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기(農旗) 두 번째 이야기 용과 태극 그리고 팔괘의 장엄한 드라마

도 1

농업이 천하의 큰 근본이라 함은 인간이 자연과 맺어온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세계관으로, 이는 농기에 고스란히 반영돼 왔다. 현대에 들어서는 농업의 쇠퇴와 더불어 그 사상도 잊혀져왔다. 몇 점 남지 않은 농기의 주제는 용이 대부분인데, 이는 다른 도상과 어울리며 여러 가지 상징을 띤다. 이처럼 민화가 우리의 마음을 끄는 것은 어수룩한 솜씨가 아니라 고차원의 상징을 완벽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한 농기 속 용과 태극, 그리고 팔괘가 지니는 의미에 대해 알아보자.

농업박물관에는 고대 우주생성론을 그대로 반영하는 농기가 몇 점 있는데, 신농씨를 중심으로 한 여러 조형이 매우 흥미로워 저번 연재분에 가장 먼저 다루었다. 이번에는 국립민속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농기를 다루어볼까 한다. 역시 그림이 농민의 솜씨인 것이 틀림없으나 담긴 사상은 매우 드높아서 더 위에 둘 것이 없다. 농업이 천하의 큰 근본이라 한 것은 인간의 삶과 자연과의 관계에서 형성된 세계관이 농기에 반영된 것이지만, 이제는 농업과 더불어 사상도 잊힌 지 오래다. 농기는 남아 있는 것이 많지 않은데 모두 용이 주제다. 그러나 용이 다른 도상과 어울리며 여러 가지 상징을 띤다. 용의 본질이란 끊임없이 변모하며 여러 상징을 다양하게 표현하므로, 포착하기 쉽지 않다. 그러므로 한 그림만으로 모든 내용을 전달할 수 없고, 수많은 작품들을 관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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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현신 구현한 장엄한 농기

농기에 단군 기원후 4279년에 만들었다고 먹으로 쓰여 있으니 해방 후 1947년에 만들어졌다면 필자의 나이 여섯 살 때 만들어진 것인데, 마치 천 년 전에 만들어진 느낌이 들 정도로 아득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묵서는 그림보다 늦은 시기, 즉 1947년 이전에 만든 농기에 그림 일부를 지우고 기증자들의 이름을 적어놓은 것을 보아 아마도 해방 전에 만든 것임이 틀림없다. 그만큼 우리는 과거의 전통과 너무도 갑자기 단절돼 버렸고, 일반 사람들은 농기를 보더라도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다. 서산군 고북면 장선리에 김일삼金日三씨가 기증한 것으로, 크기는 세로 326cm, 세로 212cm다. 불화로 치면 높이 10m 내외의 괘불掛佛과 같은 성격을 지닌 대형 민화라 할 수 있다.(도 1)
이 농기를 보면 오른쪽 첫 머리에 태극이 있고 그 아래로 원 안에 8괘를 그려 넣어 아래로 일렬로 두었다. 그리고 나머지 넓은 공간에 거의 3m에 이르는 구불구불한 파상형의 용이 그려져 있고(실제 용 길이는 4m가량), 테 왼쪽 구석에는 물고기가 작게 그려져 있다. 그 나머지 여백은 온통 영기문이다. 구름이 아니다. 만일 구름이라면 물고기 주변에 구름이 그토록 많이 밀집하여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그러면 용과 태극은 무슨 관계가 있으며 8괘와는 무슨 관계가 있으며 또 물고기와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아보기로 한다. 아마 의문을 가져본 분은 훨씬 필자의 말을 쉽게 받아들일 것이다.
‘천의 소재는 능직綾織으로 짠 면직綿織이다. 기의 바탕은 사조룡四爪龍과 잉어, 구름 문양이 채색으로 그려져 있다.’ 보통 이렇게 몇 줄 쓰면 할 이야기가 별로 없다. 그래서 이런 농기에 대한 논문이 한 편도 없다. 바탕 천은 면이어서 매우 낡기 쉽고 색도 바래서 지금은 그림이 희미하다. 그래서 필자는 이 농기를 그려서 채색분석해 보기로 결심했다. 만만치 않은 작업이지만 농기의 실상을 독자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은 염원이 있기 때문이다. 채색 분석해 놓고 보니 장관이었다.(도 2) 우주의 충만한 영기에서 용이 현신하는 장엄한 광경이다.

