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취정 박사의 민화 읽기 ⑭ 기사회생 정신과 초탈한 마음의 상징, 파초

민화에는 괴석과 함께 곧잘 그려진 파초. 파초는 전체모양과 꽃, 열매가 바나나와 닮았으며, 잎이 크고 아름다워 옛 그림 속에 다양한 의미로 그려졌다. 그림으로 그려지기 전에 중국에서 들어온 온대성 대형 식물인 파초로 조선후기 정원 문화를 꽃피우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고 기사회생 정신과 세속의 무상함을 나타내기도 하는 오묘한 식물, 파초에 대해 속속들이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아름다운 잎, 파초

파초는 잎이 아름다워서 예로부터 화조화花鳥畵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였다. 강희안(姜希顔, 1417~1464년)도 그의 저서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 화목류를 9품으로 나누어 평할 때, 파초를 앙우仰友·초왕草王·녹천암綠天菴이라 부르면서 부귀한 모습을 취하여 2품에 올렸다. 고려시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도 파초를 뜻하는 ‘초蕉’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어, 고려시대에 한반도에 파초, 혹은 파초에 대한 정보가 들어왔던 것으로 보인다.
파초芭蕉는 파초과에 속하는 관엽식물이다. 중국원산의 온대성 대형 초본식물로 우리나라 남부지역에서 재배되고 있다. 줄기는 여러 장의 잎싸개로 되어 있으며, 그 높이가 5m까지 자란다고 한다. 새로 난 어린잎은 돌돌 말린 형태로 보이며, 좀 더 자란 잎은 긴 타원형의 모습을 보인다. 잎의 길이가 긴 것은 2m가 넘는 것도 있다. 여름에 꽃대가 나와 여러 개의 꽃을 피우는데, 밑에 암꽃이 피고, 위쪽에 수꽃이 핀다. 파초의 전체모양과 꽃, 열매는 바나나와 무척 닮아서 구별이 잘 안 된다. 그러나 바나나에 비하면 결실성이 아주 떨어지고, 열매가 열렸다 하더라도 바나나보다 작고 먹을 수도 없다. 바나나는 인도, 세일론, 말레이시아 원산으로 제주도에서도 재배된다. 이를 감초甘蕉, 향초香蕉라 부른다. 간혹 서울이나 대구 등지에서 바나나가 열렸다며 화제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바나나가 아닌 파초로 확인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농촌진흥청은 과는 같지만 종이 다른 바나나와 파초를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을 2017년 6월 28일자 언론을 통해 소개한 바 있다. 파초와 바나나는 잎 뒷면의 상태로도 구분이 가능한데 바나나 잎의 뒷면에는 분粉 모양의 흰 가루가 발생되는 반면, 파초에는 흰 가루가 없고 옅은 녹색을 띤다. 파초와 닮은 것으로는 애기파초가 있는데, 작고 아름다워 미인초美人蕉라 부르며 관상용으로 널리 심고 있다.

선비들이 사랑한 파초

조선후기에는 문인사대부들에 의해 정원 문화가 크게 성행하게 된다. 당시 정원 문화는 명말明末 강남지방 사대부의 원림문화 취향과 관련 깊다.(도1) 조선의 문인들이 남방계 식물인 파초를 정원에 심어 감상하는 문화를 형성한 것은 특기할 만하다. 왜냐하면 파초는 중국원산의 온대성 대형 초본식물이기 때문이다. 조선 땅에서 파초를 심고 가꾸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을 것이다. 그 수고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문인들이 파초를 사랑한 이유는 무엇일까? 파초를 보면, 끊임없이 새 잎을 밀고 올라오는 모습을 보여준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새순이 다시 나오는 속성은 강인한 생명력과 변하지 않는 의리의 상징이 되었다. 파초는 스스로 힘을 쓰고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쉬지 않는 ‘자강불식自强不息’의 정신을 보여준다. 이에 문인들은 파초를 아끼고 사랑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파초는 오래전부터 글을 쓸 수 있는 종이로서의 역할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나라 회소(懷素, 725~785년)는 파초 수천 포기를 심어 놓고, 잎을 종이 삼아 글씨를 연습하여 뛰어난 서예가가 되었다.

파초가 그려진 우리 그림

파초는 문인과 어울리는 책이나 책상, 거문고, 바둑, 서화 등과 함께 그려지거나(도2), 문인들의 모임을 주제로 그린 계회도나 아회도 등을 구성하는 중요 요소로서 그려지기도 했다. 문인들의 공간을 묘사한 그림들을 살펴보면, 소나무, 대나무, 매화, 괴석 등과 더불어 파초를 그린 예가 많다. 정조(正祖, 1752~1800년, 재위 1776∼1800년)의 〈파초도芭蕉圖)〉에서처럼 파초와 괴석을 함께 그린 예도 있다.(도3) 이 작품은 바위 옆에 서 있는 한 그루의 파초를 묘사한 것으로, 화면의 왼쪽 상단에 ‘홍재弘齋’의 백문방인白文方印이 찍혀 있어 정조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먹의 농담과 흑백 대조에 의하여 바위의 괴량감과 질감 및 파초잎의 변화감을 잘 표현하였다. 파초와 괴석을 함께 그린 예는 민화에서도 자주 보인다.(도4, 도5, 도8) 그림 속에 파초를 등장시킨 화가로는 정선, 심사정, 김홍도, 장승업 등이 있다. 파초가 그려진 그림의 수량은 이루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파초의 여러 가지 상징성


