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향기에 취하고 정취에 반하는 우리 꽃 그림 화훼도(花卉圖)

화조도, 지본채색, 10폭 중 5폭, 각 28X113.5cm, 경기대학교박물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두가 꽃 그림을 좋아한다. 중국에서는 이미 6세기 말경부터 인도와 중앙아시아의 영향을 받아 화조도가 독자적인 장르로 발달하였으며 특히 연화, 모란, 부용 등의 꽃은 화려한 장식문양으로 발전하였다. ‘화훼’라는 용어가 처음 나타난 것은 840년경에 중국의 주경현(朱景玄,주 징시앤)이 쓴 《당조명화록(唐朝名畵錄)》이고, 화조도는 오대(五代, 907∼960)와 북송(北宋, 960∼1126)에 걸쳐 주로 그려졌다.

우리 민족의 미의식을 고스란히 담아

화훼도(花卉圖)는 꽃이 있는 작은 꽃나무나 일년초의 풀이 자연스레 조화를 이루고 있는 그림이다. 즉 꽃과 풀을 그린 그림을 화훼도라고 한다. 화훼도는 돌과 수풀이 있는 땅 위에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사계절의 꽃을 한 화면에 그린 것과 돌을 함께 그린 것, 병에 꽃을 꽂아 놓고 그린 것 등이 있다. 꽃을 중심으로 다른 소재와 함께 그린 것은 명칭을 달리하는데, 꽃과 새를 함께 그리면 화조도(花鳥圖), 꽃과 나비를 함께 그리면 화접도(花蝶圖), 곤충 등과 함께 그리면 초충도(草蟲圖), 귀한 옛 그릇과 함께 꽃가지 따위를 그린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화훼도가 그려져 널리 애용되었는데, 특히 조선 초 신사임당, 이암, 이영윤, 어몽룡 등이 잘 그렸다고 한다. 등장하는 꽃의 종류는 무려 40여 종에 이른다. 대부분 우리의 산과 들에 자생하는 꽃들로 모란, 연꽃, 국화, 매화, 작약, 난초, 동백, 수선, 옥잠화, 해당화, 접시꽃, 개나리, 진달래, 장미 등이다.
화훼도는 실용성 못지않게 장식성이 돋보이는 그림이다. 물론 다른 제재들도 대부분 아름답게 그려지지만, 특히나 화훼도는 더욱 화려하고 아름답게 그려진다. 꽃잎이나 줄기 등을 매우 세밀하고 사실적으로 그리기도 하지만, 대부분 풍부한 색채를 동원하여 실제 모습보다 더 예쁘게 과장하여 그려 낸다. 또, 꽃을 추상화시키거나 아예 문양화해 그리기도 한다. 예컨대 모란도는 괴석 위에 조형화된 모란꽃과 이파리를 반복적으로 그려 냈지만, 보기에 무리가 없는 편안한 구도로 그려져 신비롭게 느껴진다. 이렇게 단순한 그림으로 여겨 왔던 화훼도에는 우리 조상들의 미의식이 잘 나타나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사랑한 그림, 화훼도

화훼도는 주로 여성의 방을 장식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선비의 방에도 많이 붙여졌다. 선비들은 매화, 국화, 연꽃, 난꽃, 장미꽃, 맨드라미꽃, 목련꽃 등의 화훼 그림을 특히 좋아했다. 이와 같은 꽃 그림은 모양과 빛깔이 보기에 좋기도 했지만, 향기가 있는 꽃을 ‘군자’에 비유하여 더욱 사랑했던 것이다.
매화는 선비의 고고함을, 국화는 지조와 정절, 은둔과 인내를 뜻한다. 연꽃은 진흙에서 피는 꽃이니 어려움을 이겨내는 군자를 뜻한다. 이렇게 꽃 그림은 고급스러운 선비들의 취향과 격조를 반영하고 있어 선비의 방에도 많이 붙여졌다.
화훼도는 관화와 민화에서 또 다르게 빛이 난다. 관념적으로 꽃을 본 선비들과 달리, 장수, 건강, 다산, 출세, 관직, 승진 등의 뜻도 담겨 있어 서민들도 화훼도를 좋아하였다. 실용성과 장식성을 주요 목적으로 여러 가지 길상의 의미를 담아 제작·사용한 것이다. 단순히 자연 속에 피고 지는 아름다운 꽃을 그려 항상 곁에 두고 보면서 즐기기도 했지만, 대부분 꽃의 특성에 맞춰 삶의 소박한 꿈을 담아 사용했다. 예컨대 ‘모란’은 꽃 중의 왕으로 부귀, 행복, 사랑의 표상으로 일컬어지면서 다른 어떤 꽃보다 널리 애호되었는데, 궁궐은 물론, 대갓집 부인 방에서부터 신혼 방 그리고 일반 서민의 방이나 대례식(大禮式)등 폭넓게 사용되었다. 꽃이 중심이 되어 그려진 화조도, 화접도, 기명절지도 역시 특별한 상징적 의미와 조형적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새들이나 나비 그리고 여러 가지 귀한 물건들을 그저 아름답게 나열한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각 소재가 지닌 의미를 전달하는 상징체계가 작용하고 있다. 화조도의 경우, 아름다운 꽃나무 사이로 쌍쌍이 짝지은 새들이 정겹게 묘사된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대개 부부간의 좋은 금슬과 집안의 평화를 염원하는 뜻으로 그려진 것이다. 이런 연유로 화조도는 주로 신혼부부의 신방이나 부인이 거처하는 안방에 장식되었다.
민족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이 화훼도인 것이다. 이쯤에서 화훼도를 대표하는 모란도(牡丹圖), 연화도(蓮花圖)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꽃 중에 제일이라, 모란도(牡丹圖)

