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시인, 가도賈島의 명시名詩 –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묻다

▲ 도1. 장득만, <송하문동자도松下問童子圖>, 《만고기관첩萬古奇觀帖》, 삼성미술관 리움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의 명시名詩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묻다

깊은 산 속 은자隱者의 거처에 어렵사리 찾아온 손님은 사립문 앞에서 마당을 쓸고 있는 동자를 마주친다. “아이야, 선생님은 계시냐?” 동자는 먼 산을 가리키며 답한다. “선생님은 저 산 속에 약초 캐러 가셨습니다.” 동자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은 구름이 자욱한 높은 산이다. 이는 신선처럼 살고 있는 은자의 삶을 동경한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의 마음을 담은 시의 내용이다. 간결하고 함축적인 이 시는 읽는 이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시가 애송되면서 그림으로도 그려져 널리 감상되었다

은자를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하다

「은자를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하다尋隱者不遇」라는 시의 작자는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779~843)이다. 자字가 낭선浪仙이며 범양范陽 사람이다. 출가한 승려로 법명은 무본無本이었고 후에 환속하였다. 그의 시가 간결하면서도 세련되고, 꾸밈이
없으면서 담담한 맛을 지녔다고 평해지는 것은 이러한 그의 이력과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 시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松下問童子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물으니
言師採藥去 스승은 약초 캐러 가고 안 계신다 하네
只在此山中 이 산 속에 계시기는 하나
雲深不知處 구름이 깊어 어디 계신지 모른다 하네

 
‘은일隱逸’은 정치적 혼란기 왕도의 실현이 요원한 상황 속에서 문인들이 선택한 삶의 방식이었다. 권력 투쟁과 정치적 암투의 현장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 묻혀 고결한 뜻을 추구하는 이상적 삶이다. 자연을 벗한 은둔자의 삶은 신선의 그것과 닮았다.
시 속에서 약초를 캐러 간 은자의 행위는 도가적 이상의 추구이기도 하다.
 
<송하문동자도松下問童子圖>(도1)는 조선후기의 도화서 화원, 장득만張得萬(1684~1764)이 그린 그림이다. 장득만은 인동 장씨로서 조선후기부터 말기에 이르기까지 29명의 도화서 화원을 배출한 명문 화원畵員 가문 출신이었다. 장득만은 특히 채색에 능했다고 하는데 《만고기관첩萬古奇觀帖》이라고 하는 이 화첩 속의 그의 그림은 한결 같이 갈색과 청색이 어우러진 세련된 채색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장득만은 시의 내용을 충실하게 이미지화하였는데, 화면 중앙에 은자의 거처가 엿보이고 문 옆에는 외로운 소나무가 고고하게 서 있다. 사실 이 그림에서 주인공은 동자에게 말을 걸고 있는 손님이라기보다 이 소나무라 할 수 있다. 안개와 구름 속에 묻혀 있는 높은 산, 그 깊은 산 중에 모습을 감춘 은자의 형상화이기도 할 것이다.

고심하여 다듬고 또 다듬어 글 짓는 시인

가도는 서른세 살 되던 해에 낙양에서 시인 한유韓愈를 만나 그 뒤 환속하였다. 이와 관련해 유명한 고사가 전한다. 우리가 글을 지을 때 여러 번 생각해서 어휘며 표현을 고치고 다듬는 것을 ‘퇴고推敲’라고 한다. 바로 이 말이 생겨난 유래이다. 어느 날 가도賈島가 말을 타고 가다가 문득 좋은 시상詩想이 떠올랐다.
 

閑居少隣竝 이웃이 드물어 한적한 집
草徑入荒園 풀이 자란 좁은 길은 거친 뜰로 이어져 있네
鳥宿池邊樹 새는 연못 가 나무에 깃들고
僧敲月下門 스님은 달 아래 문을 두드리네

 
그런데 가도는 마지막 구절에 ‘밀다’는 뜻의 ‘추推’를 쓸지, ‘두드리다’는 의미의 ‘고敲’를 쓸지 몰라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다가 마주 오던 고관의 행차와 부딪혔다. 그 고관은 당대의 유명한 시인 한유韓愈였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의 한 사람이고 부현지사副縣知事를 지내던 이였다. 가도의 얘기를 들은 한유는 화를 내기는커녕 시어詩語를 골라 주는 것이 아닌가? 한유의 의견에 따라 두드릴 ‘고敲’자를 써서 마침내 시가 완성되었다. 이후 이들은 둘도 없는 벗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퇴推’와 ‘고敲’ 두 자는 문장을 다듬는다는 뜻이 전혀 없는데도 그러한 뜻을 지니게 되었다.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묻다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스승의 소재를 묻는다는 시의도(詩意圖)는 많은 화가들이 즐겨 다룬 것이었다.
정선의 <송하문동도(松下問童圖)>(개인소장)와 김득신의 <송하문동도>(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가 대표적이다. 민화에서도 이 주제가 그려졌는데, 호림박물관 소장의 <송하문동자도>(도2)는 6폭짜리 병풍 그림 중의 하나이다. 수묵으로 처리한 산수 배경과 인물, 그 속에 진한 채색의 소나무가 유독 돋보인다. 근경의 산 위에 살짝 모습을 드러낸 사슴 두 마리는 이 곳이야말로 선경仙境임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런데 왼 편의 산 속에 오두막 한채가 보일 듯 말 듯 작게 그려져 있고, 그 안에 사람이 앉아 있다.
화가는 은자의 모습을 기어이 드러내고 싶었던 것 같다(도3).
가회민화박물관의 <송하문동자도>(도4)에서는 수묵의 산수 배경에 채색을 가한 두 인물상이 눈에 띈다. 흰색 하의에 녹색
도포를 입은 손님과 붉은 색 상의를 걸친 동자가 보색 대비를 이루어 자칫 밋밋할 수 있는 그림에 악센트를 주었다.
영남대 박물관의 8폭 산수도 병풍은 언뜻 수묵의 산수화인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산수 속에 인물들이 있고 이들은 특정
고사를 암시하고 있다. 그 중 한 폭은 <송하문동자도>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도5). 상하로 좁고 긴 화폭에 산과 강과 폭포가 추상화에 가깝게 구성적으로 배치되었고, 화면의 맨 아래 부분 큰 나무 밑에 두 사람이 마주보고 있다. 한 사람은 지팡이를 짚은 손님으로 보이고, 또 한 사람은 동자가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도가적 이상을 실현하는 은일자의 삶이 형상화되다

가도의 시에서 은자는 깊은 구름 속 산중에 그야말로 숨어있는 존재로 그려졌다. 그림에서도 은자의 모습은 감추어져 있으니, 산처럼 크기도 하고, 구름처럼 깊이를 알 수 없으며, 근경의 소나무처럼 고고하기도 하다. 어지러운 정치·사회의 현실에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킬 수 없음을 자각한 문인들의 마지막 선택은 은일이었다. 은일의 이미지가 이보다 더 효과적으로 시각화될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송하문동자도>가 꾸준히 사랑받았던 이유일 것이다.

 

글 : 유미나(원광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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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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