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이 그린 대표적인 민화, 순수한 농민예술 농기(農旗)

도 1 강진 용소농기(5×4m)

▲도 1. 강진 용소농기(5×4m)

농사가 산업의 기반을 이뤘던 농경사회에서 농민은 곧 백성이었다. 농민이 그린 그림이야말로 순수한 민화로 볼 수 있는 이유다. 그런 농민의 그림이 남아있는 대표적 예가 바로 농기農旗다. 농기는 흔히 부락 단위로 만들어 모내기ㆍ논매기ㆍ추수 등 중요한 농사일을 할 때, 기우제를 지내거나 풍년을 빌며 또는 축하하며 풍악을 울릴 때 세우는 기旗다. 첫 연재로 전남 강진군 군동면 용소부락 안지 마을에서 사용한 거대한 농기에 그려진 민화를 소개한다.

민화를 그린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화원에 들어가지 못하고 떠돌이 화가가 되었다면 민화 작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림에 타고난 재주가 있는 사람이 그린 것이 민화일까? 타고난 재주만으로 그림에 상징성을 나타낼 수 있을까? 궁중화원이 사대부의 청에 의해 그림을 그렸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왕이 화원들에 명하여 세화歲畵, 모란도牧丹圖나 요지연도瑤池宴圖 등을 그리게 한 후, 사대부들에게 하사한 기록이 적지 않다. 그러니 궁궐의 그림들이 얼마든지 궁 밖으로 나가 백성들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을 것이다. 더구나 조선 후기에 중인들의 등장으로 부를 축적한 중인들이 화원들에게 그림을 청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경우는 아무래도 화폭이 작아져서 그림에 변형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민화는 궁궐화의 아류에 불과해 자연히 궁궐미술을 함께 다룰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도상이나 주제에 있는 것이 아니요, ‘표현양식’에 있다. 바로 표현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펴나가기로 한다. 양식이란 말은 매우 어려운 말로 그리 쉽게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농기, 농민이 그린 순수한 민화

예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인간 행위는 농업이 전부였기 때문에 농민이라 하면 곧 백성을 일컬었다. 그렇다면 농민들이 그린 그림을 순수한 민화라고 말할 수 있다. 비록 그 마을의 촌장이나 서당의 훈장이 도움을 주어 큰 상징을 띄었다고 하더라도 그림을 본격적으로 배운 솜씨는 아니어서 민화라 해도 좋을 것이다. 예부터 농민들은 주경야독하여 문화수준이 높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 말기에 프랑스 병사가 강화도를 침범하였을 때 농가마다 비록 초가집이라 해도 책이 없는 집이 없어 놀랐다고 한다. 그런 백성의 대표적 그림이 바로 농기農旗다. 농촌에서 흔히 부락 단위로 만들어 모내기ㆍ논매기ㆍ추수 등 중요한 농사일을 할 때, 기우제를 지내거나 풍년을 빌거나 또는 축하하기 위해 풍악을 치며 세우는 기旗로, 주로 용을 그리거나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쓰기도 한다. 두레 일을 할 때는 이 기를 앞에 들고 농악을 치며 나와서 하는데, 기의 자리를 옮겨 가며 일을 한다.
여러 농기 가운데, 전남 강진군 군동면 용소부락 안지 마을에서 두레를 하거나 기우제 때 사용한 농기가 있다. 가로 세로 5×4m의 크기다.(도 1) 가장자리에 물을 상징하는 붉은 색의 영기문靈氣文이 연이어져 있는데 흔히 용의 지느러미 부분에 있는 조형과 같으므로 농기 자체가 용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농기에는 붓글씨로 ‘長興郡 長興面 南外里 庚申生 朴敬采 祝 癸酉 七月 上旬 始造’(장흥군 장흥면 남외리 경신생 박경채 축 계유 칠월 상순 시조)라고 쓰여 있다. 남외리는 농기로 사용한 강진 용소리 안지 마을에서 5㎞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박경채라는 사람은 남외리에 사는 부호의 아들이며 그 부친이 안지마을 사람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농기를 만들어 기증하면서 아들의 이름을 적어 넣어 아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였다고 한다. 이 농기의 제작연대는 1933년이고 아들은 1920년경 출생하였으니 13살 때 만들어진 셈이다.

