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놀이터처럼 신바람 나는 미술관 만들어나갈 것”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2월 1일 윤범모 동국대 석좌교수를 국립현대미술관 신임 관장으로 임명했다. 윤범모 신임 관장은 지난 30여년간 전국 미술 현장을 누비며 실무를 진행했기에 그 누구보다 미술계 내 목마름을 잘 알고 있을 터, 그가 목표하는 방향과 각오에 대해 들어보았다.


국내 미술계를 움직이는 큰 축의 하나인 국립현대미술관을 이끌어 나갈 새로운 수장으로 윤범모 동국대 석좌교수가 임명됐다.
윤범모 신임 관장은 일찍이 미술평론 등 저술 활동에서 대규모 전시 기획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활동을 해온 미술인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민화계에서는 임명 직전까지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불교예술문화학과 민화전공 수업을 맡았고 (사)한국민화센터 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그의 취임은 민화화단의 경사로 다가올 만큼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국미술사를 전공한 그는 1979년 동국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술잡지의 기자로 일했으며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미술평론으로 당선된 이후 30여 년간 미술평론가로 활동해왔다. 1980년대에 들어서서는 현실참여 미술 동인인 ‘현실과 발언’에 창립멤버로 참여했으며 민족미술협의회 산하 ‘그림마당 민’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전시 관련 경력으로는 호암갤러리(삼성미술관 리움 전신)를 시작으로 서울 예술의전당미술관, 이응노미술관, 경주솔거미술관 등 수많은 미술관의 개관 및 운영에 참여했고 창원조각비엔날레와 경주세계문화엑스포의 감독을 역임했다. 그밖에 가천대와 경원대 미대 교수로 미술 교육 분야에서도 활동했다.
이러한 이력에서도 알 수 있듯 그의 강점은 미술관련 전 영역에 걸친 풍부한 실무경험으로, 그는 지난 30여년 간 미술 현장 곳곳을 누비며 탄탄한 인적 네트워크와 관련 경험을 쌓아왔다. 국내 미술 현장의 애로사항, 그리고 잠재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 신임 관장은 취임 한 달 만에 연 기자회견에서 개관 50주년을 맞은 미술관의 과제로 협업하는 열린 미술관, 남북 교류협력을 통한 미술사 복원, 국제화 교두보 확보, 한국 미술 통사通史 편찬 작업, 국립현대미술관 4관 체제의 특성화 및 어린이미술관 기능 강화 등을 발표했다.
본지는 지난 3월 21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있는 관장실에서 취임 소감과 앞으로의 계획과 각오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이날은 그의 취임 이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첫 전시인 <불온한 데이터>의 기자간담회가 개최된 날이기도 하다. 기자간담회 직후 숨 돌릴 틈도 없이 진행된 단독 인터뷰임에도 윤 관장은 피곤한 기색 없이 이야기를 이어나갔고 민화계에 대한 조언 역시 아끼지 않았다.

본지 창간 5주년 특집호에 관장님과의 인터뷰를 싣게 돼 여러모로 뜻깊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으로 취임하신 것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간단한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월간<민화>가 벌써 창간 5주년이 됐습니까? 창간한다고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참 빠르네요(웃음). 우선, 월간<민화>의 창간 5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80년대 초 미술비평가로 등단해서 지금까지 전시기획자로서 크고 작은 전시를 많이 개최했고, 개관책임자로서도 숱한 미술관을 열고 좌충우돌해가며 그야말로 ‘전국구’로 미술 현장의 곁을 지켜왔습니다. 제가 뜻밖의 중책을 맡게 된 것도 국가기관에서 근무하며, 현장의 목마름을 잘 해결해보라는 시대적 소명으로 알고, 겸허히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신임 관장으로서 스스로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조금 전 간략히 말씀드렸다시피 다양하고 풍부한 현장 경험을 통해 미술현장의 사정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현장의 갈증을 체계적으로 해결해나가며 미술관 문화를 발전, 확장시키는 것이 저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봅니다. 산적한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선 탁상공론이 아니라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실질적 효과로 연결될 수 있다고 봅니다.

