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차,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를 사로잡다

열한 번의 한국의 차 이야기를 마치고, 마지막 열두 달째에는 홍차의 왕국이라 불리는 영국으로 향한다. 필자의 소소하면서도 아름다운 기행문을 통해 동양의 차가 먼 나라 영국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그리고 영국의 홍차 문화는 다시 홍콩으로 어떻게 전파되었는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편집자 주)


지난 1월, 필자는 보름 동안의 영국 문학, 역사, 예술 등을 탐구하기 위해 런던으로 향했다. 히스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영국 국내 비행기로 갈아타고 스코틀랜드로 가서 에딘버러 성 등을 둘러본 뒤, 남쪽으로 내려오며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1850) 등 영국 낭만주의자들의 정신이 어린 호수지역을 살펴봤고, 이어 비틀즈의 활동무대였던 리버풀,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 고향 스트랫포드어폰 에이븐, 미술공예운동에 매진했던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1896)가 몹시 사랑했던 지상천국 코츠월드, 옥스퍼드 대학, 웨스트민스터 사원 등 영국의 많은 문화관광지를 둘러보았다. 필자의 마음을 설레게 하지 않은 곳이 단 한 곳도 없을 정도여서, 지금까지도 그야말로 꿈같은 시간이었다고 회상한다.

차로 물든 나라, 영국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필자의 가슴을 더욱 더 뛰게 만든 것은 사실 영국의 홍차문화와 관련되는 장소들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필자는 먼저 홍차문화를 알아보기 위해 런던 그리니치 천문대 앞에 위치한 영국 국립해양박물관(National Maritime Museum)을 찾아갔다. 이곳에는 차 교역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동인도회사(East India Company)와 관련된 전시물들이 많다. 박물관을 방문해 전시물들을 둘러보는 내내 필자는 신선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중 이라크의 항구도시 바스라항의 풍요로움을 묘사한 글귀는 특히나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아시아의 해상세계
수천년 동안 아시아는 부의 아주 멋진 중심지였다.
아시아의 상인들은 인도양을 아우르고 남중국해를
가로질러 모든 종류의 상품들을 거래했으며,
이 거래를 통하여 다른 민족들과 장소들 그리고
문화들을 한 군데로 모아 서로 뒤섞이게 했다.

프랑스인들을 비롯한 많은 유럽인들은 ‘시누아즈리(chinoiserie)’, 즉 중국 미술 양식에 열광했는데, 영국인들은 특히 동양에서 생산되는 상품들과 향신료, 차 등에 대단한 관심을 보였다. 이처럼 차가 영국인들을 사로잡게 된 것은 대항해시대 시절부터 연원이 있다. 1497년 바스코 다가마(Vasco Da Gama, 1469~1524)는 3척의 범선으로 유럽에서 인도로 가는 대항로를 개척하게 된다. 그는 이 항해를 하는 도중 몰디브(Maldives) 해역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투를 벌이는 등 매우 고된 여정을 했고, 급기야 170명으로 출발한 선원은 5년 후에 55명만 살아남게 된다. 그러나 이 목숨을 건 항해는 곧 생존자들이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계기가 된다. 이들은 차를 비롯해 동양의 향신료인 육두구, 시나몬(계피), 후추, 설탕 등을 찾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동양에서 전파된 차는 점차 영국 상류사회의 사교생활의 한 부분이자 귀족의 생활문화로 정착하게 된다. 이때부터 영국의 차 문화는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고, 마침내 차로 물든 나라, 특히 홍차(Black Tea)의 나라가 되었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동서양의 운명을 뒤바꾼 것은 다름 아닌 ‘차’ 라고도 말할 수도 있다.

