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취정 박사의 민화 읽기 ⑨ 소나무, 영원토록 변치 않는 절개와 지조의 상징

소나무의 이름을 풀이하면 ‘으뜸 나무’라는 뜻이 된다. 이처럼 소나무는 동아시아 사람들에게 각별한 존재로 인식되었고, 역사와 문화 속에도 깊게 뿌리 내리고 있다. 이번 시간에는 역사 속 소나무의 기록과, 소나무의 종류 및 별칭과 상징 등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소나무는 이번호부터 총 2회로 연재될 예정이다. (편집자 주)


소나무, 나무 가운데 으뜸이라!

소나무는 ‘솔’과 ‘나무’의 합성어로, ‘솔’은 ‘으뜸’이라는 뜻이다. 즉, 소나무는 나무의 우두머리라는 뜻을 지닌다. 이처럼 소나무가 예로부터 동아시아에서 최고의 나무로 칭송받아온 만큼, 소나무와 관련된 고사와 기록도 적지 않게 전해져오고 있다.
먼저 사마천司馬遷이 저술한 《사기史記》에는 ‘송백松柏은 백목의 장[百木之長]으로서 황제의 궁전을 수호하는 나무’라고 하였으며, 왕안석王安石의 《자설字說》에는 ‘소나무는 공公의 작위를, 잣나무에게는 백伯의 작위를 주었다’라고 하여 소나무가 매우 귀한 나무로 여겨졌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한 《사기》의 〈시황제본기始皇帝本紀.봉선서封禪書〉에는 진시황이 태산을 순유하던 중 갑자기 쏟아진 폭우를 피할 수 있게 한 소나무에 대해, 고마움의 표시로 오대부五大夫의 벼슬을 내렸다는 기록도 나온다. 당대唐代 8세기경의 문인인 부재符載도 《식송논植松論》에서 소나무가 여러 나무들 중에 으뜸임을 언급하였다.

“만약 숭산嵩山이나 태산泰山 속에 옮겨놓으면 바다 기운은 안에 서리고 해와 달의 빛은 밖을 덮는다. 상서로운 봉황이 위에서 놀고 샘물은 아래로 소리 내어 흐른다. 신령스런 바람 소리가 사방에서 일어나 피리 소리를 묻어 버린다. 황천黃泉 내리고 청천菁川에 가지를 뻗어 명당의 기둥과 큰 집의 들보가 되니 여러 나무 가운데 으뜸이다.”
– 부재符載, 《식송논植松論》

소나무에 관한 기록은 국내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태종실록에는 창덕궁에 소나무를 심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법주사로 행차하던 세조의 연輦이 지날 때, 스스로 그 가지를 들어 올렸다하여 벼슬을 내렸다는 속리산 정이품 소나무 이야기도 널리 알려져 있다.

사랑받는 만큼 별명도 많은 소나무

소나무는 사람들에게 많이 사랑받은 만큼 그 별명도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정목貞木’, ‘출중목出衆木’, ‘백장목百長木’, ‘군자목君子木’ 등으로 불린다. 또한 소나무를 뜻한 한자 송松을 분해하여 보면 ‘십팔공十八公’이 되므로, ‘십팔공(十八公)’이라고도 불린다. 이러한 기록은 성호 이익선생이 저술한 《성호전집》에서 살펴볼 수 있다.

소나무가 자람에 정명이 있나니 [木生有定命]
무리들 중에서 천성이 빼어나다 [姿性出群醜]
길게 뻗은 십팔공이여. [脩脩十八公]
붉은 갑옷에 푸른 수염 난 늙은이로세 [赤甲蒼髯叟]
하늘로 치솟기를 꼭 원한 건 아니어서 [凌雲未必願]
곧은 줄기가 되레 옆으로 뻗었어라. [直榦反橫走]
– 《성호전집》제5권, 〈와송가臥松歌〉

한편, 한국에서도 소나무의 별칭은 다양하다. 대표적인 별칭으로 춘양목春陽木이 있다. 경상북도 춘양 지역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춘양과 가까운 울진이나 봉화 등지에서 생산된 소나무를 철도가 있는 춘양에서 모아 다른 곳으로 보냈기 때문에 붙여졌다. 울진 등지에서 자라는 ‘금강송金剛松’도 유명하다. 금강송은 금강석처럼 아주 단단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편, 금강송이나 춘양목의 대다수는 껍질 색깔이 붉기 때문에, ‘적송赤松’이라 부르기도 한다. 적송의 모습은 특히 일월오봉도에서 자주 살펴볼 수 있다.(도1)

