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취정 박사의 민화 읽기 ⑳ 불로장생의 신선초 – 영지

옛사람들은 영지를 신령스러운 버섯으로 여겼다. 오늘날처럼 영지버섯의 재배법이 확립되기 전에는 영지가 희귀한 것이었기 때문에 더 신비롭게 여겼다. 또한 영지는 ‘불로초’로 불리며, 장수의 상징이자 신선 세계의 요소로 인식됐다. 장수를 상징하는 여러 소재와 어울려 그려진 영지의 의미를 알아본다. (편집자 주)


십장생 중 하나인 영지

영험한 버섯, 영지靈芝. 영지의 모양은 구멍장이버섯과의 영지와 비슷하고 구름 모양과 닮아 운지雲芝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지는 1년에 세 번 꽃이 피기 때문에 삼수三秀라 불렸으며, ‘서초瑞草’ 또는 ‘선초仙草’, ‘길상버섯[吉祥茸]’, ‘영지초靈芝草’, ‘적지赤芝’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영지버섯의 경우 <채지도採芝圖>에 실려 있는 것만도 수백 종류에 달하는데, 제왕이 어질고 덕망 있는 정치를 실행할 때마다 자라난다고 한다. 옛 사람들은 영지버섯을 먹으면 장수하거나,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되게 한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이를 통해 영지가 길상적인 의미를 지닌 식물임을 알 수 있다.
영지는 예로부터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십장생 중 하나로, ‘불로초不老草’라 불리기도 하였을 정도로 약효가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영지를 먹으면 장생불로長生不老하고 기사회생起死回生한다고 믿었다. 후한시대(25~220)의 《신농본초경》에서는 영지가 생명을 양생하는 영약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영지를 다양한 목적의 약용으로 이용하였다. 고대 중국에서는 영지를 발견한 사람은 영지를 채취하여 황제에게 헌상하도록 하는 것이 의무화되어 있었다. 조선에서도 영지는 귀한 것으로 여겨져 주로 왕실을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사간원에서 상소하기를
“검소를 숭상하고 사치를 버리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좋은 규범이므로,
사치의 습관을 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초(芝草: 영지)와 홍화는 비록 본국에서 생산되는 것이지만 극히 희귀한 것이고,
단목은 전적으로 왜객의 매매에 힘입어 국용에 제공됩니다…” 하였다.
[司諫院上疏曰 崇儉去奢 有國之良規 故奢侈之習 不可不禁也
芝草紅花 雖本國所産 極爲稀貴 至若丹木 則全賴倭客興販 以資國用…]
– 《세종실록》 권제35, 세종 9년 2월 19일(정축)

영지의 영험한 효능이 널리 알려지면서, 영지를 자연에서 채취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영지를 직접 키우는 예도 늘어나게 되었다.

선생의 얼굴과 머리칼은 흡사 어린아이[先生顔髮似童兒]
시냇가 으슥한 밭에서 영지버섯 키우시네[溪上幽田養紫芝]
응당 북쪽 고을로 아버님 찾아뵙는 날에[秪應北郡趨庭日]
청성의 등불 아래 나눈 얘기 전하리이다[却話靑城剪燭時]
– 서영보(徐榮輔, 1759~1816),
<포천 현재에서 지계 송장을 만나>, 《죽석관유집》 제1책

생장의 고통을 견디며 성장

영지는 담자균강, 구멍장이버섯목, 불로초과에 속하는 1년생 버섯으로 모양은 계통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한다. 영지버섯은 붉은 색상을 가지고 있으며 버섯 종류 중에서는 아주 큰 편이다. 육질은 코르크 질 같고 표면은 광택이 있다. 또한 돌처럼 딱딱하고 작은 괴석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마치 식물과 바위의 중간에 걸쳐있는 신비로운 존재로 인식될 수 있다.

경산부사京山府使 이황李滉이 하빈현河濱縣에서 이상한 풀[異草]을 얻었는데,
빛깔은 붉고 가지가 셋이며, 몸은 버섯과 같았으므로,
상서祥瑞라 하여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 남은南誾의 사제私第에 보내니,
남은이 영지靈芝라 하여 임금에게 바치었다.
[京山府使李滉得異草於河濱縣, 色赤三枝, 體如菌. 以爲瑞, 送于參贊門下府事南誾第, 誾謂靈芝以獻]
– 《태조실록》 5권, 태조 3년(1394년) 2월 15일 을유 2번째기사

영지는 성장판이 있는 테두리가 확장하면서 수평으로 커나가는 생태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깨끗한 테두리원을 그리며 자라는 영지도 있지만, 아픔을 간직하며 자가 치유해가면서 커나가는 영지도 적지 않다. 영지는 생장의 고통을 감내해가면서 성장하였기에, 오랜 세월 사랑받을 수 있었다.