농업과 의약의 신, 신농

그 농기를 살펴보면 신농神農씨로 보이는 인물이 용을 타고 있다.(도 2-1) 신농씨는 신화神話시대의 상제上帝, 즉 하나님이다.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중국 최초의 왕조인 하夏 왕조 이전에 출현한 전설상의 황제인데, 신농은 삼황 가운데 한 분이다. 섬서성의 강수姜水 부근에서 태어나 성장했기 때문에 그의 성은 강姜씨라고 한다. 별명은 염제炎帝, 오곡야五穀爺이며, 농업과 의약의 신이다. 그가 신농이라는 호를 사용한 것은 최초로 나무를 깎아서 호미를 만들었고, 나뭇가지를 구부려서 (호미)자루를 만든 농기구의 발명자이며, 그것을 사용해서 사람들에게 농사를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농기에 신농씨를 그리게 된 것은 서당의 훈장이 가르쳐 주었을지도 모른다. 신농씨가 용을 타고 있는 것은 용이 비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본 적이 없는 신농씨라는 염제를 어떻게 그린단 말인가. 그러나 아무도 본 적이 없으므로 그리기는 쉬운 법이다. 필자는 농기에서 신농씨만을 그려 보았다. 처음 보았을 때는 용을 타고 있는 모습인데 따로 그려놓고 보니 신농씨가 살포를 들고 가지런히 두 다리로 농부처럼 서있지 않은가.(도 2-2) 그저 용 옆에 서있는데 마치 용을 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굉장한 조형적 착시다. 그러고 보니 신농씨가 호미와 함께 살포를 창조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신농씨의 귀는 붕긋붕긋하고 머리 양 쪽에서 무엇인가 양쪽으로 뻗어나고 있다. 그것은 신농씨라는 신神으로부터 발산하는 영기문이다! 그 조형을 그려보면 용의 두 뿔과 똑같은 조형이다. 게다가 용의 등줄기에서 발산하는 영기문들과 같지 않은가. 용꼬리에서 강력하게 발산하는 영기문과도 같다. 또 용의 턱 수염과 턱 밑의 역린逆鱗과 코 수염과도 같으니 이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신농씨가 곧 용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며 신농씨가 틀림없다는 것을 웅변한다. 옷을 보면 무늬가 두 갈래로 난 영기문으로 가득 차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사일을 한 것처럼 얼굴에 흙이 묻어 지저분하다. 실제 농부와 같은 모습이되 성성聖性을 상징하는 뿔 같은 영기문을 머리 위에 부여하여 신의 모습으로 만들었으니 평범한 농부들을 은근히 신격화시킨 것임을 알 수 있어서 그 숨은 의도가 놀랍다. 또, 용의 등에 놓인 안장에도 비늘무늬, 즉 보주의 조형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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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발산하는 물의 상징, 보주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은, 농업은 천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큰 근본이라는 뜻이다. 문명이 산업화되기 시작한 현대 이전에 농업은 나라의 근본이었으므로 백성은 곧 ‘농사짓는 백성’이었으며, 따라서 나라의 가장 중요한 근본이었다. 그러므로 왕이라 할지라도 농사짓는 백성을 하늘같이 여겨왔다. 그래서 신농이라는 염제는 동양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되어 왔던 것이다.
용의 머리 부분을 살펴보자.(도 3-1) 눈은 보주寶珠다. 통일신라 용면와를 분석해 보면 용의 눈이 보주임을 익히 알 수 있다. 한쪽 눈가에는 붕긋붕긋한 영기문이 있고, 다시 빨간 선들이 뻗쳐 나가는 신령스러운 기운, 즉 영기가 이를 증명한다.(도 3-2) 얼굴에는 수많은 제1영기싹들이 그려져 있다. 코는 연봉 혹은 연꽃 같이 보이지만 무량보주無量寶珠다. 이를 증명하려면 너무 많은 증명과정이 있어야 하니 후일을 기한다. 두 뿔이 뻗쳐오르고 있지만, 뿔이 아니다. 용으로부터 발산하는 영기다. 그 ‘영기’를 ‘영기문’으로 조형화했다. 신농씨의 두 뿔과 같으며 그것 역시 용의 강력한 기운을 나타낸다. 턱 밑에서도 두 줄기 영기문이 뻗쳐 나오고, 코 부분에서도 역시 두 줄기 영기문이 길게 뻗쳐 나오고 있다. 등줄기에도 같은 영기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느러미라고 알고 있는 조형도 영기문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창작할 때, 용의 등줄기를 여러 가지 다른 영기문으로 표현할 수 있다. 비늘들과 배 밑부분의 붉은 색의 조형도 모두 보주이다. 그러면 왜 그렇게 보주를 다양한 조형으로 만들었을까? 그것은 용이 보주의 집적集積이기 때문이다. 보주란 무엇인가? 보주는 우주에 가득 찬 대생명력을 혹은 물을 압축한 조형이다. 그러므로 용은 물을 상징한다.
용의 입에는 붉은 색의 육각형이 물려 있다. 그림의 노트에서 보다시피 팔릉八菱은 육면체의 팔릉을 가리키는데 그것이 점차 육면체로 변하고 육각형으로 변하여 물을 상징한다. 즉 용의 입에서 무량한 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입에 있는 육각형 보주와 머리 앞에 있는 구체球體의 붉은 보주는 같은 것을 상징한다. 그 보주에서 먼저 순환하는 기운이 나오고 거기에서 제1영기싹이 생긴다. 보주에서 강력한 영기가 발산하는 것이다. 이 보주 역시 용의 입에서 나온 것인데 용이 보주를 쫓고 있거나 쟁취하려고 한다고 잘못 알고 있는 분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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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꼬리에 나타난 영기문