영국 최초의 티 룸을 연 트와이닝스

동양으로부터 수입된 차는 유럽인들, 특히 영국 여성들을 크게 매혹시켰다. 영국 남성들이 맥주와 커피를 즐기는 문화 속에 빠져 살았다면, 이제 상류층의 영국 여성들은 티파티(Tea Party)에 빠져 살게 되었다. 오죽하면 차 문화로 인한 지나친 사치와 시간 낭비 때문에 영국과 스코틀랜드 등에서는 끽다망국론喫茶亡國論, 즉 ‘차 때문에 나라가 망하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차는 영국에서 필수품으로 자리 잡게 된다. 영국의 경우, 1630년대쯤에 차를 받아들였고, 1657년에 최초의 찻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개러웨이 티 하우스(Garaway Tea House)가 생겼다. 1662년에는 영국의 찰스 2세에게 시집 온 포르투갈의 캐서린 브라간자(Catherine de Braganza, 1638~1705) 공주가 혼수품으로 차를 가지고 오면서 차를 즐기는 사람들의 수는 더욱 더 늘어나게 되었다. 때문에 18세기 초에는 물푸레나무 등으로 만든 가짜 차와 밀수 차로 인해 심각한 사회문제를 낳기도 했다.
이후 18세기 중반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차 문화는 더욱 번성하였으며, 급기야 영국은 최대의 차 수입국이 되었다.
차가 이렇게까지 산업화되는 데에는 트와이닝스(Twinings)사의 역할이 컸다. 런던 스트랜드 거리에 있으며 가장 작은 박물관으로 알려진 트와이닝스는 영국 최초의 차 제조회사로서 1706년에 최초로 차 상품들을 파는 티 룸(Tea Room)을 열게 된다. 이곳에 가면 그때의 자료들과 캔들이 전시된 작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는 랍상소우총(Lapsang Souchong), 잉글리시 블랙퍼스트(English Breakfast), 다즐링(Darjeeling) 등의 다양한 홍차 브랜드들도 갖추고 있으며, 티 테이스팅(Tea Tasting)을 해보고 각종 차를 구매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스코틀랜드 홍차의 상징, T. J. 립턴

스코틀랜드의 자연이 만들어낸 낭만적인 하이랜드와 로우랜드 사이의 구릉을 가로지르는 많은 아름다운 길과 호수…필자는 이곳을 걸으며 이토록 아름다운 경치와 매우 잘 어울리는 차 한잔을 생각했다.
스코틀랜드는 홍차를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인 립턴 경(Sir Thomas Johnstone Lipton, 1850~1931)이 홍차 문화를 일으킨 곳이기도 하다. 1850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립턴은 어려서부터 탁월한 상업적 수완을 보였다. 일설에 의하면 어린 립턴은 부모님에게 “아버지보다 손이 작은 어머니가 달걀을 손에 쥐고 파는 것이 유리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립턴은 성인이 된 후에 런던과 스코틀랜드 등지를 오가며 홍차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곧 크게 성공했다.
그가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물에 포함된 칼슘과 마그네슘이 많은 경수硬水와 스코틀랜드의 연수軟水에 맞는 ì°¨ 상품들을 만들어 까다로운 고객들의 입맛을 맞추려고 애썼기 때문이다. 특히 립턴은 홍차 산업 확장을 위해 스리랑카에도 진출하여 직접 다원茶園을 경영했으며, 스리랑카 수도인 콜롬보에 생산 공장을 세워 차를 대량 생산하고 수출했다. 이때 그의 회사의 홍보 문구는 ‘다원으로부터 직접 티 포트로(Direct from the tea garden to the teapot)’였다.
이는 동양의 ‘신토불이 지장생산 지장소비身土不二 地場生産 地場消費’와 같은 개념으로, 그의 탁월한 사업성이 특히나 엿보이는 대목이라 하겠다.

