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호랑이 그림 기준작을 살피다, 1888년 시전市廛에서 팔린 까치호랑이

도 1. <까치호랑이>, 1880년경, 종이에 채색, 96.0×57.0㎝, 파리 국립기메동양박물관소장

▲도 1. <까치호랑이>, 1880년경, 종이에 채색, 96.0×57.0㎝, 파리 국립기메동양박물관소장

구한말의 민화 시장에서 거래된 민화 가운데 판매된 시점을 알 수 있는 사례가 있다면, 그것은 동일 양식의 그림을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를 프랑스 기메동양박물관이 소장한 <까치호랑이> 한 점을 통해 심도 있게 살펴보았다. 한 점의 기준작을 실마리로 삼는다면, 비슷한 양식의 그림을 찾고, 그것의 경향을 확인하며, 나아가 양식의 계보를 검토하는 미술사적인 연구방법이 가능하게 된다.

19세기가 저물어 가던 1888년, 서울 광통교廣通橋 인근의 민화 시전市廛에 한 영국인 신사가 나타났다. 그리고 가판대에 놓인 여러 점의 민화를 사들였다. 그는 조선을 여행하러 온 프랑스 인류학자 샤를 바라Charles Varat(1842~1893)였다. 바라가 구입한 민화는 훗날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에 일괄 기증되었다. 외국으로 건너가 박물관으로 들어간 민화였기에 약 1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전해질 수 있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때 바라가 구입한 그림 가운데 <까치호랑이>(도 1) 한 점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그림이 민화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1888년의 시장에 나와 있었다는 점이다. 아마도 그 무렵에 그린 것이겠지만, 정확한 시점은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구입 연도를 알 수 있기에 기준작으로 삼는 데는 문제가 없다. 조선 말기에 그려진 수많은 까치호랑이 가운데 기준작은 불과 몇 점에 지나지 않는다. 기년작紀年作이 거의 전하지 않는 민화연구에서 이처럼 기준작을 만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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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호랑이>의 사례와 특징

샤를 바라가 구입한 <까치호랑이>는 머리에는 표범 문양이, 몸은 호랑이의 줄무늬 형상을 하고 있다. 호랑이의 몸체는 황색, 얼굴의 눈과 입을 비롯한 배경의 소나무 둥치는 적색, 그리고 얼룩무늬는 토황색을 띠고 있는데, 약간의 공식화된 채색처럼 보인다. 호랑이의 형태는 사실적인 묘사보다 약간 도식화圖式化된 특징을 취하였다. 눈여겨 볼 부분은 머리 부분이 매우 조형적으로 디자인된 점, 호랑이 다리의 관절 부위에 원형圓形의 문양이 들어간 점, 그리고 발 부분을 큼직하게 그리되 희게 남겨 두었다는 점이다.
바라가 구입한 그림과 비슷한 형식의 <까치호랑이>(도 2)를 조자용趙子庸(1926~2000) 선생이 쓴 『한호韓虎의 미술』이라는 책에서 찾았다. 이 그림은 정월正月에 도화서圖畵署 화원들이 세화歲畵로 그린 것을 민간 화가들이 베껴 그린 것으로 추정하였다. 또한 호랑이 귀 끝의 톱니 모양은 사람을 해칠 때마다 하나씩 생기는 징표라고 해석하며 전형적인 민화 까치호랑이로 보았다.
이와 더불어 같은 형식을 보이는 또 한 점의 <까치호랑이>(도 3)가 가나아트의 소장품으로 전한다. 앞의 그림들과 비교하면, 화면의 전체 구성과 호랑이의 동세가 매우 유사하다. 하지만, 머리의 점무늬가 조금 더 촘촘하고, 뒤편 소나무의 묘사도 약간은 구체적이다. 이런 특징으로 볼 때, 가나아트 소장의 <까치호랑이>는 1888년보다 앞선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상에서 소개한 세 점의 까치호랑이는 주요 특징을 서로 공유하고 있지만, 그림만 전한다면 제작시기를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바라가 구입한 <까치호랑이>를 기준으로 한다면, 나머지 두 점의 그림도 1888년 무렵에 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림의 크기로 볼 때, 가옥의 벽이나 방문에 붙이는 문배그림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빠트릴 수 없는 또 한 점의 그림이 미국 해군장교 버나도J.B. Bernadou가 수집한 <까치호랑이>다.(도 4) 그는 샤를 바라보다 앞선 1884년에 광통교 인근에서 여러 점의 민화를 구입했다. 거기에도 <까치호랑이> 한 점이 들어 있었다. 버나도가 구입한 이 그림은 흑백도판으로 소개되었는데, 바라가 구입한 <까치호랑이>와 양식이 유사하다. 다만 일어선 동세를 취했지만, 얼굴의 호표형虎豹形 특징, 몸체의 줄무늬 방식, 발을 크고 희게 그린 점 등은 앞서 살펴본 그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버나도가 구입한 <까치호랑이> 역시 19세기 후반기에 유행한 또 하나의 형식임을 말해준다.