 

1. 태극太極-팔괘八卦

태극은 만물의 근원이다. 우리나라 태극기는 면面으로 된 두 개의 제1영기싹이 회전하는 모습인데, 우주에 충만한 생명력의 대순환을 상징한다. 둘이 있든 셋이 있든 넷이 있든 같은 상징이다. 중요한 것은 역시 만물의 근원인 제1영기싹이 몇 개이든 있다는 것이 중요하고 그 조형들이 한 방향으로 순환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동양(특히 한국-중국-일본)에는 둥근 수막새 와당이나 동경銅鏡에서처럼 작은 작품들에 그 작은 공간을 소우주로 삼고 대우주의 생명력의 대순환을 마음껏 표현해 왔다. 동양 학자들은 그것을 보고 ‘바람개비’라고 부르거나 아예 그런 조형이 있는지도 모른다. 폐쇄된 사무실, 아파트와 자동차에 갇혀 사는 동안, 우주관을 상실한 현대인은 인간인 자신이나 사찰이나 궁궐 등을 소우주로 인식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광활한 우주와 비교하고 구분하기 위하여 대우주니 소우주니 다르게 말하지만, 모두가 ‘우주’를 표현한 것임을 알고 있어야 한다.
농기에의 첫머리에 태극이 있다. 첫머리에 있는 것은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다. 태초에 혼돈이 있었는데 생명력이 극도로 충만한 혼돈이 바로 태극이다. 태극에서 음양이 생긴다. ‘음양陰陽’의 세계관을 토대로 그 구체적인 삼라만상의 세계를 나타낸 것이 바로 팔괘八卦다. 음과 양은 물질의 궁극적인 본질이며, 그것들의 근원이자 통일체가 바로 ‘태극太極’이다. 『역경易經』 「계사전繫辭傳」에는 이 태극에서 생겨난 세계관이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역유태극易有太極 시생양의是生兩儀 양의생사상兩儀生四象 사상생팔괘四象生八卦” 즉 “역易에 태극이 있으며, 이것이 양의兩儀:陰陽를 낳고, 양의는 사상四象:태음-소음-태양-소양, 하늘과 땅, 산천초목, 춘하추동 등 자연 현상)을 낳고, 사상은 팔괘를 낳는다.” 복희伏羲(고대 전설상의 삼황三皇 중 하나로 처음으로 백성에게 어렵漁獵·농경·목축 등을 가르치고 팔괘八卦와 문자를 만들었다고 함)의 팔괘가 천도天道의 운행을 나타낸다면, 이는 필자가 말하는 우주에 충만한 생명력의 대순환을 뜻한다.(도 3-1) 8괘는 다시 전개하여, ≪주역≫ 64괘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계사전 繫辭傳≫에서 “역易은 천지를 본받은 것이기 때문에 천지의 도道를 두루 포섭해 다스릴 수가 있다.”고 했듯이 ≪주역≫의 64괘에는 천지만물의 변화 원리(소장변화消長變化, 그러나 필자는 생명생성生命生成을 강조)가 투영되어 있다.
그러므로 비록 태극에서 시작하여 8괘에 이르는 과정을 농기 첫 줄에 표현하고 있으나(도 4), 결국 64괘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천지만물의 변화 원리’라는 ‘태극~64괘’는 천지만물의 생성 변화를 뜻하므로 고대 우주생성론을 간단히 나타내고 있는 셈이다. 8괘를 보면 건乾(天), 태兌(澤), 리離(火), 진震(雷), 손巽(風), 감坎(水), 간艮(山), 곤坤(地) 등으로 자연의 여러 양상을 나타낸다. 8괘가 ‘사물’을 상징하는데 비해 64괘는 ‘사건’을 상징한다. 즉 인간과 자연의 존재 양상과 변화 체계를 상징하는 64개의 괘가 완성된다. 그러므로 농업사회에서는 주역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므로 우주 만물의 생성변화의 원리를 담은 태극~8괘가 첫 머리에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천팔괘 방위도를 한 줄로 세우면 농기의 것이 되는데 결국 같은 의미이다. 즉 (도 4)와 (도 3-1)은 같은 것이다. 이 도상을 간단히 표현한 것이 우리나라의 태극기다.(도 3-2.)

