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목杜牧 수레를 세우고 단풍을 감상하다

두목杜牧
수레를 세우고 단풍을 감상하다


가을이 깊어가니 바야흐로 단풍의 계절이다. 울긋불긋 화려한 빛깔로 물든 들과 산을 바라보며 절로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사를 내
뱉게 된다. 대중가요의 노랫말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고 했는데, 살짝 비틀어서 ‘단풍이 꽃보다 아름다워’는 어떠한가.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이 대략 1,200년 전에 있었으니 당나라 말기의 시인 두목杜牧이다. 타고 가던 수레를 멈추고 잠시 단풍의 아름다움에 취해 읊은 시가 “가을 단풍이 이월의 꽃보다 아름답구나”였다. 이 구절은 이후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며 명구名句로 길이 기억되었으니, 이를 그림으로 그린 것이 ‘풍림정거도楓林停車圖’이다.

풍류시인 두목

h2
두목杜牧은 만당晩唐 시기에 활동한 관리이자 시인이고, 산문가이다. 자는 목지牧之이고, 호는 번천거사樊川居士이다. 그는 대대로 영향력 있는 정치가를 많이 배출한 명문 가문 출신이었고, 특히 그의 할아버지인 두우杜佑는 10년 동안 재상을 지냈던 정치가였을 뿐 아니라 역사학에도 조예가 깊은 학자로서 두목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명망 있는 집안의 귀공자였지만 학문에도 소홀하지 않았던 두목은 26세에 우수한 성적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로 나아갔다. 그러나 내외적으로 혼란스러웠던 만당晩唐 시기의 복잡한 정세 속에서 계속되는 당파싸움과 환관의 전권으로 인해 자신의 포부와 능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오랜 세월 한직과 지방관을 지내며 좌절을 겪었다.
31세 때인 833년에 그는 양주揚洲에서 벼슬을 살았는데, 당시 양주는 화려하고 번화한 도시였다. 자유롭고 호방한 성격인 두목은 여가에 술을 마시고 기방에 출입하는 등 방탕한 생활을 하였는데, 이때에 화류계의 정경을 자세하게 묘사한 그의 작품은 흥미로운 화류문학을 이루기도 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두보杜甫를 ‘대두大杜’라고, 두목은 ‘소두小杜’라고 불렀고, 이상은李商隱과 더불어 ‘소이두小李杜’라고도 일컬었다.

늦가을의 산행

h3
당나라 대표적 시인의 한 사람인 두목의 명시, 「산행山行」은 늦가을 산 속에서의 경험을 쉬운 언어이지만 절묘하게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遠上寒山石逕斜 멀리 차가운 산 비스듬한 돌길을 따라 오르니,
白雲深處有人家 흰 구름 깊은 곳에 사람의 집이 있네.
停車坐愛楓林晩 수레 멈추고 앉아 늦가을 단풍 완상하노라니,
霜葉紅於二月花 가을 단풍잎이 이월 꽃보다 더 붉구나.

차가운 산, 돌길을 오른다는 표현에서 쌀쌀해진 가을의 기운을 느낄 수 있고, 흰 구름 깊은 곳이라는 표현에서 꽤 높이 산을 올라 인적이 드문 곳까지 이르렀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가을이 깊은데 산을 높이 올랐으니 단풍은 더욱 선명하고 화려한 색의 향연을 연출했으리라 여겨진다. 가을 단풍이 꽃보다 더 붉은 연유이다.
이처럼 시각적 이미지가 강렬한 시를 화가들이 그림으로 옮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시를 주제로 한 그림을 시의도詩意圖라고 한다. 조선말기에서 근대기에 걸친 시기 가장 영향력이 컸던 화가 중 한 사람인 안중식이 그린 <풍림정거도>는 두목의 이 시를 그린 시의도 중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도1). 비단 바탕에 풍부한 채색을 사용하여 산맥이 이루는 웅장한 장관을 담고 그 산의
붉게 물든 단풍을 그렸으며, 수레를 잠시 멈추고 이를 감상하는 인물의 모습을 그렸다. 근경의 바위 틈사이로 수레를 끌던 시동 두 명과 고개를 들고 단풍구경을 하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 보인다(도2).
당대 최고의 화가가 그린 정통 회화, 가을의 정취를 담은 이런 시의도는 많은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꽃보다 아름다운 단풍

h4
풍림정거의 주제가 민화에서 그다지 많이 다루어지지 않은 것은 이 시가 잡가나 시조, 판소리 등에 수용되지 않아 대중문화와의 관련성이 적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워낙 인구에 회자된 명시이기 때문에 민화에서도 그려졌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의 <풍림정거도>는 화면의 중앙에 동자가 끄는 수레를 탄 선비의 모습이 그려졌다(도3).
수레에서 내리지 않고 가을 산의 아름다움을 음미하고 있는 것이다. 산과 돌, 강과 나무 등이 화면 전체에 다소 어수선하게 펼쳐져 있는데, 활엽수의 잎이 부분적으로 붉게 노랗게 살짝 물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인물은 물론이고 산과 바위, 나무 등 경물을 윤곽선 위주로 소략하게 묘사하여 전체적으로 담백한 분위기이다.
그런데 화면의 상단에 적힌 제시題詩는 두목의 「산행」을 베낀 것이지만 시어詩語가 일부 뒤섞여 있다. 작가와 감상자의 한시漢詩에 대한 소양이 다소 부족함을 드러내고 있다.
두 번째 그림은 선문대박물관 소장의 <풍림정거도>이다(도4). 화면의 중앙에 몇 그루의 나무가 서 있는데 유독 가운데 위치한 나무가 붉게 물들어 있어 눈길을 끈다. 선비와 동자는 화면의 오른 쪽 끝 옹색한 공간에 배치되어 눈에 잘 띄지 않는 편이다. 마치 이 그림의 주인공은 인물이 아닌 붉게 물든 단풍임을 주장하는 듯하다.

취하여 양주의 거리를 지나다

앞에서 언급하였지만 도목은 한 때 양주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다. 양주는 당시 매우 번화하고 화려한 도시로서 향락적 도시 문화가 꽃 핀 곳이었다. 명문가의 자제로 과거를 통해 관직에 나아갔지만 수도 장안에서 멀리 떨어진 양자강 하류의 번화한 도시에 자리 잡게
된 두목은 이 곳에서 향락에 빠졌다. 잘 생긴 젊은 귀족 출신의 관리인 두목은 기녀들 사이에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모양이다. 선문대박물관의 <취과양주도>는 언뜻 두목의 시를 주제로 한 ‘풍림정차도’처럼 보이지만 전혀 다른 내용이다. 화면 상단의 화제畵題에 의하면 이는 “[두목이] 취하여 양주를 지나가니 귤이 수레에 가득 찼네醉過揚州橘滿車”이다. 즉, 두목이 수레를 타고 양주 시내를 지나가니 기녀들이 저마다 귤을 던져 그의 수레에 귤이 가득 찼다는 내용이다. 그러고 보니 그림의 화면 상단에 도성의 성벽과 문이 보이고, 그 옆 기방의 담장 너머에 여인들이 그를 향한 선망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풍류시인으로서의 두목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다

두목의 시는 젊은 혈기와 원대한 포부를 나타낸 시는 물론이고, 풍류를 즐기는 낭만이 나타난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런 가운데 「산행」은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절묘하게 묘사하여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시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계절이면 꼭 되새겨볼
만하다.
h5

 

글 유미나(원광대학교 교수)

저자에 관하여

월간 민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