<까치호랑이>의 양식적 계통

바라가 구입한 <까치호랑이>의 양식은 어떤 계통에 넣을 수 있는 그림일까? 그 양식적 계보를 알아보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바라가 구입한 <까치호랑이>는 19세기 까치호랑이 그림의 한 유형에 불과하지만, 이를 기준으로 하나의 양식적 범주를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이러한 접근을 가능하게 한 그림으로 조자용 선생이 소개한 바 있는 개인소장의 <청룡백호도 靑龍白虎圖>(도 5)를 살펴보았다. 8폭 병풍의 첫 폭과 끝 폭에 청룡과 백호를 그렸고(도 5-1), 나머지 화면에는 청록산수화 기법으로 산봉우리 세 개를, 그리고 폭포와 넘실거리는 물결을 그렸다. 묘사와 채색이 정치한 수준을 띠고 있어 전문 화원화가의 솜씨로 추측된다. 성급히 짐작해서는 안 되지만, 여기에 그려진 호랑이는 화원이 그린 화원양식으로 간주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특히 오른쪽 첫 면에 그려진 백호는 검은 줄무늬 위에 세필細筆로 흰털을 밀도 있게 묘사함으로써 백호임을 나타내고자 했다. 또한 도식화가 진행되지 않은 점, 청록산수의 뛰어난 색감, 파도의 문양, 구름과 운룡雲龍을 그린 필치가 매우 치밀하여 전체적으로 수준 있는 화격畵格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채색을 곁들인 산수와 폭포의 묘사는 궁중양식의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를 연상하게 하여 화원의 그림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청룡백호도>에 그려진 백호의 주요 특징은 바라가 구입한 그림에도 나타나는데, 바라가 사들인 <까치호랑이>의 선행 양식이 바로 <청룡백호도>의 백호와 같은 그림이라 할 수 있겠다. <청룡백호도>는 기본적으로 19세기 중엽 이전 양식으로 비정할 수 있으며, 이 그림에 나타난 특징들은 궁중 화원들이 그린 호랑이 양식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앞서 예시한 바라가 구입한 <까치호랑이>와 같은 양식을 취한 그림에도 빠짐없이 나타나 있어 하나의 계통으로 이어져 온 도상임을 말해주고 있다. 특히 궁중화원 양식의 민간화라는 측면에 의미를 둘 수 있다.
삼성미술관 Leeum이 소장한 <까치호랑이>(도 6)는 바라가 구입한 <까치호랑이>와 친연성이 있으면서도 앞서 본 <청룡백호도>의 백호를 모방하여 그린 것으로 추측된다. 호랑이는 머리를 앞으로 내밀어 목덜미가 곡선을 이루었지만, 기본적인 동세와 머리의 표현, 기타 몸의 얼룩무늬 묘사에 있어 앞서 본 그림들과 공통점을 보인다. 다리의 관절 부분에 있는 문양도 앞의 그림에서 확인된 바 있다. 이러한 19세기 후반기에 유행한 까치호랑이 그림은 20세기 전반으로도 이어지며 계승되었다.
조자용 선생이 호덕虎德이라 불렀던 <까치호랑이>(도 7)가 바로 20세기 이후의 연장선에서 논할 수 있는 그림이다. 특히 호랑이 발을 크고 희게 그린 것은 같은 계통에 속하는 주요 특징이라 생각된다. 호덕이라 불린 <까치호랑이>의 선행 양식을 19세기 말 광통교 인근에서 그려진 그림과 연관 지어 볼 수 있어 매우 흥미롭다. 이 그림은 묘사력이 부족한 화가라도 디자인 감각이 돋보인다면 훌륭한 까치호랑이를 그릴 수 있음을 알려준다.

