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메이크Remak – 창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

리메이크Remak
창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

이제부터는 창작민화 실기 부분 몇 가지를 아는 대로 소개해보려 한다. 그러나 현재 민화 화단의 현실을 감안하면 순창작純 創作보다 ‘리메이크Remake’ 작업을 통한 창작적 공략이 빠를 뿐 아니라 좋은 결과를 거두기도 쉬울 듯싶다.
그런 입장이라면 먼저 ‘리메이크 또는 재구성 작업을 통한 창작’ 부분을 먼저 살피는 게 좋을 것 같다.

아직은 미술에서 리메이크 작업에 적합한 이름이 명명된 것을 본 적이 없기에 ‘단순 리메이크에 덧붙여 원화 이미지를 이용한 재구성 작업’까지를 통틀어 편의상 ‘리메이크’라고 이름붙여 본다. 리메이크remake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뜻으로 풀이된다.

<이미 발표된 작품을 다시 만드는 것. 부분적인 수정을 가하지만 대체로 원작의 의도를 충실히 따른다. 이런 점에서 원작의 이름은 빌리지만 새로운 장르의 작품을 창조해 내는 패러디Parody와 구분되며, 또 원작을 차용했다는 사실을 밝힌다는 점에서 표절과는 다르다. 그러나 원안을 빌려온다는 점 때문에 순수한 창작으로 보기 어렵다. 이러한 속성 때문에 늘 창작이냐, 모방이냐 논란의 대상이 되지만 요즘에는 점차 창작으로 인정을 받아가는 추세이다. 특히 음악의 경우 멜로디를 그대로 따라도 편곡이나 창법에 따라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낼 수 있으므로 가수의 입장에서 완전 창작인 셈이다. (다음 백과사전)>

