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취정 박사의 민화 읽기 ⑫ 문인들의 시심을 사로잡은 풍류의 나무 ‘단풍나무’

옛 사람들은 단풍나무에 신령스러운 존재 혹은 입신양명과 출세의 상징 등 다양한 의미를 투영해 왔다. 이러한 단풍나무의 매력에 심취한 문인들은 심지어 단풍나무를 직접 심어 감상하기도 했다. 또한 민화에서는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을 상징하는 의미를 받아들여, 가화만사흥家和萬事興과 같은 주제로 많이 그렸던 것으로 보인다. 시적 대상으로부터 화목한 가정의 상징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가리지 않고 뭇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단풍나무의 상징성에 대해 알아본다. (편집자주)


단풍나무, 풍나무, 섭섭欇欇

‘단풍나무’는 단풍나뭇과에 속하는 나무를 통틀어 이르기도 하며, 따로 그 가운데 한 종인 ‘단풍나무’를 이르기도 한다. 단풍나뭇과의 나무는 북반부에 2속 150여 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며, 우리나라에는 고로쇠나무, 단풍나무, 신나무 등이 있다.
단풍丹楓나무의 ‘단풍’은 붉게 물드는 잎을 강조한 이름이다. 붉게 물든 단풍나무의 매력에 빠진 문인들은 단풍나무를 직접 심어 감상하곤 하였다. 이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인, 조준趙浚(1346~1405)의 다음과 같은 시에서 잘 드러난다. (도1)

두 그루 단풍나무 너무 좋아서 [酷愛雙楓樹]
대숲에 옮겨다가 심어 놓으니 [移根托竹林]
서리 취해 한 조각 붉은 모습이 [霜酣一片赤]
주인의 마음을 알고 있는 듯 [似識主人心]
– 조준趙浚(1346~1405), 《송당집松堂集》 제1권, <단풍나무를 읊다詠楓樹>

단풍나무는 ‘풍나무’라 하기도 하고 (《이아주소爾雅注疏》, 《설문통훈정성說文通訓定聲》), ‘섭섭欇欇’이라 부르기도 하였다(《설문해자說文解字》, 《송남잡지松南雜識》).

지금 사람들은 단풍나무 옹이를 일러 섭欇이라고 한다. 섭이 비바람을 만나면 자라기 때문에 나무 목木과 바람 풍風을 따른 것이다. 그 진액은 향을 만들 수 있으며, 땅 속에 스며들어 천 년이 지나면, 호박琥珀이 된다. 혹은 신선으로 변하기도 하므로 풍인楓人이라고 한다.
– 《송남잡지松南雜識》

단풍나무는 《산해경山海經》 <대남황경大南荒經>에 따르면, 황제가 치우蚩尤를 죽인 뒤 그 형틀을 버린 것이 변하여 생긴 나무라고 한다.

신령스러운 나무, 단풍나무

남조 양梁 임방任昉의 《술이기述異記》에 따르면, 중국 남쪽 지방에는 단풍나무로 만든 ‘풍자귀楓子鬼’가 있었다. 풍자귀는 오래된 단풍나무로 만든 인형으로, 이 인형을 ‘영풍靈楓’, 즉 ‘신령스러운 단풍나무’라 하였다. 무당들은 신령스러운 기운을 얻기 위해 이 ‘영풍’을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중국의 귀주성 먀오족은 단풍나무를 ‘우주목’, 즉 ‘세계수’로 여기며, 단풍나무를 성스러운 존재로 섬겨왔다.

단풍나무를 노래하다

단풍나무를 노래한 시도 많이 남아 있는데, 그 중 가장 잘 알려진 시로 당대唐代 장계張繼의 <풍교야박楓橋夜泊>과 두목杜牧의 <산행山行>을 들 수 있다. (도2)

달은 지고 까마귀 우는 하늘엔 서리 가득한데
[月落烏啼霜滿天]
강촌교와 풍교 아래 어선들의 불빛이
수심에 찬 잠을 마주하는구나 [江楓漁火對愁眠]
고소성 밖 한산사에서 [姑蘇城外寒山寺]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은은하게 객선으로 전해주네
[夜半鐘聲到客船]
– 장계(張繼), <풍교야박楓橋夜泊>

비탈진 돌길로 저 멀리 차가운 산을 오르자니
[遠上寒山石徑斜]
하얀 구름 이는 곳에 인가가 있네
[白雲生處有人家]
수레를 세워놓고 저무는 단풍숲을 즐기자니
[停車坐愛楓林晩]
서리 맞은 나무잎이 이월의 봄꽃보다 더 붉네
[霜葉紅於二月花]
– 두목杜牧, <산행(山行>

두목杜牧의 <산행山行>은 조선말기 문인에게도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한장석韓章錫(1832∼1894)의 시, <파산의 단풍나무가 서리가 내리지 않아 선홍색이 사랑할 만하기에 수레를 세우고 당나라 사람의 시에 차운하다坡山楓樹未霜鮮紅可愛停車次唐人詩>에서 잘 드러난다. 한장석이 이야기하는 ‘당나라 사람의 시’는 두목杜牧의 〈산행山行〉을 말한다.

