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취정 박사의 민화 읽기 ⑧ 의리와 절개, 그리고 평안함을 상징하는 대나무

대나무는 추운 겨울에도 푸르름을 자랑한다. 때문에 사군자 중 가장 먼저 역사기록에 등장할 만큼 옛 문인들에게 사랑받았다. 일반적으로 대나무는 의리, 절개, 평안함 등을 상징하지만, 민화에서는 매화나 봉황, 모란 등과 함께 그려져 부부의 화목, 장수, 부귀 등의 의미도 지니게 된다. 이번 시간에는 대나무의 역사적 기록과 함께 민화 속 대나무가 어떻게 그려지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편집자 주)


밥 먹을 때에 고기 없을지언정 [可使食無肉]
사는 곳에 대나무 없을 수 없네. [不可居無竹]
고기가 없으면 사람 수척하게 하고 [無肉令人瘦]
대나무가 없으면 사람 속되게 한다오. [無竹令人俗]
사람의 수척함은 살찌게 할 수 있으나 [人瘦尙可肥]
선비의 속됨은 고칠 수 없네. [士俗不可醫]
– 소식蘇軾,〈어잠승록균헌於潛僧綠筠軒〉, 《동파시집東坡詩集》권13

대나무는 《시경詩經》에 나올 만큼 매우 이른 시기부터 기록되었고, 특히 사군자 중에서는 가장 먼저 기록에 등장했다. 그만큼 옛 문인들에게 사랑받았다. 심지어 소동파는 ‘동파육’이라는 요리를 창안할 만큼 고기를 매우 좋아했지만, 고기 없이 밥을 먹을 수는 있어도, 대나무 없이는 살 수 없다 말했을 정도다.

원자폭탄에도 살아남는 대나무

모든 도상의 상징은 그 도상이 가진 생태적 특징에서 발현된 것이다. 대나무도 마찬가지다. 대나무는 흔히 절개나 의리 등의 의미로 해석되는데, 역시 대나무의 생태적 특성과 연관이 있다. 대나무는 땅 위로 아직 돋아나지 않았을 때에도 ‘마디’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이 점을 숭상하여 ‘청풍고절淸風高節’, ‘고풍양절高風亮節’ 등이라 일컫는다. 또한 대나무는 한겨울 추위에도 푸른 잎과 아름다운 꽃을 보여주기 때문에 영원히 변치 않는 의리와 절개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의리와 절개라는 의미를 지니게 된 까닭은 대나무의 강한 생명력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대나무는 습기가 많은 열대지방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중국과 일본을 제외하고는 분포지가 크게 넓지 않지만, 일단 환경만 갖춰지면 매우 잘 자란다. 대나무 중에서 맹종죽의 경우 굵은 것은 직경 20cm까지 크는 것도 있으며, 하루 동안에 1m가 자랄 수 있다고도 한다. 심지어 2차 대전의 히로시마 원폭 피해에서도 유일하게 생존했을 정도다.

의리와 절개의 상징

대나무를 그림 소재로서 인식하고 그리기 시작하였다는 기록도 이른 편이다. 흔히들 대나무를 사군자, 즉 매화, 난초, 국화와 함께 취급하여 그린다. 그러나 사군자로 짝지어 그려지게 된 것은 중국 명대明代에 들어서이고, 그 전에는 주로 각기 독립된 소재로 그려졌다. 이후 매, 난, 국, 죽의 순서는 깨끗함이나 절개와 의리 등 군자의 덕목에 비유되는 사군자의 상징성에 군자다운 삶이 일 년 내내 지속되라는 사계절의 의미까지 확장되면서 자리 잡히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후기부터 사군자가 그려지게 되었다.

원차산元次山의 〈개론丐論〉에 이르기를 “옛사람들은 향鄕에 군자가 없으면 산수와 벗하였으며, 리里에 군자가 없으면 소나무와 대나무로 벗을 삼았으며, 앉은 자리에 군자가 없으면 거문고와 술로 벗을 삼았다”라 하였다. (…) 소동파蘇東坡의 시에서는 “바람과 샘물 소리는 두 가지 음악이요, 소나무와 대나무는 세 가지 유익한 벗이라네”라 하였다.
― 조익趙翼, 《해여총고陔餘叢考》 권43