 

2. 태극과 보주

용의 입에서 나온 보주가 바로 옆에 있다. 그러면 ‘태극~8괘’와 보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8괘는 태극에서 나온 것이므로 ‘태극과 보주의 관계’만 다루면 될 것이다. 태극은 만물의 근원이므로 노자사상에서 도道라고도 불렀다. 그런데 보주 역시 우주에 가득 찬 생명력이 압축한 것이므로 만물의 근원이라 할 수 있으므로 같은 상징을 띤다. 보주 안에서 생명력이 순환하고 있으니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보주가 보석이라 생각하고 있으며 신통방통한 여의보주如意寶珠라는 세속적인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다. 그리고 보주라고 해서 반드시 별과 같은 구체球體나 평면적인 원圓이 아니고, 타원체도 있고 정육면체도 있고 직육면체 등 다양하다. 보주는 일정한 모양이 있는 것이 아닌데 둥근 모양으로 흔히 표현한다. 만일, 용이 보주의 집적集積: 쌓인 것)이라면 용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보주일 수밖에 없다. 용이 무량한 보주의 덩어리라면 입에서 무량한 보주가 줄줄이 나오는 수밖에 없다. 필자가 용의 본질을 파악하여 정립하여 놓았고, 보주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본질을 파악하여 개념을 정립하여 놓았다. 용과 보주에 관한 한 낯설고 알아듣기 어려울 것이지만, 온갖 오류에서 벗어나면 이해하기 매우 쉽다. 이제 용이 보주를 쟁취하거나 희롱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은 해서는 안 된다. 자, 용의 입에서 보주가 무량하게 나온다면, 보주와 태극이 같은 것이므로, 용의 입에서 태극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은 분명한 이치다.
고려시대 청자 매병이 있다. 고려 초기의 것이어서 음각으로 보주를 중심에 두고 두 용이 입을 크게 벌리고 서로 향하고 있는 것을 표현했다. 바탕에는 물결무늬가 넘실대며 그런 바탕 위에 그런 역동적인 광경을 나타냈다. 그런데 보주를 자세히 보면 바로 태극이 아닌가! 태극이란 음과 양의 두 기운이 순환하는 광경이다.(도 5-1, 도 5-2) 즉 대우주 생명력의 대순환을 상징한다. 보주에서 강력한 영기가 발산하듯 태극에서도 강력한 보주가 발산하고 있다. 그러한 예는 많이 있지만 사람들은 아직 보주의 실체를 모르므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용과 보주=태극과 8괘는 자연히 연결되어 하나가 된다. 그러므로 농기에 엄청나게 크게 용을 표현하되 굴곡을 크게 하여 꿈틀거리는 용의 모습에 탄력이 있으며 매우 길게 느껴지도록 그린 까닭을 알 수 있다. 용과 주역은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주역周易』을 보면 용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64괘로 이루어진 주역에서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괘를 압축해 본다면, 제일 첫 번째 괘인 건괘乾卦이다. ‘건괘의 설명방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용으로 시작하여 용으로 끝난다.’ 건괘는 처음에 ‘잠룡潛龍은 물용勿用이다’로 시작한다. 여기서 ‘잠룡’이라는 것은 물속에 있는 상태의 용을 가리킨다. 어린 용은 물속에서 생활하였음을 암시한다. 물속에 있는 용은 아직 어려 능력이 없으므로 쓸 수 없다는 말이다. 건괘의 두 번째는 ‘현룡재전見龍在田이니 이견대인利見大人이라’이다. ‘현룡재전’은 물속에 있던 용이 약간 자라서 고개를 내밀고 물 밖을 나와 보는 단계이다. 재전在田은 물속에서 나와 땅에 출현한다는 뜻이다. 건괘의 세 번째는 ‘혹약재연或躍在淵이면 무구无咎니라’이다. 혹시 뛰어오르더라도 연못이 있으면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육지에 올라온 용이 공중으로 비상하기 위해서 나는 연습을 하는 과정이다. 이때 뛰어오르다가 잘못되면 땅으로 떨어져서 다칠 수밖에 없다. 만약 날아오르다가 잘못돼 연못으로 떨어지면 다치지 않는다. 건괘의 네 번째는 ‘비룡재천飛龍在天이니 이견대인利見大人이라’이다.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봄이 이롭다’는 뜻. 땅에서 나는 연습을 마치고 비상하는 단계이다. 다섯 번째는 ‘항룡亢龍이니 유회有悔리라’. 하늘에 높이 올라가 있는 용은 언젠가 내려와야만 한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건괘는 온통 용으로 그 의미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용이 처음에는 물속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땅으로 올라와서 어느 정도 자라다가 비상하는 연습을 해서 하늘로 날아오른다고 하는 ‘용의 성장과정’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역의 건괘는 용의 성장과정을 관찰, 묘사하고 있는 ‘용경龍經’이기도 하다. 그리고 용은 물海, 땅陸, 하늘空을 모두 왕래할 수 있는 특출한 능력을 갖춘 동물인 셈이어서 용을 항상 바다나 하늘과 관련시키면 용의 본질을 파악할 수 없으며, 동물이라 부르지만 역경에서 설명하는 내용도 상징성은 있으나 올바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용이란 존재는 우주에 충만한 영기를 갖가지 영기문으로 구성한 조형’이다.