모란도는 화훼 그림 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모란은 언제나 꽃너울이 훤칠하고 풍성하며 한 나뭇가지에 진붉은색, 하얀색, 젖빛색, 분홍색 등 다채롭게 그려져 조화롭고 환상적이며 신비롭게 느껴진다. 모란은 모단(牡丹) 또는 작약으로 불린다. 모단이라는 이름은 종자를 생산하지만 굵은 뿌리 위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수컷의 형상이라 모(牡)자를 붙였으며 또 꽃의 색이 붉어 단(丹)이라 하였다.
옛사람들은 모란을 ‘꽃들의 왕’으로 생각했다. 설총의 《화왕계(花王戒)》나 신광한의 《안빙몽유록(安憑夢遊錄)》에서는 모란을 ‘화왕(花王)’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모란은 꽃 중의 왕으로 불릴 만큼 화려한 꽃이지만 새나 곤충을 함께 그리지 않는다. 물론 모란 그림 중에는 나비나 새를 함께 그린 것도 있지만 몇 가지 이유에서 모란만 그린 경우가 많다.
모란 그림은 조선의 궁궐에서 가장 아꼈던 그림 중의 하나이다. 모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언제나 화원들의 주된 임무였다. 모란 그림은 각종 궁중의례에 사용되었으며 세화로 사용된 흔적도 찾을 수 있다. 모란 그림을 통해 만사가 상서롭기를 기원하였으며 왕실 가족 간의 애정이 표현되고 왕가의 변함없는 번영을 기원하기도 하였다. 한마디로 조선왕조의 국가적 부적같이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모란 그림이 국가적 차원에서 태평성대와 국태민안을 염원하는 길례, 흉례, 가례 등의 의식화(儀式畵)로 그려지고 사용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물론 모란 그림은 왕실 못지않게 일반 서민의 집에서도 널리 사용되었다. 원래 궁중에서만 사용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조선시대 후기에는 일반화되어 그려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 서민 집 안방치장이나 혼례 때 신부의 예복 그리고 식장에 둘러쳐진 병풍으로 애호되었다. 일반 서민들에게 모란은 부귀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모란 그림에 표현된 암석은 음(陰), 잎이나 꽃은 양(陽)으로 비유되면서 음양 사상과 남녀화합을 나타낸다. 이렇듯 모란 그림은 부귀, 행복, 사랑의 표상으로 일컬어지면서 다른 어떤 꽃보다 널리 사랑받은 것이다. 모란 그림은 아직까지도 가장 많은 수가 남아 있으며 주로 진채(석채(石彩)·당채(唐彩))를 사용하여 화려하게 장식된 것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군자의 기품을 담은 연화도(蓮花圖)

연꽃 역시 모란처럼 시각적으로 아름다우면서도 다양한 상징성을 부여받고 있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연화도는 다산, 행복, 풍요, 평화 등의 길상적 의미를 상징한다. 특히 연꽃은 꽃과 열매가 동시에 생장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 아들을 얻고 싶은 염원이 담겨 있다. 또한, 연화도는 연꽃의 또 다른 속성인 왕성한 번식력과 생명력을 인간의 삶과 결합해 자손 번창의 상징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연꽃은 유교에서 덕 있는 고고한 선비 정신을 나타낸 꽃이라 하여 ‘군자의 꽃’이라고 불린다. 모란이 화중왕이라면 연꽃은 화중군자인 것이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자라지만 더러운 물 한 방울 몸에 묻히지 않는 기품이 있는 꽃이다. 이와 같은 연꽃의 깨끗한 속성으로 생명의 빛을 상징하거나 세파에 물들지 않는 청아함과 고결한 모습을 간직한 군자에 비유되곤 하였다. 연꽃은 불교에서도 매우 소중히 여기는 꽃이다.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살면서도 잎사귀와 꽃잎은 깨끗함과 고결한 모습을 지키는 연꽃을 청정, 초탈의 상징물로 여겼다. 또, 연화는 불자가 세속에 처해 있어도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아름다운 신행의 꽃을 피우는 것과 같게 보았다. 이외에도 불교에서 연꽃은 극락정토의 화생(化生)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옛사람들은 일찍부터 화훼도를 좋아하고 사랑하였다. 화훼도는 왕실, 선비, 백성 모두가 내용상으로 만족하는 그림으로 발전했다. 왕족과 선비들의 사상과 학문을 결합한 고급그림으로 발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수(壽)·복(福)·부(富)·귀(貴)·다남(多男) 등의 욕망을 담아 누구나 향유할 수 있도록 하였다.

김용권 profile

*문학박사(미술사)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
*경희대학교 (부설) 현대미술연구소 연구원
*한국박물관협회 평가위원
*학예인력지원 실사위원
*한국민화학회 이사
*한국미술협회 이사
*동양예술학회 이사

 

글 : 김용권(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

 

저자에 관하여

월간 민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