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취정 박사의 민화 읽기 ⑰ 꽃 중의 신선, 해당화

해당화는 이름에서 나타나듯이 바닷가에서 자생하는 꽃으로 열매가 붉은 옥처럼 생겼다. 중국 시인 소동파는 해당화를 유독 좋아해 글을 짓고, 직접 심어 즐기기도 했다. 민화에는 모란과 해당화가 함께 자주 등장하는데, 부귀영화가 온 집안에 넘쳐흐르기를 축원하는 ‘만당부귀滿堂富貴’를 의미한다. 해당화의 길상적 의미를 알아본다.


바닷가의 꽃, 해당화海棠花

명사 일대 바닷가는 온통 해당화 천지인데
[鳴沙一帶海棠洲]
늙은 원님 게을러서 나가지 못하니 어떡하나
[老守其如懶出遊]
담 아래 핀 가지 몇 개 꽃이야 다를 게 없으리니
[墻下數枝花色是]
흰 물새와 성근 비는 멀리서 그 풍류 맛보련다
[白鷗疎雨領風流]
– 최립(崔岦, 1539~1612), <해당화>, 《간이집》 제8권

해당화는 중국과 일본 및 우리나라 남부지방, 중부지방, 북부지방의 해발 1,600m 이하의 산기슭이나 해변海邊 모래땅에 자생한다. 대부분의 해당화海棠花는 그 이름처럼 바닷가에서 주로 자란다. 송대 진사陳思가 편찬한 《해당보海棠譜》에는 해당화를 외국에서 들여온 것이라 하고 있다.(도1) 해당화는 송나라 이전까지 촉나라에서 많이 심었다고 한다. 촉나라에 해당화가 많았다는 이야기는 조선후기 유박(柳璞, 1730~1787)의 《화암수록花菴隨錄》에 수록된 <안사형安士亨의 편지> 내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붉은 옥구슬 같은 열매

송대 이후에는 북쪽의 주요 수도는 물론 강남 지역에서도 많이 심었으며, 당시 해당화의 값도 상당히 비쌌다고 한다. 고가高價의 꽃임에도 당시 해당화의 인기는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인기 있는 꽃들이 그렇듯 해당화도 많은 별명을 가지고 있다. 해당화는 매괴화玫瑰花, 매괴玫瑰, 해당과海棠果, 민괴玟瑰, 배회裵回, 홍매화紅玫花, 필두화筆頭花, 개해당화, 장미꽃 등으로도 불린다. 해당화를 지칭하는 용어에는 유독 ‘매玫’자와 ‘괴瑰’자가 많이 보인다. ‘매’는 ‘붉은 옥 이름’, ‘아름다운 돌’을 의미하는 것이며, ‘괴’는 ‘구슬의 이름’, ‘둥글고 모양이 좋은 옥’을 뜻하는 것이다. 이렇게 붉은 좋은 옥이나 구슬, 아름다운 돌 등을 뜻하는 글자가 많이 들어가는 까닭은 해당화의 빨갛고 둥글고 단단한 열매의 모습을 떠올렸기 때문인 듯하다. 그래서인지 해당화 열매를 그린 그림이 적지 않게 그려졌다. <화조도>(도2)는 흰 국화와 노란 국화, 붉은 국화가 피어 있는 가운데 보석처럼 붉게 빛나는 해당화 열매가 열려 있는 장면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었다.

가시가 있는 장미를 닮다

해당화는 낙엽관목이며, 대략 1.5m 정도로 자라고 줄기에 가시나 자모刺毛와 융모絨毛가 있다. 그 꽃의 모양이나 줄기의 가시가 장미와 닮아 있다. 5~8월에 피는 꽃은 홍자색紅紫色이며, 지름 6~9cm이다. 꽃잎은 넓은 도란형으로 끝이 오목하다. 8월부터 열매가 성숙되는데, 수과(瘦果: 식물 열매의 한 종류로 열매가 익어도 껍질이 갈라지지 않는 형태)의 길이는 4mm이다. 열매는 편구형扁球形이고, 지름 2~2.5cm의 붉은 색을 띤다. 꽃잎이 많이 겹친 것을 ‘만첩해당화萬疊海棠花’라 한다. 해당화는 노란 해당화도 있는데, 원산지는 중국과 몽고이며 우리나라 각지에서 관상수로 심고 있는 귀화식물이다. 가지의 끝이 휘어져서 밑으로 처지며, 가시가 많다. 5월에 지름 4~5cm의 황색黃色 꽃이 피고 만첩이다.

