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취정 박사의 민화 읽기 ⑱ 정원에 핀 소망의 꽃, 참나리

참나리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7~8월에 꽃이 핀다. 꽃의 생김새가 호피무늬를 닮아 영어로 ‘Tiger lily’라고 부르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정원에 심어 관상용으로 즐기거나 참나리의 비늘줄기를 약용으로 사용해왔다. 민화에 그려지며 다양한 의미를 지닌 나리꽃에 대해 살펴본다. (편집자 주)


별명이 많은 참나리

우리나라의 나리속은 약 20여 종류가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참나리이다. 나리(백합) 종은 지구 북반구에 널리 분포하고 있는데, 산과 들에서 자라는 야생종만 하더라도 100여종에 이르고 개량된 원예종이 200여종을 넘는다고 한다.
참나리(학명 Lilium lancifolium Thunb)는 꽃의 빛깔이 붉고 꽃잎이 뒤로 말렸다하여 ‘권단卷丹’ 혹은 ‘권단화卷丹花’라고도 한다. 그 밖에도 ‘당개나리’, ‘호피백합虎皮百合’, ‘홍백합紅百合’, ‘약백합藥百合’, ‘백합百合’ 등으로 불렸다.
참나리는 1~2m 정도까지 자라며 어린순은 흰색 털로 덮여있다. 잎은 길이 5~18㎝의 피침형이며 줄기에 어긋나게 달리고, 잎겨드랑이에 한 개씩 짙은 갈색의 살눈(주아珠芽)이 달린다. 꽃은 7~8월에 피고 가지 끝과 원줄기 끝에 4~20개가 밑을 향해 달린다. 화피열편花被裂片은 길이 7~10㎝의 피침형(또는 넓은 피침형)이며 짙은 황적색 바탕에 흑자색 반점이 산포하고 뒤로 말린다. 밀구蜜溝에 짧은 털이 있고, 6개의 수술과 암술이 꽃 밖으로 길게 나와 있다. 꽃밥은 짙은 적갈색이다. 열매는 잎겨드랑이에 살눈이 달려 비늘조각으로 번식한다. 줄기는 높이 1~2m의 흑자색이며, 어릴 때는 백색 털로 덮인다. 비늘줄기는 지름 5~8㎝로 둥글고 원줄기 밑에서 뿌리가 나온다. 완두콩만한 살눈이 땅위에 떨어져 싹을 틔운다.

정원에서 보는 친숙한 꽃

참나리는 전국의 산과 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정원이나 노지의 화단에 군집식재하거나 큰 화분에 심어 감상하면 좋고, 키가 높게 자라므로 다른 자생식물들과 혼식하면 아름다운 화단을 조성할 수 있다. 가정에서 절화용으로 재배해도 좋다. 옛날부터 가정에 한두 포기는 있을 정도로 우리에게는 친숙한 식물이다. 그래서인지 집안 정원에 심어 놓은 나리꽃을 노래한 시가 적지 않다.

백합꽃 피어 있고 파초잎 기다란데[百合花開蕉葉長]
비 온 뒤라 못가 누각 여름에도 서늘하네[雨餘池閣夏生凉]
맑은 밤에 입직하니 일 없어 한가함에[淸宵禁直閑無事]
누운 채로 구름 가고 달빛 토함 바라보네[臥看流雲吐月光]
– 김육(金堉, 1580~1658), 《잠곡유고潛谷遺稿》

시녀를 급히 불러 옥쟁반을 올리랬더니[侍女催呼薦玉盤]
침상에 향기 없고 꿈만이 무르익네[象床香歇夢初䦨]
난간 동녘에 유별난 춘광이 있는 것은[欄東却有春光別]
백합꽃이 피어서 이슬에 흠뻑 젖은 것이리[百合花開露氣漙]
– 신흠(申欽, 1566~1628), <규정>, 《상촌집》

문 밖에는 금실의 버들이요[門外金絲柳]
뜰 앞에는 백합의 꽃이로다[庭前百合花]
누가 나의 애를 끊어지게 하는고[誰能使腸斷]
막수 아씨의 집만 슬피 바라보네[悵望莫愁家]
– 신흠(申欽, 1566~1628), <막수악>, 《상촌집》

조선시대부터 멋과 맛을 즐기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참나리의 비늘줄기를 약용으로 즐겼다. 비늘줄기의 비늘잎은 ‘백합百合’, 꽃은 ‘백합화百合花’, 종자는 ‘백합자百合子’라 한다. 참나리의 어린 순이나 구근을 나물로 무치거나 볶아 먹는다.
조선 숙종 때 실학자 유암 홍만선(洪萬選, 1643~1715)이 농업과 일상생활에 관한 광범위한 사항을 기술한 《산림경제山林經濟》의 <치약治藥>편에 백합의 종류와 키우는 방법, 식용 방법이 나와 있다.

