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회고전 여는 백당 금광복 – 빛나는 ‘이 순간’을 담다

백당 금광복 작가가 오는 4월 8일 인사아트프라자에서 17회 개인전 <채색의 향연>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일평생 민화 외길을 걸어온 중진의 회고전이자 어엿이 성장한 민화계의 일면을 함축한 자리이기도 하다.
금광복 작가가 걸어온 길,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백당 금광복 작가가 작심하고 붓을 내들었다. 민화계 중진 작가로 손꼽히는 그는 일찍이 전통에 기반을 둔 현대 민화를 주창해왔으며 오는 4월 8일 인사아트프라자에서 개최하는 전시회를 통해 그간 이룩한 미감의 세계, 나아가 민화의 현주소를 선보일 예정이다. 형식적인 측면만 보더라도 금광복 작가가 개최했던 16회의 개인전은 일괄 초대전인데 비해 이번 전시는 수 년 전부터 준비한 기획전이라는 점에서 그의 결연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전통이 지닌 현대미를 표현하는데 중점을 뒀습니다. 무엇보다 민화의 통상적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자리가 됐으면 합니다. 민화가 태동했던 조선시대와 현재를 비교해보면 장수, 물질적 풍요는 이미 이룬 셈이나 다름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우울감, 절망감에 시달리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시대에 민화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민화의 길상적 의미부터 재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화실에 들어서니 120호 규모의 화폭 위에 그가 일필휘지로 그려낸 스케치며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하얀 캔버스들이 수두룩하다. 이 많은 작품들을 언제 다 준비하느냐는 물음에 금광복 작가는 “작품성과 시간은 비례하지 않는다”며 씨익 웃는다. 반세기에 달하는 화력畵歷덕택에 머릿속 이미지를 곧잘 출력할 만큼 손이 빠른 금광복 작가, 관심사는 오직 ‘무엇을 그릴까’다. 완성된 그림 면면을 살펴보면 현대인의 자화상으로서 반야용선의 밧줄에 위태로이 매달린 악찰보살, 성경 속 ‘베드로와 새벽닭’ 이야기를 대입한 닭 그림, 아픈 이의 쾌유를 기원하는 新십장생도 등 종교 속 심오한 진리부터 범부들의 염원까지 민화로 풀어낸 우리네 이야기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전시작품은 120호 및 100호 규모의 대형 작품을 비롯해 <화조도>, <십장생도>, <서원아집도>, <곽분양향락도>, <군호도>, <호렵도> 병풍 및 소품까지 약 60여점에 달한다.

천직으로 여기고 걸어온 민화 외길

충남 아산 출신인 금광복 작가는 어릴 때부터 미술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미술부장을 도맡았으며 해적판 레코드가 난무했던 당시 외국 팝송 레코드 판넬을 모사해 친구들로부터 꽤 짭짤한 수익을 거두기도 했다. 또한 동양화 작가인 친구의 형을 통해 동양화에 입문했는데, 작품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자 유달리 친하지도 않은 친구 집을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그림을 배우게 됐다는 후문이다. 군 입대 시절엔 그림 실력이 입소문 나며 그를 서로 들이기 위해 부대 간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상관이 주문한 르네상스 시대 서양화를 거듭 모사하며 비교적 평탄한 군생활을 누렸다고.
이후 금광복 작가가 민화를 처음 그린 계기는 1984년 그의 형인 금복현 청곡부채박물관장의 부탁으로 전시회에 출품할 부채그림 3점을 그리면서부터다. 1985년 박수학 작가를 만나며 민화계에 본격 발을 들였으며 1989년 서울 경복궁 내 전통공예전에서 초대 개인전을, 1996년 경인미술관 2층에 위치한 세계화랑에서 초대전을 열며 민화 작품을 선보였다. 1998년에는 윤인수 작가와 갤러리 썬앤문 초대전 <한국화가 2인의 현대화 모색전>을 통해 현대 민화를 선보였고, 생각지도 못한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경주 민속공예촌 수림원 초대전, 때맞춰 열린 제1회 경주문화엑스포 기간 동안 불국사 회랑과 무설전 등지에서 불화와 함께 민화특별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어려울 때는 한 달 가까이 라면만으로 끼니를 때울 정도로 갖은 핍박과 괄시를 견디며 꿋꿋이 민화 외길을 걸어온 금광복 작가. 그 험준한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그림을 워낙 좋아했고, 잘하는 게 그뿐이라 천직이라 여겼을 뿐”이라 천연덕스레 답했다. 2000년대 초반, 민화를 그리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자 금광복 작가는 이들의 성장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경향미술대전,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헤럴드전통문화예술대전 등 미술 공모전 내 민화부문을 개설하는데 힘을 보탰으며 2005년 (사)한국민화협회 제5대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사)한국민화협회가 주최하는 <제2회 민화인의 날-한국민화페스티벌>에서 대한민국민화전승문화재 제2호로 선정되기도 했다.