영원토록 변치 않는 절개와 지조의 상징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듦을 알 수 있는 것이다. [子曰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
– 《논어論語》, 〈자한子罕〉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특히 소나무에 대한 예찬이 많은 까닭은 소나무가 절개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소나무는 ‘초목의 군자’, ‘군자의 절개’, ‘송죽 같은 절개’, ‘송백의 절개’ 등으로 표현된다. 《논어論語》에도 변하지 않는 지조와 절개로 군자를 상징하는 나무로 나온다. 특히 《논어》가 후대 학자들에게 거듭 읽히면서, 소나무의 지조와 절개의 관념은 점점 굳어져갔다. 즉, 《논어》를 통해 상징의 의미가 완성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소나무의 상징성은 소나무 자체의 생태적 속성에서 기인한다. 사계절 내내 푸르른 특징과 풍상과 싸워내는 강인함, 역경 속에서도 끈질기게 자신의 의연함을 지켜내는 덕성 등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나무 중에서도 매우 고고하고 위엄과 기품이 있으며, 심지가 굳은 자연물로 일컬어지며 조형적 대상으로의 상징성을 강하게 드러냈다. 따라서 소나무는 실제로 경관수 혹은 정원수로도 종종 이용되었고, 가구나 부채 등 여러 가지 공예품 제작에도 사용되었다.

《계림지鷄林志》에 이르기를, “고려의 송선松扇은 소나무 껍질의 부드러운 부분을 두드려 엮어서 무늬를 종려나무 심[椶心]과 같이 하고 사이사이에 붉은 물을 들였는데, 아마도 물버들[水柳]의 껍질일 것이다.” 하였다.
– 《임하필기》제11권, 〈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 ‘소나무 부채[松扇]’

문인들이 사랑한 소나무

소나무는 생태적 특징과 상징적 의미 덕분에 동아시아 문인들이 특히 사랑했다. 문인들은 눈 가득한 아주 험한 골짜기에 외롭게 서 있는 소나무를 지절志節의 상징으로 삼아 시의 소재로서 자주 이용했다.

바르고 평탄한 뜨락에 휘늘어진 그 소나무 [嫋嫋其松殖殖庭]
문경을 가로막아 푸른 병풍을 펼치었네 [橫遮門逕布蒼屛]
저녁 바람 솔솔 불어와 시원키도 하려니와 [細吹晩籟泠然爽]
다시 엄한 서리 깔보고 혼자서 푸르구나 [更傲嚴霜獨也靑]
– ‘소나무 병풍’, 〈춘저록春邸錄〉2, 《홍재전서》제2권

다산 정약용 역시 소나무를 매우 사랑했다. 그의 시문집인 《다산시문집》에는 ‘차군정 아래에 노송 한 그루가 있는데 얽히고 꼬부라져 사랑스러웠다. 조 사마와 함께 솔 밑에서 술을 마시며 이 소나무를 읊었다[此君亭下有古松一株 蟠曲可愛 與曹司馬松下飮酒 仍賦此松]’라는 기록이 있다. 다음은 당시 정약용이 읊은 시다.

현의 정자 둘러싼 것 모두가 대나무인데 [縣亭四圍皆脩篁]
마당 앞의 한 소나무 우뚝 솟아 드높구나 [庭前一松特昻藏]
빽빽한 잎 긴 가지 태양을 가렸고 [密葉蔽白日]
꾸불꾸불 얽힌 가지 찬 서리를 이긴다네 [蟠柯崛凌淸霜]

추사 김정희가 자신을 빗댄 나무

한편, 화가들 역시 소나무를 매우 사랑했다. 대표적인 예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가 있다.(도2) 〈세한도〉는 김정희가 제주도에 유배돼있던 59세때(1844년) 제자이자 역관인 이상적(李尙迪, 1804∼1865)에게 선물하기 위해 그린 것이다. 추사는 유배를 지내며 서울 친구들과 점점 멀어졌는데, 이상적만큼은 중국에 사신으로 갈 때마다 최신 책들을 구해서 김정희에게 보내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한도〉에는 ‘장무상망長毋相忘’이라는 인장이 있는데, 이는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뜻이다.
한편, 〈세한도〉에는 김정희를 뜻하는 ‘완당’ 바로 아래에 소나무 가지가 그려져 있다. 때문에 마치 늙고 병든 커다란 나무가 김정희를 받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이 소나무는 몸통은 썩고 구부러진 가지 하나만 남은, 유배 생활에 지친 김정희 자신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세한도의 뒤에 붙어있는 소서小序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일반 세상 사람들은 권력이 있을 때는 가까이 하다가 권세의 자리에서 물러나면 모르는 척하는 것이 보통이다. 내가 지금 절해고도에서 귀양살이하는 처량한 신세인데도 이상적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이런 귀중한 물건을 사서 부치니, 그 마음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공자는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라 하였으니, 그대의 정의야말로 추운 겨울 소나무와 잣나무의 절조節操가 아닐까.”

