. 즉 크고 작은 연꽃으로부터 항아리가 화생하는 장면이다. 흔히 도자기 전공자들은 도자기 밑 부분의 이런 연꽃을 한갓 장식으로 보지만 바로 항아리의 영기화생을 보여 준다. 연꽃 역시 영화된 것이므로 영기꽃으로 보아야 하며 따라서 항아리의 영기화생이라 불러야 한다. 항아리 몸의 위 부분에도 길다란 제3영기싹이 횡으로 누워있고 그 밑으로 띠 매듭이 있으나 역시 매우 변형이 심하고 추상화되어 고도의 솜씨를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그 양쪽으로 맨 위의 제3영기싹 영기문 양쪽으로 연이은 제3영기싹 영기문이 내려와 항아리를 감싸며 항아리가 영기문에서 화생하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항아리 입은 좁으므로 거대한 영기꽃이 솟아나오는 것을 나타내려면 넓은 받침이 필요하다. 그래서 입 위에 갖가지 영기문으로 이루어진 긴 영기문띠를 두었다.
그 다음 영기꽃을 살펴보자. 그러니까 꽃병이 아닌 만병에서는 항상 영기꽃이 솟아나온다. 짧은 줄기가 여러 가닥 나오는데 항상 두 줄기로 갈라진다. 그 짧은 줄기들에서 잎이 나오는데 역시 영기싹이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붕긋붕긋한 영기꽃에서 발산하는 잎 모양 영기문과 같기 때문이다. 줄기에는 녹색 점들이 있어서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줄기다. 긴 줄기에서 영기꽃이 피는데 붕긋붕긋하기 보다는 구불구불하여 폭발성은 약하다. 붉고 노랗고 흰 영기꽃들을 교대로 배치하여 오른쪽 맨 위에는 봉오리로 맺혀 있는데 꼭 보주 같다.

도 4-2. 모란도, 세부

▲도 4-2. 모란도, 세부

독자들에게 영기꽃을 그려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려 보면 이 조형이 모란이 아니고 영기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만병 안에 들어있는 보이지 않는 대생명력이 이렇게 밖으로 솟아나와 붕긋붕긋한 모양으로 대생명력이 폭발하는 듯한 형상으로 보이지 않는가. 또 하나의 영기꽃도 대동소이하다. 다만 색이 다른 영기꽃의 배치가 다를 뿐이다. 초록색 영기꽃이 보여서 이 그림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영기꽃에서 발산하는 잎 모양 영기문도 모양이 가지가지다. 어떤 것은 잎에서 다시 잎이 나오는데 그 잎들이 영기문이라는 증거다. 어떤 잎은 영기꽃처럼 구불구불한 것도 있다. 이 화폭은 넓어서 아마도 네 폭쯤 만들어서 병풍을 만든 것 같다. 그러면 만병은 여덟 개가 될 것이니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물론 일본이나 중국 등 동양 모든 나라와 서양의 모든 나라에 꽃병 그림이 많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근대에 이르러 사실주의가 팽배해 감에 따라 고대의 상징을 상실했다. 그러나 동양은 아직까지도 만병의 전통이 살아있다. 그 모든 꽃병이 꽃병이 아니라고 하면 필자를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연재만 살펴봐도 꽃병이 아니고 형이상학적인 만병임이 확실하지 않은가. 우리 자신의 삶과 사고방식이 형이상학적으로 드높이 탈바꿈을 하지 않으면 꽃병이 만병임을 인식하기 어려울 것이다.
4회에 걸쳐 만병 그림을 자세히 역사적으로 고찰해 가며 만병의 성격을 필자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밝혔지만, 이직도 의아해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만병 병풍을 몇 가지 선정하여 더 설명을 계속하여 눈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게 되면, 민화에 수 없이 나타나는 꽃병이 만병임을 인식하게 되면 민화의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을 약속한다. 다른 분야의 그림보다 민화에서 만병의 표현이 유감없이 구현된다는 점에서 민화야말로 회화의 열쇠를 푸는 중요한 독립적인 화목임이 분명하다.

 

글 : 강우방(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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