민담民譚과의 관련성

바라가 구입한 <까치 호랑이>와 같은 형식의 그림을 민담民譚과 관련하여 살펴보자. 일찍이 호랑이 관련 민담과 설화를 호랑이 그림과 연결하여 해석하고자 한 분은 조자용 선생이다. 선생은 이를 통해 까치와 호랑이가 등장하는 그림의 배경에 주목하고자 했다. 그 결과는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지만, 학술적인 고증에 이를 수 없는 한계도 분명했다.
필자는 처음 <까치호랑이>의 흰 발을 보고서 문득 밀가루를 발에 묻혀 엄마의 손이라고 아이들을 속였다는 호랑이 옛날이야기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약간 어색한 감은 있지만, 연관성이 전혀 없지는 않아 보였다. 일반적인 호랑이 그림에는 발을 몸체의 일부로 묘사했지만, 바라의 <까치호랑이>의 경우는 분명 화가의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필자가 떠올린 옛날이야기를 다시 찾아보았다.
그것은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이라는 민담이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민담 속의 어머니가 남매를 두고 시장에 다녀오는 길에 호랑이를 만났다. 호랑이는 어머니의 떡을 하나씩 받아먹었고 나중에는 어머니까지 해치고 만다. 그리고 어머니를 가장하여 남매가 사는 집으로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남매는 어머니의 손을 보여 달라고 하자, 호랑이는 발에 떡가루를 묻힌 뒤, 떡을 만진 손이라고 남매를 속여 집 안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다.
호랑이의 흰 발은 이 민담의 내용과 연관 지어 볼 수 있을 듯하다. 그 민담은 문을 열어준 남매가 나무위로 도망간 뒤 하늘로 올라가 해와 달이 되었다는 내용으로 끝난다. 이야기 속의 호랑이는 발에 떡가루까지 묻히는 속임수를 썼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바라가 구입한 <까치호랑이>류의 호랑이가 이 민담 속의 호랑이가 아닌가 가정해 본다. 그렇다면 그림 속의 장면은 까치 한 마리가 얄미운 호랑이를 조롱하고 있는 장면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호랑이를 선량한 백성들에게 위해危害를 가하는 탐관오리에 비유한 해석과도 맥락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광통교 인근에서 바라가 구입한 <까치호랑이>류의 그림은 민담의 모티프를 적용한 그림으로 여러 점이 매물로 나와 있었는데, 이는 수요가 그만큼 많았음을 의미한다고 보인다. 또한 광통교의 시전에는 까치호랑이 그림을 공급하는 화가군畵家群이 있었고, 그들은 하나의 화파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겠다.

어떤 그림의 양식적 특징을 살피고, 그것의 선후관계를 따져 그림의 제작 시기를 파악하는 작업은 미술사 연구의 기본적인 접근 방식이다. 언제 그린 그림인지 제작 시기를 알 수 있는 그림이라면, 작품의 의미를 풀어가는 데에도 많은 이야기 거리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연구방법을 적용한 사례가 축적될 때, 민화의 학술적 토대는 점차 더 견고해질 수 있을 것이다. 원론적인 이야기보다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연구의 축적이 필요한 이유이다. 샤를 바라가 구입한 <까치호랑이>가 1888년의 기준작이라는 사실은 이와 관련된 호랑이 그림의 양식사적 맥락과 의미를 알아보는데 매우 중요한 관건이 되었음을 알아보았다. 민화의 양식사를 다룬 후속 연구에 유용한 시사점을 주는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글 : 윤진영(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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