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름질과 바느질로 복원한 조상의 멋! 중요무형문화재 제89호 침선장 구혜자

구혜자 침선장
중요무형문화재 제89호 침선장 구혜자

옷은 인간다운 삶의 기본요소인 의식주 가운데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침선장은 의복을 짓는 장인을 이르며, 오늘날 디자이너와 재단사, 재봉사로 분업화된 일련의 과정에 모두 능통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 한복을 재현하고 전통 계승을 위해 공헌해온 사람이 무형문화재로 선정된다. 2007년 침선장 기능보유자로 지정된 구혜자 씨는 복원과 계량화를 통해 우리 옷의 멋을 구현하는 길을 닦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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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색을 본떠 사람 몸에 꼭 맞춘 우리 옷, 한복

우리 옷을 짓는 공정은 크게 마름질과 바느질로 나뉜다. 마름질은 옷감을 치수에 맞게 자르는 일을, 바느질은 바늘과 실로 옷을 짓거나 꿰매는 일을 말한다. 옷의 각 부분을 하나씩 재단해 시침질, 박음질, 감침질 등의 바느질을 수없이 해야 기본적인 옷의 형태를 갖춘다. 조선시대에는 여인의 덕목 중에 하나로 옷을 잘 짓는 것이 손꼽혔다. 가족들의 의복을 손수 지어 입던 시절, 여인의 손끝에 가족들의 품위와 멋이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기성복은 몸에 꼭 맞지 않아도 불편함을 감수하고 입지만, 한복은 사람의 몸을 알맞게 감싸준다. 입는 사람의 나이와 체형 변화, 피부색, 계절 등에 맞게 옷감과 색의 선택, 마름질과 바느질을 달리해야 한다. 같은 시기에 만든 옷이라고 해도 입는 사람에 따라 전부 다른 양상을 보이는 이유다. 젊은 사람은 몸의 선이 돋보이는 날렵한 옷이, 나잇살이 생기는 어르신은 품이 낙낙한 옷이 어울리는 식이라, 입는 사람의 몸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옷을 지을 때 그 태가 가장 곱고 아름답다. 이렇게 완성된 옷은 입는 이의 몸을 단정하고 포근하게 감싸주어 행동거지 하나하나에서 자연스러운 기품이 배어나오게 된다.
또 한복하면 떠오르는 것이 다채로운 색의 어울림이다. 미술시간에 서로 어울리지 않는 보색관계라고 배웠던 색들도 한복에서는 물 흐르듯 조화를 이룬다.
“한복의 색은 자연에서 빌려온 것들입니다. 언뜻 보랏빛은 녹색과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요? 그런데 꽃을 보면 녹색 잎에 빨갛고 노란 꽃만큼이나 보라색 꽃도 아름답거든요. 이런 식으로 산과 들, 바다를 잘 관찰하고 아름답게 여기는 선조들의 마음씨가 한복의 색에서 묻어납니다. 채도(색의 선명한 정도)를 잘 맞추면 많은 색을 써도 어지럽지 않고 화사한 옷이 나오죠.”
형태와 색, 착용감까지 어느 것 하나 무리 없이 자연스러움과 그 속에서 배어나오는 멋은 한복이 가진 고유한 매력이다.

