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코리아뮤지엄 관장 박암종


한국디자인의 근현대사를 총망라한 한국디자인사의 보고寶庫 근현대디자인박물관이 한국디자인진흥원과 MOU를 체결하고 설립 10여년 만에 디자인코리아뮤지엄(Design Korea Museum)으로 재탄생됐다. 지난 1월 16일 한국디자인진흥원이 개최한 디자인코리아뮤지엄 개막식에 들러 박암종 디자인코리아뮤지엄 관장의 각오를 들어보았다.


국내 최초, 官과 손 맞잡은 사립박물관

둥그런 보름달을 두 팔로 번쩍 든 박암종 디자인코리아뮤지엄 관장의 미소가 달처럼 환하다. 지난 1월 16일 디자인코리아뮤지엄 개관식날 배포된 박물관 리플릿의 표지 속 모습이다. 여기에는 디자인에 대한 그의 철학이 깃들었다.
“저는 디자인이 달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강하진 않지만 우리 삶을 은은하게 오래도록 비춰주는 달빛처럼 늘 우리 곁에 있으니까요. 그나저나 촬영할 때 조형물이 어찌나 뜨거운지, 저 달을 들고 있느라 혼났습니다.(웃음)”
디자인코리아뮤지엄은 박암종 관장이 2008년 신촌에 설립한 근현대디자인박물관이 전신으로,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이한 한국디자인진흥원(원장 윤주현)의 적극적인 요청으로 분당 야탑에 위치한 코리아디자인센터로 옮겨 재개관했다.
이는 정부산하기관 내에 최초로 사립박물관을 유치했다는 점에서 박암종 관장은 물론 한국디자인진흥원측에도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간 한국디자인진흥원은 디자인박물관을 설립하고자했으나 비용 문제에 가로막혀 사업을 연기해오다 근현대디자인박물관과 MOU를 체결함으로써 비로소 숙원을 이뤄냈다.

디자인코리아뮤지엄 개관식에는 윤주현 한국디자인진흥원장,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윤열수 (사)한국박물관협회장, 김쾌정 허준박물관장, 전보삼 만해박물관장, 전성임 풀짚공예박물관장, 심재인 (사)경기도박물관협회장, 김상석 우리한글박물관장 등 130여명의 내외빈이 참석해 기념비적인 행사를 한마음으로 축하했다. 다음은 새출발을 앞둔 박암종 관장과의 일문일답.


디자인코리아뮤지엄 개관을 축하드립니다. 이 박물관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제가 10여년간 운영해오던 근현대디자인박물관과 국가기관인 한국디자인진흥원이 MOU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서로가 가진 경험과 콘텐츠를 공유할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1990년부터 현재까지 30여년간 수만 점의 유물들을 수집해오고 있으며 관련 전시, 세미나 등의 다양한 행사를 개최했습니다. 수집 품목으로는 각 시대를 대표하는 디자인 사료 및 제품, 지류, 포스터 등 우리나라 근현대 디자인 자료가 대부분입니다. 역사적 가치가 뛰어나고 희귀한 자료가 많지요. 한국디자인진흥원에서도 이점을 높게 평가한 것 같아요. 특히 국내 디자인 역사 연구 부문에서 거의 다루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자료가 많은 편입니다. 이는 한국 디자인의 역사를 한층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지요. 사립박물관이 정부산하기관 내에 유치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디자인코리아뮤지엄이 정부기관과 협업해 더욱 적극적으로 박물관 활동을 전개해나갈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현재 디자인코리아뮤지엄의 전시 내용은 무엇인가요?

제 수집품 가운데 1,600여점을 선정해 국내 근현대 디자인의 발전, 변화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세계 근대 문화가 국내로 들어오며 디자인 개념이 도입된 태동기(1876~1909), 일제강점기에 문화적 환경이 위축된 상황 속에서 꾸준히 발전을 모색했던 정체기(1910~1944), 사회적으로 디자인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발아기(1945~1960), 경제가 발전하며 수출 부문에서 디자인의 역할이 두드러졌던 초창기(1961~1975), 디자인의 체계화를 통한 발전을 도모했던 발전기(1976~1988), 한국형 디자인을 모색하고 세계화 기반을 구축하기 시작한 도약기(1988~2000), 세계 디자인대회를 개최하는 등 한국 디자인의 위상이 고조된 성숙기(2000~) 총 7개의 섹션으로 구분돼 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유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태극기 관련 자료(1882), 국내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 엽서(1933), 국내 첫 상표등록 화장품으로 획기적인 포장방식으로 인기를 끈 박가분(1916), 국내 최초 진공관 라디오 A-501(1959), 국내 최초의 선풍기 D-301(1960), 국내 최초 휴대폰 SH-100(1988) 등이 전시돼 있지요. 향후 새롭게 수집한 자료를 중심으로 전시품을 교체하고, 다양한 특별전도 개최할 예정입니다.