골짜기 속 봉우리 돌아 해는 기우려는데
[洞裏峯回日欲斜]
온 산의 단풍 숲에 두세 집이 있으니
[滿山紅樹兩三家]
밤에 비바람 친 앞개울의 나그네는
[夜來風雨前溪客]
도원에 꽃이 떨어지지 않았나 착각하네
[錯認桃源未落花]
– 한장석(1832∼1894), 《미산집(眉山集》 제1권, <파산의 단풍나무가 서리가 내리지 않아 선홍색이 사랑할 만하기에 수레를 세우고 당나라 사람의 시에 차운하다坡山楓樹未霜鮮紅可愛停車次唐人詩>

두목의 <산행>은 화보와 그림 속에서도 자주 등장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고금화보古今畵譜》와 《명공선보名公扇譜》를 들 수 있다. 두목의 <산행>을 주제로 한 그림은 문인화가는 물론 직업화가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그려졌다. 그 대표적인 예로 이인상李麟祥(1710∼1760), 정수영鄭遂榮(1743∼1831), 안중식安中植(1861∼1919) 등의 <풍림정거楓林停車>를 들 수 있다. (도3, 도4, 도5)

단풍나무 도안의 상징

단풍나무 도안으로는 ‘봉후괘인封侯卦印’과 ‘안거락업安居樂業’을 들 수 있다. ‘봉후괘인封侯卦印’은 명예와 실권이 겸비된 최고의 지위에 오르기를 축원하는 도안이다. 이 도안은 원숭이猴가 인수印綬를 단풍나무楓樹 가지 위에 걸고 있는 그림으로 도안을 구성한다. 후작候爵에 봉해진 다음에는 또 이른바 ‘제봉提封’, 즉 봉해진 영토를 관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인수印綬을 받아야 하는데, 이러한 제봉提封의 관인官印을 갖춘 관리만이 명예와 실권을 함께 지닌 출세한 관리이다.
또 단풍나무 위에 하나의 벌집을 그려 넣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벌蜂’이 ‘봉封’과 동음동성이기 때문이다. 인수印綬를 나무 위에 거는 것은 바로 ‘괘인掛印’의 의미이다. 대부분 옛날 관청의 담장이나 벽 위에 그려졌지만, 그림의 본, 여러 기물, 문구 등에 응용 된다. 단풍나무(혹은 벌집)에 원숭이를 그려 ‘봉후封侯’라고 제목을 붙이기도 한다. 또 학 옆에 벌집蜜蜂을 첨가하여 그리고 ‘일품가봉一品加封’이라고 제목을 붙이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일품조가밀봉一品鳥加蜜蜂’의 발음에 따른 것이다. (도6)
‘안거락업安居樂業’은 집안이 단란하게 모여 살며 화목한 것을 기리는 도안이다. 메추라기鹌鶉에 국화菊花와 단풍나무를 배치한 그림으로 도안을 구성한다. (도7) 국화와 단풍나무를 배경으로 한 쌍의 새가 그려진 그림은 민화에서도 자주 찾아 볼 수 있다. (도8, 도9)
‘안거락업安居樂業’은 ‘구세동거九世同居’의 도안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구세동거九世同居’는 집안이 한데 모여 단란하고 화목하게 사는 것을 기리는 도안이다. 메추라기鵪鶉 아홉 마리와 국화菊花의 그림으로 도안을 구성한다. (도10)
《당서唐書》, <효우전孝友傳>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장공예張公藝의 집안은 9대가 함께 동거하였는데 북제北齊, 수隋, 당唐에서 모두 그 집안을 기려 표창하였다. 임금이 그 집에 행차하여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까닭을 물으니, 장공예는 ‘인忍’ 자 100여 개를 써서 바쳤다. 임금은 이를 착하다고 여겨 좋은 비단을 하사하였다.
[張公藝 九世同居 北齊隋唐 皆旌表其門. 上幸其宅 問所以能之故 公藝書忍字百餘以進. 上善之 賜以縑帛]

여기에서 이 고사는 바로 ‘일가단원一家團圓’, ‘가화만사흥家和萬事興’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성이 장씨張氏인 사람들이 대청을 흔히 ‘백인당百忍堂’이라고 부르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는데, 그 전고典故는 바로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도11)
민화 속 단풍나무는 주로 동물 가족과 함께 그려지는 예가 많은데, 이는 단풍나무가 그려진 도안의 뜻이 주로 화목한 가정을 주로 의미하기 때문이다. (도12, 도13)

가을 햇살에 투명하게 빛나는 붉은 단풍나무잎은 참으로 아름답다. 단풍나무의 아름다운 빛깔은 동아시아의 문인들에게 시적 감흥을 불러일으켰으며, 이에 단풍나무와 관련된 많은 시들이 나올 수 있었다. 시로 노래된 단풍나무는 그림으로 그려지게 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단풍나무는 신령스러운 존재로부터 입신양명이나 출세의 상징이나 문인의 풍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민화에서는 주로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을 상징하는 의미를 받아들여, 이와 관련된 주제를 많이 그렸던 것으로 보인다.


글 김취정 (서울대학교 박물관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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