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취정 박사의 민화 속 신이한 이야기 ⑫
계묘년癸卯年 새해 문 활짝 여는 액막이 세문 歲文

도1 <토끼와 호랑이>, 109×62㎝, 출처 《까치호랑이 명품전》(신세계미술관, 1986)



세화歲畫는 정초에 액운을 막고 좋은 일만 생기라는 의미를 담아 집안에 붙여두는 그림이다.
대표적인 세화 중 하나인 호작도와 관련된 이야기를 함으로써 2023년 액막이 글의 역할을 하고자 한다.

글 김취정 (서울대학교 박물관 객원연구원, 고려대학교 강사)


호랑이 그림 대부분은 까치와 함께 그려진 작품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런데 까치가 아닌 토끼와 함께 그려진 예가 있어 2023년 토끼해를 맞이해 소개한다(도1).
토끼와 호랑이 그림이 지니는 상징적 의미는 토끼와 호랑이 설화에서 그 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여러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토끼는 꾀쟁이로 등장하는 예가 많다. 이와 같은 꾀쟁이 토끼는 설화적 ‘사기꾼(trickster)’의 유명한 예로 서구에서는 ‘르나아르 이야기’로도 잘 알려져 있다. 동물 사기꾼은 대개 약자인 경우가 많으며 흔히 탐욕스러운 강자로부터 생명에 대한 위협이나 무리한 요구를 받게 된다. 이때 겉으로는 강자에게 순응하는 척하나 속으로는 그 특유의 슬기로움을 발휘함으로써 어리석기 짝이 없는 강자를 골려주고 위기에서 벗어난다. 이 경우 그가 행한 속임수는 고의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부득이한 상황 속에서 순간적으로 약자가 대처한 자기방어적인 것이며, 이는 인간의 현실을 동물로 의인화해 표현한 우화라고 할 수 있다.


도2 <보희도報喜圖>, 출처 《중국미술상징사전》


세화를 대표하는 그림, 까치호랑이

18세기 이후 서화의 수요와 공급이 확대되고,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민중문화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민중의 예술적 감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준 예술 양식이 바로 민화이며, 민중의 그림 소비가 집중된 그림 중 하나는 바로 ‘세화歲畫’ 곧 ‘새해맞이 그림’이었다. 이러한 양상은 1902년부터 1903년까지 서울 주재 이탈리아 총영사를 역임했던 까를로 로제티(Carlo Rossetti)의 《Coreae Coreani》에 잘 드러난다.

“복제화와 종이를 파는 상인들이 모여 있다. (…) 이들 복제화 중에는 옛 신화에 등장하는 성현들과 수호신을 그린 것도 있는데, 이것들은 방에만 사용하며 한국의 어느 집에나 같은 그림들이 걸려 있다.”
– 까를로 로제티(1902~1903년:서울 주재 이탈리아 총영사), 《Coreae Coreani》