해당화를 좋아한 사람들

중국 남송南宋의 석혜홍釋惠洪이 지은 《냉재야화冷齋夜話》에 해당화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어느 날 당나라 현종이 양귀비를 불렀는데, 양귀비가 전날 밤에 마신 술에 크게 취하여 술 냄새를 풍기며 양귀비가 도착했다고 한다. 현종이 양귀비에게 아직도 술에 취해있느냐고 묻자, 양귀비가 “해당은 잠이 부족할 따름입니다”라고 둘러댔다고 한다. 양귀비가 자신을 해당화에 비유한 것이다.
해당화를 좋아한 대표적인 인물로 소식(蘇軾 혹은 소동파蘇東坡, 1036~1101)를 들 수 있다. 소식이 황주黃州에 귀양을 가서 정혜원定慧院의 동쪽에 살았다. 소식은 그곳에서 해당화에 매료되어 해당화와 관련된 글을 지었고, 강소성 의흥宜興에서 직접 해당화를 심어 즐겼다. 소식에게 영향을 받은 다른 많은 문인들도 해당화를 좋아하였는데, 남송南宋의 화가 마린馬麟은 소식의 <해당海棠>에서 영감을 받아 <병촉야유도秉燭夜遊圖>를 그렸다.(도3)

동풍은 살랑 살랑 달빛은 넘쳐나고[東風嫋嫋泛崇光]
자욱한 향무香霧 속 달은 낭하로 돌아드네.[香霧空濛月轉廊]
밤 깊어 꽃 잠들어 떨어질까 두려워[只恐夜深花睡去]
촛불 높이 들어 해당화 꽃잎 비춰보네.[故燒高燭照紅妝]
– 소식(蘇軾, 1036~1101), <해당海棠>

해당화는 꽃이 아름답고 열매도 아름다워 관상식물로 좋다.
해당화 꽃은 특유의 향기를 지니고 있어, 향수원료로 이용되기도 한다.

창주昌州의 해당화만이 유독 향기가 있다.
왕우칭王禹偁의 시에, “손수 뜰에 꽃을 심으니 정원에 향기 가득하네[手植庭花滿院香].” 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이 품종이 없으니 한번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자장미紫薔薇를 해당이라고 하며 향기가 있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 이유원 편저, <향기가 있는 해당화>, 《임하필기林下筆記》 제30권

민화 속 해당화의 의미

<화조도>(도4)는 꽃향기를 가득 품은 해당화가 곱게 피어 있고, 해당화 나무 아래로 다정한 원앙 한 쌍이 물살을 가르고 있다. 속칭 수컷을 ‘원鴛’이라 하고, 암컷을 ‘앙鴦’이라 한다. 원앙은 날아오를 때 어깨를 나란히 하여 날개를 맞대고 나는데, 수컷은 왼쪽에서 암컷은 오른쪽에서 난다. 밤이 깊어지면 날갯죽지로 서로 상대방을 감싸며, 만일 불행히도 짝을 잃게 되면 남은 한 마리는 결코 따로 새 짝을 찾지 않기 때문에 부부의 애정이 돈독하여 오래도록 화목한 것에 비유된다.

모란에 해당화를 배치한 그림은 부귀영화가 온 집안에 넘쳐흐르기를 축원하는 도안으로, ‘만당부귀滿堂富貴’라 한다.(도5) 출생을 축하하는 머리장식이나 모자의 휘장에는 대부분 만당부귀를 새겨 넣어 길상적인 의미를 추구한다. 만일 해당화와 모란에 옥란화玉蘭花가 함께 그려지면, 이는 모두가 선망하는 높은 지위에 올라 부귀영화를 누리기를 축원하는 도안이 된다. 이를 ‘옥당부귀玉堂富貴’라 한다.(도6) 꽃병 속에 옥란화와 해당화를 꽂아 놓은 도안을 ‘옥당화평玉堂和平’이라고 제목을 붙이는 경우도 있다.
해당화와 모란이 함께 등장하는 예는 민화에서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작고 어여쁜 붉은 꽃 도상이 무슨 꽃인지 모를 때면, 그 꽃 주변에 무엇이 그려져 있는지 살펴보게 된다. 그 옆에 모란이 함께 그려져 있으면, 이름 모를 작고 예쁜 꽃이 해당화일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화조도>(도7)는 붉은 모란과 흰 모란이 그 화려한 자태를 자랑하듯 아름답게 피어있고, 그 사이사이에 모란의 아름다움에 지지 않는 어여쁜 해당화가 피어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모란과 해당화를 배경으로 비둘기 한 쌍과 산새 한 쌍이 다정한 한 때를 보내고 있다.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온 집안에 부귀영화가 넘쳐흐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 담긴 그림이다. 꽃 중의 신선[花中神仙]이라는 해당화가 꽃 중의 왕[花中之王] 모란을 만나면 부귀영화가 넘쳐흐르게 된다는 의미라니 흥미롭다.


글 김취정(서울대학교 박물관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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