시어머니 어깨너머로 배운 바느질, 힘들어도 후회는 없어

이토록 아름다운 우리 옷이지만,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기에는 품이 많이 든다. 쉽게 지을 수 없기에 전승마저 쉽지 않다. 사람과 상황에 따라 짓는 법이 다르고, 그마저도 체계적으로 정립되지 않아 구비전승과 경험에 의존해야 하며 다양한 옷감의 특성을 파악해 적절히 사용해야 하는 등 배우고 익힐 것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구혜자 씨는 선대 침선장이던 故정정완 선생의 맏며느리로 시집 와 시어머니를 스승으로 모시며 바느질을 배웠다. 당시 정 선생에게는 이미 오랫동안 배워온 제자들이 많았다. 어머니는 며느리라고 너그러이 봐주기는커녕 더욱 엄격하게 가르쳤다.
“처음엔 고된 바느질을 하겠다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셨던 것도 같아요. 어머니 수업하실 때 이것저것 도우며 어깨너머로 배웠죠. 어머니가 지으신 옷을 집으로 가져와 뜯어보고, 정확한 수치와 비율을 재고 기록하면서 깨우치고…. 모르는 부분은 또 여쭙고 하면서 배웠어요.”
평생 옷을 지어온 정 선생은 가르칠 때도 몸에 밴 감각으로 ‘배자는 요 정도, 도련은 이만큼’이라고 일러주었다. 초보였던 그녀로서는 가늠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밤을 새워가며 연구를 거듭한 끝에 조금씩 옷 짓는 일을 익혀나갔다. 그때의 어머니가 일러주신 것과 본인이 연구한 노트를 모아 ‘한복만들기-구혜자의 침선노트’라는 책을 3권까지 펴냈다. 한복 짓는 법을 알기 쉽게 계량화·수치화해 우리 옷 만들기에 꼭 필요한 내용을 제대로 짚은 책이다. 전문서적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대학 교재로 사용될 만큼 반응이 좋다.
이 책을 통해 그녀는 우리 옷을 만드는 과정을 더욱 분명하게 정리하고 널리 알리는 데 공헌했다.
한편으로는 전통복식의 복원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시대별로 복식이 변하는 모습을 재현하기도 하고 사대부나 왕가의 출토 복식을 복원해 그 시대의 얼을 살려왔다.
“해인사에 있는 광해군의 복식은 처음 보는 순간 소름이 돋고 마치 그 옷을 입은 광해군이 보이는 것처럼 짜릿하더라고요.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꼭 잘 복원해야겠다는 욕심이 절로 들었죠. 남들이 보기에는 재현 작품이 다 비슷해보일지 모르지만, 훌륭한 복원이란 입은 사람의 모습까지 생생하게 되살려내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바느질에 처음 입문한 1970년대부터 20여 년이 흐르자 전승공예대전에서 수차례 상을 받기도 했고, 2007년에는 드디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지금까지 허리와 어깨 통증을 얻으며 5시간도 채 못 잘 정도로 바쁘게 살았기에 얻은 성과다. 하지만 몸이 힘들다고 해서 이 일을 시작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다고.

가르치며 배운다는 그 말만큼 정확한 표현도 없어

“그런데 바느질은 할수록 어려운 것 같아요. 처음엔 그저 모양만 흉내 내도 만족했었는데, 갈수록 더 좋은 옷을 짓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하게 되더라고요. 직접 바늘을 잡고 옷을 지어야 숙련이 되고 또 ‘가르치면서 는다’고, 내가 익힌 것을 남에게 가르쳐보니까 비로소 알겠다 싶어요. 제자들을 가르치는 보람도 크고요.”
후학 양성을 게을리 하지 않았기에 지금의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는 자못 겸손한 이야기다. 그녀의 제자들은 대통령의 한복을 짓는다거나 한복의 대중화를 위해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펼쳐 스승의 명예를 높이고 있다. 현재 그녀는 대학 강단에서 은퇴하고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의 침선반을 지도하고 있다. 옛 여인들처럼 손수 자식과 가족들의 옷을 해 입히려는 수강생들의 열기가 뜨거워 고마운 마음마저 든다고 한다.
“요새는 한복에 관심을 갖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 기쁘죠. 우리 것이 너무 낯설어진 나머지 신기한 마음에 호기심으로 다가오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아요. 하다 보면 힘들어서 그만두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열성적이에요. 저도 덩달아 의욕이 샘솟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원고, 복원, 전시 등… 가야할 길 멀어 발걸음 재촉하는 중

자신의 옷만 짓거나 상업적으로 판매할 목적으로 한 일이 아니기에 작품을 전시할 공간 마련이나 개인전을 여는 기회가 부족했다며, 기회가 되면 남다른 기획으로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는 그녀. 지은 옷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이 소장하거나 입고 있으니 작품을 모으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아 그동안 시도하지 못했다고 했다. 매듭질 일도, 새롭게 시작해야 할 일도 많아 마음이 조급해질 때도 있지만 차근차근 진행하려고 마음을 다잡는다고.
지난겨울부터는 침선노트 4권의 원고를 써나가는 중이다.
“처음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몇 년 안에 10권쯤은 내야겠다고 다짐했었어요. 근데 기본적인 문서작성 프로그램만 다루는 정도라 더딘 것 같기도 하고, 마감을 재촉하는 이가 없으면 다른 일에 순서를 양보하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올해 안에는 4권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어요.”
봄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마무리 지었으면 하는 개인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7종 혹은 그 이상이라는 여인의 속옷을 짓는 일. 속속곳, 속바지, 단속곳, 속치마만 제대로 갖춰 입어도 미인도에 보이는 하후상박下厚上薄의 자태가 완성된다고 귀띔했다.
“한복이 일상복이 되기는 어렵겠지만, 중요한 자리에 격식을 차려 입는 옷이라는 정도의 인식만 생겨도 좋지 않겠어요? 한복의 일부만 가져다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풀어내는 모습을 보면 저도 감탄스러울 때가 있어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우리 고유의 것이 맥이 끊이지 않고 고스란히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고루한 생각도 합니다. 전통에 대한 호기심이 우리 것을 귀하게 여기는 문화로 자리 잡는다면 더할 나위 없겠고요.”

 

글 : 윤나래 기자
사진 : 박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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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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