일제강점기에도 주체성 지켜낸 한국디자인

방대한 디자인 사료들을 수집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1990년대 초 잡지사에서 편집디자이너로 근무하던 시절 디자인협회가 주최한 <디자인과 실험> 전시회에 손톱만한 크기의 좁쌀책을 출품한 적이 있습니다. 전시장에서 제 작품을 눈여겨보신 여승구 화봉책박물관장님의 권유로 한국애서가클럽에 가입하며, 여 관장님과 인연을 맺게 됐죠. 하루는 책방 나들이길에 여 관장님께서 조선말에 목판으로 제작된 부적용 월력 2부를 구매하시곤, 그중 좋은 것을 제게 주시면서 ‘콜렉션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하셨어요. 그 말씀대로 수집쪽에 서서히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더군요. 이후로도 여 관장님과 함께 고서, 골동품 거리를 즐겨 다니곤 했습니다. 여 관장님께서는 1920~1930년대 한국, 중국, 일본의 각종 인쇄물들이 수백장씩 스크랩된 ‘한·중·일 상표도안집’도 건네주셨어요. 디자인사 연구 부문에서 불모지였던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60여년 역사가 망라된 보물이었죠.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 디자인이 1950~1960년대 무렵 태동한 것으로 보았으니까요. 스크랩북에 있는 한국의 독자적인 상표디자인을 보며 한국 디자인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상표는 일장기, 욱일승천기, 중국 상표에는 동자와 정원의 꽃이 그려진 디자인이 많았지만 일제강점기 한국 상표엔 한복을 입은 사람이나 태극마크가 금지된 대신 태극선이 그려졌어요. 일제 치하에서 상표 하나에도 이런 주체성을 표현한 거죠. 이렇게 스크랩북을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1995년도 무렵 월간 <디자인>에 ‘한국디자인 100년사’, ‘한국디자인 원형 탐구’라는 코너를 연재했고, 4년여간 국내 디자인계에 영향을 끼친 원로 디자이너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한국 디자인의 역사를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긴 것 같아요.
사실, 과거에는 디자인학과의 강의 내용도 서구 디자인사 위주였기 때문에 많은 디자이너들이 서구 디자인의 역사에 대해서는 잘 알면서도 정작 한국 디자인의 역사는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물론 서구에서 디자인이란 개념이 정립되고 체계화되긴 했지만, 국내에서도 독자적인 디자인 양식, 흐름 등이 분명히 존재했고 발전을 거듭해왔어요. 이러한 환경에서 한국 디자인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에 2008년 근현대디자인박물관을 연 겁니다.

근현대 디자인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라는 어려운 시기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빠른 시간 내 GDP 세계 10위권을 기록할 정도로 놀라운 저력을 가졌습니다. 일제강점기 디자인 부문에서도 이러한 흐름을 가늠할 수 있지요. 현대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진보적인 시도들이 눈길을 끕니다. 일례로 얇게 잘라낸 나무판 윗부분에 구멍을 뚫고 그림을 그려 엽서 겸 액자로 활용한 데서 실용미, 1920년대 매력적인 패키지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박가분과 이 패키지를 모방한 촌가분(村家粉, 원조 상품 브랜드명 ‘박가분朴家粉’의 앞글자에서 한 획만 고쳐 쓴 일명 짝퉁)에서 페이크아트적 면모, 무용가 최승희를 내세워 만든 위장약 광고에서 스타마케팅 전략, 엘리자베스 키스의 일러스트 원본 하나로 크리스마스씰부터 엽서, 포스터까지 제작한 원소스 멀티 유즈(One-Source Multi-Use)의 사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러모로 제약이 많은 상황에서도 국내 디자이너들은 다양한 시도를 통해 디자인 세계를 꾸준히 가꿔나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 디자인의 발전에 힘 싣는 플랫폼 될 것

디자인적인 측면에서 민화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민화는 조형성, 색채 이 두 가지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한국적이면서도 격식을 따지지 않는 친근함이 매력이지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빛을 발하니 다른 말로 ‘빈티지’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네요. 88 올림픽 마스코트인 ‘호돌이’도 민화에서 탄생됐듯, 민화의 활용가치는 무궁무진해서 작가, 교수 등 누구나 여러 분야에서 응용할 수 있고, 창작 활동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우려하는 점이라면, 판에 박힌 듯 똑같은 그림만 추구해서는 발전할 수 없다고 봅니다. 민화를 활용한 창의적인 발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향후 디자인코리아뮤지엄 운영 방향에 대해 간략히 말씀해주십시오.

우선, 전시 공간을 점진적으로 확장해나갈 예정입니다. 오는 5월 한국디자인진흥원의 50주년 기념 전시를 개최할 때 이곳에서 연계특별전도 대대적으로 열 생각이에요.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디자인사도 더욱 심층적으로 연구할 겁니다. 디자인코리아뮤지엄이 한국 디자인의 전통과 현대를 잇고, 우리 디자인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플랫폼이 되길 바랍니다.



글 문지혜 기자 사진 이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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