영국 홍차문화의 전당 코벤트가든

이어 필자는 대영박물관과 국립 초상화미술관에 가까운 코벤트가든(Covent Garden)을 방문했다. 이곳은 영국 최대의 청과물 시장이 있었던 곳으로 오드리 햅번(Audrey Hepburn)이 꽃을 파는 아가씨 역할로 등장한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의 촬영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필자는 이곳에 위치한 동인도회사를 찾기 위해 이틀 동안 헤맸는데, 덕분에 동인도회사 이외에도 도자기 샵, 카페와 티룸 등 각종 홍차 관련 쇼핑몰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이곳은 길거리 공연이 펼쳐지는 중앙무대를 가운데 두고 티 룸이 빙둘러있어 차를 마시며 공연도 즐길 수 있는 차의 관광 명소였던 것이다. 이곳의 티 하우스들에서는 아무 것도 가향하지 않은 스트레이트 티(Straight Tea)뿐만 아니라 베리에이션 티(Variation Tea)인 베르가못(Bergamot Oil) 향의 얼그레이(Earl Grey)등 다양한 가향 홍차를 비롯해서 70~80여종의 홍차를 보유하고 있었다.
마침내 동인도회사를 찾은 필자는 고급 차에 속하는 플라워리 오렌지 페코우(Flowery Orange Pekoe) 등을 다양하게 시음할 수 있었다. 이후 애프터눈 티(Aftermoon Tea)의 명소들 가운데 하나인 위타드(Whittard) 티 카페로 옮겨 힘든 해외 여행길에 지친 나의 몸과 마음에 쉼표를 주려는 마음으로 애프터눈 티를 즐기기 위해 라이스푸딩(Rice Pudding), 스콘(Scone), 핫 쵸코(Hot Chocolate)와 실론티, 다즐링을 주문했다. 영국인들은 차와 함께 부드러운 라이스푸딩과 스콘을 곁들이는 것을 매우 좋아하고, 특히 이들에 클로티드 크림(clotted cream)과 잼을 곁들여 그 미감을 즐기며 티타임을 보낸다. 일설에 의하면 영국인들은 딸에게 반드시 스콘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고도 한다. 그만큼 영국의 홍차문화에서 스콘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스콘의 그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19세기 중반 영국 배드포드 공작부인이었던 안나 마리아 스턴홉(Anna Maria Stanhoppe, 1788~1816)의 음식문화에서 종종 유래를 찾는다. 그녀는 점심식사와 저녁식사 사이의 출출함 때문에 하인들에게 다과상을 준비 하도록 지시했는데, 이때 이 다과상의 간식들 가운데 스콘이 몹시 마음에 들었던 공작부인은 이때부터 오후에 친구들을 초대하여 차와 함께 스콘을 즐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만약 이 말이 맞다면, 영국 애프터눈티의 시초는 바로 이때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주문한 음식이 곧 나왔다. 이윽고 필자는 실론티가 주는 따뜻한 느낌, 다즐링 특유의 머스캣 향기, 그리고 다즐링 차에서 풍기는 쟈스민 향의 어우러짐에 순식간에 사로잡혔고, 그렇게 어느덧 우아하고 청초한 여인이 되고 말았다.
차를 마시고 밖으로 나오는 길, 이곳 코벤트가든에 모여 남녀노소가 함께 어우러져 한가로이 티타임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니, 모든 것이 바쁘게만 돌아가는 한국의 일상에만 빠져 살아온 나는 그저 몹시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영국 차문화의 영향을 받은 홍콩의 차문화

