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취정 박사의 민화 읽기 ⑲ 다산의 상징, 포도나무

비타민과 유기산이 풍부해 ‘과일의 여왕’이라고도 불리는 포도는 인류가 오래전부터 식용과 관상용으로 즐겨온 포도나무의 열매이다. 전 세계적으로 포도주를 애용한 기록과 함께 다양한 포도그림이 남아 있는데, 민화의 경우 덩굴이나 포도송이를 부각시켜 다산과 풍요를 상징했다. 예술로 재탄생한 포도의 매력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오랜 역사를 지닌 포도

포도는 아주 오래된 원예 품종 가운데 하나이다. 포도와 포도주 생산에 관한 상세한 기록이 이집트 고왕국의 황금 시기인 제4왕조 등 기원전 26세기경의 상형문자 문서에 적혀 있고, 성서에도 노아가 포도원을 가꾸었다는 내용을 비롯해서 관련 내용이 많이 등장한다. 사마천(司馬遷, BC 145?~BC 86?)의 《사기史記》에 따르면 한나라 장건張騫이 대완大宛에서 포도를 처음 도입했다고 한다.

장건이 서역에 갔다가 돌아올 때 안석류安石榴, 호두胡桃,
포도의 종자를 얻어가지고 돌아와 그것을 심었다.
[張騫使西域還 得安石榴 胡桃 蒲桃種歸 植之]
– 동진東晋의 장화張華, 《박물지博物志》

한나라 무제가 대완을 정벌한 후 포도씨를 가져와 심었다. 무제가 사신이 가져온 포도 열매를 이궁離宮 옆에 심도록 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흉노전匈奴傳>, 《한서漢書》). 한나라의 포도궁葡萄宮은 바로 이런 연유로 지어진 이름이다. 《신농본초神農本草》에 따르면, 포도는 서역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중국 농서隴西에서도 재배했는데, 내지로 들어오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는 중국의 신강新疆과 감숙甘肅 등지에서 포도가 재배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포도 유입 시기

우리나라에 포도가 언제 들어왔는지를 알려주는 기록은 없다. 단지 고려시대 이전에 중국에서 도입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포도주의 유입 시기 또한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기록을 통해 고려시대로 추정되고 있다. 강희안의 《양화소록養花小錄》에 따르면, ‘청흑색포도’는 충숙왕이 몽골 공주와 혼례를 치른 뒤 돌아오면서 원나라 황제에게 받아온 것이라 한다. 《산림경제山林經濟》에서도 여러 가지 품종을 언급하는 점으로 보아 여러 종류의 포도를 재배했던 듯하다. 현재의 포도는 1910년 이후 수원과 뚝섬에 유럽 종과 미국 종 포도나무를 도입해 개량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품종은 캠벨, 거봉, 머루포도 3가지이다.

포도나무의 생태적 특징

포도나무는 길이 3m 안팎의 낙엽관목이자 땅위를 기거나 다른 나무를 감아 올라가는 만경식물蔓莖植物이다. 잎과 마주나는 동굴손으로 다른 물체를 감고 올라가며 어린 가지에 털이 있다. 잎은 원형으로 호생互生하며, 3~5개로 얕게 갈라진다. 표면에는 털이 없고, 뒷면에 면모綿毛가 밀생密生하며,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6~7월에 황록색 꽃이 피고, 꽃잎은 5개가 끝에서 서로 붙어 있다. 9~10월에 열매가 성숙된다. 장과漿果는 둥글고 갈자색褐紫色으로, 익은 열매에는 2~3개의 종자種子가 들어 있다.
포도나무는 여러 가지 품종이 개발되었는데, 품종에 따라서 열매가 익는 시기나 크기가 서로 다르며 동절기에도 하우스 재배를 통해 수확되는 품종도 있다. 포도나무는 식용, 관상용, 공업용, 약용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포도 열매는 식품, 포도주, 양조, 주석산酒石酸 등의 재료로 쓰이고, 민간에서 열매, 뿌리를 식욕촉진, 허약증, 이뇨에 약으로 쓴다.
진晋나라 사람들은 포도를 색에 따라 분류했다. 포도에는 둥근 것을 ‘초룡주草龍珠’, 긴 것을 ‘마유포도馬乳葡萄’, 흰 것을 ‘수정포도水晶葡萄’, 검은 것을 ‘자포도紫葡萄’라 불렀다(《본초강목》). 조선의 태조, 세조, 원종, 숙종, 영조, 순조의 영정을 모셨던 전각殿閣인 영희전永禧殿에 마유포도가 심어져 있었다고 한다(《문견록》, 《산림경제》).(도1)

옛 선조들의 필수품, 포도주

스웨덴의 생물학자 칼 폰 린네(Carl von Linné, 1707~1778)가 포도에 붙인 학명 중 속명 비티스(Vitis)는 ‘생명’을 뜻하는 라틴의 옛말 비타(vita)에서 온 것이다. 그리스인들에게 포도주는 필수품이었으며, 《신약성서》의 <요한복음>에서도 포도를 생명에 비유한 예를 찾을 수 있다. 한자 ‘포도葡萄’는 《한서漢書》에 ‘포도葡桃’로 표기되어 있으며, 포도로 술을 만들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포도葡萄는 사람들이 잔치 때 이것을 마시면 취했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즉, 포도의 ‘포葡’는 잔치에서 즐겁게 술을 마신다는 의미의 ‘포酺’가 되고, ‘도萄’는 술을 즐겁게 먹고 취한다는 의미의 ‘도醄’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쓰이는 포도의 한자에는 잔치에서 즐겁게 술을 마시고 취한다는 의미가 내포된 것으로 볼 수 있다(《본초강목》).
《당서唐書》에 의하면 포도주는 서역에 있는 것으로 간혹 공물로 바쳐졌으며, 고창국高昌國을 락하고 마유馬乳 포도의 열매를 얻어 궁중의 후원에 심고 양조법을 얻었다고 한다. 당나라 시인들은 포도주와 관련된 시를 자주 읊었다.