바람직한 ‘리메이크re-make’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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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리메이크’라는 개념은 주로 실용음악 분야에서 많이 쓰이는데 가수들이 기존에 잘 알려진 명곡이나 히트곡을 본인의 색깔로 새롭게 편곡해 부르는 경우를 지칭하며, 이런 리메이크 곡이 오리지널 곡의 인기를 능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원작 소설을 연극이나 영화로 리메이크해 크게 흥행된 예도 많다. ‘벤허’나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영화의 성공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미 유명해진 원작을 각색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는것은 물론, 원작의 팬들까지 끌어들일 수 있어 최소한의 흥행은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다.
회화 작업도 마찬가지다. 옛 명화들을 리메이크하여 원작과 또 다른 창작성을 부여해서 내놓는다면 당연히 큰 반향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므로 겨냥해볼 일이다. 한편, 이러한 작업물들이 자칫 모사화模寫畵로 여겨질 수도 있겠으나, 현대미술계가 갈망하는 미술적 탐구 과제들을 선제 조건으로 하여 살피는 옛 민화 리메이크라면 모사화와는 그 근본부터 다르다. 모사화는 솜씨 연마를 위한 습작일 뿐, 작품이 될 수 없지만, 리메이크는 원화를 제작자의 개성으로 각색하여 다시 만든다는 의미에서 각색자의 창작 작품으로 인정받아 마땅하다.
각색의 방식은 주로 ‘원작에 얼마만큼 충실했는가’를 기준으로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번째는 원작을 충실하게 재연하는 것으로, 원작의 주제 등을 그대로 옮긴다. 두 번째는 원작의 소재, 이미지 등 기본 골격은 그대로 유지하지만, 내용상 세세한 여러 부분을 변형, 수정하여 원작을 재해석한다. 마지막은` 원작에서 작은 아이디어만을 가져오고 나머지는 완전히 새롭게 창작한 것으로 각색된 작품과 원작은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첫 번째 것은 모사화 수준에 머무는 정도로 역시 창작을 위한 학습 단계의 한 부분으로 여겨야 하므로 여기에서 논할 대상은 아닌 것 같다. 이러한 것은 각색자의 창작성이 미미하여 창작품으로 인정하기엔 난처한 정도인데도 이러한 소극적인 리메이크 그림이 현재 민화 화단에서 흔하게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두 번째와 세 번째의 리메이크는 원작과 또 다른 창작적 의미를 부여하고 즐거움을 선사해 준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해도 좋을 것이다. 특히 실용예술인 민화의 경우에는 창작성만큼이나 실용성(대중성)도 중요하기에 대중의 실용적 요구에 부응하는 작업 소재를 찾기가 그만큼 유리하고 당연히 성공 확률도 높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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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 이렇게 ‘리메이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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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미지를 리메이크하는 방법론에서 살펴볼 포인트는 첫째, 과거의 원화가 가졌던 작품 중 그 의미의 일정 부분을 현대적 시각에서 거세하고, 그 대신 현대미술적 해석을 적절히 접붙여서 오늘날의 트렌드로 바꿔낼 수 있다는 점이다. 창작민화가인 서지연은 ‘아름다운 향연’에서(그림 1) 실제 자연에서 보는 듯한 분위기의 연잎들을 옛 민화 연화도 느낌의 선을 사용하여 적절히 중첩 배치한 위에, 구도의 몇 군데 중요한 위치를 골라 자신의 전략적 의도를 품은, 주변 색과 강렬하게 대비되는 색깔 조합의 캐릭터들을 무리지어 삽입시킨다. 관람자가 작품의 강렬한 분위기에 이끌려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하면, 머릿속에 실제 연밭 풍경과 함께 전통 민화 ‘연화도’를 동시에 떠올리게 된다. 동시에 이미 떠올려진 뇌리의 잔상과 전혀 다르게 현대화된 작품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즉 화가의 의도대로 관람자가 일종의 미美 지각적知覺的 혼동을 일으키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새로운 의미의 미 의식적 즐거움의 범위 안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서지연은 강렬한 녹색 빛 연밭에 생경하게 배치된 캐릭터들을 바탕으로 민화의 실용적 사명이자 목표로서의 자신의 흉중 의도를 발산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이로써 서지연의 작품은 이 시대의 창작민화가가 리메이크 작업 시 주요 공략 목표로 삼아야 할 한 영역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둘째, ‘민화 읽기 방법’으로 자리 잡힌 사회적 약속인 옛 민화의 화목별 내용 인식 체계를 현대적인 트렌드로 재해석해, 현대미술적 공감대 안으로 불러들일 수 있다는 이다.
정경자 작가의 작품 ‘부끄러움’은(그림 2) 제주도 문자도의 낱개의 글자가 지닌 뜻보다는 오히려 그 의미와 의미의 연결 부분이라 할 글자와 글자 사이 부분을 클로즈업하는 듯한 이미지 표출 방법을 취한다. 옛 문자도의 본래 목적이었던 문자의 교훈적 뜻을 해체하고 모티프로서의 역할만을 유지한 채, 미니멀리즘(최소주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혼재를 겪고 있는 이 시대 현대미술의 시대적 상황과 연결시킴으로써 민화의 현대미술적 성공 수를 노린다. 우리는 이 작품이 주제의 뜻 표현보다는 전체 화면 및 여백의 동양적 아름다움을 우선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민족적 느낌을 주는 색동과 얼룩진 노랑 바탕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만들어내는 야릇한 하모니가 추상미抽象美의 여운餘韻을 남기도록 작업되었다는 걸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문자도의 스토리텔링은 모두가 알고 있을 정도로 구태의연한 내용이기 때문에 차라리 문자도 이미지의 여운을 강조해 현대미술로서의 회화적 가능성을 타진해보고자 한 정경자 작가의 도전정신에 우리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요즘 창작민화가들의 강박관념처럼 되어버린 일상 생활용품들의 무
리한 화면 개입과는 전혀 다른, 현대미적 추상의 맛을 넉넉한 배짱으로 담담하게 그려냄으로써 리메이크 작업의 한 가능성을 여실히 드러낸다는 점은 아무리 보아도 흥미롭다. 셋째, 역사에서 경험했던 문화 전통의 의미, 또는 그것들을 읽는 방법의 사회적약속 중 특징 다수를 한 화면에 엮어 넣음으로써 현대인의 공감대를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황은자 작가는 그의 작품 ‘까치 호랑이’에서(그림 3) 위의 두 작가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리메이크 작업 범위를 정했다. 물론 옛 민화를 재해석하여 현대미술의 어법적 트렌드의 범위 안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작가의 의도는 위의 두 작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색상 활용의 면에서는 전통의 색동색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 우리민족을 대표하는 상징 중 하나인 민화 속 호랑이와 결합시켰다. 이는 관람자에게 우리 민족 전통의 아름다움에 대한 현대 민중의 공감대를 환기시키려는 의도일 뿐 아니라 화가가 가진 전통미 해석 방법과 코드 역시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각인시키며 공감을 이끌어 내려는 것이다. 그 일체감은 당연히 대중적 인기까지를 담보하는 길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점도 있을 것이다. 황은자 작가의 작품 역시 민화의 리메이크 창작이 품어야 할 방향 중 괄목할만한 큰 길 하나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작가 본인의 설명에 따르면 김삿갓 정신과의 연결까지를 의도하였다고 하지만, 작
품 구성을 위해 첫 단계에서 준비하는 모티프는 완성된 후의 작품이 저절로 발산하는 감흥이나 가치보다 중요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밑그림(에스키스)을 만들 당시 작가의 의도는 작품을 시작하기 위해서 필요할 뿐, 제작 중간에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다시 말해, 성공적 효과의 방향이 틀어졌다는 것이 예견되는데도 초기에 품었던 제작 의도를 붙잡고 늘어질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차라리 작업 도중에 일어나는 일필휘지一筆揮之의 순간적 감흥이 오히려 더 동양미술론적인 당위성에 가까울수도 있을 것이다. 넷째, 고전 민화 작품 속 내용의 형태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얼마든지 새로운 창작성이 풍부하게 가미된 리메이크 작품을 만들어 신선한 현대적 감흥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권정순 작가의 ‘책거리’는(그림 4) 옛 그림 풍의 올드한 모습 그대로를 그려 넣으면서도 채색 없이 백묘白描 처리했다는 것 한 가지만으로도 경우에 따라서는 작품이 현대적 트렌드로 읽혀지는 데 별 무리가 없음을 확인케 한다. 또 전체 화면 중 일부에만 설채設彩를 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전체를 다 채색한 것보다 더 강렬한 의미를 발산하고 있어서 빈 곳 없이 끝까지 채색해야 한다는 책거리 작업에 대한 일반적 생각의 허를 찌르며 리메이크 창작으로서 보기좋게 성공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백묘의 고전 책거리 감흥과, 작가의 자전적 일상을 표현한듯한 채색 부분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관람자의 미감을 안정된 긴장 속으로 이끌며, 그 긴장감을 쾌감으로까지 확장시킨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들 작품의 몇 가지 묘법描法들만으로도 얼마든지 많은 리메이크의 길을 열어낼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맞다. 이들은 적당한 문화사文化史나 미술사적美術史的 안목 위에 적절한 회화적 방법을 얹는 것으로
만족스러운 수준의 창작에 도달하는 길이 열려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필자의 작품 ‘부부 함께 장생도 위에 날다’는(그림 5) 주문자의 요청을 받은 후 그 가정을 위해 기도하다가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이다. 평소에도 예쁘게 살아가는 주문자 부부를 재구성된 십장생 위에 올려놓고 싶었다. 물고기 두 마리를 의인화된 부부로 삼아 화면 한쪽에 배치했다. 그러자 평범한 장생도는 그 가정을 위해 기도하는 필자의 마음을 담은 민화이면서 현대적인 감성을 담은 창작 민화로 손쉽게 탈바꿈했다. 제작 기간은 장생도 작업 수준으로 많이 걸렸더라도 회화 논리적으로는 다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얹어놓은 격이다. 그렇더라도 본래의 원작 내용보다 더 진전되는 뜻을 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술로서의 현대적 감성과 그 가정을 위한 실용적 목적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록 졸작일지라도 애초의 창작 목표를 거뜬히 이룰 수 있었기에 리메이크의 손쉬운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자평하고 싶다.