꼬리 부분을 보면 역시 제1영기싹 모양으로 마무리되고 끝에서 신농씨의 얼굴과 용의 뿔 모양이나 수염 모양에서 보던 똑같은 영기문들이 날카롭게 발산하고 있다.(도 3-3) 앞으로 밝혀지겠지만 바로 이 꼬리의 영기문에서 용이 탄생한다. 역시 ‘용 모양이라는 거대한 무량보주’에서 발산하는 영기문이다.(도 3-4) 필자는 원화原畵와 다르게 채색하고 있으나 그것을 ‘채색분석법’이라 일컬으며, 필자가 독자들께서 더 쉽게 이해하도록 개발한 조형언어造形言語의 해독방법이다.
그 꼬리 부분에 구름모양 같은 큰 영기문이 있다.(도 4-1) 이것은 구름인가? 모두가 구름이라 부른다. 몇 년 전, 고려불화의 수월관음도의 백의관음도를 살펴보며 ‘원형 영기문’(학계에서는 ‘원형 연화 당초문’이라 한다)을 해독했다.(도 4-2) 그 원류를 찾아보면 고구려 벽화 무덤 삼실총으로 올라가는데(도 4-3), 이를 원형으로 압축하면 고려 불화의 역동적인 조형이 된다. 바로 이것이 영기가 가득 찬 보주의 실체다.
제1영기 싹이 둘이 만난 ‘∽’ 모양에서 제1영기싹들이 돋아나와 생명을 끝없이 생성하는 역동적인 영기문이다. 바로 그 영기문을 농기에서 발견하며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어찌하여 고구려부터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를 거쳐 일제강점기에 이르도록 연면히 이어 이어 오는가!
또 하나의 구름모양은 매우 크다.(도 5-1) 이 조형을 여러분과 함께 읽어 보기로 한다.(도 5-2~5-6) 다섯 단계로 영기문의 성립과정을 그려보았는데 영기문의 조형원리를 지키며 전개하고 있는 우주의 가득 찬 영기임을 알 수 있으므로 구름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이 농기에는 갖가지 모양의 영기문을 가득 채웠는데 무엇을 의미할까.(도 6) 차차 알게 될 것인데 이런 다양한 영기문에서 용, 신농씨, 물고기, 거북이, 방승 등이 탄생하는 것을 웅변한다.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옛 그림은 모두 영기화생靈氣化生의 광경이다. 즉 만물은 모두 영기에서 탄생한다. ‘성령聖靈에 의해 태어난다’는 말이 이것과 같다. 물고기도 여러분이 항상 현실에서 보는 물고기가 아니고, 만물생성의 근원인 물을 형상화한 것이다. 여러분! 물고기 주변에 갖가지 구름이 있다면 그 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거북이도 물을 상징하므로 역시 생명생성의 근원이므로 영기문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거북이는 또 다른 모양의 용임을 차차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각무늬가 두 개 연결된 조형이 있다. 이것도 매우 중요한 것이 틀림없지만 이해할 수 없는 설명뿐이다. 우리 학계에서 쓰고 있는 칠보七寶는 옳지 않다. 팔보八寶에는 ‘불교 팔보佛敎八寶’가 있고 ‘도교 팔보道敎八寶’가 있는데 웬일인지 이들을 모든 학교에서 칠보라고 불러오고 있으며 대중도 무조건 이를 따르고 있다. 칠보가 무엇인지 물으면 아무도 모르고 잘못 부르니 팔보의 조형도 설명할 수 없다. 이 조형은 도교 팔보 가운데 하나인데 방승方勝이라 부른다.(도 8) 사전을 찾아보면 ‘네모난 고리가 가로세로로 연속해서 이어진 모양의 무늬’라고만 되어 있어 이미 사어死語가 된듯하니, 조형의 형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이 농기에서 팔보 가운데 대표격으로 방승을 내세우고 있으니, 매우 중요한 것이리라. 팔보라는 것은 여덟 가지 강력한 영기문을 말한다. 즉 사각 고리가 무한히 연결하고 있는, 즉 만물은 무한히 연결하여 있다는 진리를 간단하게 표현한 것이다. 즉 팔보는 강력한 영기, 즉 여덟 가지 진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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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 물꼬를 트는 농기, 살포