“백합百合 개나리뿌리. 그 뿌리는 백편百片인데 포개져 붙어있으므로 백합이라 한다. 산과 들에 나는데 두 종류가 있다. 한 종류는 가는 잎에 꽃은 홍백색紅白色이고, 한 종류는 잎이 크고 줄기가 길며 뿌리는 굵다. 꽃이 흰 것은 약에 들어가지만, 꽃이 붉은 것은 산단山丹이라 하는데, 매우 좋지 않다. 또 한 종류는 꽃이 노랗고 흑반黑斑의 가는 잎이 있다. 그리고 잎 사이에 흑자黑子가 있는데 약에 들어가지 못한다(《증류본초》).
비옥한 땅에 거름을 주고 잘 다루어 2월에 북쪽 지방은 3월에 한다. 뿌리를 채취하여 쪽을 갈라 심되 5촌 거리에 한 쪽씩 심고 이랑을 만들어 거름물을 대준다. 싹이 나기를 기다려서 사변四邊의 풀을 매주고 봄이 지난 뒤에 드문가 빽빽한가를 보아서 옮겨 심어도 좋다(《거가필용》, 《신은지》). 2~8월에 뿌리를 캐어 볕에 말린다(《증류본초》). 3년 뒤에 뿌리를 캐면 크기가 주먹만 한데, 볕에 말려 찧어 면을 만들어 먹으면 사람에게 유익하다(《거가필용》, 《신은지》).”

민화에 핀 나리꽃의 상징

참나리를 그림으로 그리면 어떠한 의미를 갖게 될까? 나리(백합) 도안은 ‘소원성취’와 ‘평안’, ‘장수’, ‘만복’을 상징한다.(도1) 나리(백합)에는 소망하는 모든 일이 뜻과 같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일 년 내내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 오랫동안 화목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모든 일에 복이 깃들어 크게 길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을 담은 나리꽃 그림으로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희망적 미래를 꿈꾸었다.
민화의 화조도에도 유독 눈에 띄는 꽃이 바로 나리꽃이다. 화조도의 꽃이라 하면 모란이나 작약, 복사꽃, 연꽃 등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의외로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에 나리꽃이 많이 그려졌다. 정원에 피어 민간의 약초로 사랑받아온 참나리에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이 더해져 서민들이 원하는 그림이 된 것은 아닐까.

다양한 소재와 함께 그려지다

민화 속 나리꽃은 소원성취, 평안, 화합이나 화목 등의 염원을 담아 그려졌다. 특히 나리꽃과 영지버섯의 만남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한 주제였다. 민화에서 나리꽃과 영지버섯이 함께 그려지면 모든 일이 뜻과 같이 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바라는 것이 무엇이든 뜻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마치 관세음보살觀世音普薩이 중생들의 온갖 고난을 구제하여 안락한 세계로 인도해주는 구제자이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것처럼. 특히 이런 도상의 그림은 새해를 맞이하여 선물로 주고받기 좋은 그림이라 할 수 있다.(도2)(도3)
나리꽃을 포함해 여러 계절에 피는 꽃들과 화병이 그려지면 사계절 내내 평안하기를 바란다는 뜻이 된다.(도4) 한 쌍의 나비나 새와 함께 그려진 나리꽃 그림은 화합과 화목, 그리고 부부의 화목을 상징한다. <화조도>(도5)에는 고운 주홍빛의 나리꽃이 바위 옆에서 고개를 들고 화려한 자태를 드러내며, 그 위로 한 쌍의 새와 나비가 다정하게 노닐고 있다. 왼쪽 나뭇가지에 앉은 새가 지저귀니 다른 새가 고개를 돌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화면의 상단에는 나리꽃 색과 대비되는 남색의 큰 나비들이 짝을 이루며 행복한 한때를 보내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나리꽃과 바위, 한 쌍의 나비를 함께 그린 민화가 적지 않게 남아 있다.(도6)
민화에 핀 나리꽃과 그 안에 담긴 우리 선조들의 간절한 마음이 어여뻐서, 그림 밖에서 마주한 나리꽃도 한 번 더 돌아보고, 구석구석 천천히 음미하게 될 것 같다.


글 김취정(서울대학교 박물관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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