리메이크와 패러디는 다르다!

옛 민화를 현대인의 구미에 맞게 리메이크한다는 것은 분명 매력적인 일이다. 무엇보다도 창작자의 제작 의도를 고스란히 담으면서도 고전 민화에 익숙한 현대인의 시각적 정서에 낯설지 않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훌륭한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리메이크는 비교적 작업이 수월하다는 장점과 더불어 순 창작의 부흥기로 향하는 과도기적 상황에서 징검다리 역할까지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극히 조심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그 중 하나는 리메이크‘remake’와 패러디parody를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패러디는 원작을 비틀어 표현하는 것이 주요한 특징으로 원작자에게 본의 아닌 해를 입힐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서로 간의 축복을 빌어주는 뜻을 담고 있는 전통 민화의 중심 철학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존재한다. 여기서 또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바로 ‘해학’을 오해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민화가에게 ‘해학의 멋’이란 남을 비꼬거나 비판하려는 목적으로 행하는 표현이 아닌 세상의 불합리함, 또 그로 인한 스트레스에 지친 민중에게 건네는 따뜻한 격려와 위로, 또 사랑의 메시지를 담은 표현을 뜻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책임의식 없이 가리지 않고 아무거나 그려내다가 결국은 목적을 잃고 산으로 올라가는 배에 탑승해 있는 자신을 만나게 될 수도 있음을 주의하자.
앞으로 점점 더 강하게 부각될 저작권법 이해와 적용 또한 간과해서는 안된다. 특히 현대화가의 작품을 리메이크하려고 한다면 더욱더 그렇다. 다음으로는 화단 종사자 전체가 마음에 되새겨야 할 문제도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1990~2000년대쯤 우리나라 화단을 뜨겁게 달궜던 현대한국화채색화 운동이 일었을 때 ‘표현영역(방법) 확장 실험의 중요성’이라는 그럴듯한 명분 아래 사용하는 매재媒材를 무분별하게 유입하는 등 브레이크 없이 실험 영역의 범위만 넓혀 가다가 제작방법론 측면에서 결국 국적불명회화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던 점은 우리 미술사에서 절대로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회화의 성격에 국적성이 따로 있을 수 있겠느냐는 그럴듯한 주장이 있고, 자칫 국수주의에 빠지는 것은 오히려 우리 미술의 또 다른 한계치를 드러낼 수 있다는 매우 옳은 지적도 있지만, 어차피 민화는 우리 민족성의 미의식과 체계를 현대적으로 이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우리 식의 독특성을 지향하는 미술로 확고히 자리를 잡아야 세계 미술시장에서 높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운명일 테니 여타 장르의 미술과는 입장이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하겠다. 점점 각박해져만 가는 세상을 볼 때 우리 민화가 가진 순수한 실용적 미술 정신의 재정립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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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하정

 

저자에 관하여

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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