신농씨가 들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살포다. 살포와의 인연은 깊다. 필자는 가끔씩 놀러가는 갤러리가 있는데 벽에 무엇인가 걸려 있는 것을 처음 보았다. 주인에게 “저것이 무엇인가요?”라고 묻자, “살포입니다”라고 답한다. “살포가 무엇인가요?” 다시 묻자 “논의 물꼬를 트는 농기이지요”한다. 시골에서 산 적이 없으니 알 턱이 없다. 그 순간 “뭐라구요? 물꼬를 튼다구요?” 소리쳤다. 필자는 요즈음 인문학의 여러 분야가 서로 높은 담을 쌓고 있을뿐더러 분야별에서도 세분화되어 담을 쌓고 있고 미술사학도 예외 없이 그런 답답한 상태여서, 살포를 나의 지물持物로 삼기로 했다.
이 살포를 들고 다니며 인문학의 겹겹이 둘러친 벽들을 트는 역할을 하리라 생각했으며, 항상 연구원의 강의실 의자 옆에 두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지나치고 보지 못한다. 이제 농기를 보니 한 눈에 살포가 보인다. 게다가 진주 강씨의 시조가 신농씨다. 신농씨가 살포를 들고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상징을 띤다. 살포는 이미 4세기부터 논농사를 지었던 충청도 이남 지방의 무덤에서 발견된다. 물론 철로 만든 가야와 신라의 살포다.(도 9, 함안 도항리 27호분 출토, 신라시대, 김해박물관 소장) 그런데 신라 왕릉 무덤인 황남대총의 주인공인 왕의 과대銙帶, 즉 금이나 은으로 만든 장식품을 달아 만든 금속 띠에 살포가 있다는 고고학자의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확인해 보니 경주 황남대총 남쪽 왕릉에서 출토한 허리띠에 과연 살포가 달려 있었다!(도 10-1, 10-2) 왕이 살포를 지니고 있었다는 의미다. 살포날과 보주의 결합은 중요하다.
이것이 살포라는 증거는 윗 부분에 둥근 보주가 있기 때문이다. 보주는 용과 같아서 무량한 물을 머금고 있다. 살포에서 무량한 물이 콸콸 나오는 것을 상징한다.