파초는 잎이 넓고 선인仙人의 풍취가 있다. 넓은 잎은 부귀를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팔길상八吉祥 혹은 팔보八寶 중 하나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팔보’란 불교의식에서 사용되는 여덟 가지를 모아 만든 일종의 길상도안이다. 이는 법라法螺, 법륜法輪, 보산寶傘, 백개白盖, 연화蓮花, 보병寶甁, 금어金魚, 반장盤長 등 여덟 종류의 그림으로 구성된다. 구슬[珠], 돈[錢], 악기의 일종인 경쇠[磬], 상서로운 구름[祥雲], 네모나게 만든 매듭 형태의 방승方勝, 물소뿔로 만든 술잔[犀角杯], 글씨[書], 그림[畵], 붉은 단풍잎[紅葉], 쑥잎[艾葉], 파초잎[蕉葉], 솥[鼎], 영지버섯[靈芝], 옛날 돈[元寶], 일정한 형태와 색을 갖춘 중량이 있는 은화인 정錠 등의 여러 보배들 가운데 임의로 여덟 가지를 선택하면 팔보가 된다.(도6)
겨울에는 말라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봄이 되면 새순이 나온다고 하여, 기사회생起死回生의 상징물로 여겨졌다. 이는 북송의 문인 장재(張載 1020~1077년)의 시 〈파초芭草〉에서도 잘 드러난다.

파초 속잎이 다하면 새 가지를 뻗어나고
[芭蕉心盡展新枝]
돌돌 말린 새 속잎 슬며시 따라 돋아나네
[心卷新心暗己隨]
새 속잎을 배워서 새로운 덕을 쌓고
[願學新心長新德]
이어 새잎 따라서 새 지식을 기르리라
[施隨新葉起新知]
– 장재(張載 1020~1077년), 〈파초芭草〉

파초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조선의 문인사대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조익(趙翼, 1579~1655년)과 송시열(宋時烈, 1607~1689년) 등도 파초의 덕성을 노래한 시를 남겼다. 조선의 문인들이 남긴 저술들을 통해 이들의 파초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중국에서 전래된 파초는 고향이 중국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파초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한 예로 〈파초야우도芭蕉夜雨圖〉의 제찬題贊 중 ‘유용산승사차운파초도遊龍山僧舍次韵芭蕉圖’를 들 수 있다.(도7, 도7-1)

용산의 사찰에서 노닐며 파초도의 시에 화답시를 짓는다
[遊龍山僧舍次韵芭蕉圖]
파초에 빗방울 떨어지는 가을밤은 깊은데
[雨滴芭蕉秋夜深]
옷깃을 여미고 위태롭게 앉아 입 벌려 큰 소리로 탄식하네
[擁衿危座听高吟]
멀리 있는 그대는 어느 곳에 있길래 인편에 소식이 없으니
[遠公何処無人問]
이국 땅 서생의 마음은 만리를 가네
[異国書生萬里心]
– 영락永楽 8년(1410년) 8월, 조선국 봉찰사
통정대부 예조좌참의 집현전 학사 양수가 짓다.
[朝鮮国奉礼使通政大夫礼曹左参議集賢殿学士梁需題]


〈파초야우도〉는 1410년에 봉례사奉禮使로 일본에 갔던 집현전 학사 양수梁需와 일본 교토 오산五山의 시승詩僧 16인의 제찬이 적혀 있는 그림이다. 15세기 한·일간의 외교관계와 회화교섭 양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작품이다.
파초는 탈속脫俗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이는 달마대사達磨大師와 혜가대사慧可大師의 일화에서 잘 드러난다. 달마대사는 스승 반야다라般若多羅 존자의 열반 이후 인도를 떠나 중국으로 간다. 오랜 시간 인연을 기다리던 달마대사에게 신광神光이라는 스님이 찾아와 가르침을 청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정진하였다. 이를 본 달마대사는 짧은 시간에 큰 지혜를 얻으려는 신광을 크게 꾸짖었고, 신광은 자신의 왼쪽 팔을 잘라 자신의 진정성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땅에서 파초잎이 솟아나 그의 팔을 바쳤다고 한다. 이 모습을 본 달마대사는 신광을 제자로 받아들여 그에게 혜가慧可라는 법명을 주었다. 혜가는 중국 선종의 제2대 조사가 되었다. 파초는 봄에 새순이 나와 크게 자라다가 겨울이 되면 마치 죽은 것처럼 사그라지는 특징을 지니고 있어, 세속의 무상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인지 사찰의 대웅전이나 극락전 앞에 파초를 심는 경우가 많다.


글 김취정(서울대학교 박물관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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