단순 길상적 의미 벗어나 역사의식 갖춰야

“전승해야 할 전통의 가치는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본을 베끼는 것만으로 끝나선 안됩니다. 전통이 위험한 이유는 ‘옛 향수를 달래주기 때문’이에요.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고자 한다면 마음을 달래는 것으로만 그쳐선 안됩니다. 무명의 화가들이 갖은 고생을 하며 남긴 훌륭한 문화유산에 가치를 더하려는 노력이야말로 현대 민화 작가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후세에 ‘21세기 초에 민화가 유행했다고 하는데 조선시대 모사품만 있더라’고 평하게 할 순 없겠지요. 작가라면 나름대로의 시대 의식을 반영해 새로운 민화를 그려야 합니다.”

금광복 작가는 민화전승문화재로서 전통을 잘 이해하고 그 중요성을 절감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전통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선 옛것을 그대로 좇아 행하는 답습踏襲이 정답은 아니라 일갈한다.
“현 시대를 잘 알아야 합니다. 과거와 비교해 시대가 편리해졌음을 당연시하지 말고 이로 인해 잃은 것은 무엇인지, 얻은 것은 무엇인지 등을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애초 민화도 선조들의 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생겨난 문화이기 때문에 현대 민화를 그리고자 한다면 단순히 길상의 메시지를 뛰어넘어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금광복 작가는 열혈 학구파다. 동서양 미술사 및 인문학 도서를 탐독하는 것은 물론 미술평론가인 지인의 술값을 수업료로 지불해가며 서양미술사를 청강하기도, 항시 질문을 품고 일상을 마주하며 배우고 또 배운다. 틈틈이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전통의 창 민화》 등 우리 전통 미술에 관한 저서를 다수 집필했으며 본지에서 <금광복의 현대 민화 이야기> 코너를 약 1년 6개월 간 연재하기도 했다. 가까운 시일 내 잡지에 게재한 내용을 묶어 책도 출간할 계획이다.
덧붙여 그는 작품을 위해 기본기를 강조했다. 전통민화를 수없이 모사하는 과정이 창작의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거쳐야할 필수 과정이긴 하지만, 더러 기초적인 본 작업마저도 복사기나 교본에 의존한 나머지 드로잉을 배우지 않는 경우를 볼 땐 안타까웠다고. 탄탄한 기본기의 토대 위에 한국 고유의 정서, 문화 등 친숙한 우리네 이야기를 풀어낼 때 비로소 관람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문화유산으로 민화를 이어받았지만 옛날이야기만 할 순 없겠지요. 살아 숨 쉬는 이 순간이야말로 가장 소중하고 아름답듯, 지금의 이야기를 담아낼 때 우리 민화도 꾸준히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구도자의 심정으로 민화를 그려온 금광복 작가, 숱한 고뇌를 자양분 삼아 꽃피워낸 작품들은 하나같이 힘찬 기운을 내뿜는다. 생동하는 그의 필획은 ‘지금 이 순간’을 오롯이 선물하는 자리가 될 터이다.


글 문지혜 기자 사진 이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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