포도로 빚은 맛있는 술을 옥잔에 부어[葡萄美酒夜光杯]
마시려는 순간 비파를 말 위에서 연주한다.[欲飮琵琶馬上催]
술에 취해 사막에 쓰러져도 웃지 말게나.[醉臥沙場君莫笑]
옛날부터 전쟁터에 나갔다 돌아온 이가 몇인가[古來征戰幾人回]
– 왕한(王翰, 687?~726?), <양주사凉州詞>

조선 중기의 의학자 허준이 저술한 《동의보감》에도 우리나라에서 포도의 즙으로 술을 빚어 왔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기분 좋게 취하되 쉽게 주독이 풀리는 포도주에 대해 칭찬한 예도 적지 않다.

풍류를 즐겼던 묘금도 천자는[風流天子卯金刀]
먼 책략으로 박망 등을 고생시켰네[遠略從勞博望曹]
돌아오는 행장에 선과를 가져왔다 하였는데[聞說歸裝儘仙果]
녹의가 떠다니는 곳에 포도가 보이네[綠蟻浮處見葡萄]
– 선조(宣祖, 재위 1567~1608), 《열성어제》 제7권,
<동양위에게 포도주 한 항아리를 하사하다>

조선 시대의 포도그림

포도그림은 문인들이 즐겨 그린 그림 소재 중 하나였다. 조선초기 신잠(申潛, 1491~1554),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 등이 먹으로 포도를 그린 그림이 있으며, 조선중기의 황집중黃執中은 당대에도 ‘묵포도도墨葡萄圖’로 명성이 높았다. 이우(李瑀, 1469~1517)와 이계호(李繼祜, 1574~?), 홍수주(洪受疇, 1642~1704) 등은 잎과 포도 알은 훨씬 촘촘하게 표현했으며, 이러한 전통은 조선후기의 최석환(崔奭煥, 1808~?)으로 이어졌다. 18세기에는 심정주(沈廷冑, 1678~1750)와 권경權儆이 포도를 잘 그렸다.(도2, 3) 조선시대의 도자기에 포도그림이 그려져 있는 예도 적지 않다.(도4)

풍요와 다산의 상징

포도당초무늬는 포도의 열매와 잎, 덩굴 등으로 구성한 당초무늬로, 서아시아에서는 고대로부터 포도에 대한 신앙이 있어 이것을 생명불사生命不死의 상징으로 보았다. 포도무늬가 그리스에 전래된 것은 BC 4세기경이며, 이 때의 포도무늬는 율동적인 당초 형식을 취한 것이었다. 유럽에서 포도당초무늬는 로마시대 이후 예수 수난의 상징으로서 여러 성당의 내부 장식이나 석관 장식에 이용되곤 하였다. 실크로드 동쪽으로 뻗어간 포도당초무늬는 후한 말에서 육조시대(2~4세기)에 중국에 도래하여 윈강석굴雲崗石窟, 둔황천불동敦煌千佛洞 천장의 장식, 둔황 출토의 견직물 무늬, 수나라와 당나라의 경배鏡背 무늬에 사용되었다. 이 무늬는 한국을 거쳐 7세기 경 일본에 전해졌다.
생기 있게 뻗어 나가는 포도덩굴은 왕성한 생명력으로 연속되는 수태受胎를 의미하고, 여러 개의 포도가 모여 이룬 포도송이는 다산多産을 의미한다.(도5, 6) 포도 그림을 그릴 때, 포도덩굴을 같이 그리면, 덩굴을 의미하는 ‘만대蔓帶’가 자손이 만대에 걸쳐 이어진다는 의미의 ‘만대萬代’와 음이 같아서, 자손이 계속 번성한다는 의미가 된다. 민화에서는 포도 넝쿨의 표현이 도안화 되는 경우가 많다.(도7) 포도 넝쿨이 용龍과 같이 올라가는 가운데 여의주如意珠)가 매달리듯이 동글동글한 포도가 주렁주렁 열렸으니, 이러한 형상을 보고 포도를 초룡주草龍珠라고 한 것이다(《본초강목》). 이러한 이유로 예전부터 포도를 즐겨 먹으면 수명이 길어지고 잔병이 없어진다고 믿었다. 포도와 포도 넝쿨을 그릴 때, 다람쥐가 포도를 먹는 장면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도8, 9, 10)
책가도에도 포도가 종종 등장한다. 대부분 포도송이가 그릇 위에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때로는 포도알갱이들을 그릇 위에 쌓아 놓은 형태로 묘사되기도 한다.(도11, 12)

예술로 재탄생한 포도의 매력

포도는 인류가 심고 가꾼 나무들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품종 중 하나이다. 포도의 새콤달콤한 맛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또한 포도 열매로 술을 빚으면 그 풍미가 좋고, 오랜 시간 보관해도 상하지 않아 크게 사랑받아왔다. 고대로부터 포도와 포도주를 즐기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즐겨온 포도나무는 조각과 문양, 그림 등의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하기에 이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널리 활용된 포도와 포도나무 도상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미적 취향을 적용시킬 수 있는 민화 소재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글 김취정(서울대학교 박물관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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