대나무는 한겨울에도 푸르기 때문에, 비슷한 생태적 속성을 지닌 소나무, 매화와 함께 그려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들 셋을 영원히 변치 않는 의리와 절개의 상징으로 높이 평가하며 세 벗으로 함께 엮었다. 그러나 이 세 벗의 요소는 바뀔 수도 있다. ‘향우鄕友’, ‘이우里友’, ‘좌우坐友’라든지, 소동파의 시구에 나오는 ‘송죽삼익우松竹三益友’는 세 벗의 구성 요소를 명확히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 대나무와 소나무를 기준으로 하여 매화나 바위 중 하나가 포함된다. 송대에는 소나무와 대나무, 매화를 ‘세한삼우’로 다루는 것이 유행하였지만, 소동파는 소나무, 대나무, 바위를 ‘삼우’로 택했다. 이는 그의 막역한 친구 문동文同에게 준 그림에서 잘 나타난다. 이 그림에는 “매화는 추위 속에서도 빼어나고, 대나무는 비쩍 말랐으면서도 오래 살며, 바위는 못생겼으면서도 문채가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유익한 세 벗이라네 [梅寒而秀, 竹瘦而壽, 石醜而文, 是三益之友]” 라고 적힌 제사題詞가 있다.

평안함의 상징, 대나무

서쪽의 산에 키가 한 장丈이 넘는 산도깨비가 살고 있었는데, 누구든 도깨비를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병을 앓곤 했다. 이전李畋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이 도깨비를 매우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사방으로 도망하여 숨어 살았을 뿐만 아니라 아침저녁으로 대나무를 불 속에 던져 그 폭발하는 소리로 도깨비를 쫓고자 하였다. 그 폭발하는 소리는 과연 그 산도깨비를 놀라고 두렵게 해서 달아나 숨게 하였으므로 차츰 재난이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후세에는 종이로 화약을 싸서 묶어 대나무를 태워 터트리는 것을 대신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바로 이러한 풍속으로 남게 된 것이다.
― 《신이경神異經》과 《담문록談聞錄》

대나무는 평안함도 상징한다. 《유양잡조酉陽雜俎》에는 “북도北都에는 동자사童子寺에만 대나무로 만든 망루가 있었는데, 전하는 바로는 그 절의 법도에 따라 날마다 대나무로 평안함을 알렸다”는 기록이 나온다. 한대漢代 소설인 〈신이경神異經〉과 설화가 실린 〈담문록談聞錄〉에는 만나면 병을 옮기는 도깨비를 쫓기 위해 대나무를 불 속에 던져 그 폭발하는 소리로 도깨비를 쫓고자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러한 풍속은 곧 폭죽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섣달 그믐날부터 정월 초하루까지 폭죽을 터트리는데, 이는 한 해 동안 평안하고 무사한 삶이 이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것이다.

다양한 의미의 민화 속 대나무

민화에서는 다양한 상징들이 한데 얽혀 그려지기 때문에 한 폭의 그림에도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기게 된다. 대나무나 죽순이 화병과 함께 그려지면(도1) 평안함을 의미하고, 매화나무와 함께 그려지면 장수를 축원하는 의미를 더하게 되며, 대나무와 매화나무와 새 한 쌍이 함께 그려지면 부부의 생일을 축하하고, 장수를 축원하는 의미가 된다. 봉황과 같이 그려지기도 한다.(도2) 화면 아래쪽에 그려진 화병 속에 대나무와 죽순, 매화나무가 그려져 있고, 화면의 윗부분에는 봉황 한 쌍이 있는데, 역시 부부의 생일을 축하하면서, 부부가 평안한 삶을 오래도록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한편, 화병 속 대나무 그림은 민화의 다른 화목에서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며, 책거리에서도 자주 발견되곤 한다.(도3) 이때 대나무는 그림 속 문인을 상징하는 여러 도상들과 함께 등장해, 문인으로서의 절개나 의리 등의 의미를 지닌다.