사궤장연희도화첩에 나타난 살포의 의미

경기도박물관에는 사궤장연희도화첩賜几杖宴會圖畵帖(1668년 작, 보물 제930호)가 소장되어 있다.(도 11-1, 11-2) 무슨 그림일까? 헌종이 1668년에 높은 관직에 있는 이경석(1595~1671)에게 지팡이와 의자를 하사하고 연회를 베풀었던 궤장연几杖宴의 장면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경기도박물관에는 실제로 의자와 살포가 소장되어 있는데 궤장연의 그림과 똑같다.(도 12) 맨 위에 새가 있고 두 줄기 띠가 달려 있는 것은, 소도蘇塗, 즉 삼한시대에 제의를 지내던 곳에서 천군天君이 천신天神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게 했는데, 긴 장대에 방울과 북을 달아놓고 귀신을 섬겼던 전통이 내려왔을 것이다. 더욱이 맨 위에 새가 있어서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새를 특정의 새, 비둘기로 보고 있는데, 중국의 그릇된 기록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궤장, 즉 의자와 지팡이(살포를 겸한 지팡이)를 처음 받은 사람은 기록상으로는 신라시대의 김유신金庾信이다. 문헌상 가장 이른 기록인 《삼국사기》에 의하면 김유신은 나이가 들어 사직辭職을 청했으나 문무왕은 허락하지 않고 궤장을 내렸다는 이야기다. 고려시대에도 치사致仕에 이른, 즉 나이가 많아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날 신하에게 계속 정사를 보살펴 달라고 부탁하며 하사하는 것이 궤장이다.
그러므로 동양에서는 나이가 많이 든 신하가 지혜롭다하여 극진히 대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자, 지팡이가 단지 지팡이가 아니요, 지팡이 끝에 살포를 단 것은 참으로 의미와 상징이 크고도 크고 그 역사가 오래여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살포란 것은 예부터 왕권 강화를 위해 큰 칼大刀와 함께 각 지역의 수장들에게 하사하여 농경 감독과 경제적 권한을 부여해왔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도록 나이 든 중신들에게 하사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에 신농씨가 살포를 들고 있는 까닭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살포의 날의 형태는 종장방형, 횡장방형, 반원형, 사다리꼴 등 여러 가지가 있으며 이경석이 하사받은 살포의 날 바로 위에는 정육면체의 모서리를 자른 형태가 있는데 이것은 바로 ‘모를 깎은 보주’이다.(도 13) 이 상징은 매우 크다. 보주란 바닷물을 다 모아 압축한 조형이기 때문에 지나치기 쉬운 이 모난 보주가 살포에서 지니는 의미는 가장 큰 것이다. 즉 살포에서 무량한 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황남대총의 살포에 있는 둥근 보주와 같은 맥락이다. 조선시대 왕이 지녔음직한 쌍룡문 살포가 있다. 자루를 휘감고 오르는 두 용과 보주를 조각했는데 정교하기 이를 데 없다.(도 14) 이 살포는 왕의 권위를 상징하며, 신농씨가 지니고 있는 살포와 같은 상징성을 띤다고 하겠다.

지금까지 신농씨, 옷 주름, 용 안장, 살포, 용, 용의 코, 뿔, 육각수문, 지느러미 부분의 영기문, 눈, 두 가지 보주, 주변 갖가지 영기문, 물고기, 거북이, 방승을 비롯한 농기에 그려진 도상들을 자세히 다루어보았다. 고구려 벽화와 고려 불화, 농기구, 팔보 등, 조형예술의 모든 분야를 공부해야만 한 점의 작품을 풀어낼 수 있다.
농기는 대표적 민화, 농민예술이다. 농민들은 상상 이외로 자연과 더불어 살고 주경야독하며 영적靈的인 세계를 추구한 존재였으며, 비록 직업적 화가는 아니었지만 올바르게 소묘했고 역사적으로 내려온 깊은 사상적 상징을 표현할 줄 알았다.

 

글 : 강우방(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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