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틱한 인생역전의 주인공 강태공

도 1 양기성, , 《만고기관첩》, 18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33.5×29.4cm, 일본 야마토분카칸

*도 1 양기성, <태공조위도>, 《만고기관첩》, 18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33.5×29.4cm, 일본 야마토분카칸

강태공하면 누구나 낚시꾼을 떠올린다. 우리의 국어사전에도 강태공은 ‘낚시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 내려져 있다. 이처럼 강태공은 오늘날 일반명사처럼 사용되고 있지만 그는 3000년 이상 전 중국에서 실존했던 인물로, 주나라가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나라를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우고 제나라의 제후가 된 인물이다. 그러나 이처럼 명성을 날리기 전 강태공은 위수渭水 강가에 앉아 낚시를 하며 소일했던 백수였으니 참으로 드라마틱한 인생역전의 주인공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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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공, 낚시꾼에서 제후로의 인생역전

강태공은 본명이 강상姜尙이다. 그는 찢어지게 가난하였고 학문에 몰두하며 집안을 돌보지 않아 참다못한 그의 부인은 집을 나갔다고 전해진다. 늙도록 위수渭水가에서 낚시를 하던 그는 그곳에서 마침내 주나라 서백(후에 문왕)을 만나게 되었다. 때는 상나라 말기로서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의 폭정이 나날이 심해지는 가운데, 서백은 새로운 세상을 열 포부를 가지고 인재를 구하고 있었다. 하루는 사냥을 나가기에 앞서 그 날의 운세를 점쳤는데 큰 수확이 있을 것이라는 점괘가 나왔다. 과연 그의 일행은 위수 가에서 낚시하고 있는 강태공을 만났고, 몇 마디 나누지 않아 그가 비범한 인물임을 알아보고 스승으로 삼았다고 한다. ‘태공’은 부친 혹은 조부를 뜻하는 말로 주무왕周武王의 선친인 문왕(서백)이 고대하던(望) 인재였기 때문에 태공망이라 불렸다.
이후 강태공은 문왕의 아들 무왕을 도와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세우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는 제齊나라 제후에 봉해져 제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이에 앞서 그의 선조가 여呂나라에 봉해졌었기 때문에 여상呂尙이라고도 불린다.

궁중에서 그려진 강태공의 고사

조선시대 후기 양기성梁箕星이라는 도화서 화원이 그린 <태공조위도太公釣渭圖>(도 1)를 보면 강태공은 낚싯대를 잠시 내려놓고 일어나 문왕 일행을 마주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위수 강가에 가지를 드리우고 있는 버드나무의 섬세한 표현이 돋보이는데, 그 나무 아래 강태공은 문왕을 향해 공수 자세를 하고 있다. 문왕의 뒤에는 화려한 기치·군물을 갖춘 장병들과 그가 타고 온 가마가 숲에 가려져 있다. 이 같은 도상의 유래는 필시 중국 명대의 궁중회화와 관련이 깊을 것으로 여겨진다. 명나라 초기의 대표적 화가로서 절파浙派의 시조로 추앙받는 대진戴進이 그린 <위빈수조도渭濱垂釣圖>(도 2)와 같은 그림이 조선 후기의 양기성과 같은 도화서 화원들이 참조한 유형이었을 것이다.
강태공의 주제는 현자를 발탁하여 기용하라는 군주의 도리, 그리고 때를 기다려 군왕과 왕조를 위해 봉직하라는 신하의 도리를 가르치는 교훈을 주는 그림으로 군신도君臣圖이면서 귀감이 되는 덕목을 제시한 감계화鑑戒畵이기도 하다. 양기성이 그린 <태공조위도>의 경우, 그림과 함께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에서 강태공에 대한 전기를 기록한 「제태공세감齊太公世家」 중의 한 부분을 적은 서폭書幅이 짝을 이루고 있다. 강태공에 관한 원전原典을 이해하고 숙지하도록 하기 위한 교육적 효과도 노린 작품이다.

민화에 그려진 강태공 이야기

이처럼 군신의 도리를 깨우치게 하고, 이를 교훈으로 삼도록 권장하기 위해 강태공의 고사는 조선 말기 민화 고사인물화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그려진 주제가 되었다. 그런데 민화에 등장하는 강태공의 도상에는 약간의 변화가 있는 걸 볼 수 있다. 중국 명나라와 조선 후기의 그림에서 강태공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왕을 마주보았는데, 조선 말기의 민화에서는 대부분 초연히 앉아 여전히 낚시질을 하고 있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태공조위도>(도 3)을 보면 강태공은 삿갓을 쓰고 위수 강가 버드나무 아래에 앉아 낚시를 드리우고 있다. 문왕 일행이 그에게 다가오는 모습이 뒤쪽에 보인다. 강가의 버드나무, 언덕과 나무에 가린 문왕의 화려한 행차라는 설정은 앞서 살펴본 양기성의 그림과 동일하지만 강태공은 앉아서 낚시하는 중이다. 또 다른 그림 <위빈우주도>(도 4)도 유사한 도상이다. 버드나무와 소나무의 가지가 반복적으로 ‘X’자로 교차한 점이 발랄한 분위기를 내고, 버드나무 잎을 마치 늘어진 주렴처럼 또 소나무 잎을 꽃봉오리를 잇댄 모습으로 꼼꼼히 그려 넣어 도안적 효과를 냈다. 수묵의 산수에 황·홍색으로 채색을 가한 인물이 돋보여 현대적 감각까지 느끼게 해주는 그림이다. <강태공조어도>(도 5)를 보면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조선의 복식인 점이 흥미롭다. 주문왕은 사모관대를 착용하였고, 그를 수행한 병사들은 머리에 전립戰笠을 갖춘 융복을 착용하였는데 이는 조선의 군복인 것이다. 인물은 청, 녹, 적, 황, 백, 흑의 화려한 진채를 사용한 데에 반해 산수배경은 수묵으로만 처리하여 특이한 대조를 이룬다. 게다가 산수는 인물에 비해 지나치게 작게 묘사되어 해학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렇듯 문왕의 행차가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심한 듯 앉아 낚시에 열중하고 있는 강태공의 이미지는 조선 말기 상민常民들의 자존감의 표출인지도 모르겠다.

곧은 갈고리直鉤의 낚시바늘을 사용한 강태공

강태공의 낚시는 미늘이 없이 바늘 끝이 곧은 갈고리였다고 한다. 물고기가 미끼를 물면 입이 미늘에 걸려 잡히는 것인데, 곧은 갈고리를 사용한 강태공은 실상 물고기를 낚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다고 할 것이다. <위수직침도>(도 6)를 보면 버드나무 그늘 아래에서 낚시질 하는 강태공이 그려졌는데, 문왕의 행차는 그려지지 않았다. 물고기를 낚고자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때가 오기를 묵묵히 기다리던 준비된 참모, 강태공의 인내와 포부를 부각시킨 그림이라 할 수 있다.

강태공 고사의 현대적 활용

강태공의 고사가 오늘날까지 생명력을 지닐 수 있는 것은 인재를 적시적소에 등용할 줄 아는 리더의 혜안을 촉구하고 실력을 갖추고 묵묵히 자신의 때를 기다리라는 메시지가 현대인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지 못한 숱한 사람들의 좌절과 울분을 긍정과 희망의 기다림으로 전환시키게 해주는 힘을 강태공의 고사는 지녀왔다고 할 수 있다. 강태공의 고사가 현대의 우리에게도 익숙한 것은 그 메시지가 우리의 삶에 작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강태공의 고사인물화가 앞으로도 꾸준히 창작될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글 : 유미나(원광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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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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