소나무를 면밀히 관찰한 역사 속 화가들

추사 외의 많은 화가들도 소나무를 많이 그렸다. 특히 화가들은 소나무를 잘 그리기 위해 소나무를 껍질, 소나무 잎, 소나무 가지, 소나무 줄기 등 구체적으로 나누어 면밀히 관찰했다. 이는 역사 속 기록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당대唐代의 화가인 왕유는 소나무의 껍질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소나무의 껍질은 비늘 같고, 측백나무의 껍질은 수신을 감고 있는 것과 같다.”
– 왕유, 〈산수론山水論〉

북송대 시대의 화가·평론가 곽약허는 소나무 잎을 그리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저술했다.

“안개 낀 숲과 평원의 아름다움은 이성李成(919-967)이 처음 그리기 시작하였다. (그는) 소나무 잎을 찬침필攢針筆이라고 하는 방법으로 그렸는데 선염을 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아름답고 무성한 모습을 나타내었다.”
– 곽약허, 《도화견문지圖畵見聞志》 권1, 〈세 사람의 산수화에 대하여 논함[論三家山水]〉

명대 말엽의 문인화가 문진형은 무릇 소나무 그림이 담아내야 할 풍취를 언급했다.

“소나무는 용과 뱀이 서린 듯 누워야하고, 대나무는 비바람을 숨긴 듯해야 하며, 산기슭은 물로 들어가되 맑고 깨끗해야 하며, 물의 근원은 내력이 분명해야 하니, 이 중에 몇 가지 단서가 있다면 비록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어도 틀림없이 묘수일 것이다.”
– 문진형, 《장물지長物志》,〈논화論畵〉

청대 초엽의 화가 왕개는 소나무를 그리는 사람의 자세에 대해 서술했다.

“소나무는 덕德이 있고 마음이 바른 군자의 풍을 지니고 있다.그래서 비록 물속에 숨어 있는 용 같은 모습을 하고 깊은 골짜기에 서 있다 해도 일종의 고상한 기상을 갖추고 있어서, 늠름하여 범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무릇 소나무를 그리는 사람은 이런 뜻을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 붓을 대는 곳, 스스로 특이하나 운치가 생겨날 것이다.”
– 왕개,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

겸재 정선 역시 그만의 미감으로 소나무를 재현하기 전에 면밀히 관찰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작품 《사직노송도》속 노송은 뒤틀리고 휘어져있지만, 오히려 역동적인 생명력과 고아한 멋이 느껴진다. (도3)
한편, 소나무 그리기와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화론畵論의 정수는 소식蘇軾(소동파蘇東坡, 1036-1101)의 ‘상리常理’를 들 수 있겠다. 회화의 표현대상 중에서 어떤 것은 상형常形이 있으니, 가령 인물이나 새, 건축물 등과 같은 것은 형태의 변화가 크지 않다. 그러나 산, 돌, 대나무, 나무, 물결, 안개, 구름 같은 것들은 그 자체에 상형이 없거나 또는 그 자체에 비록 정형定形이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자연조건의 작용에 의해 그 모습이 시시각각으로 변화한다. 한편, 상형이 있는 사물이든 상형이 없는 사물이든 간에 모든 사물에는 상리常理, 즉 법칙이 있는데, 소동파는 ‘무상형無常形’ 가운데 ‘상리常理’를 곡진히 그려내는 것이 화법의 요체라고 주장하였다.

사람과 새와 궁실의 용기들은 모습이 있으나, 산, 돌, 수목들과 물결, 연운 같은 것들에 이르러서는 일정한 형상이 없으나 일정한 이치가 있다. … 정해진 이치에 합당하지 않은 것은 비록 그림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도 상리를 알지 못하는 수가 있다. … 일정한 이치가 부당한 것은 곧 상형도 폐지되는 것이니, 그것은 그 형상이 떳떳함이 없이 때문이다. … 세상에 공인(화공 畵工)들이, 혹은 모습을 능히 곡진하게 그리되, 그 이치에 이르러서는 고매한 사람이나 뛰어난 재주가 있는 사람이 아니면 변식辨識할 수 없다. 문동文同이 그린 대나무, 돌, 마른나무들은 진실로 그 이치를 터득한 것이라고 이를 수 있으니, 이렇게 하면 통달하여, 마침내 무성하게 되어서, 뿌리와 잎 마디와 줄기와 싹과 가지를 그리는 단서端緖가 많은 변화를 해서, 처음부터 답습하지 않아도, 그리는 곳에 합당하게 된다.
– 소동파, 《소식문집蘇軾文集》권11 〈정인원화기淨因院畵記〉

소나무를 잘 그리기 위하여…

어느 그림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소나무를 잘 그리려면 먼저 소나무의 생태적 특징을 면밀히 관찰하고 상세히 연구하여 소나무의 특징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소나무 그림의 이해를 돕기 위해 대표적인 소나무 몇 가지를 소개하고 이번 글을 마친다. 다음 시간에는 장수의 상징으로서의 소나무와 민화 속의 소나무 그림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글 김취정 (서울대학교 박물관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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