화목을 넘나드는 자유로움과 과감한 표현

민화에서는 산수화와 화조화, 산수화와 어해화, 인물화와 화조화 등 여러 가지의 화목을 한 화폭에 담기는 경우가 많다. 이는 사람들이 이루고 싶은 꿈과 희망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화에서는 산수화와 화조화, 산수화와 어해화, 인물화와 화조화 등 여러 가지의 화목을 한 화폭에 담아 그려내는 경우가 많다. 함께 어울려 조화롭게 그려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몇가지의 그림을 한 화면에 합하여 놓은 듯한 모습으로 그려지곤 한다.
이〈화조도〉(도4)는 그러한 특성을 잘 보여준다. 화면 하단에는 산수화가 그려져 있다. 작품의 전체 크기와 비교하면 작게 그려진 편이라서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 산수화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재미있는 부분들이 많다. 높고 가파른 바위 옆에서 횡으로 자라난 나무는 척박한 환경 탓인지, 아니면 계절 탓인지, 나뭇잎들이 거의 떨어진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돛단배를 지나면 소나무 숲이 펼쳐지는데, 그 나무의 모습이 마치 겸재 정선의 T자형 소나무 화법畵法을 따라 그린 듯하다. 흐르는 물결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 커다란 대나무가 위풍당당하게 하늘을 향해 솟아나있다. 그 대나무 위에는 대나무 잎을 둥지 삼아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새 한 쌍이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다. 대나무 위에 내려앉은 새 한 쌍은 부부 화목이나 장수를 축원하는 뜻이다. 변치 않는 대나무의 절개처럼 부부도 마음이 변치 않고 백년해로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한편, 민화는 과감한 표현을 특징으로 하므로, 민화 속의 대나무도 각 도상들의 비율이 자유분방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 <화조도>(도5)는 마치 두 가지의 그림을 한 화폭에 담은 듯한데, 화면 상단에는 대나무와 한 쌍의 새가, 화면 하단에는 꿩 가족과 모란, 국화 등이 그려져 있다.
두 개의 바위 산 사이에 대나무와 죽순이 그려져 있는데, 이 대나무와 죽순이 어찌나 크게 그려졌는지, 바위산보다 더 커 보일 정도이다. 대나무와 죽순을 사이에 두고 바위산에 앉아 서로 바라보며 다정하게 대화하는 모습의 한 쌍의 새는 부부 화목을 상징한다. 이 그림의 화면 하단에는 커다란 모란이 그려져 있는데,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모란이 함께 그려지면, 부귀영화를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국화와 모란 사이에 유유히 노니는 꿩가족 그림은 가족이 화목하면서도 부유한 삶을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것이다.


좋은 그림 그리려면 세심히 관찰하고 연구해야

민화는 세속을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오롯이 담은 그림이다. 따라서 민화 작가는 사람들이 살면서 진실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무엇을 그리든 그림의 소재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그 그림 속에 어떠한 꿈과 희망을 담을 것인지 늘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민화 속 대나무 그림에도 사람들이 원하는 삶과 이루고자하는 꿈이 담겨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대나무는 인생을 살면서 어려움 없이 평안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싶은 마음, 건강하게 장수하고 싶은 염원,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신뢰와 의리로 내 곁을 지켜줄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 등 여러가지 바람과 희망, 열망, 염원을 품고 있다.
그러나 화폭에 대나무를 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백거이白居易는 〈화죽가畵竹歌〉에서 “식물들 중에 대나무 그리기가 어려우니, 예로부터 지금까지 대나무 같이 그린 자가 비록 없었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따라서 진정한 작가라면, 그림의 소재가 되는 모든 것들을 늘 세심히 관찰하고 연구하여, 해당 도상을 그릴 때에 보지 않고도 그 모습을 훤히 떠올려서 저절로 그려지는 경지까지 이를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나무를 보고 또 보아, 대나무의 특질을 완벽하게 장악한 뒤에야 붓을 움직여야 비로소 생동하는 대나무를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대를 그릴 때는 반드시 맨 먼저 줄기를 그린다. 줄기를 그리고 나서 마디를 그려 넣는 바, 마디와 마디 사이의 길이는 줄기의 끝 쪽은 반드시 짧아야 하며, 중간에 가까워짐에 따라 점점 길어지고, 뿌리에 가까워짐에 따라 점점 짧아져야 한다. (…) 잎을 그릴 때는 붓에 먹을 듬뿍 묻혀서, 일필一筆로 그려야 한다. (…) 모든 가지는 다 마디에서 나고 모든 잎은 다 가지에서 나도록 돼야 한다. 그리고 잎은 바람이 불 때, 개였을 때, 비올 때, 이슬에 젖어 있을 때에 따라 각기 모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등을 보이고 있는 잎, 정면을 향한 잎, 아래로 향한 잎, 위로 향한 잎에 따라 그 형세도 각기 다르다. (…) 정성껏 연구해서 그 법을 습득해야 한다. 만약 한 가지, 한 잎이라 할지라도 타당치 않은 것이 있는 대는 온 화면의 흠이 될 것이다.
― 청淸 왕개王槪, 〈화묵죽법畵墨竹法〉, 《개자원화전화죽천설芥子園畵傳畵竹淺說》


글 김취정 (서울대학교 박물관 객원연구원)
그림 <민화본색> (가회민화박물관 지음, (주)디자인밈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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