영지 그림의 다양한 상징

영지 그림은 대체적으로 장수나 소원 성취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영지 도안의 상징은 영지와 함께 그려지는 도상에 따라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짐’, ‘새해 소원 성취’, ‘조화’, ‘생일 축하나 장수 기원’, ‘경사’, ‘겸손이나 무탈함’, ‘군자의 교제’ 등이 바로 그것이다. 영지가 감이나 백합화, 잣나무, 만년청 등과 함께 그려지는 도상은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화병과 영지가 그려지면 새해에 소원하는 바를 이룬다는 것을 의미한다. 뚜껑이 있는 그릇과 영지 그림은 조화로움이라든지,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영지가 복숭아나무나 장미꽃, 대나무, 수선화, 괴석 등과 함께 그려지면 생일을 축하한다는 의미나 장수를 축원한다는 뜻이 된다. 영지를 꽃병이나 여러 가지 풀, 무와 함께 배치된 그림은 경사스러운 일이 많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다. 마름의 열매나 여지를 영지와 함께 그린 그림은 겸손한 태도로 아무 탈 없이 살아가기를 축원하는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영지 도안의 상징을 좀 더 상세히 살펴보면 표와 같다.

영지가 장생물로 인식된 이유

영지는 직역하면 ‘신령스러운 풀[靈芝]’이라는 뜻이다. 영지가 장생의 상징으로 여겨진 것은 생태적 속성보다는 신선설과 관련이 깊다. 진시황의 명으로 서복徐福이라는 사람이 봉래산에서 영지를 캐 왔다는 전설이 그 중 하나이며,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상산商山에 들어가 영지를 캐 먹으며 오래 살았다는 동원공東圓公, 하황공夏黃公, 녹리선생甪里先生, 기리계綺里季 등 네 은자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영지를 신령스러운 풀로 묘사한 수많은 시문詩文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영지를 장생물의 반열에 오르게 한 것이다.

자줏빛 영지버섯 무성하게 산의 남쪽에 두루 났기에
[紫芝曄曄遍山陽]
새로 난 부드러운 싹을 손으로 따서 맛본다
[柔嫩新苗手摘嘗]
한나라 초엽 상산(商山)의 네 늙은이를 생각해 보니
[因憶漢初商嶺老]
시절이 태평한데 어찌하여 임금을 섬기지 않았는가
[時淸何獨不勤王]
– 이직(李稷, 1362~1431), <성산에 올라 옛날을 생각하다>, 《형재시집》 4권

민화 속에 나타난 영지의 모습

영지 그림에서 영지가 단독으로 그려진 예는 거의 없으며, 어떤 동식물과 함께 그려지느냐에 따라 상징적 의미는 달라진다. 민화에서 그려진 영지는 크게 사슴과 함께 그려진 경우, 학과 함께 그려진 경우, 신선과 봉황과 함께 그려진 경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영지는 사슴과 함께 어울려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십장생도에는 사슴이 영지를 입에 물고 있는 장면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많은데, 이는 민화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사슴이 장생물이 된 것은 은밀한 곳에서 고고한 자태로 생활하는 모습이 선경을 노니는 신선을 연상시킨다는 점과 사슴과 관련된 신선담神仙談의 내용이 관념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영지를 입에 물고 있는 사슴의 모습은 경복궁 자경전 십장생 굴뚝에서도 보인다.(도1)
<장생도>(도2)에는 사슴과 영지, 괴석이 함께 그려져 있는데, 이는 장수를 축원하거나 생일을 축하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화조도>(도3)에서와 같이 사슴과 영지 그림에 모란이 함께 그려지면, 부귀영화를 누리며 장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화조도>(도4)에서처럼 영지와 사슴이 소나무와 함께 그려지면, 새해에 모든 소망을 성취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슴이 영지버섯을 물고 있는 그림은 소망하고자 하는 모든 일을 이루기를 기원하는 내용을 그린 것이다.(도5) 영지를 물고 있는 사슴과 복숭아나무, 모란, 바위 등이 함께 그려진 <화조도>(도6)는 부귀영화를 누리며 장수하기를 축원하는 내용을 담은 그림이다.
영지를 물고 있는 사슴과 소나무, 구름, 바위, 학이 함께 그려진 그림인 <장생도>(도7)는 새해에 소망하는 모든 일을 성취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장수를 기원하는 마음을 함께 담은 그림이다. <화조도>(도8)에서와 같이 영지가 소나무나 학, 괴석과 함께 그려지면, 새해에 원하는 모든 소원을 다 이루고 장수를 축원하는 마음을 담은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높은 지위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삶을 살고 있다 할지라도 건강하지 않아서 그 복을 제대로 누릴 수 없다면, 부질없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장수를 상징하는 대표적 도상 중 하나인 영지가 민화에서 자주 그려지는 것이다. 영지가 민화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예는 드물지만, 이제부터라도 민화 속에서 영지가 어떠한 모습으로 어떠한 곳에 그려져 있는지 살펴보고 연구해보아야 할 것 같다.


글 김취정(서울대학교 박물관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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