 

3. 용과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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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용을 자세히 살펴 볼 때가 되었다. 앞부분을 보기로 하자.(도 6-1, 도 6-2) 얼굴을 보면 두 뿔이 제2영기싹으로 되어 있고, ‘눈은 보주여서 강력한 영기문이 길게 양쪽으로 뻗쳐 나가고 있다.’ 그런데 얼굴에 세 개가 한 세트인 점들이 있다. 사람들은 반점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무량보주를 상징한다.
큰 보주건 작은 보주건 가치는 같다. 보주는 두 개가 결합하기고 하고, 세 개가 결합하기도 하고, 네 개, 다섯 개가 결합하기도 하는데, 어느 경우건 무량한 보주 즉, ‘무량보주’를 뜻한다. ‘무량보주’는 ‘무량한 바다 같은 물’을 뜻한다. 즉 용이란 바다 같은 한없는 물을 상징하므로 얼굴에 이런 무량보주의 조형을 부여한다. 도자기에 해태의 몸이나 얼굴에 흔히 다섯 보주를 한 세트로 한 무량보주를 부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 얼굴에서 붉은 색으로 칠한 힘찬 가는 영기문이 뒤로 발산하고 있다.
앞발을 보면 붉은 영기문이 밀착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밀착된 영기문에서 짧은 영기문이 가지치고 있다. 즉, 몸에 밀착된 영기문에서 다리가 화생化生하고 있는 것이다. 즉 여기에서는 그리 크게 강조하지 않았으나 후에 전형적인 ‘동물모양의 생명생성의 과정’을 살필 기회가 올 것이다. 화생이란 종교적인 신비한 탄생을 말한다. 앞으로 차차 아시게 될 것이지만 모든 민화는 대부분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광경들이며 대개가 생명체가 화생하는 장면들이다. 이러한 필자의 새로운 인식은 민화 연구에 큰 변화를 가져 올 것이다. 등에도 뾰족한 영기문들이 나 있는데 그려보면 물을 상징하는 영기문이다. 가슴에 일렬로 처음부터 끝까지 가는 모양도 모두 보주이다. 주변에는 제1영기싹을 붕긋붕긋하게 만든 영기문이 가득 차 있다. 구름으로 알고 있으면 민화의 상징은 결코 풀리지 않는다. 얼굴 앞에 보주가 있다. 용의 입에서 나온 보주이다. 보주에서 강력한 영기가 발산하고 있다. 붉은 색으로 칠하면 불꽃이라 여기기 쉬워서 검은 색으로 칠했다. 아직도 불꽃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용을 보주를 쟁취하거나 희롱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용 아래에 작은 물고기가 얌전하게 앉아있다.(도 7-1, 도 7-2) 그저 항상 보는 물고기다. 현실에서 보는 평범한 물고기다. 그런데 왜 농기는 물론 병풍민화에서 흔히 용과 물고기가 함께 나오는가? 그러나 작은 물고기라고 얕잡아 보지말기 바란다. 따로 떨어져 있어도 작은 물고기의 입에서 거대한 용이 생겨난다. 우선 물고기가 용처럼 보주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모양을 표현한 중국 당唐나라 동경銅鏡을 분석해 보기로 하자. 채색분석해 보니 물고기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알 수 있다.(도 8-1, 도 8-2) 물고기의 입에서 갖가지 영기문이 세 갈래 나오고 있다. 등에는 일렬로 보주를 두었다. 비늘은 모두 보주다. 앞부분 밑에서는 제2영기싹 영기문이 발산하고 있다. 이런 조형으로 보아 여느 물고기가 아니다. 영화靈化된 물고기다. 또 물고기 입 앞에는 약간 떨어져서 제1영기싹이 세 번 연이어 전개하다가 갈래 사이에서 태극이 화생한다. 그 태극에서 영기문이 발산한다. 여기에는 물고기가 용의 존재와 똑같은 가치를 지닌다.