세화는 정초에 액운을 막고 좋은 일만 생기라는 의미를 담아 집안에 붙여두는 그림이다. 세화 중에서도 대표성을 띠는 그림으로 까치호랑이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까치 호랑이는 우리나라 호랑이 그림을 대표하는 그림이다. 따라서 그만큼 숫자도 많다. 까치 호랑이 그림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이다. 우선 소나무와 같이 등장하는 까치는 좋은 소식을 전해 주는 길조吉鳥인 동시에 국조國鳥로 나라를 상징하는 새로 파악하기도 한다. 민속학에서 까치는 민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좌우하는 서낭신이 천지사방 가운데 미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는 까치를 시켜 호랑이에게 신탁神託을 전달하여 시행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호랑이와 소나무, 까치는 우리 겨레의 영물靈物로서 길상吉祥의 의미가 있으며 특히 호랑이는 그 용맹성으로 인하여 벽사僻邪의 기능이 강하다.
중국 길상화 가운데 표범과 까치를 함께 그린 <보희도報喜圖>에서 까치호랑이 그림의 연원을 찾기도 한다. 보희도報喜圖는 기쁜 소식을 알린다는 의미의 도안이다(도2). 이 도안은 표범과 까치의 그림으로 도안을 구성한다. 까치는 기쁨의 의미를 지니며 표범[約]은 알린다[報]와 동음동성이다. 중국어의 표豹라는 독음과 고한다는 의미의 보報와 발음이 같고 소나무는 정월, 까치는 기쁨[喜]을 뜻하므로 이것을 한 화면에 그리면 ‘신년보희新年報喜’, 즉 새해를 맞아 기쁜 소식이 들어온다는 뜻이 된다. 중국의 까치와 표범 그림이 우리나라에 전해져 표범 대신 호랑이를 그려 넣어 까치호랑이 그림이 된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민화에서 호랑이는 까치뿐만 아니라 토끼, 거북, 담비, 학, 꽃 등 일상생활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소재와 함께 나오기도 한다.
까치호랑이 그림의 도상은 원대에 정립되어 확산된 것으로 에도 후기에도 하루키 난메이[春木南溟] 등에 의해 제작된 바 있다. 까치호랑이 그림은 범동아시아적 제재로 널리 유통되었다. 다양한 표현방법과 더불어 동아시아에서 가장 많이 그려진 것은 조선 후 말기의 민화로 그려진 까치호랑이 그림이다. 민화 까치호랑이 그림은 1965년 5월에 신세계화랑에서 열린 ‘호랑이전’에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 이후, ‘민족상징화’ 또는 ‘겨레그림’의 정수로서 민화 붐을 일으키는 데 선도적 역할을 했다. 1965년 신세계화랑 ‘호랑이전’ 도록에 실린 작품 중 흥미로운 호랑이 그림이 있어서 이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도3).
<까치호랑이>는 어미 호랑이 주위에 새끼 호랑이, 까치, 매미, 불로초, 딱따구리 등 불로장생과 수복강녕에 대한 염원을 가득 담은 부적과 같은 그림이다(도3). 그림의 오른쪽 하단에는 ‘병자년丙子八 8월月二 20일十日’이라고 되어 있어 주목할 만하다. 이 그림은 호작도 양식으로 볼 때, 19세기 후반 작품으로 생각된다. 19세기 후반에 해당되는 병자년은 1876년이다. 1876년 2월 3일 일본의 강압으로 조일수호조규가 체결되었다. 병자수호조약, 강화도조약으로 더 잘 알려진 이 조약을 계기로 조선은 개항을 하게 되었고, 세계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편입되기 시작했다. 1876년은 우리에게는 ‘강화도조약이 체결된 해’ 정도로만 기억되지만, 당시 민중들에게는 그것보다 하늘의 빗방울에 더 큰 관심이 있었던 해였다. 병자년 그해의 대가뭄은 비단 조선만이 아니라 중국, 일본, 일도, 러시아, 남미 등 전 세계적인 것이기도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1876년 4월부터 6월 말까지 수많은 기우제 기사가 나온다. 실록에 나오는 고종의 전교 내용을 읽어보면 당시의 절박함을 느낄 수 있다.


도3 <까치호랑이>, 89×55.5㎝, 출처 《까치호랑이 명품전》(신세계미술관, 1986)



“이번의 가뭄은 어째서 이렇게 심한가? 입하立夏가 이미 지났으나 비 올 기미는 갈수록 묘연하니 농사일을 생각하면 참으로 답답하고 근심스럽다. 하지夏至 전에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는 것은 이미 시행한 전례가 많으니 첫 번째 기우제는 날을 받지 말고 공경스럽게 설행設行하라.”
(고종 13년, 1876년 4월 14일)

이런 여러 차례의 기우제 때문인지 윤 5월 20일과 21일에 소량의 비가 왔으나 가뭄을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였다. 고종은 다시 6월 3일 이 가뭄이 자신의 허물임을 자책하며 다음과 같이 전교한다.