영국 홍차문화 기행에 이어 영국 문화권이었던 홍콩의 차문화를 견학하기 위해 홍콩에도 다녀왔다. 홍콩에서 다시금 확인한 바이지만, 아편전쟁이 끝난 뒤, 청나라와 영국 사이에 체결된 난징조약의 결과로 100년 동안 영국령으로 있던 홍콩에는 아직도 영국의 에프터눈티 문화가 확연히 남아 있었다.
홍콩에 도착하여 고속화 전철을 타고 종점인 구룡九龍까지 가는 동안 거리거리마다 매우 역동적이고 다양한 모습의 문화가 느껴졌다. 빅토리아식 관청건물들과 고층빌딩들이 즐비한 이곳은 영국 런던의 중심지역과 닮은 것 같았다. 그러나 요리점들이 즐비한 뒷골목을 보면 북경의 풍경이 떠올랐다. 노점에서는 중국의 요리점들처럼 각종 식료품이 어수선하게 줄지어 있고 요리들이 매우 부산하게 만들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소 이른 점심시간이었음에도 나는 맛집으로 이름난 ‘카우키’로 향했다. 사람이 매우 많아, 무려 1시간씩이나 기다려야 했다. 삶은 쇠고기가 담긴 고명을 얹은 쌀국수와 홍차로 만든 아이스 밀크티를 먹었는데, 역시 명성만큼이나 맛이 일품이었다. 이틀째 아침에는 딤섬[點心]을 즐기기 위해 홍콩섬 센트럴에 있는 100년의 역사를 가진 연향루로 갔다. 이곳 역시 소문난 맛집만큼이나 사람이 매우 많았다. 딤섬은 글자 그대로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뜻인데, 홍콩에서는 주로 차와 함께 통돼지고기와 새우살로 반죽하여 찌거나 튀긴 요리, 찐빵 같은 디저트 등을 즐기는 느긋한 아침 겸 점심을 말한다.
딤섬과 함께 차를 즐기는 것이 바로 얌차문화다. 얌차[飮茶]라는 말은 광동어로 ‘차를 마신다’를 뜻한다. 얌차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곳은 차찬탱[茶餐廳]이 있다. 이곳은 글자 그대로 차와 함께 식사를 함께 하는 곳으로, 때와 상관없이 차와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카페라고 할 수 있다. 차찬탱에서는 인스턴트 누들(instant noodle)이나, 덮밥류, 볶음밥, 스프, 토스트 같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이때도 차가 나오는데 홍차, 보이차 같은 차도 있지만 주로 홍콩식 밀크티이다.
이곳의 밀크티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매우 인상적이다. 여성용 스타킹에 거른 차에 홍콩 연유를 넣어서 밀크티를 만드는데, 이는 차게도 따뜻하게도 마실 수 있다. 그러나 고온다습한 홍콩의 기후를 생각하면 아이스 밀크티의 풍미가 훨씬 더 좋은데 이는 바로 연유의 풍미 때문이다.
홍콩의 딤섬, 얌차, 차찬탱 문화는 스콘이나 케익과 함께 차를 즐기는 영국의 하이티(High Tea) 문화와도 퍽 닮았다. 영국인들이 오후에 하이티, 즉 애프터눈 티로 홍차를 즐기듯이, 홍콩 사람들 가운데는 늦은 오후나 이른 저녁에 식사를 위해 홍차와 샌드위치를 먹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그런데 영국 하이티의 기원은 다음과 같다. 영국의 노동자들은 오후(3시~5시)에 차와 샌드위치 등을 먹었는데, 이때 시간을 많이 허비할 수 없어서 일터에서 돌아와 집에서 그날의 식사를 비로소 먹을 수 있었다. 이때 마시는 차는 상류층처럼 편안하고 낮은 식탁이나 테이블에서 먹는 것이 아니라, 높다란 간이 식탁 등에서 아무렇게 앉거나 서서 차와 함께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어서 ‘하이티’라고 불렸다.
한편, 홍콩 홍차문화를 제대로 알려면 만다린 오리엔탈호텔의 에프터눈티를 맛보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은 홍콩의 가수이자 영화배우였던 장국영(張國榮, 1956~2003)이 투신한 이후 더욱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필자는 예약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잰걸음으로 바삐 서두르며 녹색공간이 거의 보이지 않는 콘크리트빌딩들이라는 숲속을 헤쳐가 예약된 시간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창 너머로 센트럴 지역이 내려다보이는 만다린오리엔탈의 클리퍼 라운지에는 역시 에프터눈티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필자는 이곳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
는 은제 티팟(Teapot)에 담긴 따뜻한 홍차와 3단 트레이에 담긴 연어와 크림치즈, 달콤한 조각 케이크 등의 티 푸드(tea food)를 즐겼다. 밀크티와 함께 나오는 갓 구운 스콘과 장미잼, 클로티드 크림 등은 홍콩에서 놓칠 수 없는 애프터눈 티타임의 메뉴다. 이후 필자는 애프터눈 티타임을 마치고 빅토리아 파크로 이동했다. 이 공원은 홍콩에서 가장 높은 타이핑 산(해발 560m)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택시를 타고 정상에 올라 야경을 감상했다. 어둠이 깔리고, 고층빌딩들에서 비치는 휘황찬란한 불빛들이 만들어내는 야경이 점점 더 강렬해지는 어둠 속에서, 필자는 영국 상류문화인 홍차문화가 홍콩에서도 상류층 문화는 물론 노동자들의 대중문화로도 빠르게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절실히 느끼면서, 차에 대한 또 다른 연구과제들을 한 아름 안고 가파른 산을 내려왔다.
끝으로 그동안 지면을 할애하여 주신 유정서 국장님을 비롯한 월간 〈민화〉 가족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바다.


글·사진 박금희(경북과학대학교 문화재관리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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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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