물고기와 용의 관계를 표현한 것이 어변성룡魚變成龍이다. 자세히 그 도상을 해석하려니와 모두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물고기가 변해서 용이 된 것이 아니라, 조형 그대로 영화된 물고기 입에서 물고기보다 훨씬 더 큰 용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것은 물고기가 물을 상징하므로 용이 물에서 생긴다는 뜻이다. 물고기는 현실에서 볼 수 있는 것이나, 용은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용 역시 물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물고기는 누구나 아는 것이나 물이 없으면 꼼짝 없이 죽는 물고기임은 누구나 알고 있으므로 물고기를 먼저 내세워 물고기에서 용이 생기게끔 하여 알아보기 쉽게 한 것이다. 절에 가면 도처에 물고기 입에서 용이 나오는 단청을 볼 수 있다.(도 9, 도 10, 도 11) 민화 문자도의 충忠자에는 어김없이 물고기 입에서 용이 나오는 놀라운 조형을 볼 수 있다.(도 12) 이런 그림을 보고 어변성룡이라고 부른다. 후대에 사람들이 잘못 보고 말한 것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영화된 물고기’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립민속박물관에는 도자기가 전시되어 있다.(도 13-1, 도 13-2) 그런데 영기문과 용의 모습이 영락없이 농기를 그렀던 농민들이 그린 것과 똑같은 것을 보고 놀랐다. 솜씨가 똑같다. 물고기와 용이 교차하는 역동적인 조형은 놀랍다. 서투르지만 서투른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것은 농민이 깊은 상징을 완벽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직업적인 화가는 그렇게 그리지 못한다. 영기문도 자유자재로 힘차게 다양하게 그렸다. 마치 1월호에 실린 농업박물관 소장 ‘신농씨 농기’를 그린 농민의 작품 같다. 그러고 보니 위대한 민화다. 민화가 우리의 마음을 끄는 것은 어수룩한 솜씨가 아니라 고차원의 상징을 완벽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농기에 고대의 고차원의 우주생성론이란 사상을 고스란히 표현한 것은 농업이라는 백성의 숭고한 노동 자체가 만물의 생명을 생성케 하는 존귀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글 : 강우방(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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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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