“지금 이 가뭄이 어찌하여 이렇게도 다시 혹심한가? 지난번에 친히 기우제를 올려 한 차례 비가 오는 신령의 감응을 얻었으나 정성이 완전히 이르지 못하여 두루 흡족하지 못하였고 우리 민정의 다급함을 풀어주지 못하였다. 스스로 돌이켜보면 부끄럽고 한탄스러우며 이어서 걱정스럽고 두렵다.” (
(고종 13년, 1876년 6월 3일)

1876년 6월 29일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좋은 비好雨’가 내렸다. 7월 이후에 기우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꽤 많은 양이 내린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날의 실록 기록은 무척이나 간략하다.

“29일 드디어 비가 내렸다. 감사하는 제사를 종묘, 삼각산, 목멱산(남산), 한강에서 지냈다[二十九日 雨 行報謝祭于宗廟 三角山 木覓山 漢江].”

연초부터 시작된 기나긴 가뭄이 해갈되는 순간이었다. 병자호란으로 유명한 1636년 병자년 이후 대가뭄의 역사로 기록된 1876년 병자년, 우리 역사에서 병자년은 또 이렇게 아프고도 끔찍한 흔적을 남기게 된다. 병자년 대가뭄은 너무나 참혹했기에 새로운 속담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 중 대표적 예가 “병자년 까마귀 빈 뒷간 들여다보듯”이라는 말로 어떤 일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구차스럽게 여기저기 기웃거리거나 기다리는 모양을 표현한 것이다. 이 속담 하나에도 병자년 당시 절박한 민중의 애환이 녹아있는 것이다. 안팎으로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어려운 상황이 하루빨리 해결되고 좀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하던 민중들의 바람을 담아 그려진 그림으로 읽어볼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오른쪽 중단에는 “바람 소리 천리 밖에 들리고, 높은 벼랑 포효는 바위를 파열하네[風聲聞於千里 吼蒼崖而石裂]”라는 시가 적혀있다는데, 이 시는 다른 호랑이 그림인 고운의 <백액대호白額大虎>에서도 보인다. 이 그림의 왼쪽 중단에 동일한 시가 적혀있다. 바위 위에서 몸을 틀며 정면을 응시하는 호랑이를 묘사한 작품이다. 절파풍浙派風으로 처리된 바위, 부자연스러운 작은 신체 표현, 둥글고 순진스런 눈초리 등에서 민화풍이 느껴진다. “바람 소리 천리 밖에 들리고 높은 벼랑 포효는 바위를 파열하네[風聲聞於千里 吼蒼崖而石裂]”라는 시가 적힌 호랑이 그림이 많이 남아 있다. 호랑이 그림을 보면 이 시 내용이 보이는지 살펴보면 좋을 것이다. 또한 민화 작가들도 호랑이 그림을 그릴 때, 이 글을 써도 좋을 것 같다.

[참고문헌]
김기호, <트릭스터 토끼 설화군의 계통-발달론적 관점을 중심으로>, 《한국사상과 문화》40 (한국사상문화학회, 2007), p69-102; 쥘 르나르(Renard, Jules) 지음, 박명욱 옮김, 《자연의 이야기들》 (문학동네, 2002)
강원도 민화에 대해서는 유용태의 《강원의 美》; 차장섭의 <석강 황승규의 생애와작품세계> 《특별전 한국의 문자도》 (삼척시립박물관, 2007) 등 참조; 윤열수, <강원도 지역 민화에 대한 고찰>, 《동악미술사학》9 (동악미술사학회, 2008), p7
노자키 세이킨 지음; 변영섭, 안영길 옮김, 《중국미술상징사전 : 성서로운 도안과 문양의 상징적인 의미》 (고려대학교 출판부, 2011), p176-178
홍선표, <개인소장의 〈出山虎鵲圖〉>, 《미술사논단》9 (한국미술연구소, 1999.11), p345-350
홍선표, <萬曆 壬辰年(1592) 製作의 <虎鵲圖> – 한국 까치호랑이 그림의 원류>, 《동악미술사학》7 (동악미술사학회, 2006), p239



김취정 | 서울대학교박물관 객원연구원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사학 석·박사학위를 받았고,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고려대 강사, 서울대학교박물관 객원연구원, 한국민화학회 이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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