다소 난감할 수 있는 질문이지만, 그래도 여쭙겠습니다. 공모 과정에서 불거진 불공정 논란 등에 대한 관장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임용과정의 절차가 매우 복잡하기도 한데다 임용 받은 입장에서 뭐라 말씀드리기는 곤란합니다. 다만 언론의 비판은 일단 제 능력 부족과 부덕 탓이라고 보고 겸허히 듣겠습니다. 일부 논란에 대해서도 앞으로 더 잘하라는 엄중한 충고로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앞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에서 특히 중점을 두시고자 하는 부분은 어떤 것입니까?
무엇보다 대중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문턱이 낮은 미술관’을 만드는 일에 중점을 둘 것입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을 찾아 감동도 느끼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우리 미술관이 앞장서야 합니다. 국가기관으로서 전문가, 일반 대중 두 층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어야겠지요.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전시로 감동을 주고, 전문가에게는 담론을 제시할 수 있도록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열린 시각과 균형 감각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취임일성으로 밝힌 계획 중의 하나인 북한 미술계와의 교류 계획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방안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북한과의 협력은 장기적인 호흡으로 준비해야 하는 문제이고, 내부적으로는 남북 정치적 상황과도 연결돼 있습니다. 대내외적인 상황을 두루두루 감안해서 프로젝트가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전문가들과 많은 논의와 준비가 필요한 일입니다. 아직은 임기 초반이고, 남북관계도 많은 부분 불확실한 상황입니다. 앞으로 관련 사안을 진행할 수 있는 환경이 제대로 조성됐을 때 보다 자세한 계획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국미술을 통사적 관점에서 정립을 해나가겠다는 계획에 대해 물리적인 시간 면에서 부족하지 않으냐는 우려도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외국인이 우리나라 미술 전반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추천해달라고 할 때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이 없을 만큼, 그간 미술계에서 통사 작업이 등한시된 것 같다는 생각을 가져왔습니다. 시대를 관통하는 미술사 연구는 언제라도 필요한 일입니다. 이제부터라도 그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또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런 작업은 학예실의 연구 기능을 강화하는 것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연구, 출판, 전시 등 미술관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서는 학예실의 연구역량을 강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통사 작업은 우선 ‘공부하는 학예실’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목표치를 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통사작업 완료는 두 번째 문제일 수 있지요.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국격을 높일 수 있는 스타 작가 이전에 스타 큐레이터가 중요하다고 보는데, 국제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스타 큐레이터를 키우기 위해 공부하라는 뜻을 담고 있는 계획이라고 보아도 좋겠습니다.

현재 국내 미술계가 맞닥뜨린 현안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국제무대에서는 미술이라는 장르의 위상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데 국내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단적인 예로 현재 미술시장이 얼어붙어서 상당수의 전업작가들은 생계조차 위협받을 만큼 열악한 환경에 놓였습니다. 작가들이 실험적인 시도를 하고 싶어도 전시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얘기지요. 물론 상업성이 있거나 예외적으로 주목받는 소수의 작가들이 있긴 하지만 대다수의 작가들은 외진 곳에서 고통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술관이 우리 미술시장을 활성화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미술이라는 장르는 그 특성상 완성하는 순간 온전한 국제무대용 작품이 됩니다. 번역이 필요없으니까요. 국격을 높이기 위해 미술문화를 선도할 수 있도록 국립미술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미술관은 작은 공간이지만 국제무대를 생각했을 땐 기여도가 높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는 우리의 문화영토를 넓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계지도에서 한반도는 작지만, 한류열풍만 보더라도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들의 문화영토는 아주 넓거든요. 이제 대중문화뿐 아니라 미술 부문에서도 그러한 열풍이 일어나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주요 사업 중 하나가 국제교류 사업을 활성화하는 것입니다. 외국미술관과 협업체제 등을 구축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통해 더욱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해외사업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국제무대에서 활약하기 위해서는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미술관의 노력도 뒷받침돼야겠지만, 작가들의 훌륭한 작품이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민화 화단에서도 국제화는 중요한 이슈인데, 그러한 점에서 민화 작가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조선시대에 민화가 사대부계층에서 민간까지 대대적으로 유행했다는 것은 미술사뿐 아니라 사회적 현상으로도 획기적인 대사건입니다. 현재 민화를 그리는 사람들 대부분은 양식, 소재, 상징 등 좁은 범위 안에만 머물러 있는데 민화라는 일련의 큰 물줄기가 왜 그 시대에 유행했는지, 당대 사람들 사이에서 무슨 역할을 했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 민화는 국제무대에서도 통용될 만큼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른바 작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지금처럼 모사 중심으로 작품을 그리면 화단에서 인정받을 수 없어요. 작품이라는 말 속에 창작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전시장이라는 공공의 공간으로 나올 때는 자신만의 목소리가 작품에 들어 있어야 합니다. 반복해서 이야기하지만 작가라는 말 속에 이미 국제성과 개성을 내포하고 있고, 민화 작가라면 이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임기 내에 꼭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놀이터처럼 누구든 쉽게 찾을 수 있는 미술관을 만들어나가겠습니다. 작가에게는 새로운 도전의식을, 대중들에게는 무한한 상상력을, 전문가에게는 새로운 문제의식이나 담론을 제공할 수 있도록 전방위적인 노력을 하겠습니다. 각 타깃층에 맞는 맞춤전략을 수립하고, 차근히 실행해 나가겠습니다. 지켜봐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글 문지혜 기자 사진 이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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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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